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포퍼 논쟁 - 쿤과 포퍼의 세기의 대결에 대한 도발적 평가서
스티브 풀러 지음, 나현영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작년 한해 우리 사회는 황우석 사태로 엄청난 충격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황우석이라는 사람의 기만적 행동은 논외로 하고, 황우석에 대해 보여준 국민들의 반응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준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그렇다고 나쁜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과학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지식인의 자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것은 큰 수확이었다.

그런데 지금 현재 이 시점에서 그렇게 뜨겁게 달구어지던 논의가 이제는 많이 사그라든 느낌이다. 피상적인 논의만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감정마저 든다. 인문학의 위기라고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우리 학자들이 자초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 인문 학자들은 외국의 글들을 인용하는 수준이지, 좀 더 깊고 우리만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과학과 철학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게 현실이다.

이 책은 그러한 과학과 철학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965년 7월 떠오르는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과 ‘열린사회와 그 적들’로 유명한 노장 철학자 칼 포퍼 사이에 이루어진 토론에서, 쿤의 다원론적 시각이 우승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지은이는 당시의 논의를 잘못 해석하였다고 주장하며, 쿤의 이론이 가진 오류를 지적하고 포퍼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먼저 지은이는 쿤과 포퍼의 저술을 통해 쿤과 포퍼가 과학을 바라보는 가장 기본적인 차이는, 쿤의 경우는 과학적 탐구가 이미 이루어진 패러다임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본 반면, 포퍼는 ‘개방’에 방점을 두고 언제나 열려진 입장에서 과학적 탐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러한 두 학자의 기본적인 논의의 차이는 이후로 전개되는 논의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쿤도 패러다임의 전환이 가능한다고 보았는데, 이는 실행가능한 패러다임이 발견되었을 때에만 가능한 것으로 본 반면, 포퍼는 언제나 비판적인 연구태도를 견지할 것을 역설하엿던 것이다. 즉 쿤은 과학의 합리성을 과학자에게 위임하여 패러다임의 안정성에 역점을 둔 반면, 포퍼는 과학자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며 패러다임을 극복해야 할 문제로 본 것이다. 이는 쿤은 권위주의자로 포퍼는 민주주의자로 구분되는 것이다.

지은이는 쿤과 포퍼의 논쟁에 대한 이제까지의 주류적인 입장과 달리 새로운 시각으로 이러한 극단적인 차이에는 정치적인 배경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 부분은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논의가 아닌가 한다.

냉전 시기 미국 정부의 원자폭탄 개발을 내용으로 하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비판적 과학자들보다는 연구에만 전념하는 과학자들 즉 쿤이 말하는 패러다임 안에서 과학탐구만을 하는 과학자들이 필요했고,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성찰없이 프로젝트를 완수하여 이는 지금 현재까지도 전 세계를 핵의 공포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보게되면 과학의 순수성을 강조한 듯 보이는 쿤의 논의는 사실은 매우 정치적이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우리 과학계를 되돌아 보게 되는 것이다. 황우석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도 우리는 과학을 순수한 학문이라고만 여겼던것이다. 과학에 대해 논쟁을 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포퍼의 열린 사회에 대한 논의가 힘을 발휘한다. 과학적 논의에 대한 개방적인 시각이 필요하고 과학자 집단은 이에 대한 책임의식이 있어야 한다. 이는 더 나아가 이 시대에 지식이들이 고민하여야 할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즉 현실에 대한 비판 정신과 사회적 책임 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적인 용어들과 쿤과 포퍼의 논쟁의 정확한 숙지가 없이는 읽기가 간단하지 않은 책이지만, 지은이가 쿤과 포퍼의 논쟁에서 우리가 잊어버린 포퍼의 정신을 다시금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지적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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