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내가 첫 영화이야기를 블럭버스터로 시작하는 것은 정말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다.
사는 일이란, 생각지 않았던 일들이 덧대어지면서 특유의 '파란만장함'을 갖추어 가는 거....그렇구나.
<스파이더맨 1>을 보지 못했다.
SF니 액션이니 블럭버스터니 하면 우선 가슴에 화닥증부터 나서,
누가 같이 보자고 하면 우아하게 고개를 살랑거리곤 한다.
또 몇 번은 얼떨결에 다수의 강권을 극복 못하고 극장에 들어가 앉았던 적이 있는데,
열에 아홉은 '그럼 그렇지'였다.
그런데, 스파이더맨은 아니란다.
영화평도 나쁘지 않고, 심지어 세기의 키스신 중 하나가 들었다고도 하고.
옥상에 물이 넘쳐 옥탑방으로 들이치지나 않을까 불안해 할 만큼 비가 쏟아 붓는 오후
반바지에 슬리퍼 복장으로 과감하게 신촌의 최신식 극장으로 향한다.
영화 '스파이더맨2'를 보러.
사람이 많지 않다. 비 탓이려니.
스파이더맨의 핏자배달이 영화의 시작이다. 오~ ! 생각보다 화면이 괜찮다. 시원시원하게 빌딩숲을 날아다니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이 싸-하고 쿠-울 하다. 토비 맥과이어의 예쁘장하고 순하디순해 보이는 얼굴이 스파이더맨의 그 탄력있고 후련한 동작들과 어이없는 조화를 이룬다.
닥터 옥토퍼스 캐릭터는 기대보다 카리스마가 못하다. 정의로운 결말을 위하여 너무 극단적인 악마적 캐릭터를 피한 것일까. 허나, 옥토퍼스의 발이자 손을 이루는 네 개의 금속 팔의 카리스마는 대단하다. 금속이 주는 그 절대적으로 차갑고 사악한 기운이 투실투실 맘 약해 보이는 닥터 옥토퍼스에게 그나마 힘을 실어 준다. 개인적으로, 왠만한 공포영화 속 귀신들보다 이 금속팔들이 훠얼~씬 무서웠다.
영화 어디쯤, 피터의 외숙모가 늘어놓는 일장연설은 정말 질색이다. 인생은... 가치를....소중한... 포기 으쩌구 저쩌구.... 그런 장면, 그런 대사들은 영화적 가치를 한 40퍼센트쯤 깎아 먹는 다는 거, 그거 모르나, 미국감독들은? SF 블럭버스터 영화에서 저렇듯 '고독'을 근사하게 표현할 줄 아는 멋쟁이 감독이, 한편 미국 교과서같이 느끼하고 시큼털털한 장면을 그것도 아주 길~게 영화에 심은 이유를 이 아마추어 관객은 진짜 모르겄다.
그래, 말이 나왔으니, 고독.
멋지고 정의로운 우리의 초강력 친구 스파이더맨의 영화이지만, 뚝뚝 떨어지는 고독들은 또 어쩌란 말이냐. 그것도 슬쩍슬쩍 흘리는 게 아니라 아예 일부러 쏟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피터 파커의 고독, 스파이더맨이기도 해야 하는 착한 청년 피터 파커의 고독. 얼굴을 가리고, 누명을 뒤집어 써가며 좋은 일 하는 사람의 억울하기도 한 고독, 비밀이 발목을 잡고 끝없이 끌고 내려가는 고독의 늪. 좀 오바가 아니냐면, 뭐 아니랄 것도 없다. 그러나 어쨌든 이러한 고독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으니 토비 맥과이어 연기가 낙제점은 아니라고 해야 겠지. 1편을 못 본 것이 못내 아쉬운 것은, 2편에서 어느새 해소되고 있는 그 고독의 정도가 앞에서는 어느 정도로 그려졌던가 하는 궁금증 탓이다.
대중 앞에서 가면을 벗는 스파이더맨, 철저히 스파이더맨의 편이 되어 주는 대중들(사실 여기도 좀 속이 울렁거린 것은 사실이지만), 스파이더맨의 고독에 가장 큰 치명타를 입혀 온 연인에게 밝혀진 진실, 결혼식장을 박차고 나와 초라한 자취방으로 달려온 연인. 이렇게 고독이 순식간에 해소되어 버리고 나니, 노골적으로 예고되고 있는 3편은 왠지 싱거울 것 같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스파이더맨의 고독을 알 것 같다. 그리고 그 시원시원한 거미줄 타고 날기의 배경이 거대한 도시의 그늘속이어서 그렇게 좋을 수 없다. 탄력있는 동작들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