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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치의 부리 - 갈라파고스에서 보내온 '생명과 진화에 대한 보고서'
조너던 와이너 지음, 이한음 옮김, 최재천 추천 / 이끌리오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다윈이후 최근까지 지속된 진화론-창조론 논쟁은 지루한 소모전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체계적 논리와 이론적 심미성을 가졌음에도, 진화론은 사변세계의 벽에 갇혀 있었다. 따라서 창조론자들은 공허한 말장난이라 진화론을 비판했고, 진화론자들 역시 증거없는 논리로서 반박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그러한 그 지루한 논쟁의 와중에서 다윈이 남긴 희미한 빛은 비록 암흑같은 무지의 세계를 환하게 비추지 못했을 망정, 꺼지지 않고 지속되기에 충분했다.
그 후 진화의 역사상 몇 차례의 도약이 있었고, 이제 다윈의 후계자들은 그의 무등을 타고 올라설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다윈이 보지 못했던 것, 다윈이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생생한 진화의 증거까지 제시할 수 있다. 더 이상 진화론은 가설이 아니다. 그것은 가설의 족쇄를 풀고, 사실 자체로서 당당하게 우리 앞에 부활한 것이다.
이 책 '조너던 와이너'의 <핀치의 부리>는 진화론에 관한 생생하고 현장감있는 증거들의 보고이다. 종래 출판되었던 진화론 관련 저작들은 진화가 너무도 점진적이어서 긴 시간동안 겨우 미미하게 변화하며, 따라서 화석을 통해서 확인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핀치의 부리>는 그러한 견해를 단호히 거부한다. 진화는 우리의 뒷뜰에서도 항상 일어나며, 우리는 그것을 생생히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핀치의 부리>는 그러한 사실을 정확한 데이터로 입증해주는 생생한 증거이다!
진화론에 대한 지루한 논쟁이래, 이 소식은 모든 갈증과 체증을 단번에 풀어줄 정도로 경이로운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어떤 찬사로도 부족한 책 임에 틀림없다. 나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눈먼 시계공'과 더불어 가장 탁월한 진화론 관련 저작에 이 책을 위치시키고 싶다. 또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더불어, 이 책이 과학의 대중화에 기여할 21세기 고전의 반열에 자리매김될 것으로 확신한다.
조너던 와이너가 이 책을 통해 강조하는 것은 진화가 수 세대에 걸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한 세대에도 수 차례 발생한다는 자연선택의 역동성에 관한 것이다. 그것이 정지해 보이는 이유는 자연선택의 밀고 당기는 힘에 의해 평형이 지속되는듯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심한 관찰자들은 자연의 혼란스런 광경과 시끄러운 소음에 빈혈을 느낄 지경이다! 실제로 그들은 진화의 역동성과 격렬함이 늘 그들을 어지럽힌다고 호소한다. 이러한 진화의 역동성은 기존의 점진적 진화에 대한 가설보다 훨씬 아름답게 와 닿는다.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인간의 겸손, 즉 진리를 터득해 갈수록 점점 숙연해지라는 인간의 겸손에 관한 것이다. 조너던 와이너는 지구 생명의 탄생이래 진화의 계보의 맨 윗자리를 인간이 차지한다고 믿는 오해와 자만심을 버리라고 충고한다. 학습을 통해 기술과 문화를 습득하는 행위는 결코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닐 뿐더러, 동물세계의 경쟁과 자연선택의 법칙은 예외없이 인간에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인류는 결코 이 행성을 구성하는 다른 종의 동료들보다 특별한 존재도 특권을 부여받은 존재도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행성의 앞선 주인이었던 다른 종과의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 증산을 위한 농약과 살충제의 살포는 오히려 해충의 군비경쟁을 가속화시키지 않았던가? 우리가 그들의 영역권을 인정해줌으로써만, 비로소 그들도 우리의 영역과 지분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종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헛된 시도를 재고해야 한다는 이 책의 강한 메세지는 우리를 더욱 숙연하게 한다.
<핀치의 부리>는 심오한 자연의 이치를 추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지루하지 않다. 무엇보다 일반의 비전공자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쓰여졌다는 점이 이 책의 최대 장점이다. 또한 자연의 진리에 접근하기 위해, 다윈 후계자들의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소개함으로써 극적인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고, 그 속에서 인류임을 자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읽어야할 명저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