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쓰기의 감각
앤 라모트 지음, 최재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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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는 작가들의 심리가 궁금했다. 방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결국 소설은 드러나지 않는 마음을 겉으로 끄집어내어 텍스트로 볼 수 있게 하는 작업이다.
내 속에는 어떤 것이 숨어있을까. 궁금하다.

E. L. 닥터로는 이렇게 말했다.
"소설 쓰기는 한밤중에 운전하는 것과 비슷하다. 당신은 오로지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만큼만 볼 수 있지만, 그런 방법으로 여행지까지다다를 수 있다."
당신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필요 없다. 목적지나 도중에지나치게 될 모든 광경을 다 볼 필요도 없다. 당신은 눈앞에 펼쳐진 오직60센티미터에서 90센티미터의 광경만 보아야 한다. 이것은 글쓰기나인생에 관해 내가 지금까지 들어 본 최고의 조언임에 틀림없다.

나는 그 비슷한 일이 마음의 근육에도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심리적인 상처 주변에서 근육이 단단히 뭉치는 것이다. 즉, 유년 시절의상처나 성인기에 겪은 상실감이나 실망감들, 아니면 그 두 가지 모두에서비롯된 굴욕감 같은 것들이 주위의 근육을 긴장시키는 것이다. 그 상처가다시 똑같은 자리를 공격당하지 않도록, 낯선 물질이 거기에 닿지 못하도록 보호하기 위해서 말이다. 덕분에 그 상처들은 치료될 기회를 놓쳐 버린다.
완벽주의는 우리의 근육이 단단하게 뭉치는 것과 같은 원리를 가졌다.
어떤 경우에는 심지어 거기에 그런 상처나 근육 경직이 있는지도 알지못하지만, 둘 다 우리를 구속하는 건 사실이다. 그것들은 우리가 계속해서꼼꼼하고 근심스러운 태도로 움직이고 글을 쓰도록 만든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쓸 수 없을 때, 이것을 떠올린다. 내가 죽어 가고있다고 생각하면서 살기. 실제로 우리 모두가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향해가는 버스를 타고 있다. 죽어 가는 사람처럼 사는 것은 우리에게 진정한현존을 경험할 기회를 준다. 시한부 인생에게 살아 있는 시간이란 그자체로 너무나 충만하다. 아이들에게 하루하루가 흥미진진하듯이 말이다.
그들에게는 하루가 짧다. 그래서 비참하게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며,
돌파구를 찾으려고 애쓰는 대신에, 나는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좋아, 음..... 한번 보자. 내일 죽는다 이거지. 그럼 오늘 내가 뭘 해야할까?"

나는 작가들이 빙판을 뚫고 수면 밑으로 떨어지길 원한다. 그곳에서 삶은너무나 시리고 혼란스럽고 차마 똑바로 마주보기 어려울 정도로 험난할것이다. 나는 작가들이 그 구멍 속으로 몸을 던지기를 원한다. 평소 우리가온갖 소도구로 가득 채우려 애쓰는 구멍 말이다. 구멍과 그 주변의공간이야말로,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응시하거나 삶의 미스터리를 엿볼수 있는 기회를 포함해서, 온갖 종류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곳이다.
위대한 작가들은 내면의 차갑고 어두운 공간에 대해, 얼어붙은 호수아래의 물에 관해, 숨어 있거나 위장한 구멍에 관해 쓰려고 계속 분투한다.
이런 구멍이나 구덩이에 그들이 비추는 조명 덕분에 우리는 덤불이나가시나무들을 베어 버리거나 밟으며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드러나지 않은 것을 드러내기 위해 쓴다. 만약 성 안에 출입이 금지된 문이 하나 있다면, 당신은 악착같이 그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미 살고 있는 방에서 그저 가구들의 배치만 이리저리옮겨 놓으며 살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닫힌 문 하나는 계속 닫아 놓고지내려 한다. 그러나 작가의 의무는 그 문 뒤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를살펴보고, 그 음침하고 발설할 수 없는 것을 대면한 다음, 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단순한 말이 아니라, 가능한 한 리듬과 블루스를 섞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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