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abling Professions (Paperback)
Illich, Ivan / Marion Boyars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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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에서 Ivan Illich는 Professionalism 에 대해서 그 핵심적인 생각의 근저들을 드러낸다. 그는 Professionalism에 대해서 5가지의 환상(illusion)이 있다고 한다.

1. The first enslaving illusionis the idea that people are born to be consumers and that they can attain any of their goals by purchasing goods and services.

2. The second enslaving illusion conceptualized technological progress as a kind of engineering product licencing more professional domination.

3. The third disabling myth expects that effective, tools for lay-use must first be certifed by professional tests.

4. The fourth disabling illusion looks to experts for limits to growth.

5. The fifth enslaving illusion is this year's radical chic.

이 다섯가지 illusion이 인간을 commodite에서 살아가도록 하고, 기술적인 지배력을 점점 높여간다고 이야기한다. 인간의 verb는 noun이 되어져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되어지고, package와 complexity한 상품 집약적인 사회는 인간의 labor intensive society를 대신하게 된다. 결과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러한 전문가 주의는 industrial state에서는 벗어날수 없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우리가 이러한 발전을 제한하고, tools for conviviality를 발전시킬 때, 인간의 자유를 담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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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노동 - 이반 일리히 전집 5
이반 일리히 지음, 박홍규 옮김 / 미토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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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dow work" 는 상당히 충격적인 책이었다. 산업 생산으로 인하여 발생한 노동의 분업과 그로인한 노동의 종획운동(enclosure)은 사람의 생활의 자존과 자립의 근거인 자연환경을 박탈시켜갔다. 그 결과 임금 노동이 출현하였고, 여자는 자율을 박탈당한 전업주부로서 등장하였으며, 상품집적사회(commodity intensive society)로 부터 소비를 강요당하고 있다. 여자는 지위박탈을 당하였고, 남자는 노동인력으로 우상화되어졌지만, 그 속에서 자신의 자율을 상실당하고 만다.

이 shadow work 를 강요하는 것은 산업 사회에서 분업의 노동을 통하여 생산의 성장을 이루면 그와 동시에 늘어나게 되어진다. 이것은 하나의 전체주의적인 형태로 고착되어져 있는 것으로, 표준어 사용을 통한 구조적인 통제에서 그 기반을 찾을수가 있을것이다.

표준어와 모국어에 대한 일리히의 산업주의의 교묘한 전략적인 관점에서는 날카로운 비판이다. 이것을 읽는 동안, 언어에 대한 깊은 회의와 나 자신의 현 위치에 대한 곤란함 때문에 곤욕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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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을 멈춰라! - 자율적 공생을 위한 도구, 이반 일리치 전집 4
이반 일리히 지음, 이한 옮김 / 미토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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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히의 주장은 명확하다.

그는 탈산업사회를 주장하며, 그에 대한 대안으로 공생적 사회(Convivial Society)를 이야기한다. 공생적 사회란 공생적 도구(Tools for Conviviality)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강제 곧 독과점 형태로 사람의 자율적이고, 창조적이며, 독립적인 능력을 소멸시키고, 강제하는 파괴적인 산업 사회의 전문가주의, 독과점, 관료제, 분업주의 등과 같은 다양한 언어로 표현되어진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인간을 교육, 의료 등을 통해서 사제적인 역할을 수행하여 강화시키며, 법의 "절차화" 를 통하여 기존 사회 내 질서를 해결하고 조정하는 것으로, 산어사회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인간의 다차원원적인 균형을 깨뜨리고 인간을 일차원적인 인간(a dimensional person)으로 강제하고, 그것은 인간을 생산성을 향한 하나의 노동력으로 간주한다. 결국 인간을 관료제화 시키며, 제도화 시키고, 부품화 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겪게 된다.

이러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것은 단순히 산출물에 대한 효율성과 제약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산업사회의 생산 구조와 이를 위한 생산 도구의 제한을 통해서 공생의 사회로 접근할수 있다고 말한다. 거기에는 2가지 핵심적인 도구가 있는바, 언어와 형식적 과정의 도구이다. 언어의 변화를 통하여 인간의 의식을 자극하여 보다 다수의 능동적인 인간의 배움, 의식 그리고 행동을 주장할 수 있으며, 형식적 과정을 통하여 반생산적인 도구들에 대한 효과적인 제한을 할수 있으며, 다수의 능동적인 정치 참여를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도, 다수의 공생을 증진할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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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이 병을 만든다
이반 일리히 지음, 박홍규 옮김 / 미토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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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히의 책에서 자율성이라는 부분이 중요한것 같다. 인간은 자연속에서 이웃과 공생하면서 자율성을 가지고 배우며, 이동하며, 스스로를 치료한다. 하지만, 산업화는 이러한 인간의 자율성을 박탈하여 가는데, 박탈되어지는 과정은 산업화에서 비롯되어지는 서비스 문화의 제공이다. 서비스 문화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자율성을 내어 놓도록, 환상과 상징을 부여하여, 개인의 의료적인 무능력을 의식속에서 일으키도록 한다. 그 무능력은 전문가(Professions)들의 지도와 일방적인 관리에 따른 것이 최고의 효율성이며, 합법적이며 세련된 방법임을 우리로 하여금 고백하도록 한다.

이반 일리히는 이러한 전문가적인 견해를 이번 책에서도 거부한다. 그 대상은 병원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통증, 상해, 사망등의 개인적인 문제들을 병원을 의료인을 통한 사제적인 행위를 통하여 인간의 신체적인 치료 자발권을 박탈하도록 기도한다. 이러한 행위를 통하여 전문가만이 접근할수 있는 신성한 의료의 지식속에서 자신은 알지 못하는 무지로 인하여서 자신의 신체와 정신의 모든것을 그들에게 내어 주는 무능력함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반 일리히는 모든 의료의 행위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핵심은 반생산성이다. 반생산성은 의료가 인간에게 제공하는 지식내지 치료들이 자기 치료의 영역을 넘어서 신화적 상징으로으로 변질되어지며, 자기 개인적인 치료가 기술적인 치료의 영역으로 넘어서면서, 인간의 자율성을 박탈하며, 그 결과가 신체의 주도권과 정신의 주도권까지도 잃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일리히의 사상은 민중의 자율성과 공생의 삶을 함께 고찰하여, 보다 효과적인 생산성과 자연속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현대 산업사회에서 해방을 꿈꾸는 사상가가라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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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litics of Experience (Paperback)
R. D. Laing / Pantheon Books / 198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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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 중의 한가지가 개인의 정신병이다. 개인의 정신병력은 그 사람의 독특한 기벽이나, 가정 환경 탓으로만 돌려지고 있다. 하지만 R.D.Laing은 개인의 정신분열증상을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개인의 경험은 혼자만의 경험이 아니라, 타인과의 interaction 에 과정을 통하여 경험되어진다. 사람은 이러한 interaction 하는 사회속에서 자신만의 instrument를 개발시켜, 그 관계에 몰입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 관계는 사실상, 상대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assumption 을 이루어졌으며, 무엇을 해야 한다는 should 로 구성되어져 있다. 그러므로 그곳의 관계는 상당히 폭력적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무엇을 Laing은 이러한 관계에서 outer 상황으로 ego가 강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innerate로 들어 간다고 한다. 이렇게 되어진다면, 정신분열증이 한 개인의 잘못이라고 누가 말할수 있을가?

그러므로 경험은 철저하게 poitics의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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