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1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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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슴속에 이야기를 품고 사는 건 어떤 걸까.

내가 겪는 이 모든 일들이 결국엔 어떤 재미난 이야기의 일부가 되리라는 마음은 어쩌면 현실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지도 모른다. 박완서 작가는 살면서 나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악랄함과 교활함을 언젠가 꼭 캐릭터에 써먹어야지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그 사람에 대한, 나만의 짜릿한 복수인 셈이다. 내가 만든 이야기 속에선 마음에 안 드는 캐릭터쯤 마음대로 비참하게 만들어버릴 수 있을 테니, 현실이 조금은 더 견딜만해 질 것이다.

박완서 작가에게 나쁜 사람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아마도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이었을 것이다. 6,25 전쟁으로 나라가 파괴되고 가족들이 죽고 미래가 사라지는 불안을 젊은 시절 내내 겪어야 했으니 말이다. 전쟁은 작가에게 트라우마이자 수많은 이야기의 원천이 된 것 같다. 자신이 겪은 일들의 수많은 변주로 엄청난 양의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40세라는, 조금 늦은 나이에 등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한번 이야기를 퍼내고 나니 그 뒤론 계속 솟아나는 우물처럼 40년 동안 끊임없이 이야기가 샘솟았나 보다.

소설 나목에는 박완서 작가가 미군 PX 초상화 가게에서 일하던 시절, 박수근 화백과 실제 만났던 이야기가 담겨있다. 원래는 박수근 화백에 대한 전기를 쓰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여기저기 고치다 보니 픽션이 되었다고 한다. 그 픽션이 더 마음에 들어 소설로 내게 되었고 그게 그의 등단작이 된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 경아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화가 옥희도 씨의 실제 모델이 박수근 화백이라 한다.

소설 속 경아는 미군 PX 초상화 가게에서 미군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세일즈 걸이다. 경아는 미군들에게 여자친구나 가족의 사진으로 초상화를 그려 선물하라고 영업하고 가게에 소속된 환쟁이들이 노동처럼 그림을 그리는 식이다. 그들에게 그림은 예술이 아니라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죽지 못해 하는 노동일뿐이다. 입이 거친 환쟁이 아저씨들 사이에서 홀로 일하는 젊은 아가씨 경아는 환멸을 느끼는데, 어느 날 그들과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한 명의 환쟁이가 더 추가된다. 바로 옥희도 씨다. 경아는 옥희도 씨가 풍기는 고독과 상실감 어린 우수에 매료되고, 거기다 그가 여기서 일하는 다른 환쟁이들과는 달리 진짜 예술을 했던 화가라는 사실에 조금씩 존경과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다.

경아는 PX에서 일을 마치면 화려한 간판거리를 지나, 폭파되어 어둠 속에 잠긴 건물들을 지나 어머니와 둘이 사는 '고가'로 돌아간다. 200평의 넓은 대지에 지어진 아름다웠던 고가가 지금은 한쪽 지붕이 날아가 흉물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엄마에게 돌아왔다고 문을 두드리면 감정이 없는 부연 눈빛을 한 어머니가 문을 열어주고 매일 똑같은 시큼털털한 김칫국과 밥을 기계적으로 내어준다. 엄마는 생에 대한 의욕이 전혀 없는 채로 죽지 못해 살고 있다고 온몸으로 드러낸다. 항상 끼던 의치는 이제 전혀 끼지 않아 입 주변으로 쪼글쪼글한 주름이 지고, 우물우물 밥을 먹는다. 실제 나이보다 20살은 더 늙어 보이게 된 어머니는 원래는 아름답고 활력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두 오빠가 살아있을 때까지만 해도.

전쟁 중 두 오빠는 피난을 떠나려다 못 가고 밤중에 고가로 돌아와 인민군의 눈을 피해 숨어지내고 있었다. 두 오빠가 피난을 가다 비참한 상황을 맞거나, 혹은 전쟁에 나가 죽거나 다치는 일을 피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 여기며 경아 가족은 전쟁 중이지만 제법 안온한 날을 보내고 있었다. 전쟁 중에 우리 가족만 이렇게 운이 좋아도 되나 불안할 때쯤 일이 터졌다. 피난 떠났다가 거지꼴이 되어 돌아온 큰아버지 부자를 숨겨주기로 한 날, 두 오빠를 좀 더 안전할 것 같은 행랑채에 재우자고 경아가 말한 날, 바로 그날 밤 그 행랑채에 포탄이 떨어졌다. 잠을 자던 두 오빠는 빨간 살덩이로 흩어져 죽었다. 사람이 그렇게 갈갈이 처참하게 찢어져 죽을 수 있다는 걸 경아는 처음 알았다.

「전쟁의 노도가 어서 밀려왔으면, 그래서 오늘로부터 내일을 끊어놓고 불쌍한 사람을 잔뜩 만들고 무분별한 유린이 골고루 횡행하라. 광폭한 쾌감으로 나는 마녀처럼 웃으면서도 그 미친 전쟁이 당장 덜미를 잡아올 듯한 공포로 몸을 떨었다. 다시는 다시는 그 눈먼 악마를 안 만날 수만 있다면.

서로 용납될 수 없는 이 두 가지 절실한 소망은 항상 내 속에 공존하고, 가끔 회오리바람이 되어 나를 흔들었다. 미구에 나는 동강 나버리고 말 것이다. 나는 자신이 동강날 듯한 고통을 실제로 육신의 곳곳에서 느꼈다.

<나목> 중에서

두 오빠가 죽고 난 후 삶을 놓아버린 듯한 엄마를 보며 경아는 살고 싶었고 동시에 죽고 싶었다. 어머니에게 있어 자신의 '살아있음'은 아무런 위로도 아님을 깨달았을 때 그녀의 삶은 이미 반 이상 무너졌으리라. 자기 때문에 두 오빠가 죽은 것만 같아 무서웠다. 아직 살아있는 싱싱하고 젊은 청년들을 어머니에게 보이는 게 죄스러웠고 자신이 살아있는 것조차 죄스러웠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으니 아마 곧 다시 전쟁이 발발해서 다 죽을 거라며 자신의 살아있음을 변명했다. 전쟁이 결국엔 다 삼켜버릴 것이기에 자신의 미래도 없다고 가정했다. 살고 싶은 욕망이 엉뚱한 죄책감에 가려져 오히려 어서 전쟁이 나서 세상이 끝나기를 바라는 아이러니한 생각이 된다.

경아는 그저 외롭고 아팠을 뿐이다. 엄마가 나를 보고 한번 웃어주길 바랐을 뿐이고, 두 오빠가 죽은 건 전쟁 탓이지 경아 탓이 아니었다.

경아에게 옥희도 씨는 고독과 상실감을 공유하면서도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아빠 같은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경아는 옥희도 씨의 고독에 이끌리면서도 그의 고독이 속상하고 슬프다.

어느 날 경아는 옥희도 씨가 작업 중인 그림을 보면서 그의 그림에서 그 깊은 고독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캔버스 위에서 하나의 나무를 보았다. 섬뜩한 느낌이었다.

거의 무채색의 불투명한 부연 화면에 꽃도 잎도 열매도 없는 참담한 모습의 고목이 서 있었다. 그뿐이었다.

화면 전체가 흑백의 농담으로 마치 모자이크처럼 오돌토돌한 질감을 주는 게 이채로울 뿐 하늘도 땅도 없는 부연 혼돈 속에 고목이 괴물처럼 부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먼 훗날 옥희도 씨의 유작전에서 그 그림의 완성작을 보고 난 후 경아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는다.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김장철 소스리 바람에 떠는 나목,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 나목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 만 그의 수심엔 봄에의 향기가 애닯도록 절실하다.

그러나 보채지 않고 늠름하게, 여러 가지들이 빈틈없이 완전한 조화를 이룬 채 서 있는 나목, 그 옆을 지나는 춥디추운 김장철 여인들.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봄에의 믿음. 나목을 저리도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

나는 홀연히 옥희도 씨가 바로 저 나목이었음을 안다. 그가 불우했던 시절, 온 민족이 암담했던 시절, 그 시절을 그는 바로 저 김장철의 나목처럼 살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또한 내가 그 나목 곁을 잠깐 스쳐간 여인이었을 뿐임을, 부질없이 피곤한 심신을 달랠 녹음을 기대하며 그 옆을 서성댄 철없는 여인이었을 뿐임을 깨닫는다.



고목과 나목은 비슷한 모양이지만 전혀 다르다. 고목은 죽은 나무이고, 나목은 겨울을 보내기 위해 잎을 다 떨군 나무를 뜻한다. 둘 다 똑같이 잎 하나 꽃 하나 없지만 고목은 끝을 향해가고, 나목은 시작을 향해간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어도 쳐다보는 위치가 다른 것이다.

경아는 자신이 전쟁의 폐허 속 고목이라고 생각했지만 옥희도 씨는 너무도 다채로운 경아의 원래 빛깔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겨울을 맞아 잠시 나목이 된 경아를.

그에게 말해야지. 이 나무들이 지금은 이렇게 볼품없어도 작년 가을엔 얼마나 눈부시게 노오랬던가를. 얼마나 아낌없이 그 노오란 빛을 땅으로 흘리고 또 흘렸던가를. 어머니 앞에서 그에게 그런 말을 도란도란 속삭여야지. 설마 그러면 야 어머니도 부연 눈으로 시들하게 딸을 바라볼 수만은 없을 거다.

경아는 나목으로 추운 겨울을 잘 이겨내고 찬란한 빛깔의 노오란 은행나무로 다시 태어났을까?

살아있음 자체로 축복받게 되었을까?

물론 또다시 겨울은 찾아올 테고 나란히 선 나무들조차 추위와 외로움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음은 찬란한 것이니까.

Drop here!



전쟁의 노도가 어서 밀려왔으면, 그래서 오늘로부터 내일을 끊어놓고 불쌍한 사람을 잔뜩 만들고 무분별한 유린이 골고루 횡행하라. 광폭한 쾌감으로 나는 마녀처럼 웃으면서도 그 미친 전쟁이 당장 덜미를 잡아올 듯한 공포로 몸을 떨었다. 다시는 다시는 그 눈먼 악마를 안 만날 수만 있다면.

서로 용납될 수 없는 이 두 가지 절실한 소망은 항상 내 속에 공존하고, 가끔 회오리바람이 되어 나를 흔들었다. 미구에 나는 동강 나버리고 말 것이다. 나는 자신이 동강날 듯한 고통을 실제로 육신의 곳곳에서 느꼈다.

그에게 말해야지. 이 나무들이 지금은 이렇게 볼품없어도 작년 가을엔 얼마나 눈부시게 노오랬던가를. 얼마나 아낌없이 그 노오란 빛을 땅으로 흘리고 또 흘렸던가를. 어머니 앞에서 그에게 그런 말을 도란도란 속삭여야지. 설마 그러면 야 어머니도 부연 눈으로 시들하게 딸을 바라볼 수만은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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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에번 핸슨
밸 에미치 외 지음, 이은선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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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근사한 날이 될거야, 왜냐하면... "

나에게 쓰는 편지는 이렇게 시작해야 한다. 왜냐면 셔먼 선생님이 시켰으니까?! 하지만 난 오늘이 전혀 근사하지 않은걸. 학교에 가면 내가 누군지도 잘 모르는 친구들 사이에 섞여 반쯤은 투명인간 인척 해야 하는 아싸(아웃사이더)인데다, 엄마는 매일 일과 학업을 병행한다고 너무 바빠, 그리고 아빠는 날 버리고 3000km 넘게 떨어진 다른 도시로 떠나서 엄마 아닌 다른 여자와 함께 새 삶을 시작했어. 거기다 이제 곧 동생이 태어날거라나? 아빠는 이제 동생이 생겼으니 형 노릇을 잘 하라고 했지만 난 왠지 아빠를 완전히 잃어버린 기분이야. 세상에 나를 진정으로 신경 써주는 사람이 있기는 한거야? 난 혼자야, 완전히 혼자야.

에번 핸슨에게

알고보니 전혀 근사한 날이 아니었어.

근사한 한 주나 근사한 한 해가 될 일은 없을 거야.

왜냐하면 그럴 이유가 없잖아?

(중략)..

모든 게 달라졌으면 좋겠다.

나도 마음을 붙일 데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하는 얘기에 무게가 실렸으면 좋겠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내가 내일 사라진다 한들 알아챌 사람이 있을까?

너의 가장 가깝고 가장 소중한 친구인

내가

디어 에번 핸슨 p.41

나도 모르게 너무 오글거리게 솔직한 편지를 써버렸다. 휴우, 이런 편지는 혼자만 보는게 상책이지. 속이 좀 후련해졌으니 이제 선생님이 원하는 긍정적인 편지를 다시 써서 제출해야지. 근데 엇, 왜 프린트한 편지가 왜 코너 머피 손에 있는거야.. 안돼! 안돼!! 돌려줘!!! 코너 머피가 내 편지를 들고 가버렸다. 망했다! 완전 망했다! 코너 머피가 사람들에게 내가 이런 웃기는 편지를 썼다고 떠벌리겠지? 난 세상에서 제일 쪽팔리는 상황을 겪게 될거야. 생각만해도 죽고싶다.

다음날 학교에 갔는데 이상하게 코너 머피가 학교에 안왔네. 무슨 일일까. 그래도 아직 아이들에게 내 편지를 공개하진 않은 것 같군. 다행이면서도 마음 한켠이 불안하다. 그런데 수업 시간 중 갑자기 나를 교무실로 부르는 방송이 나온다. 이게 무슨 일이지. 드디어 일이 터진건가. 교무실에서 만난 낯선 아저씨, 아주머니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듣는다.

'뭐? 코너 머피가 어제 죽었다고?'

일단 내 오글거리는 편지가 세상에 공개될 일은 없겠군, 다행이다. 근데 뭐라구요? 코너 머피가 저한테 유서를 남겼다고요? 그럴리가. 저기요. 그 쪽지는 음, 제가 저한테 쓴... 편지라고 말을... 못했다. 평소 마약 중독에 나보다 더한 외톨이인 코너 머피와 내가 친구일리가. 근데 내 부러진 팔깁스에 어제 그 녀석이 남긴 사인이 남아있다. 이건 그러니까, 그냥 우연이라고요. 우린 친하지 않아요.



코너 머피의 어머니가 나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것 같지만, 일단은 가서 솔직하게 말해야겠다. 하지만 죽은 아들한테 친한 친구가 있었다는 사실에 위안받고 있는 부모님들을 보니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내 입이 나도 모르게 자꾸 거짓말을 한다.

"네, 코너와 저는 가장 친한 단짝이었어요. 우린 아무도 모르게 우정을 나누었어요."

이렇게 나는 코너가 죽은 뒤 그와 상상 우정을 쌓아간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또 거짓말을 낳는다. 내 마음 속에는 죄책감이 쌓이지만 코너의 부모님과 친구들이 나에게 생전 처음 보여주는 관심에, 난생 처음 나도 뭔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자꾸 거짓말을 멈출 수 없다. 그런데, 이거 자꾸 일이 커지는 것 같다?! 내가 원한건 이런게 아닌데... 왜 자꾸 내가 유명해지고... 팔로우가 늘고... 친구가 생기지?... 뭔지 모르지만 자꾸 일이 커진다. 멈춰야 하는데...하는데...


사랑받고 싶고 관심받고 싶은 인간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는 소설이다.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진 등장인물이 모두 자기 나름의 외로움과 슬픔을 지니고 살아간다. 나만 외로운 것 같지만 사실은 모두가 외롭다. 누군가 먼저 알아봐주길 기다릴 뿐. 따지고 보면 에번 핸슨이 자기 자신에게 썼던 저 편지,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해봄직한 생각 아닐까?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뮤지컬을 원작으로 다시 쓰여진 소설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지컬인걸 보면 이런 감정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겠지. 실제로 외톨이든 아니든 인간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이니까. 이야기도 무척 흥미롭고 짜임새있게 흘러가서 금방 훅훅 읽는다. 우리의 에번 핸슨은 아싸에서 진정한 인싸로 거듭날 수 있을지...

참고로 뮤지컬이 궁금해서 유튜브를 찾아봤는데 뮤지컬에 나오는 노래가 넘나 좋다. 역시 괜히 유명한게 아니었나보다.

특히 waving through a window 라는 곡 너무 좋은데? 같이 들어보시길 :)

https://www.youtube.com/watch?v=zA52U37P_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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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 아메리카 JGB 걸작선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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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스 스퀘어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변경주 선인장이 뜨겁게 달아오른 공기 속으로 10미터에 달하는 팔을 뻗고 서 있었다. 사막 자연보호구역의 입구를 지키는 위풍당당한 수문장 같은 모습이었다. 녹슬어 가는 네온사인에 세이지 덤불 뭉치가 걸려 있는 모습이, 마치 맨해튼 전체를 완벽한 서부극을 촬영하기 위한 거대한 세트장으로 만들어버린 것만 같았다. 은행이며 증권사 건물의 2층 창문을 따라 열매가 영근 부채선인장이 늘어섰고, 항공사 사무실과 여행사의 현관에는 유카와 메스키트의 거대한 잎사귀가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p.53 본문 중에서- 


이 정도면 미국이 완전히 망해서 나라 전체가 사막이 되어버렸다는 것이 실감 나는가? 망한 정도가 아니라 통째로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지금은 2114년, 한 세기 전에 미국은 망해버렸다, 그것도 완전히! 198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되던 석유가 점차 지구상에서 바닥나면서 원유값이 치솟기 시작하고, 천정부지로 치솟는 원유값을 감당하지 못하고 경제가 하나둘씩 멈춰간다. 먹고 살 길을 찾을 수 없어 사람들이 점점 도시에서 농촌으로, 농촌에서 자기들의 본국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미국 땅은 텅텅 비어가게 된다. 그 후 유럽과 아시아에 불어난 인구를 먹여살리기 위해서 세계정부에서 시도한 기후 제어 기술로 인해 해류가 바뀌면서 추운 북유럽과 시베리아 땅은 따뜻하고 비옥한 땅이 된 반면, 기후변화의 역풍을 제대로 맞은 미국은 전 국토가 사막화 되어버린 것이다. 




나라가 망하는 게 그렇게 쉬워? 설정에 너무 비약이 심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인 광대한 아메리카 대륙이 사람 없이 텅 비어버렸다는 설정은 새롭다. 헬로 아메리카는 이젠 기억에만 존재하는 미국 땅을 다시 찾아가는 아폴로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본래의 목적은 아메리카 대륙에 갑자기 높아진 방사능 수치를 조사하러 가는 거지만, 어째 이 사람들 연구만 하고 돌아갈 것 같지가 않다?! 하긴 광대한 아메리카 대륙에 자신들만 남겨져있는데 어찌 욕심이 나지 않을 수 있으랴. 땅에 금만 긋고 내 땅이라 우겨도 뭐라 할 사람이 없으며, 원한다면 미국의 대통령도 노려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말이다.  소설 <헬로 아메리카>는 아폴로호에 승선한 인물들을 통해 아메리카 대륙 곳곳을 누비며 미국이라는 나라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남아있는 환상을 발견한다.



<헬로 아메리카>는 미국을 두 번째로 발견하는 과정을 묘사하며, 이번에 위업을 이룩하는 이는 정신 나간 광인들이다. 파괴적이며 텅 비고 무가치한 땅을, 오로지 자신의 꿈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정복하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다. 버려진 미국이야말로 그의 열정적이고 폭력적인 인물들을 위한 완벽한 배경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미국이 위대한 가공의 땅일 뿐이라면, 밸러드의 인물들은 상상의 삶을 드러내는 완벽한 횃불잡이라 할 수 있다. 밸러드는 미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사라지더라도 환상 속에는 그 존재를 유지할 수 있음을, 어쩌면 현실에서보다 더욱 중요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P. 377 해설 중에서



밸러드는 "어쨌든 독자들은 <헬로 아메리카>가 미합중국을 격렬하게 옹호하고 있으며, 우리 유럽인들에게는 부족한 미덕인 낙관론과 자신감을 예찬하는 소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p.369)이라며 작가 후기에서 남기고 있다. 독특한 밸러드식 미국 예찬이 궁금하다면, 철저히 파괴된 미국 이야기에 빠져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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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총총
사쿠라기 시노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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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구함은 그 사람의 입을 통해 듣는 것보다 오롯이 타자의 관점으로 관찰할 때 더 증폭되는 것이 아닐까.

소설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지하루는 이야기 중 한 번도 화자로 등장하지 않는다. 총 9개의 단편 같은 이야기 속에서 엑스트라 혹은 잠깐 지나가는 사람으로 매회 등장할 뿐이다. 소설 속에서 숨은 그림 찾기를 해야 할 정도로 잠깐씩 등장하지만 이 소설은 엄연히 지하루의 기구한 삶에 대한 이야기다. 말로 나열해보려 하면 기구하다 못해 통속적인 막장 드라마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이야기를 만약 지하루의 입을 빌려 서술하기 시작했다면 어쩌면 기구한 운명을 살았던 한 여자의 팔자타령 정도로 치부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소설은 신선하게도 지하루의 인생을 스쳐갔던 사람들이 화자가 되어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9개의 이야기는 결국 지하루가 지나온 인생을 이야기하는 연작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각기 다른 단편처럼 느껴진다. 지하루를 매듭 삼아 그녀를 스쳐간 다양한 사람들의 기구한 이야기가 함께 엮여있는 식이다. 이런 퍼즐 같은 구성이 신선하고 마음에 들었다. 지하루의 엄마 사키코의 시선으로 시작해 지하루의 딸 야야코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 이 이야기는 장장 40여 년을 아우른다.

지하루는 호리호리한 몸매에 어울리지 않게 불균형할 정도로 큰 가슴을 가졌다. 그런 신체적 조건은 아름다움과 별개로 여러 남자들에게 성욕의 대상이 된다. 태생적으로 순종적인 성격에 약간 맹해 보이는 인상은 남자들이 다가서기 쉬운 인상을 주었다. 그래서였을까. 중학생 시절 학교 체육 선생님에게 성추행을 당하기도 하고, 고등학교 시절에 아이를 임신해 중절수술을 받기도 한다. 그렇게 서서히 지하루의 힘들고 고단한 삶이 시작된다.

소설을 읽는 내내 인생이 왜 저렇게까지 되나 싶어서 답답하기도,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러나 지하루는 마치 감정이 없는 양 묵묵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 재밌는 건 지하루의 엄마 사키코의 삶이다. 자기를 사랑해줄 남자를 찾기 위해서 딸도 무참히 버리고 배신했던 그녀는 늘그막이 진짜로 그 소원을 이뤘다. 비록 가슴이 썩어들어가는 병에 걸려 손도 못써보고 죽게 생겼지만 자신을 위해 같이 죽어줄 수 있는 남자가 실제로 생겼으니 말이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밤 사키코가 세상을 떠나고 그 옆에 누워 함께 죽음을 준비하는 남자의 모습이라니, 인생이란 묘하다.

한편 지하루는 평생에 걸쳐 결국 모든 걸 잃은 것처럼 보인다. 교통사고로 그나마 멀쩡하던 신체마저도 모조리 망가지게 되니 말이다. 다리가 절단되고 얼굴엔 온통 상처, 거기다 정기적으로 이마와 볼에서 교통사고 때 얼굴에 박혔던 유리 파편이 튀어나온다. 지하루는 그걸 또 소중하게 약병에 조약돌 모으듯이 간직하고 말이다. 그 어떤 불행도 오롯이 받아들이는 지하루의 태도는 이쯤 되면 불쌍한 것이 아니라 대단케 느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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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은 다음에 다시 지하루의 대사만 되짚어 찾아봐도 좋을 것 같다. 작가의 시선은 세상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지하루를 선택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가운데서도 '골똘히 생각하는 눈빛,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어른들을 관찰하는 눈빛'을 가진 명민한 열세 살 소녀의 삶을 오래도록 응시했을 것이다. 그녀가 필요 최소한의 온당한 말을 하고 온당한 비명을 지르는데도 평범한 이웃인 우리가 그것을 어떤 이유로 어떻게 뒤틀고 일그러뜨렸는지를.

<별이 총총, 옮긴이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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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루의 이야기를 보여주는데 다양한 타인의 시선을 빌려와 이야기를 이끌어간 것은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타인의 이기적인 눈에 비친 지하루, 지하루를 성적으로 대하는 음흉한 남자들의 시선을 노골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지하루의 삶은 한층 더 기구해 보인다. 사람이 저렇게도 살 수가 있나 싶어진다. 하지만 그건 타인의 시선으로 본 지하루의 모습일 뿐이다. 지하루 자신이 스스로를 긍정한다면 그녀는 어떻게든 살아나갈 것이다. 일그러져도, 아파도, 인생은 계속되니까.

책을 다 읽고 나면 코가 시리도록 추운 겨울날, 눈물 콧물 짜며 펑펑 울고 난 다음 맑아진 눈으로 별이 총총 떠있는 밤하늘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기구하고 기구한 지하루의 일생은 '슬프지만 이 또한 인생'이라며 가만히 등을 도닥여주는 것 같다.

사쿠라기 시노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한 작가다. 생소한 작가라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읽기 시작한 책에 푹 빠져버렸다. 통속적으로 보일 수도, 다소 노골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소재를 신선한 구성을 통해 잘 살려낸 것 같아 읽는 동안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9개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다 재미있으면서 그 자체로서 완성 미와 여운이 있고, 이야기 속에 숨은 그림 찾기처럼 숨어있던 지하루가 책을 다 읽고 나면 3D 입체가 되어 튀어나오는 느낌이다.

한마디로 사쿠라기 시노의 다른 작품도 꼭 읽어보고 싶다는 얘기!

애정 작가 목록에 살짝궁 넣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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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쓰기의 감각
앤 라모트 지음, 최재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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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는 작가들의 심리가 궁금했다. 방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결국 소설은 드러나지 않는 마음을 겉으로 끄집어내어 텍스트로 볼 수 있게 하는 작업이다.
내 속에는 어떤 것이 숨어있을까. 궁금하다.

E. L. 닥터로는 이렇게 말했다.
"소설 쓰기는 한밤중에 운전하는 것과 비슷하다. 당신은 오로지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만큼만 볼 수 있지만, 그런 방법으로 여행지까지다다를 수 있다."
당신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필요 없다. 목적지나 도중에지나치게 될 모든 광경을 다 볼 필요도 없다. 당신은 눈앞에 펼쳐진 오직60센티미터에서 90센티미터의 광경만 보아야 한다. 이것은 글쓰기나인생에 관해 내가 지금까지 들어 본 최고의 조언임에 틀림없다.

나는 그 비슷한 일이 마음의 근육에도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심리적인 상처 주변에서 근육이 단단히 뭉치는 것이다. 즉, 유년 시절의상처나 성인기에 겪은 상실감이나 실망감들, 아니면 그 두 가지 모두에서비롯된 굴욕감 같은 것들이 주위의 근육을 긴장시키는 것이다. 그 상처가다시 똑같은 자리를 공격당하지 않도록, 낯선 물질이 거기에 닿지 못하도록 보호하기 위해서 말이다. 덕분에 그 상처들은 치료될 기회를 놓쳐 버린다.
완벽주의는 우리의 근육이 단단하게 뭉치는 것과 같은 원리를 가졌다.
어떤 경우에는 심지어 거기에 그런 상처나 근육 경직이 있는지도 알지못하지만, 둘 다 우리를 구속하는 건 사실이다. 그것들은 우리가 계속해서꼼꼼하고 근심스러운 태도로 움직이고 글을 쓰도록 만든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쓸 수 없을 때, 이것을 떠올린다. 내가 죽어 가고있다고 생각하면서 살기. 실제로 우리 모두가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향해가는 버스를 타고 있다. 죽어 가는 사람처럼 사는 것은 우리에게 진정한현존을 경험할 기회를 준다. 시한부 인생에게 살아 있는 시간이란 그자체로 너무나 충만하다. 아이들에게 하루하루가 흥미진진하듯이 말이다.
그들에게는 하루가 짧다. 그래서 비참하게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며,
돌파구를 찾으려고 애쓰는 대신에, 나는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좋아, 음..... 한번 보자. 내일 죽는다 이거지. 그럼 오늘 내가 뭘 해야할까?"

나는 작가들이 빙판을 뚫고 수면 밑으로 떨어지길 원한다. 그곳에서 삶은너무나 시리고 혼란스럽고 차마 똑바로 마주보기 어려울 정도로 험난할것이다. 나는 작가들이 그 구멍 속으로 몸을 던지기를 원한다. 평소 우리가온갖 소도구로 가득 채우려 애쓰는 구멍 말이다. 구멍과 그 주변의공간이야말로,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응시하거나 삶의 미스터리를 엿볼수 있는 기회를 포함해서, 온갖 종류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곳이다.
위대한 작가들은 내면의 차갑고 어두운 공간에 대해, 얼어붙은 호수아래의 물에 관해, 숨어 있거나 위장한 구멍에 관해 쓰려고 계속 분투한다.
이런 구멍이나 구덩이에 그들이 비추는 조명 덕분에 우리는 덤불이나가시나무들을 베어 버리거나 밟으며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드러나지 않은 것을 드러내기 위해 쓴다. 만약 성 안에 출입이 금지된 문이 하나 있다면, 당신은 악착같이 그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미 살고 있는 방에서 그저 가구들의 배치만 이리저리옮겨 놓으며 살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닫힌 문 하나는 계속 닫아 놓고지내려 한다. 그러나 작가의 의무는 그 문 뒤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를살펴보고, 그 음침하고 발설할 수 없는 것을 대면한 다음, 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단순한 말이 아니라, 가능한 한 리듬과 블루스를 섞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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