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아무래도 좋은 일들이 제법 일어나려나보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러 가며 신바람에 그런 기분이 들었다.

밤 11시 반에 극장 의자에 앉기는 처음이었다.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가 전무했던 관계로,  권상우의 뽀다구나는 몸매를 무기로 한 '두사부일체'류의 코믹액쑌을 짐작하고 있다가 이거 그건 아니구나 싶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 시절 언저리를 그 세대로 살아낸 남정네들은 영화의 리얼리티에 대해 자못 흥분하며 증언해 준다. 거칠면서도 왠지 예쁘다고 느껴지는 화면으로 묘사된 그 시절의 억눌림과 그시절의 사랑과 그시절의 정의.

혀가 짧고, 너무 대중적인(?) 몸매를 갖고 있기는 해도 권상우가 그리 나쁜 배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를 대상으로 뭔가 기대해도 괜찮지 싶은데, 당신 생각은 어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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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어 영화 '실미도'를 보았다.

심각한 소재이니 심각한 감독이 만들었다면 심각했을 것이고 그래서 대중들이 슬금슬금 피했을 수도 있겠지만, 다행히도 흥행 감독이 만들어 그 심각함을 대중성으로 살짝 덮어 주었다. 이렇게 말하면 감독이 엄청 화낼 것 같기는 하다.

엊그제 보았던 도올 특강, 김용옥 아저씨가 하도 보라고 부채질을 해 댄 것이 오늘 관람의 결정적 이유다. 평소 유난떠는 영화들은 괜히 심통이 나서 보기가 싫다. 그래도 도올의 유난은 뭔가 좀 다르지 않나 싶어서...

영화가 좋았다는 말은 잘 안나오지만, 재미가 있었다. 간간히 보이는 작위적인 감동장면(?)들이 거슬리기는 해도, 낯선 배우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연기가 좋았다. 고생들 많이 했겠다는 생각에 절로 한숨부터 난다.

스스로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은 어렵다. 젊은 세대가 알지 못한 역사의 치부를 드러내고 그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된 자들의 마음을 쓰다듬는 영화라면 이 영화를 좋은 영화라도 불러도 좋을 것이다.

다만, 치부를 드러내는 일은 한 편 흥행 자극을 위한 좋은 소재이기도 하기에 부디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당신도 어딘가에서 누군가와 이 영화를 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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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만하 -

  틈을 주무른다. 애절한 눈빛으로 서로를 더듬는 알몸의 포옹이 만드는 캄캄한 틈. 멀어져가고 있는 지구의 쓸쓸한 등이 거느리고 있는 짙은 그늘. 진화론과 상호부조론 사이를 철벅거리며 건너는 순록 무리들의 예니세이 강. 설원에 쓰러지는 노을. 겨울나무 잔가지 끝 언저리. 푸근하고도 썰렁한 낙탓빛 하늘 언저리. 안개와 하늘의 틈.

  지층 속에서 원유처럼 일렁이고 있는 쓰러진 나자식물 시체들의 해맑은 고함소리. 바위의 단단한 틈. 뼈와 살의 틈. 영혼과 육신의 틈. 빵가 꿈 사이의 아득한 틈. 낯선 도시에서 마시는 우울한 원둣빛 향내와 정액빛 밀크 사이의 틈. 외로운 액체를 젖는 스푼.

  존재는 틈이다. 손이 쑥쑥 들어가는 적막한 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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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탁된 언어. 구질구질함도 질퍽임도 없다. 오랜 사유를 다듬은 흔적을 본다. 시인은 의사다. 인상좋은 흰머리의 은퇴한 의사선생님. 그런데 오십년 가까이 시를 써온 시인이기도 하다.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다고? 그의 시가 보여주는 완성도를 잘 들여다 보기를....

가장 폐부를 찌르는 부분

' 존재는 틈이다. 손이 쑥쑥 들어가는 적막한 틈이다.'

그래서 이렇게 외로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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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리도 겨울 바다에 목말랐나 몰라

그곳에 가자는 제안에 열 일 제치고 나서야 했을 만큼

센 바닷바람이 낯설지 않았어

날지 못하고 공중에서 허둥거리는 갈매기의 모습

모자며 목도리며 주체할길 없는 와중에도 즐겁게 카메라 앞에 서는 사람들의 모습

거기엔 나를 기다리는 아무도 없고

내가 찾고 싶은 무엇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씩씩하게 쳐 올라오는 파도가 좋았어

깊이감 있는 짙푸른 빛깔도 좋았고

겨울 바람에 희석된 바다내음도 좋았어

당신도 가끔은 겨울 바다를 목말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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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엄청 폼을 잡는다.

필경 어렵게 말하길 좋아하는 사람이 틀림없다.

내가 최수철의 다른 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었나?

그 책도 이런 식이었다면, 그리고 그걸 내가 기억했다면 이 책을 골라 읽는 수고는 덜었을텐데....

읽지 않았거나, 읽었어도 별다른 인상이 남지 않았거나다.

시작을 했으니 일단 끝은 보기도 하자.

꼬일대로 꼬인 사람들의 가슴속을 들여다 보는 일이 지겹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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