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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ㅣ 비타 악티바 : 개념사 17
이국운 지음 / 책세상 / 2010년 2월
평점 :
흔히 사람들은 말한다. 착하디 착한 사람을 만나면 당신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흔히들 또 말한다. 악하디 악한 사람과 부딪히면 그래, 법대로 하자고. 도대체 법이 무엇이기에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은 것일까? 우리 일상에서 헌법을 이야깃거리로 삼는 경우는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지금껏 살면서 헌법 전문(全文)을 온전히 읽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난 1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은 헌법 재판소에서 벌어지는 정치쇼(?)를 자주 보아왔다. 행정수도 이전 문제, 대통령 탄핵 재판, 언론법 절차 문제 등 우리 사회의 갈등을 최종으로 판가름 짓는 곳이 헌법 재판소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헌법 제 1조가 노래에 담겨져 불렸다. 바람결에라도 들으면서 민주공화국과 주권의 의미를 스스로 물었다.
자연스레 ‘헌법을 정치적 사고와 실천의 중심에 놓으려는 입장’(39쪽), 즉 헌정주의를 심각히 성찰해 봐야할 시기다. 법학자로서 저자는 헌정주의의 역사를 되짚으며 표상정치를 극복하려는 세련된 기획으로서 헌정주의를 이야기한다. ‘정치를 필요로 하는 사태에 대하여 표상의 형태로 정치를 제공하는’(21쪽) 표상정치는 두 얼굴을 지닌다. 표상정치는 많이 먹으면 죽지만 적당히 먹으면 건강해지는 투구꽃을 닮았다. 동일성의 논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표상정치는 표상에서 배제되어 주변부에 머무는 경우가 발생하는 한계를 지닌다. 그러기에 완전한 정치 형태라 볼 수는 없다. 그래서 표상정치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로 헌정주의의 개입이 필요한 것이다.
저자는 동서양에서 펼쳐졌던 고전적 헌정주의를 검토한 후 그 한계를 지적한다. 그런 뒤 16세기 서양에서 벌어진 종교혁명을 계기로 이루어진 헌정주의의 근대적 혁신을 톺아본다. 자연권, 사회계약, 의회주의, 법의 지배 등 근대 헌정주의에 내재한 혁신의 논리들이, 헌법에 주권을 명시하는 결과를 낳는 과정을 면밀히 살핀다. 그리고서 자유와 민주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전개된 근대 헌정주의의 성과와 한계를 검토하면서 20세기 후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서로 으르렁거리며 팽창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문제를 언급한다.
이처럼 표상정치와 헌정주의의 관계를 역사의 흐름에 따라 조명하면서 저자는 ‘우리가 헌법의 본질을 묻게 되는 것은 권력의 정당성을 ‘깊이’ 문제 삼으려는 맥락’(19쪽)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들의 뜻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상황이 빈번해지면서 불만이 점차 쌓여갔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가 언급하는 ‘헌법의 주어 찾기’는 시의적절하다. 결국 헌정 권력은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를 아우르는 것이기에 삶의 다원성을 바탕으로 한 다차원의 지역화된 민주적 자치 구조, 즉 표상정치의 단위를 여러 단위로 복수로 설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헌법 정치의 패러다임을 준수에서 정상화로 전환하는 일인 것이다. 결국 자유와 민주가 서로 조화를 이루는 접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동일성의 정치가 아닌 ‘차이의 정치’를 실현하는 일인 셈이다.
책의 분량은 비록 적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결코 녹록지만은 않다. 헌정주의의 역사를 거슬러 오르며 자유민주주의를 밑거름으로 한 우리 시대를 반성하고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동아시아, 특히 조선의 성리학적 헌정주의를 검토한 이후에는 서구 근대 헌정주의에만 치중하여 살펴본다. 동서양의 비교를 끝까지 유지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문고판 총서에 이를 다 담아내기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아쉬움은『교양으로 읽는 법 이야기』(김욱, 인물과사상사)나 『중국 법률사상사』(장국화, 아카넷)로 달래야겠다.
헌정주의의 개념사를 훑어보고 나니 공화주의가 궁금해진다. 골치 아프게 익힌 만큼 머리가 야들야들할 때 공화주의에 대한 공부로 옮아가야겠다. 최근 공화주의를 다룬 국내 저자의 저서들이 몇 권 출간되었다. 이 책과 같은 총서에 속한『공화주의』(김경희, 책세상)와 최근 출간된『공화국을 위하여』(조승래, 길)를 읽는다면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 담긴 의미를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에 살고 있는 시민으로서 성숙을 바란다면 골치 아픈(?) 공부라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되겠다 싶다. 우리 후손에게 이 나라를 살기 좋은 나라로 물려주려 싶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