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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의 의미 - 어느 재일 조선인 소년의 성장 이야기 ㅣ 카르페디엠 14
고사명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평소와 다름 없이 어느덧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검고 무거운 무엇인가가 내 얼굴 위에 가려지는 것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가만 보니 아버지가 나의 베갯머리에서 일어서려고 하는 중이었다. 일어나 천정에 동그랗게 묶어 놓은 전선을 풀고 있었다. 나는 잠이 확 깨었다. 아버지가 목을 매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동시에 형이 일어났고, 우리는 아버지의 손을 양쪽에서 붙잡고 매달렸다.
(중략)
나는 장엄한 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리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자살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절규하던 내 마음의 비통을. 우리는 일본어로 울부짖었고 아버지의 한국어는 살아가는 것의 절망을 토로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손에 매달린 채로 나의 몸이 공중으로 떠 오르던 순간의 공포를 기억하고 있다.
- 고사명(高史明), (1973:15-16), “저 멀리 빛을 향해”(인용자 번역)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일본어의 어린 아이와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어의 아버지, 여기에서는 말과 말이 사람과 사람을 찢어 놓는다. 매달려 있던 아이들은 분명 아버지를 접하며 만질 수 있는 거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은 결코 다가갈 수 없는 멀고도 먼 거리로 아비와 자식을 갈라놓는다. 생과 죽음의 사이만큼 먼 거리이다. 만일 우리가 언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언어의 이러한 모습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언어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 줄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갈라 놓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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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0일 한글 학회 창립 100돌 기념 국제 학술 대회에 참가했다. 세계 각지에서 한국어 연구 및 한국어 교육에 힘쓴 여러 학자들이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동경외국어대학의 노마 히데키 교수의 발표였다. 인간이 언어를 배우는 이유, 즉, 언어를 배우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라는 제목의 발표 내용에는 고사명 소설의 일부가 있었다.
재일在日 동포 출신의 작가라는 소개가 있었는데, 나는 그 작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어 인터넷 서점에서 “고사명”이라는 작가를 검색해 보았다.
‘어느 재일 조선인 소년의 성장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산다는 것의 의미>>라는 소설이 양철북 출판사에서 작년에 출판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반가움에 그 책을 주문했고, 일요일 오전, 유난히 삐걱거리는 식탁 의자에 세 시간 동안 앉아 이 책을 단숨에 읽어 버렸다.
한밤중이었던 걸로 생각됩니다. 나는 인기척을 느끼고 잠에서 깼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아버지가 내 머리맡에 앉아 있었습니다. 손가락 마디가 울퉁불퉁한 손으로 내 볼을 쓰다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낮은 목소리로 무슨 말인가 했는데, 조선어를 잘 몰랐던 나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형의 뺨도 어루만졌습니다. 나는 졸음이 쏟아져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하지만 다시 눈이 뜨였습니다. 아버지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우리의 볼을 한동안 쓰다듬더니 우리 볼에 아버지의 볼을 갖다 대고 마구 비볐습니다. 그러고는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나는 그때 눈을 크게 뜨고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아버지는 밥상에 올라가 천장에 매달린 전등을 붙잡았습니다. 천장 속에 있는 전깃줄을 끄집어 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버지가 전깃줄을 끄집어 낼 때마다 전구가 심하게 움직였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그림자가 벽에 어른거렸는데, 마치 보기 흉한 생물체처럼 보였습니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전구의 불빛이 잠시 비쳤다가 이내 얼굴 전체가 시커멓게 보였습니다.
- <<산다는 것의 의미>>, 고사명 지음, 김욱 옮김(2007, 양철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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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년 전쯤이었을까, 한국어 초급반, 우리 교실에는 재일 동포 출신의 학생, 미애가 있었다. 공부 시간에 너무 말을 많이 하면 다른 학생에 폐가 될까봐 말을 골라한다는 몹쓸 예의를 갖춘 학생이, 평소보다 유난히 많은 말을 쏟아낸 날이었다.
그 날 수업의 주제는 ‘국제결혼’이었다. 유난히 한국 남자와 일본 남자를 비교해 가면서 국제 결혼 이야기에 열을 올리던 미애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교사인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미애 씨도 국제결혼에 관심이 있어요?”
“선생님, 저는 어느 쪽이라도 국제결혼이에요.”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의 말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해서였다. 눈치가 빠른 미애는 빠른 속도로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한국 사람이랑 결혼해도 국제결혼이고, 일본 사람이랑 결혼해도 국제결혼이에요.”
한국 이름을 갖고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그녀는 분명, 일본에서는 외국인일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어 초급반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그녀는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믿고 있고, 한국어 초급반 학생이 아닌, 그렇다고 그녀와 비교했을 때, 상대방을 배려하며 꽤 세련된 언어를 구사하는 것도 아닌 한국인들 또한 그녀를 한국인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을까. 나는 그 모든 사실을 의심했으나 미애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은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닌 그 경계에 있다는 것을.
고사명의 소설을 접하면서, 우리 교실에 앉아 있었던 수많은 재일 동포 출신의 학생들을 떠올렸다. 바다와 육지 사이에서 애처롭게 흔들리는 파도처럼 자신의 위치를 고민하던 그 젊은이들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언어란 본디 삶과 죽음을 갈라 놓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너와 나를 구분 짓기 위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언어는 그렇게 가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정말 그렇게 가고 있다. 나는 그것이 무척이나 두렵다.
영어 교육에 기가 눌려 버린 한국어 교육을 맡고 있어서가 아니다.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학교에 가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만나서도,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언어라는 것이, 타인을 이해하는 도구로서, 자신을 올바르게 표현하여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확성기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현실을 목도하며 나 또한 모래 위에서 사라질 거품처럼 맥 없이 흔들릴 것만 같아 언어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마음가짐을 매번 새롭게 생각해 보며, 언어와 언어 사이에서, 경계와 경계 사이에서 불안을 느끼는 것이다.
언어를 쓰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고민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고사명의 <<산다는 것의 의미>>는 우리에게 자신의 존재와 언어 사이와의 관계를 면밀히 따져볼 기회를 넌지시 던져준다.
고사명의 다른 책들도 얼른 번역이 되어 만날 수 있었으면 한다.
매너리즘에 빠져 내가 쓰는 말에 대해 둔감해지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