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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 힘
가와이 하야오 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마고북스 / 2003년 11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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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은 재미있다- 그림책의 다섯 가지 표현 기법
다케우치 오사무 지음, 양미화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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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쓰는 법
엘렌 E. M. 로버츠 지음, 김정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8월
15,800원 → 15,010원(5%할인) / 마일리지 470원(3%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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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젖이 딱 좋아!
허은미 지음, 윤미숙 그림 / 웅진주니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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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은 참 대단해!
허은미 지음, 김병호 그림, 조은화 꾸밈 / 웅진주니어 / 2004년 8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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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구멍 이야기
야규 겐이치로 글 그림, 예상열 옮김 / 한림출판사 / 2002년 8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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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는 달라요
수 로우슨 지음, 캐롤라인 마젤 그림, 권수현 옮김 / 봄봄출판사 / 2005년 12월
8,800원 → 7,920원(10%할인) / 마일리지 44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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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안 낫싱, 검은 반역자 1 - 천연두파티
M. T. 앤더슨 지음, 이한중 옮김 / 양철북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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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1)

담위로 올라가려는 불타는 충동은 어떻게 다 사위어버렸을까?

 

(12)

나를 기른 사람들은 물질세계의 대가였다. 나는 그들이 어두운 방에서 거대한 천구의로 천체의 운행을 탐색하는 모습이나 손바닥에

불꽃들을 튀기는 광경을 보았다. 그들이 죽어가는 송어나 청어의 모습을, 새로 발견한 모세 5경이라도 된다는 듯 열심히 살폈다.

사랑의 시를 쓰기도 하고, 상처의 독을 빨아내기도 하고, 우울한 풍경화를 그리기도 하고, 금속들의 울림을 분석하기도 했다.

 

나는 아버지 없이 자랐다. 그러면서도 그게 이상하다는 걸 알지 못했다. 또 내가 받은 교육 방식들이 특이하다는 것도 전혀 알지 못했다.

자신의 성장환경을 보편적인 것을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특수함을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모든 아이들의 운명이기도 하다.

 

(14)

그래서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비밀스럽게 길러졌다. 마치 시간이라는 협곡에서 납치당해, 이다 산에서 뿔 달린 유모의 도움으로 극도로 비밀스럽게 성장한 어린 제우스처럼.

 

(45)

그것은 미소를 짓고 있는, 대상을 닮은 허구일 뿐이어서 영혼이 다가오지 못한다. 그리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없다.

/

하지만 나는 내가 본 것은 잘 알고 있다.

 

(46)

한동안 그렇게 함께 누워 있자니 내가 그녀의 엄마가 되고 그녀가 내 아들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87)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이 아량과 공명정대함을, 이성과 미덕을 함양하기 위해 사랑으로 빚어진 존재라는 증거를 마침내

찾을 수 있음을, 또 정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인간의 완벽성을 함께 추구할 수 있다는 사실도 이해했다.

 

 

자신이 고귀하게 성장하는 줄만 알았던 옥타비안 낫싱, 그는 하인 보노로부터 자신 또한 '하찮은 처지'임을 알게 된다.

노예의 처지에서 벗어나게 해 줄 것만 같았던 첼소프 백작에게 옥타비안과 그의 어머니는 반항을 한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상대가 베푸는 연정 혹은 동정은 그의 잇속을 차리기 위함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노예가 되었을 때, 과연 그러한 상대의 속내를 알면서도 거부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일 것이다.

 

어쩌면, 자신을 잃어간다는 사실이 죽음보다 더 두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다행히, 그들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다.

 

 

소설 <<옥타비안 낫싱>>은 인간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흑인들과 그 자좀심을 짓밟아 모든 인간을 소유물로 삼으려는 노예주들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보여준다.

 

수준 높은 대사는 옥타비안을 비롯한 그 주변인들의 내적 고귀함을 보여 주고,

무게감 있는 묘사는 이 시대의 암울과 속박을 드러내 준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느낌이 잘 전달되었던 것은 번역가의 빈틈 없는 번역 덕분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수준이 높다.

청소년 소설이라고 불리는 데 약간의 의구심을 갖게 한다.

청소년들의 수준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기본 지식과

그에 따른 비판의식을 키운 독자가 읽으면 더 많이 얻어갈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로서의 한계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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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하영이의 스웨덴 학교 이야기 - 창의.다양.여유를 배운다 양철북 청소년 교양 8
이하영 지음 / 양철북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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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학교], 참 흥미로운 책입니다.
스웨덴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도 당연히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스웨덴 학교 이야기가 더 이상 특별할 것도, 부러워할 대상도 되지 않을 때, 우리는 어쩌면 제대로 된 교육을 실천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해한 [스웨덴 학교]는 다음과 같습니다.

*********************************************


1. 제 손으로 배워가는 학습

(35)
학생들이 직접 참여해서 불도 붙이고 음식도 만들어 먹는 일은 좋은 체험인 것 같다. 한국에서는 위험하다고 손도 대지 못하게 할 불과 칼을 직접 다루게 하는 것은 학생들이 다쳐도 상관없다는 뜻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신뢰감을 보여줌으로써 자립심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2.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가는 공부

(138)
이번 현장학습은 책상 앞에 앉아서 글만 읽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게 스톡홀름에 관해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한국의 친구들도 자신이 사는 지역을 돌아다니며 역사와 지리를 배우는 기회를 자주 가지면 좋을 것 같다.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 배우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나 마을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것도 아주 재미있고 유익한 일이다.

(154)
무엇을 하라는 제한은 없었다. 꼭 들어가야 하는 내용만 들어가면 두루마리 화장지에다 숙제를 하건, 100장짜리 논문을 쓰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이런 점에서는 스웨덴 학교가 정말 좋다. ‘원고지 몇 장’처럼 틀에 박힌 것이 아닌,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점이 적극적인 나로서는 마음에 든다.
나는 이 모든 내용을 3개 국어(한국어, 스웨덴어, 영어)로 쓰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스웨덴어로 된 성경을 빌려와서 신약을 읽기 시작했다. 내용을 전체적으로 파악한 다음 차례를 작성하고 주요 도시와 지역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지도를 그렸다. 전체적인 테마는 ‘책’이었다. 책은 내게 가장 익숙한 주제이고, 차례를 정리하고 서문을 쓰는 등 재미있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할 일도 많았다. 특히 중요한 단어에 주석을 달고 자료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SO 선생님은 내 멘토인 아디여서 훌륭한 학생으로 보이고 싶은 생각이 적지 않았다.
나는 스웨덴에 온 이후로 또래 친구들보다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더 즐거웠다. 선생님들이 스승이라기보다는 친구라는 느낌이 강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학생이 일방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사람 대 사람으로 존중하는 점에서 보면 그것은 확실하다.

(158)
아이들은 박수를 쳤고, 선생님들은 내 스웨덴어 실력을 칭찬했다(물론 그들의 입장에서는 아주 우스운 수준이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너무 선생님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어쨌든 일바의 도움 없이 발표를 한 것이 나름대로 자랑스러웠다.
숙제나 시험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매번 숙제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그것은 정해진 시간 동안 억지로 끝내야 하는 지긋지긋한 골칫거리가 아니라, 나만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남들이 보기에는 우스운 수준의 자은 성취감에 불과해도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숙제가 늘 기다려진다.

 


3. 그들도 우리처럼
- 외국 학생을 위한 제도적 배려 그리고 친구들과의 어울림

(116)
스웨덴어 과목은 일반 스웨덴어와 제2외국어로서의 스웨덴어로 나누어져 있지만 수업 시간은 같다. 나는 부족한 스웨덴어를 보충하기 위해 ‘B언어’ 과목도 스웨덴어를 선택했다. B언어는 한국으로 치면 제2외국어인데,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외에도 영어나 스웨덴어를 추가로 들을 수 있다. 외국에서 온 학생들을 위해서 따로 수업을 준비해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성적 역시 똑같이 매겨지니 공평하고 괜찮은 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121)
“나 저 애들 알아. 같이 앉자고 하자.”
일바는(일바는 금발의 빼빼 마른 스웨덴 소녀였다.-118쪽) 여자아이들이 모여서 점심을 먹고 있는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무언가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바의 가공할 정도로 빠른 말투 때문에 망설여졌다. 알아듣지 못해서 다시 되묻기가 몹시 창피했기 때문이다.
내가 접시에 놓인 베이컨과 당근만 깨작이는 사이 아이들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소피에룬드 학교의 여자아이들이 늘 하는 수다와 별로 다를 게 없는 내용이었다. 여자아이들의 모임이란 어느 나라에 가도 똑같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163)
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쉬는 시간, 버스 카드를 잃어버려서 매일 왕복 10킬로미터를 걸어야 하는 것, 자전거가 너무 비싸다는 것, 부모님과의 마찰, 고등학교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는 것, 장래희망이 자꾸 바뀌는 것……. 나는 장장 1시간 30분 동안 내 이름에 대한 불평에서부터 진정한 친구는 언제쯤 생길지에 관한 고민까지 늘어놓았다. 지루할 만도 하건만 리누스는 불평이나 잔소리 한마디 없이 끝까지 참을성 있게 들어주었다.


공부와 어울림, 타인 속에서 나를 발견해 가는 과정을 열다섯살 하영의 눈(이하영 학생을 글의 제목과 걸맞게 ‘하영이’로 쓴다.)으로 사실적으로 그려낸 [스웨덴 학교]는 그녀가 접하고 있는 주변의 많은 이야기들을 이삭줍기 하듯 온몸을 숙여 주워 읽는 이에게 전해준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점은, 열다섯의 하영이가 ‘자신의 특별함과 대담함’을 앞세우기보다는 또래의 보통 학생의 눈으로 주변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이다. 자신의 체험담을 글이나 말로써 타인에게 전달할 때 보통 사람들이 범하는 우는, 남들이 하지 못한 일을 자신은 이를 악물고 해냈다는 ‘간증’의 형태로 풀어내는 점이다. 하지만, 하영이는 그런 수위를 적절히 조절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언뜻 듣기에는 ‘스웨덴’은 우리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는 곳일 수 있다. 그렇지만, 하영이의 글은 독자들(특히 학생, 교사, 학부모)이 알고 싶어하는 학교 안과 밖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일상의 눈을 갖고 그려갔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하영이가 스웨덴에서 만난 사람들이 하영이가가 이런 글을 쓸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 준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역으로 보자면,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으로 온 한 학생이,

 

<<열다섯 후세인의 신나는 한글 학교>>라는 책을 쓸 수 있을까?

그 책의 판매량이나 예상 독자를 따져 보기 전에, 한국에 있는 외국 학생들이 과연 하영이와 같은 글을 쓸 수 있는지 반문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한국어를 배우면서 일상을 공유한 타인과의 이야기를 격앙된 어조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잔잔함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청소년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런 아이는 내가 만난 아이들 중의 한 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섣부른 바람도 함께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감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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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의 의미 - 어느 재일 조선인 소년의 성장 이야기 카르페디엠 14
고사명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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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평소와 다름 없이 어느덧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검고 무거운 무엇인가가 내 얼굴 위에 가려지는 것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가만 보니 아버지가 나의 베갯머리에서 일어서려고 하는 중이었다. 일어나 천정에 동그랗게 묶어 놓은 전선을 풀고 있었다. 나는 잠이 확 깨었다. 아버지가 목을 매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동시에 형이 일어났고, 우리는 아버지의 손을 양쪽에서 붙잡고 매달렸다.


(중략)


나는 장엄한 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리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자살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절규하던 내 마음의 비통을. 우리는 일본어로 울부짖었고 아버지의 한국어는 살아가는 것의 절망을 토로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손에 매달린 채로 나의 몸이 공중으로 떠 오르던 순간의 공포를 기억하고 있다.


- 고사명(高史明), (1973:15-16), “저 멀리 빛을 향해”(인용자 번역)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일본어의 어린 아이와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어의 아버지, 여기에서는 말과 말이 사람과 사람을 찢어 놓는다. 매달려 있던 아이들은 분명 아버지를 접하며 만질 수 있는 거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은 결코 다가갈 수 없는 멀고도 먼 거리로 아비와 자식을 갈라놓는다. 생과 죽음의 사이만큼 먼 거리이다. 만일 우리가 언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언어의 이러한 모습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언어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 줄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갈라 놓기도 한다.


*******************************************

지난 8월 30일 한글 학회 창립 100돌 기념 국제 학술 대회에 참가했다. 세계 각지에서 한국어 연구 및 한국어 교육에 힘쓴 여러 학자들이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동경외국어대학의 노마 히데키 교수의 발표였다. 인간이 언어를 배우는 이유, 즉, 언어를 배우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라는 제목의 발표 내용에는 고사명 소설의 일부가 있었다.
재일在日 동포 출신의 작가라는 소개가 있었는데, 나는 그 작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어 인터넷 서점에서 “고사명”이라는 작가를 검색해 보았다.



‘어느 재일 조선인 소년의 성장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산다는 것의 의미>>라는 소설이 양철북 출판사에서 작년에 출판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반가움에 그 책을 주문했고, 일요일 오전, 유난히 삐걱거리는 식탁 의자에 세 시간 동안 앉아 이 책을 단숨에 읽어 버렸다.


한밤중이었던 걸로 생각됩니다. 나는 인기척을 느끼고 잠에서 깼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아버지가 내 머리맡에 앉아 있었습니다. 손가락 마디가 울퉁불퉁한 손으로 내 볼을 쓰다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낮은 목소리로 무슨 말인가 했는데, 조선어를 잘 몰랐던 나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형의 뺨도 어루만졌습니다. 나는 졸음이 쏟아져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하지만 다시 눈이 뜨였습니다. 아버지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우리의 볼을 한동안 쓰다듬더니 우리 볼에 아버지의 볼을 갖다 대고 마구 비볐습니다. 그러고는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나는 그때 눈을 크게 뜨고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아버지는 밥상에 올라가 천장에 매달린 전등을 붙잡았습니다. 천장 속에 있는 전깃줄을 끄집어 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버지가 전깃줄을 끄집어 낼 때마다 전구가 심하게 움직였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그림자가 벽에 어른거렸는데, 마치 보기 흉한 생물체처럼 보였습니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전구의 불빛이 잠시 비쳤다가 이내 얼굴 전체가 시커멓게 보였습니다.
- <<산다는 것의 의미>>, 고사명 지음, 김욱 옮김(2007, 양철북)


**************************************************


오 년 전쯤이었을까, 한국어 초급반, 우리 교실에는 재일 동포 출신의 학생, 미애가 있었다. 공부 시간에 너무 말을 많이 하면 다른 학생에 폐가 될까봐 말을 골라한다는 몹쓸 예의를 갖춘 학생이, 평소보다 유난히 많은 말을 쏟아낸 날이었다.
그 날 수업의 주제는 ‘국제결혼’이었다. 유난히 한국 남자와 일본 남자를 비교해 가면서 국제 결혼 이야기에 열을 올리던 미애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교사인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미애 씨도 국제결혼에 관심이 있어요?”
“선생님, 저는 어느 쪽이라도 국제결혼이에요.”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의 말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해서였다. 눈치가 빠른 미애는 빠른 속도로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한국 사람이랑 결혼해도 국제결혼이고, 일본 사람이랑 결혼해도 국제결혼이에요.”
한국 이름을 갖고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그녀는 분명, 일본에서는 외국인일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어 초급반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그녀는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믿고 있고, 한국어 초급반 학생이 아닌, 그렇다고 그녀와 비교했을 때, 상대방을 배려하며 꽤 세련된 언어를 구사하는 것도 아닌 한국인들 또한 그녀를 한국인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을까. 나는 그 모든 사실을 의심했으나 미애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은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닌 그 경계에 있다는 것을.

고사명의 소설을 접하면서, 우리 교실에 앉아 있었던 수많은 재일 동포 출신의 학생들을 떠올렸다. 바다와 육지 사이에서 애처롭게 흔들리는 파도처럼 자신의 위치를 고민하던 그 젊은이들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언어란 본디 삶과 죽음을 갈라 놓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너와 나를 구분 짓기 위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언어는 그렇게 가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정말 그렇게 가고 있다. 나는 그것이 무척이나 두렵다.
영어 교육에 기가 눌려 버린 한국어 교육을 맡고 있어서가 아니다.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학교에 가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만나서도,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언어라는 것이, 타인을 이해하는 도구로서, 자신을 올바르게 표현하여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확성기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현실을 목도하며 나 또한 모래 위에서 사라질 거품처럼 맥 없이 흔들릴 것만 같아 언어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마음가짐을 매번 새롭게 생각해 보며, 언어와 언어 사이에서, 경계와 경계 사이에서 불안을 느끼는 것이다.

언어를 쓰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고민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고사명의 <<산다는 것의 의미>>는 우리에게 자신의 존재와 언어 사이와의 관계를 면밀히 따져볼 기회를 넌지시 던져준다.
고사명의 다른 책들도 얼른 번역이 되어 만날 수 있었으면 한다.
매너리즘에 빠져 내가 쓰는 말에 대해 둔감해지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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