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아메리카 JGB 걸작선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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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스 스퀘어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변경주 선인장이 뜨겁게 달아오른 공기 속으로 10미터에 달하는 팔을 뻗고 서 있었다. 사막 자연보호구역의 입구를 지키는 위풍당당한 수문장 같은 모습이었다. 녹슬어 가는 네온사인에 세이지 덤불 뭉치가 걸려 있는 모습이, 마치 맨해튼 전체를 완벽한 서부극을 촬영하기 위한 거대한 세트장으로 만들어버린 것만 같았다. 은행이며 증권사 건물의 2층 창문을 따라 열매가 영근 부채선인장이 늘어섰고, 항공사 사무실과 여행사의 현관에는 유카와 메스키트의 거대한 잎사귀가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p.53 본문 중에서- 


이 정도면 미국이 완전히 망해서 나라 전체가 사막이 되어버렸다는 것이 실감 나는가? 망한 정도가 아니라 통째로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지금은 2114년, 한 세기 전에 미국은 망해버렸다, 그것도 완전히! 198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되던 석유가 점차 지구상에서 바닥나면서 원유값이 치솟기 시작하고, 천정부지로 치솟는 원유값을 감당하지 못하고 경제가 하나둘씩 멈춰간다. 먹고 살 길을 찾을 수 없어 사람들이 점점 도시에서 농촌으로, 농촌에서 자기들의 본국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미국 땅은 텅텅 비어가게 된다. 그 후 유럽과 아시아에 불어난 인구를 먹여살리기 위해서 세계정부에서 시도한 기후 제어 기술로 인해 해류가 바뀌면서 추운 북유럽과 시베리아 땅은 따뜻하고 비옥한 땅이 된 반면, 기후변화의 역풍을 제대로 맞은 미국은 전 국토가 사막화 되어버린 것이다. 




나라가 망하는 게 그렇게 쉬워? 설정에 너무 비약이 심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인 광대한 아메리카 대륙이 사람 없이 텅 비어버렸다는 설정은 새롭다. 헬로 아메리카는 이젠 기억에만 존재하는 미국 땅을 다시 찾아가는 아폴로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본래의 목적은 아메리카 대륙에 갑자기 높아진 방사능 수치를 조사하러 가는 거지만, 어째 이 사람들 연구만 하고 돌아갈 것 같지가 않다?! 하긴 광대한 아메리카 대륙에 자신들만 남겨져있는데 어찌 욕심이 나지 않을 수 있으랴. 땅에 금만 긋고 내 땅이라 우겨도 뭐라 할 사람이 없으며, 원한다면 미국의 대통령도 노려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말이다.  소설 <헬로 아메리카>는 아폴로호에 승선한 인물들을 통해 아메리카 대륙 곳곳을 누비며 미국이라는 나라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남아있는 환상을 발견한다.



<헬로 아메리카>는 미국을 두 번째로 발견하는 과정을 묘사하며, 이번에 위업을 이룩하는 이는 정신 나간 광인들이다. 파괴적이며 텅 비고 무가치한 땅을, 오로지 자신의 꿈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정복하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다. 버려진 미국이야말로 그의 열정적이고 폭력적인 인물들을 위한 완벽한 배경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미국이 위대한 가공의 땅일 뿐이라면, 밸러드의 인물들은 상상의 삶을 드러내는 완벽한 횃불잡이라 할 수 있다. 밸러드는 미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사라지더라도 환상 속에는 그 존재를 유지할 수 있음을, 어쩌면 현실에서보다 더욱 중요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P. 377 해설 중에서



밸러드는 "어쨌든 독자들은 <헬로 아메리카>가 미합중국을 격렬하게 옹호하고 있으며, 우리 유럽인들에게는 부족한 미덕인 낙관론과 자신감을 예찬하는 소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p.369)이라며 작가 후기에서 남기고 있다. 독특한 밸러드식 미국 예찬이 궁금하다면, 철저히 파괴된 미국 이야기에 빠져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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