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1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슴속에 이야기를 품고 사는 건 어떤 걸까.

내가 겪는 이 모든 일들이 결국엔 어떤 재미난 이야기의 일부가 되리라는 마음은 어쩌면 현실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지도 모른다. 박완서 작가는 살면서 나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악랄함과 교활함을 언젠가 꼭 캐릭터에 써먹어야지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그 사람에 대한, 나만의 짜릿한 복수인 셈이다. 내가 만든 이야기 속에선 마음에 안 드는 캐릭터쯤 마음대로 비참하게 만들어버릴 수 있을 테니, 현실이 조금은 더 견딜만해 질 것이다.

박완서 작가에게 나쁜 사람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아마도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이었을 것이다. 6,25 전쟁으로 나라가 파괴되고 가족들이 죽고 미래가 사라지는 불안을 젊은 시절 내내 겪어야 했으니 말이다. 전쟁은 작가에게 트라우마이자 수많은 이야기의 원천이 된 것 같다. 자신이 겪은 일들의 수많은 변주로 엄청난 양의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40세라는, 조금 늦은 나이에 등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한번 이야기를 퍼내고 나니 그 뒤론 계속 솟아나는 우물처럼 40년 동안 끊임없이 이야기가 샘솟았나 보다.

소설 나목에는 박완서 작가가 미군 PX 초상화 가게에서 일하던 시절, 박수근 화백과 실제 만났던 이야기가 담겨있다. 원래는 박수근 화백에 대한 전기를 쓰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여기저기 고치다 보니 픽션이 되었다고 한다. 그 픽션이 더 마음에 들어 소설로 내게 되었고 그게 그의 등단작이 된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 경아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화가 옥희도 씨의 실제 모델이 박수근 화백이라 한다.

소설 속 경아는 미군 PX 초상화 가게에서 미군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세일즈 걸이다. 경아는 미군들에게 여자친구나 가족의 사진으로 초상화를 그려 선물하라고 영업하고 가게에 소속된 환쟁이들이 노동처럼 그림을 그리는 식이다. 그들에게 그림은 예술이 아니라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죽지 못해 하는 노동일뿐이다. 입이 거친 환쟁이 아저씨들 사이에서 홀로 일하는 젊은 아가씨 경아는 환멸을 느끼는데, 어느 날 그들과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한 명의 환쟁이가 더 추가된다. 바로 옥희도 씨다. 경아는 옥희도 씨가 풍기는 고독과 상실감 어린 우수에 매료되고, 거기다 그가 여기서 일하는 다른 환쟁이들과는 달리 진짜 예술을 했던 화가라는 사실에 조금씩 존경과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다.

경아는 PX에서 일을 마치면 화려한 간판거리를 지나, 폭파되어 어둠 속에 잠긴 건물들을 지나 어머니와 둘이 사는 '고가'로 돌아간다. 200평의 넓은 대지에 지어진 아름다웠던 고가가 지금은 한쪽 지붕이 날아가 흉물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엄마에게 돌아왔다고 문을 두드리면 감정이 없는 부연 눈빛을 한 어머니가 문을 열어주고 매일 똑같은 시큼털털한 김칫국과 밥을 기계적으로 내어준다. 엄마는 생에 대한 의욕이 전혀 없는 채로 죽지 못해 살고 있다고 온몸으로 드러낸다. 항상 끼던 의치는 이제 전혀 끼지 않아 입 주변으로 쪼글쪼글한 주름이 지고, 우물우물 밥을 먹는다. 실제 나이보다 20살은 더 늙어 보이게 된 어머니는 원래는 아름답고 활력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두 오빠가 살아있을 때까지만 해도.

전쟁 중 두 오빠는 피난을 떠나려다 못 가고 밤중에 고가로 돌아와 인민군의 눈을 피해 숨어지내고 있었다. 두 오빠가 피난을 가다 비참한 상황을 맞거나, 혹은 전쟁에 나가 죽거나 다치는 일을 피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 여기며 경아 가족은 전쟁 중이지만 제법 안온한 날을 보내고 있었다. 전쟁 중에 우리 가족만 이렇게 운이 좋아도 되나 불안할 때쯤 일이 터졌다. 피난 떠났다가 거지꼴이 되어 돌아온 큰아버지 부자를 숨겨주기로 한 날, 두 오빠를 좀 더 안전할 것 같은 행랑채에 재우자고 경아가 말한 날, 바로 그날 밤 그 행랑채에 포탄이 떨어졌다. 잠을 자던 두 오빠는 빨간 살덩이로 흩어져 죽었다. 사람이 그렇게 갈갈이 처참하게 찢어져 죽을 수 있다는 걸 경아는 처음 알았다.

「전쟁의 노도가 어서 밀려왔으면, 그래서 오늘로부터 내일을 끊어놓고 불쌍한 사람을 잔뜩 만들고 무분별한 유린이 골고루 횡행하라. 광폭한 쾌감으로 나는 마녀처럼 웃으면서도 그 미친 전쟁이 당장 덜미를 잡아올 듯한 공포로 몸을 떨었다. 다시는 다시는 그 눈먼 악마를 안 만날 수만 있다면.

서로 용납될 수 없는 이 두 가지 절실한 소망은 항상 내 속에 공존하고, 가끔 회오리바람이 되어 나를 흔들었다. 미구에 나는 동강 나버리고 말 것이다. 나는 자신이 동강날 듯한 고통을 실제로 육신의 곳곳에서 느꼈다.

<나목> 중에서

두 오빠가 죽고 난 후 삶을 놓아버린 듯한 엄마를 보며 경아는 살고 싶었고 동시에 죽고 싶었다. 어머니에게 있어 자신의 '살아있음'은 아무런 위로도 아님을 깨달았을 때 그녀의 삶은 이미 반 이상 무너졌으리라. 자기 때문에 두 오빠가 죽은 것만 같아 무서웠다. 아직 살아있는 싱싱하고 젊은 청년들을 어머니에게 보이는 게 죄스러웠고 자신이 살아있는 것조차 죄스러웠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으니 아마 곧 다시 전쟁이 발발해서 다 죽을 거라며 자신의 살아있음을 변명했다. 전쟁이 결국엔 다 삼켜버릴 것이기에 자신의 미래도 없다고 가정했다. 살고 싶은 욕망이 엉뚱한 죄책감에 가려져 오히려 어서 전쟁이 나서 세상이 끝나기를 바라는 아이러니한 생각이 된다.

경아는 그저 외롭고 아팠을 뿐이다. 엄마가 나를 보고 한번 웃어주길 바랐을 뿐이고, 두 오빠가 죽은 건 전쟁 탓이지 경아 탓이 아니었다.

경아에게 옥희도 씨는 고독과 상실감을 공유하면서도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아빠 같은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경아는 옥희도 씨의 고독에 이끌리면서도 그의 고독이 속상하고 슬프다.

어느 날 경아는 옥희도 씨가 작업 중인 그림을 보면서 그의 그림에서 그 깊은 고독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캔버스 위에서 하나의 나무를 보았다. 섬뜩한 느낌이었다.

거의 무채색의 불투명한 부연 화면에 꽃도 잎도 열매도 없는 참담한 모습의 고목이 서 있었다. 그뿐이었다.

화면 전체가 흑백의 농담으로 마치 모자이크처럼 오돌토돌한 질감을 주는 게 이채로울 뿐 하늘도 땅도 없는 부연 혼돈 속에 고목이 괴물처럼 부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먼 훗날 옥희도 씨의 유작전에서 그 그림의 완성작을 보고 난 후 경아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는다.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김장철 소스리 바람에 떠는 나목,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 나목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 만 그의 수심엔 봄에의 향기가 애닯도록 절실하다.

그러나 보채지 않고 늠름하게, 여러 가지들이 빈틈없이 완전한 조화를 이룬 채 서 있는 나목, 그 옆을 지나는 춥디추운 김장철 여인들.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봄에의 믿음. 나목을 저리도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

나는 홀연히 옥희도 씨가 바로 저 나목이었음을 안다. 그가 불우했던 시절, 온 민족이 암담했던 시절, 그 시절을 그는 바로 저 김장철의 나목처럼 살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또한 내가 그 나목 곁을 잠깐 스쳐간 여인이었을 뿐임을, 부질없이 피곤한 심신을 달랠 녹음을 기대하며 그 옆을 서성댄 철없는 여인이었을 뿐임을 깨닫는다.



고목과 나목은 비슷한 모양이지만 전혀 다르다. 고목은 죽은 나무이고, 나목은 겨울을 보내기 위해 잎을 다 떨군 나무를 뜻한다. 둘 다 똑같이 잎 하나 꽃 하나 없지만 고목은 끝을 향해가고, 나목은 시작을 향해간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어도 쳐다보는 위치가 다른 것이다.

경아는 자신이 전쟁의 폐허 속 고목이라고 생각했지만 옥희도 씨는 너무도 다채로운 경아의 원래 빛깔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겨울을 맞아 잠시 나목이 된 경아를.

그에게 말해야지. 이 나무들이 지금은 이렇게 볼품없어도 작년 가을엔 얼마나 눈부시게 노오랬던가를. 얼마나 아낌없이 그 노오란 빛을 땅으로 흘리고 또 흘렸던가를. 어머니 앞에서 그에게 그런 말을 도란도란 속삭여야지. 설마 그러면 야 어머니도 부연 눈으로 시들하게 딸을 바라볼 수만은 없을 거다.

경아는 나목으로 추운 겨울을 잘 이겨내고 찬란한 빛깔의 노오란 은행나무로 다시 태어났을까?

살아있음 자체로 축복받게 되었을까?

물론 또다시 겨울은 찾아올 테고 나란히 선 나무들조차 추위와 외로움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음은 찬란한 것이니까.

Drop here!



전쟁의 노도가 어서 밀려왔으면, 그래서 오늘로부터 내일을 끊어놓고 불쌍한 사람을 잔뜩 만들고 무분별한 유린이 골고루 횡행하라. 광폭한 쾌감으로 나는 마녀처럼 웃으면서도 그 미친 전쟁이 당장 덜미를 잡아올 듯한 공포로 몸을 떨었다. 다시는 다시는 그 눈먼 악마를 안 만날 수만 있다면.

서로 용납될 수 없는 이 두 가지 절실한 소망은 항상 내 속에 공존하고, 가끔 회오리바람이 되어 나를 흔들었다. 미구에 나는 동강 나버리고 말 것이다. 나는 자신이 동강날 듯한 고통을 실제로 육신의 곳곳에서 느꼈다.

그에게 말해야지. 이 나무들이 지금은 이렇게 볼품없어도 작년 가을엔 얼마나 눈부시게 노오랬던가를. 얼마나 아낌없이 그 노오란 빛을 땅으로 흘리고 또 흘렸던가를. 어머니 앞에서 그에게 그런 말을 도란도란 속삭여야지. 설마 그러면 야 어머니도 부연 눈으로 시들하게 딸을 바라볼 수만은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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