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도 없고 별도 없는 칠흑의 섣달 그믐날 밤이, 압록강 너머 두만강 너머 만주 삭방(朔方)에서 휘몰아 오는 칼바람 속에, 뼛속까지 얼어붙으며,

위이잉

깊어가고 있을 때.

동고스름한 초가지붕이 시울을 순하게 내려뜨린 짚시락 아래.

남루하고 따뜻한 불빛들이 낮은 목소리로 젖은 듯이 번지고, 내일이 설날이라 들떠서 잠 못 이루는 아이들이 저희끼리 툭탁거리다가 그 문짝에 그림자로 비치는데, 어디 먼 데서 늦게야 오는 사람이라도 있는 집에서는 사립간에 두세두세 기척이 들리고, 벌컥 방문이 열리면 주황불빛이 마당으로 쏟아지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어둠 속에 쓸리는 초가의 지붕들은 옹기종기 그저 정다운 뒷동산이나 어질고 순한 황소의 잔등이를 닮아 부드러운 그 시울을 아래로 숙이고 있다.   (혼불 5 P. 29-30)


<혼불>에 대한 평가중에는 이 소설이 긴긴 시이기도 하다고 말한 것이 많다. 아닌게 아니라, 질곡 많은 삶들을 반추하기도 바쁜 중에 전혀 궁상스러움 없이 때로는 긴, 때로는 짧은 시들을 거침없이 스윽 끼워 둔 소설이다. 가끔은 너무 멋스롭고자 한 거 아닌가 좀 심퉁이 날 때도 있다.

위의 몇 단락은 그야말로 시적인데, 정지용이 <향수>에서 그렸던 느낌도 좀 섞여 떠오르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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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황한 명동 밤거리를 가로질러 극장 앞에 섰다. 데스크에 물어보니 남은 표가 네 장이란다. 그런데 당일표는 8층까지 올라가서 사란다. 그럼....! 그사이 누가 먼저 올라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냅다 달린다. 데스크 앞에 도착하여 헉헉대며 물으니 달랑 표 두 장 남았단다. 끼유~~~ 간발의 차이로 앞의 몇 분은 놓쳤다.

전도연을 싫어한다. 그렇긴 한데, 연기가 괜찮다는 건 또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고두심 연기야 말 하면 입아픈 에너지 소모다. 박해일... 이 문제의 청년이 얼마나 성장해 갈지 역시 나에겐 중요한 관심사다. 조승우와 박해일이 없다면 우리 영화 미래가 깝깝하다 생각하는 중이다.

그악스런 엄마의 어린 시절을 만나는 이야기. 또 젊은 날의 아빠를 만나는 이야기.

뜬금없이 찾아든 도시 처녀를 경계심도 없이 식구처럼 받아들이는 설정,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릴 법도 한데, 아무도 이 도시 처녀에게 신경 안 쓴다는 점이  어색하다면 심하게 어색하지만, '판타지'라는 이름으로 모른 것을 용서받을 줄 알았으려니 하자. 그러고는 엄마와 아빠의 순박하고 고운 사랑이야기의 생생한 목격자가 된다. 이야기만큼이나 따듯하고 고운 섬 풍경이 마음을 뉘고 싶을 지경으로 좋다. 그런데 그 착하고 싱싱했던 청년이 왜 지금의 무기력하고 궁상맞은 아빠가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좀 설명이 부족해 보인다. 착하고 인정 많음=무능  이라는 공식을 깔고서라야만, 그래서 엄마가 억척스러워 질 수 밖에 없었다고 이해하고 되는 것인데, 앞의 공식도 뒤의 결과도 도무지 저 젊은 날의 아름다운 사랑의 후일담으로는 너무 서럽고 그렇다.

내 눈에 확 다가드는 것은 우리 영화의 기술적인 발전이다. 한없이 서정적이고 생생한 자연이 숨쉬는 영화 전체의 화면 속에는, 전도연의 1인 2역, 젊은 날의 엄마와 뒷날의 딸이 마주보고 얘기나누고 안고 같이 걸어가는 장면을 '어? 어떻게 하는거지?'하며 눈을 크게 뜨도록 하는 기술력이 숨어 있다. 외국 영화고 우리 영화고 그런 비스무레한 장면들을 안 봤던 건 아니지만, 내가 본 중 제일이다. 포레스트 검프와  대통령의 만남도 신기하긴 했는데, 그래도 좀 장난친 흔적은 있었다. 같은 사람이 한 두 역할들이 무리 없이 말을 섞고 공간을 나누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신경써야 하는 걸까 생각해 본다. 같은 빛의 밝기, 그림자의 겹침, 같은 음향상태, 시선의 일치...... 거의 완벽하게 하나의 공간에 있는 두 사람으로 표현된 많은 장면들에 심히 놀랐다.

뭐, 기대만큼 근사뻑적지근하지는 않아도, 박해일의 매력이 십분 발휘되지는 않은 것 같아도, 좋은 연기,  마냥 그리워지는 풍경, 가끔씩 터뜨려 준 웃음,  최고의 기술이, 돈이란 시간 아깝단 생각은 안들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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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나는 지금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새로운 땅 만주로 가고 있는데, 왜 지나간 날 들었던 멸망의 옛이야기만을 이다지도 끝없이 떠올리고 있는 것일까.

한번도 실체로서 오늘을 살지 못한 채, 오늘이 어제가 되면 그제서야 비로소 그 어제에 발목이 묶여, 헤어날 길 없는 어제를 오늘 사는 어리석음.

그것이 싫다.  (혼불 4 P. 46)


나이 서른을 넘기던 날 부터, 내 삶은 뒤에 두고 온 것들을 돌아보는 것,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 버렸다.  다시 오지 않을 시간들이라며 닥치게 살아낸 시간들은 고스란히 내가 수습해야할 몫이 되어 남았다. 그래서 오늘을 살 시간이 없다. 어제의 뒤치닥거리를 해 내다 보면 나의 오늘은 어느새 없다.  모든 것을 다 버릴 자신도, 새로운 세상을 찾아 떠날 만주도 내게는 없다.  이렇게 살아지는 것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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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내가 첫 영화이야기를 블럭버스터로 시작하는 것은 정말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다.

사는 일이란, 생각지 않았던 일들이 덧대어지면서 특유의 '파란만장함'을 갖추어 가는 거....그렇구나.


<스파이더맨 1>을 보지 못했다.

SF니 액션이니 블럭버스터니 하면 우선 가슴에 화닥증부터 나서,

누가 같이 보자고 하면 우아하게 고개를 살랑거리곤 한다.

또 몇 번은 얼떨결에 다수의 강권을 극복 못하고 극장에 들어가 앉았던 적이 있는데,

열에 아홉은 '그럼 그렇지'였다.

그런데, 스파이더맨은 아니란다.

영화평도 나쁘지 않고, 심지어 세기의 키스신 중 하나가 들었다고도 하고.

 

옥상에 물이 넘쳐 옥탑방으로 들이치지나 않을까 불안해 할 만큼 비가 쏟아 붓는 오후

반바지에 슬리퍼 복장으로 과감하게 신촌의 최신식 극장으로 향한다.

영화 '스파이더맨2'를 보러.

 

사람이 많지 않다. 비 탓이려니.

스파이더맨의 핏자배달이 영화의 시작이다. 오~ ! 생각보다 화면이 괜찮다. 시원시원하게 빌딩숲을 날아다니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이 싸-하고 쿠-울 하다. 토비 맥과이어의 예쁘장하고 순하디순해 보이는 얼굴이 스파이더맨의 그 탄력있고 후련한 동작들과 어이없는 조화를 이룬다.

닥터 옥토퍼스 캐릭터는 기대보다 카리스마가 못하다. 정의로운 결말을 위하여 너무 극단적인 악마적 캐릭터를 피한 것일까. 허나, 옥토퍼스의 발이자 손을 이루는 네 개의 금속 팔의 카리스마는 대단하다. 금속이 주는 그 절대적으로 차갑고 사악한 기운이 투실투실 맘 약해 보이는 닥터 옥토퍼스에게 그나마 힘을 실어 준다. 개인적으로, 왠만한 공포영화 속 귀신들보다 이 금속팔들이 훠얼~씬 무서웠다.

영화 어디쯤,  피터의 외숙모가 늘어놓는 일장연설은 정말 질색이다. 인생은... 가치를....소중한... 포기 으쩌구 저쩌구....  그런 장면, 그런 대사들은 영화적 가치를 한 40퍼센트쯤 깎아 먹는 다는 거, 그거 모르나, 미국감독들은?  SF 블럭버스터 영화에서 저렇듯 '고독'을 근사하게 표현할 줄 아는 멋쟁이 감독이, 한편 미국 교과서같이 느끼하고 시큼털털한 장면을 그것도 아주 길~게 영화에 심은 이유를 이 아마추어 관객은 진짜 모르겄다.

그래, 말이 나왔으니, 고독.

멋지고 정의로운 우리의 초강력 친구 스파이더맨의 영화이지만, 뚝뚝 떨어지는 고독들은 또 어쩌란 말이냐. 그것도 슬쩍슬쩍 흘리는 게 아니라 아예 일부러 쏟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피터 파커의 고독, 스파이더맨이기도 해야 하는 착한 청년 피터 파커의 고독. 얼굴을 가리고, 누명을 뒤집어 써가며 좋은 일 하는 사람의 억울하기도 한 고독, 비밀이 발목을 잡고 끝없이 끌고 내려가는 고독의 늪. 좀 오바가 아니냐면, 뭐 아니랄 것도 없다. 그러나 어쨌든 이러한 고독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으니 토비 맥과이어 연기가  낙제점은 아니라고 해야 겠지.  1편을 못 본 것이 못내 아쉬운 것은, 2편에서 어느새 해소되고 있는 그 고독의 정도가 앞에서는 어느 정도로 그려졌던가 하는 궁금증 탓이다. 

대중 앞에서 가면을 벗는 스파이더맨, 철저히 스파이더맨의 편이 되어 주는 대중들(사실 여기도 좀 속이 울렁거린 것은 사실이지만), 스파이더맨의 고독에 가장 큰 치명타를 입혀 온 연인에게 밝혀진 진실, 결혼식장을 박차고 나와 초라한 자취방으로 달려온 연인. 이렇게 고독이 순식간에 해소되어 버리고 나니, 노골적으로 예고되고 있는 3편은 왠지 싱거울 것 같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스파이더맨의 고독을 알 것 같다. 그리고 그 시원시원한 거미줄 타고 날기의 배경이 거대한 도시의 그늘속이어서 그렇게 좋을 수 없다. 탄력있는 동작들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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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자꾸 외로워 진다.

케이블 TV를 보다보니 '사랑을 얼마나 쉬었습니까?' 뭐 그런 비슷한 제목의 일본 드라마가 있는 모양이다. 결혼 한 10년 된 여자의 외로움과 새로운 사랑 이야기란다.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지만,남들 눈엔, 것도 보수적인 어르신들이나 싸나이들 눈엔 불륜일 그 일탈이, 그렇게 깊숙히 이해될 수 없다. 결혼한 여자는 외롭다. 조금씩 조금씩 짙어지는 외로움의 그늘이 싫어 그렇게 립스틱도 짙어지고 반지알도 커지는 모양이다.

드라마를, 쌉싸름한 멜러드라마를 보고 있는 일은 사람을 참 외로워 지게 만든다.

박신양이 연기한 영화 '인디안 썸머'를 얼마전 보았다. 박신양은 참 예쁘게 연기할 줄 안다.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 '파리의 연인'은 영화와는 또 다른 모습이지만, 스타일이 달라도 성격이 달라도 어쨌든 사랑하는 남자일 때 박신양의 연기는 예쁘다. 이뻐 죽겠다. 얼굴이 꽃미남이어서 이쁜 게 아니라 이쁜 마음을 보여줄 줄 안다.

어쨌든 그 예쁜 박신양의 연기도 날 외롭게 한다. '다모'의 이서진이 그랬고, '생활의 발견'의 김상경도 그랬다. 망할 눔들....

외로운 거 내색하기 힘든게 지금 내 나이다.

그래서 당신에게만 살짝 주책을 부린다.

오늘 당신이 나의 박신양이라고 여겨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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