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 독자에서 에세이스트로
배지영 지음 / 사계절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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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배지영, 사계절(2022)

 

(90)

 글쓰기는 퀵서비스처럼 결과물을 현관 앞까지 배달해주지 않았다. 악천후를 각오하고 혼자서 설어가는 사람에게만 저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고 암시해주었다. 변덕까지 심한 글쓰기는 볕이 따갑다며 나무 그들이 되어주다가도 땅거미 내려앉은 황량한 벌판에 그냥 세워두고 가버렸다. 사람들은 눈물을 쏟으면서 쓰고 고쳤다. 고통은 끝까지 파고들면, 자신의 감정을 오롯이 지키는 힘이 생겼다. 타인에게 휘둘리는 일이 줄어들었다. 현실은 바뀌지 않아도 글 쓰는 자기 자신은 달라졌다. 글쓰기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이유가 사라졌으므로 날마다 쓰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글쓰기에 의심이 많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이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무슨 좋은 세상을 보자고 이렇게 힘들게 쓰고 있는 건지,

하루 루틴에는 소설 필사, 시 한 편 읽기, 독서, 그리고 글쓰기가 있다. 장르 불문하고 쓴다. 쓰면서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으면 신경질을 낸다. 이렇게 매일 쓰는데도 자주 막히다니, 난 왜 이렇게 더딜까. 신경질이 자책과 자학으로 이어지곤 한다.

 

나의 의심으로 시작된 신경질과 자학에 배지영 작가가 답해주었다.

 “글쓰기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이유가 사라졌으므로 날마다 쓰는 사람이 되었다.”

 나도 그랬다. 지금 글쓰기가 막혀도 멈출 수가 없는 건 내가 글쓰기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매일 글쓰기로 스스로가 변화된 것이다.

 

 내가 브런치 글쓰기를 지속한 데에는 배지영 작가의 영향이 컸다고 고백한다. 다른 글에서도 밝혔지만 배지영 작가님은 내 브런치 구독자 1호였다. 당시 그분은 <우리, 독립 청춘>이란 작품으로 브런치 대상을 받아 주목받는 작가로 발돋움했고(어쩌면 그 이전에도 알려졌고) 그 이후 매년 출판계약서를 작성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나는 그녀와 이전부터 알던 사이도 아니었고, 우리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지만 나는 글쓰기나 출판에 대해 궁금증이 생길 때마다 (다소 뻔뻔하게) 그녀를 찾았고 그녀는 아주 친절하게 내 고민에 귀기울여주었다. 브런치 글쓰기를 비롯해 다양한 글쓰기, 출판에 대한 과정은 내가 그녀를 벤치마킹했기에 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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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건넨 말은 상대방의 귀에 닿았다가 흩어지지 않고 가슴 속에 뿌리내리기도 한다. 힘들 때는 그 말에 기대어 일어서는 사람도 있다. 글쓰기를 택한 사람들은 밑줄 긋고 별표 친 문장처럼 마음에 새겨놓은 말을 끄집어냈다. 듣기는 기차의 선로처럼 글쓰기와 마주 보고 있었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탐구하는 글도 자주 단체 메시지방에 올라왔다.

 

 배지영 작가는 글쓰기 모임을 통해 사람들이 서로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개인의 경험을 공유하며 그것이 글쓰기로 이어지는 작업을 이끌었다. 글쓰기는 혼자만의 고독한 작업이기도 하지만 독자가 있다는 점에서 그리 외롭지만은 않다.

 내가 첫 에세이집을 냈을 때 일면식도 없는 분들이 서평을 써서 공유했을 때 그 감정을 느꼈다. 당시에는 대만에서 홀로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언제 그칠지 모르는 장맛비를 멍하게 보며 글을 썼지만 그것이 출판이 되어 세상에 나왔을 때에는 독자라는 귀한 동반자가 생겼고, 또 이들이 정성어린 시선으로 내 글을 읽어줬으니 나는 헛발질하듯 글쓰기를 한 것만은 아니었구나, 글쓰기가 외로운 일만은 아니었구나라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은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강요하지 않는다. 내가 쓰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 날의 장면을 소환해준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도 쓰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넌지시 알려준다. 쓰는 사람은 출판 경험이 있거나 유명 작가를 일컫지도 않는다. 그저 말 그대로 쓰는 사람을 말한다.

 

 장담하건대 우리는 어떤 이유에서든 글을 쓰게 되며, 어떤 순간에는 글을 쓰는 자신을 보게 된다. 오늘 나는 무엇을 했고, 누구와 함께 했고, 그들과 무엇을 했으며 그것으로 나는 또 무슨 생각을 했는지 되짚어본다면 우리는 어느 새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그런 순간이 온다면, 아니 그런 순간은 정말 오니까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을 곁에 두고 보시라고 알려주고 싶다. 누구나 아는 말이지만, 나만 아는 비밀을 말해 주듯이.

 

 우리는 오늘도 쓰는 사람으로 하루를 보낸다. 배지영 작가도, 나도, 여러분도.

 

 *본 글은 개인 블로그 브런치에도 올렸습니다.


https://brunch.co.kr/@youngmicholaf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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