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에번 핸슨
밸 에미치 외 지음, 이은선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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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근사한 날이 될거야, 왜냐하면... "

나에게 쓰는 편지는 이렇게 시작해야 한다. 왜냐면 셔먼 선생님이 시켰으니까?! 하지만 난 오늘이 전혀 근사하지 않은걸. 학교에 가면 내가 누군지도 잘 모르는 친구들 사이에 섞여 반쯤은 투명인간 인척 해야 하는 아싸(아웃사이더)인데다, 엄마는 매일 일과 학업을 병행한다고 너무 바빠, 그리고 아빠는 날 버리고 3000km 넘게 떨어진 다른 도시로 떠나서 엄마 아닌 다른 여자와 함께 새 삶을 시작했어. 거기다 이제 곧 동생이 태어날거라나? 아빠는 이제 동생이 생겼으니 형 노릇을 잘 하라고 했지만 난 왠지 아빠를 완전히 잃어버린 기분이야. 세상에 나를 진정으로 신경 써주는 사람이 있기는 한거야? 난 혼자야, 완전히 혼자야.

에번 핸슨에게

알고보니 전혀 근사한 날이 아니었어.

근사한 한 주나 근사한 한 해가 될 일은 없을 거야.

왜냐하면 그럴 이유가 없잖아?

(중략)..

모든 게 달라졌으면 좋겠다.

나도 마음을 붙일 데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하는 얘기에 무게가 실렸으면 좋겠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내가 내일 사라진다 한들 알아챌 사람이 있을까?

너의 가장 가깝고 가장 소중한 친구인

내가

디어 에번 핸슨 p.41

나도 모르게 너무 오글거리게 솔직한 편지를 써버렸다. 휴우, 이런 편지는 혼자만 보는게 상책이지. 속이 좀 후련해졌으니 이제 선생님이 원하는 긍정적인 편지를 다시 써서 제출해야지. 근데 엇, 왜 프린트한 편지가 왜 코너 머피 손에 있는거야.. 안돼! 안돼!! 돌려줘!!! 코너 머피가 내 편지를 들고 가버렸다. 망했다! 완전 망했다! 코너 머피가 사람들에게 내가 이런 웃기는 편지를 썼다고 떠벌리겠지? 난 세상에서 제일 쪽팔리는 상황을 겪게 될거야. 생각만해도 죽고싶다.

다음날 학교에 갔는데 이상하게 코너 머피가 학교에 안왔네. 무슨 일일까. 그래도 아직 아이들에게 내 편지를 공개하진 않은 것 같군. 다행이면서도 마음 한켠이 불안하다. 그런데 수업 시간 중 갑자기 나를 교무실로 부르는 방송이 나온다. 이게 무슨 일이지. 드디어 일이 터진건가. 교무실에서 만난 낯선 아저씨, 아주머니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듣는다.

'뭐? 코너 머피가 어제 죽었다고?'

일단 내 오글거리는 편지가 세상에 공개될 일은 없겠군, 다행이다. 근데 뭐라구요? 코너 머피가 저한테 유서를 남겼다고요? 그럴리가. 저기요. 그 쪽지는 음, 제가 저한테 쓴... 편지라고 말을... 못했다. 평소 마약 중독에 나보다 더한 외톨이인 코너 머피와 내가 친구일리가. 근데 내 부러진 팔깁스에 어제 그 녀석이 남긴 사인이 남아있다. 이건 그러니까, 그냥 우연이라고요. 우린 친하지 않아요.



코너 머피의 어머니가 나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것 같지만, 일단은 가서 솔직하게 말해야겠다. 하지만 죽은 아들한테 친한 친구가 있었다는 사실에 위안받고 있는 부모님들을 보니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내 입이 나도 모르게 자꾸 거짓말을 한다.

"네, 코너와 저는 가장 친한 단짝이었어요. 우린 아무도 모르게 우정을 나누었어요."

이렇게 나는 코너가 죽은 뒤 그와 상상 우정을 쌓아간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또 거짓말을 낳는다. 내 마음 속에는 죄책감이 쌓이지만 코너의 부모님과 친구들이 나에게 생전 처음 보여주는 관심에, 난생 처음 나도 뭔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자꾸 거짓말을 멈출 수 없다. 그런데, 이거 자꾸 일이 커지는 것 같다?! 내가 원한건 이런게 아닌데... 왜 자꾸 내가 유명해지고... 팔로우가 늘고... 친구가 생기지?... 뭔지 모르지만 자꾸 일이 커진다. 멈춰야 하는데...하는데...


사랑받고 싶고 관심받고 싶은 인간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는 소설이다.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진 등장인물이 모두 자기 나름의 외로움과 슬픔을 지니고 살아간다. 나만 외로운 것 같지만 사실은 모두가 외롭다. 누군가 먼저 알아봐주길 기다릴 뿐. 따지고 보면 에번 핸슨이 자기 자신에게 썼던 저 편지,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해봄직한 생각 아닐까?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뮤지컬을 원작으로 다시 쓰여진 소설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지컬인걸 보면 이런 감정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겠지. 실제로 외톨이든 아니든 인간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이니까. 이야기도 무척 흥미롭고 짜임새있게 흘러가서 금방 훅훅 읽는다. 우리의 에번 핸슨은 아싸에서 진정한 인싸로 거듭날 수 있을지...

참고로 뮤지컬이 궁금해서 유튜브를 찾아봤는데 뮤지컬에 나오는 노래가 넘나 좋다. 역시 괜히 유명한게 아니었나보다.

특히 waving through a window 라는 곡 너무 좋은데? 같이 들어보시길 :)

https://www.youtube.com/watch?v=zA52U37P_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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