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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을 위한 참 쉬운 한글 배우기 - Easy Learning Hangeul for Beginners: Simple and Easy Self-Study Book for Mastering Hangeul
한혜민.박세희 지음, 조영미 감수 / 왓어북 / 2022년 3월
평점 :
사람들은 종종 나를 ‘한글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한글도 가르치니까. 하지만 나는 한글만 가르치는 한글 선생님이 아니며, 학생들은 한글만
배우는 학생들이 아니다.
나는 대학에서 대학생 혹은 대학원생인 성인 학습자들을 가르친다. 초급, 중급, 고급 단계를
모두 가르치는데, 초급 중에서 일명 가나다반이라 부르는 왕초보, 그러니까
한글 자모부터 배워야 하는 학습자들도 맡는다. 사람들은 이들을 한글 가나다, 를 배우는 유아들을 동일시하는데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첫째, 이들의
자모 학습 순서는 다르고
둘째, 이들은
유아가 아닌 성인이다.
이 두 가지 문제를 깊이 있게 짚어봐야 한다.
육아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어린 아이의
한글 학습을 함께 한 분이라면 아이들의 한글은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로 모음은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 순으로 가르칠 것이다. 심지어 모음을 가르칠 때에는 음가가 없는
‘ㅇ’을 빼고 ㅗ ㅛ ㅜ ㅠ 이런 목 잘린 모양의 글자를
가르치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잘만 배운다. 1) 아이들이라
의심 없이 알려주는 대로 잘 배우는 습성이 있고, 2) 모국어 화자라 매일 글자와 매치되는 단어와 발화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인 외국인 학습자라고 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바’를 , ‘ㅂ ㅏ’라고 써서 붙여 쓰라고 하면, ‘ㅂ’과 ‘ㅏ’의 간격은 어느 정도 띄어야 하느냐고 묻고,
‘나’를 쓸 때, ‘ㄴ’보다 짧은 ‘ㅏ’를 써서
작대기를 길게 내려주면 또 “왜?”냐고 묻는다.
‘로’를 쓸 때 몇 번을 연습해도 ‘ㄹㅗ’라고 쓰고서는 ‘라’와
‘로’에서 자모 위치가 왜 달라지느냐고 묻고,
교사도 사람인지라 사사사사사, 를 다섯 번
쓰고, 다섯 번 읽을 때 모든 글자와 모든 발음이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학생들은 그걸 귀신
같이 찾아내고는(혹은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고는) “왜 첫
번째 사와 네 번째 사가 글자가 다르냐”고 물었다. 칠판을
보니, 쓰다가 분필이 부러져서 네 번째 ‘사’의 ‘ㅏ’의 작대기가 조금
짧았다. 나는 다시 분필을 들고 작대기를 길게 이어줬다.
학생들이 이렇게 글자 하나 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자기 모국어와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내가 모 대학 교환학생 반을 맡고 있는데 이들은 한국어 학습이 아예 전무한 학생들이며, 영어 강의로 진행을 해야 하는 수업이다. 20명 중 말레이시아 1명, 홍콩 1명, 브라질 1명, 나머지는
유럽 출신자들이다. 한국어 자모의 구조가 낯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스무 살이 훌쩍 넘은 성인 학습자들이며, 교환학생이니 자국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왔으며, 영어로 의사소통에 무리가 없는, 교육을 받은 이들이다. 교육 받은 성인이 외국어를 배울 때의 특징은, 1) 외국어를 언어학적으로
분석하고 싶어하고, 2) 목표 언어와 모국어와의 차이를 분명히 인지하고자 하는 욕망이 크다는 점이다. 자모 학습이라면 그냥 읽고 따라하고 쓰면 되는데, 이들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궁금한 게 너무 많은 어른들이다. 따라서
이들을 가르치는 이들은 한국어를 외국인의 입장에서 ‘낯설게’ 볼
줄 알고 자신의 모국어를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성인 학습자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을 맡는 이들은 모두 훈련된 전문가들이다.
훈련이 되었다는 말은 적어도 석사 이상의 학위자나 국립국어원에서 발급한 한국어교원 2급 이상을 보유했으며, 전문 기관에서 교수 경험이 있다는 말이다.
얼마 전, 모 방송의 진행자인 유명 MC가 프랑스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의 일상을 보고 이런 말을 했다.
“저거, 초등학생들 가르치는 거랑 똑같네.”
나는
그 MC의 발언은 상대의 직업에 대한 무지에서 온 무례한 발언이라고 생각했다.
모국어
화자가 듣기에 “조나단 씨, 무슨 음식을 좋아해요?”라는 질문은 너무 쉽거나 너무 부자연스러워서 “나라도 저런 말을
가르치겠다.”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고, 나 또한 그런 말을
종종 들어왔다. 그러니 한글을 가르친다고 하면 대한민국의 많은 이들이 연령 불문하고 외국인을 가르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손을 번쩍 들지 모른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그들이 배워야 할 한국어의 기본을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한국어 교육 전문가들은
오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연구해 왔다.
최근
그 결실을 가까이에서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외국인을 위한 참 쉬운 한글 배우기”
한국어교육학으로 학위를 받고 홍콩 소재 대학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친 전문가 한혜민, 박세희 교수가 한글 학습 책을 출판했다. 대학에서 학부생, 대학원생을 가르치는 교수자가 한글 학습 교재를 내는 일은 흔하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해외에서 오랜 시간 한국어를 가르치며 한글 자모 학습의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 체감한 전문가들이다.
이 전문가들이 한글 학습 교재를 낸다고 했을 때 더없이 반가웠다. 나
또한 현장에서 이러한 교재의 필요성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특히 몇 번을 가르쳐도 ‘바’를 ㅂ ㅏ, 라고 쓴 학생들을 볼
때 더더욱…
나는 이들이 집필한 교재를 감수하게 됐다. 감수라는 타이틀 없이도
이러한 교재라면 기꺼이 찬찬히 보고 의견을 줄 수 있었다. 그만큼 현장에서 필요한 교재라고 강조하고
싶다.
언어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외국인들에게 한글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이 책을 알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