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기적거리며 최대한 느리게 움직이는 것을 소요라고 한다면 마땅히 소요산의 이름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 다음다음날 경원선을 타고 찾아간 소요산엔 원효와 요석공주, 양사언의 전설을 품고 있는 대신 매섭고 차가운 겨울 바람을 계곡 깊은 곳에서부터 토해내고 있었다.
코로 들이치는 매서운 공기는 금새 콧물도 얼려버릴 정도의 차가움이었기에 소요라는 느림대신 종종걸음을 치듯 최대한 발걸음을 서두를 수 밖에 없었다.
자재암, 하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를 거쳐 나한대와 공주봉을 거쳐 달리듯 눈길을 칼바위 능선을 탔더랬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 무아지경의 세계를 접했다고나 할까?
나한대 근처에서 적막감을 깨뜨리는 딱따구리의 나뭇가지 쪼는 소리를 한동안 들을 수도 있었다.
조금 춥기는 했지만 산에선 행복을 느낀다.
그 품안에 있을때도 그렇고 그 품이 그리울 때도 그렇고 그 품이 멀어질 때도 또한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