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베이징 이야기 ㅣ 이산의 책 20
린위탕 지음, 김정희 옮김 / 이산 / 2001년 11월
평점 :
찬란한 문화의 요람인 중국의 수도 베이징은 일반서민과 외국인들에게 좀처럼 문호가 개방되지 않았던 곳이다. 서기 천 년 이후 북방민족의 점령아래 있었던 북경은 중국의 고도이자 궁정이 안치된 성역으로서 일반인들의 접근이 제한되었고, 중국내전 이후에는 공산당의 근거지로서 외국인들의 출입이 봉쇄된 바 있다. 물론 개방의 물결이 휘몰아친 후 상황이 개선되었지만, 지금은 뜻하지 않게 '사스의 공포'로 다시 장막이 드리워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기소침해 할 필요는 없다! 북경에 들어가는 다른 경로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린위탕'의 '베이징 이야기'가 그 유서 깊은 도시의 비밀을 속속들히 파헤쳐 버렸다. 베이징을 알고싶어 하는 사람들, 베이징에 갈 수 없는 사람들, 베이징 여행을 기약하고 있는 이들에게 감히 이 책을 권한다.
이 책 <베이징 이야기>를 단순한 기행문이나 견문록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면, 그것은 커다란 오산이다. 베이징을 소개하는 린위탕의 시도는 참신하고 다각적인 접근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 시도는 베이징의 풍경을 묘사한 기행문, 자연의 서정성을 음미한 문학작품, 건축과 예술에 서린 사연을 서술한 역사스케치, 자연과 예술의 심미성을 추구하는 미학의 요소를 두루 아우른다. 따라서 이 책을 읽노라면, 마치 베이징의 정원인 원명원이나 이화원의 아름다운 회랑을 거니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 이 환상적인 체험은 린위탕의 서정적이고 절제된 필치에 의해 더욱 매료되고 만다.
베이징에 대한 린위탕의 실험이 다양한 쟝르를 통해 시도될 지라도, 혼동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베이징의 사람들, 베이징의 자연, 그리고 사람과 자연의 정서가 교감되는 지점인 베이징의 예술로 저자의 시선이 좁혀지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린위탕은 베이징의 사람과 자연 그리고 양자를 연결하는 예술을 기행문 문학 역사학 미학 속에 녹여버렸던 것이다!
베이징은 소박하고 담백한 보통 사람들, 즉 왕조의 교체와 정치적 격변 속에서 꿋꿋이 제자리를 지켜온 서민들의 숨결이 살아 있다는 점에서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베이징은 그냥 보아 넘기기엔 좀 특별한 아니 환상적인 구석이 있다. 그곳은 후미진 거리와 싸구려 음식점 그리고 은밀한 홍등가가 서민들의 삶과 밀착된 곳이지만, 궁정사회의 수려한 건축과 빼어난 예술품이 안치된 곳이기도 하다. 즉 최하층 삶으로부터 최상층 삶에 이르기까지 문명발전단계의 극과 극이 연결돼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들은 최고의 문학과 최고의 예술은 서민들의 정서를 대변한 것이어야 한다는 무의식적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하지만 이 책에 삽입된 다 수의 화보들은 우리의 그러한 의지를 허물어 뜨린다. 베이징의 화려하다 못해 사치스러운 예술세계는 인간의 기교가 더이상 어떻게 정교해지고 서정적이며, 더 완벽한 미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회의를 불러 일으킨다. 나는 '베이징의 예술세계를 체험한 이가 유럽의 예술세계를 경험한다면, 금방 식상해 하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베이징은 분명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문명을 꽃피운 도시이다. 누구라도 아마 한 번 쯤은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다. 만약 기회가 생겨 베이징에 가게 된다면 출발 전날 밤, 꼭 '린위탕'의 '베이징 이야기'를 읽길! 이 책은 분명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고, 건축과 예술의 세계에 대한 당신의 심미안을 높여줄 것이다. 베이징의 아름다운 세계를 사전 지식없이 마주친다면, 그 역사적 순간은 허무한 것이 될 것이다! 세상에 그런 비극이 또 어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