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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ㅣ 이산의 책 10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주원준 옮김 / 이산 / 1999년 8월
평점 :
나는 '조너선 스펜스'를 '역사를 연주하는 시인'이라 부른다. 내가 지어낸 그의 애칭이다. 왜냐하면 그는 역사적 사실을 무미건조하게 나열하며 평가하는 기존의 역사가와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스펜스의 역사는 소설과 시가 어우러진 한 편의 문학처럼 서정적이다. 거기에다 드라마틱하기까지 하다.
때문에 스펜스 쓴 역사가 과거에 과연 실제로 있었을까하는 의구심마저 인다. 하지만 그에 의해 재구성된 과거가 분명 '사실 그대로이다'란 것을 깨닫게 되고, 그의 탁월한 구성력과 문장력에 놀라게 된다. 어떻게 역사를 이처럼 극적이고 문학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을까? 과거의 사실을 전혀 훼손하지 않고 재미있게 구성하는 방법을, 어째서 기존의 역사가들은 깨닫지 못했을까?
하지만 어떤 찬사로도 스펜스의 '심미주의적 역사학'을 평가하기엔 역부족이다. 나는 분명 스펜스에 매혹되어 그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서평자로서의 자질을 상실한 셈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 대한 서평을 마무리짓기 위해, 스펜스의 '매혹의 강'을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써야겠다.
중국학의 거장으로서 스펜스가 보여주었던 역사와 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은, 그의 또 다른 역작인 '천안문'과 '칸의 제국'을 통해 유감없이 발휘된 바 있다. 이 책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은 역사적 인물의 전기란 점에서 그의 기존 작품과 차별화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얼핏 제목만 보아 한 개인의 전기에 국한된 것 같지만, 그 이상의 의의가 있는 '스펜스의 야심찬 프로젝트'이다. 왜냐하면 마테오 리치가 살았던 시대를 '통시적이고 공시적으로' 완벽히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 책은 그의 전기를 다룰 뿐만 아니라, 16세기의 이탈리아 포르투갈 인도 중국의 역사가 교차하고 서양근대의 종교사와 근대중국의 사회종교사가 중첩되어 있다.
이러한 시대상은 마테오 리치의 시각을 통해 일차적으로 접근되지만, 최종적으로 스펜스의 관점을 통해 재여과된다. 물론 그 여과과정에서 스펜스의 문학적 심미안이 가미되며, 또한 역사학자로서 그의 탁월한 혜안이 덧붙는다.
스펜스의 이 야심찬 시도의 백미는 무엇보다도 스토리를 전개해나가는 구성력에 있다. 스펜스는 중국에서 마테로 리치를 일약 명사로 부각시켰던 그의 기억술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테오리치가 그의 '기억의 궁전' - 이 지점에서 스펜스는 마테오 리치의 관념의 영역을 탐색한다 - 에 배치했을 법한 이미지를 매개로, 스펜스는 스토리의 큰 틀을 짜고 있다. 바로 이 이미지에 따라 동서양의 종교가 충돌하는 장엄한 서사시가 펼쳐진다.
그의 기억의 궁전을 채웠을 법한 상징적 이미지의 한자는 바로 '무(군대와 전쟁의 의미)' '요(필요와 당위의 의미)' '리(이익의 의미)' '호(좋아하다의 의미)의 네가지이다. 이것들은 리치의 기억술을 과시하기 위한 단순한 상징 이상의 것이다. 바로 이 네가지의 이미지를 주제로 마테오리치 생애의 긴 여정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가령 '무'의 이미지는 해상전쟁을 둘러싼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스토리의 매개체이다. 동일한 방식으로 '요'의 이미지는 신앙을 비롯한 종교문제, '리'의 이미지는 무역과 조공을 비롯한 경제문제, '호'의 이미지는 성모마리아 및 동서양간 종교의 충돌 과정을 다룬다. 스펜스의 작품은 언제 읽어도 참신하다. 특히 이 작품은 전기의 새로운 시도이자, 새 지평을 연 수작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