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 네트워크 ] 2002년08월21일 제423호 

천재인가 마녀인가

매혹적인 문학과 파괴적인 비평으로 인도 사회를 휘젓는 아룬다티 로이와의 만남


사진/ 프라풀 비드와이(Praful Bidwai) 전 <타임 오브 인디아> 편집장·핵 전문 칼럼니스트


왜 아룬다티 로이(Arundhati Roy ·42)는 찬양과 증오의 대상이 되었는가? 어떻게 그이는 문학적 귀재가 되었고 동시에 공공연한 마녀가 되었는가?

지난 6월18일, 마디아 프라데시주의 보팔에서 동료 4명과 29일간 단식을 막 끝낸 그를 보면 해답이 나올까? 단식은 정부가 나르마다댐의 보조용으로 마안강에 댐을 짓기 전에 수몰주민들에게 보상을 하고 새로운 정착촌을 건설하라는 요구였다(나르마다강은 마디아 푸라데시주와 마하라 슈트라주, 그리고 구자라주를 통과하는 인도에서 가장 긴 강 가운데 하나로, 1947년부터 강 본류와 지류에 30개 대형댐과 135개 중형댐, 3천개 소형댐을 짓겠다는 정부 계획에 따라 100만명이 넘는 수몰민이 발생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편집자). 각 신문들은 주민들의 주장을 완강하게 거부한 정부를 비난하며 ‘나르마다의 치욕’이란 머리글을 뽑아들었고, “멍청한 장관은 아룬다티가 단식을 했으니, 이제 정책을 바꿀 일만 남았는가”라고 비꼬았다. 이 일로 정부는 국내외 언론으로부터 엄청나게 비난받았다.

“이 정부는 모욕적이에요”


사진/ 감옥에서 풀려난 뒤 동료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는 아룬다티. 그는 인도 문학과 사회운동의 보물이다. (Asia Network Documentary)


나는 오랜만에 델리로 돌아온 아룬다티를 찾아갔다. 마안댐, 나르마다, 문학, 핵무기, 섹스, 도덕 같은 여러 복잡한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그동안 주로 철야 농성장이나 시위대 속 아니면 군비축소나 신파시즘 힌두주의를 주제로 삼은 회의장에서 우리가 만난 걸 생각해보면, 그를 집에서 만난다는 건 어쩐지 생경스런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약간 어색해하는 나를 아룬다티는 서부 인도 주민의 전통 차림인 녹색의 긴 치마에 낙타색 윗도리를 걸치고 편안하게 맞아주었다. 그가 이끄는 대로 2층 서재에 올라가니, 테라스 정원과 절묘하게 어울린 색감들이 우러나는 실내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한때 건축가가 되겠다고 공부하던 아룬다티의 빛감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풍경이었다.

아룬다티는 기다렸다는 듯이 묻고 말고 할 것도 없이 할 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모욕적이에요. 이 정부는 댐 철거민뿐 아니라 정의를 믿고 민주적 권리를 믿는 모든 이들을 능욕했어요. 간디의 그 유명한 무기인 단식도 21일을 넘긴 적이 없었잖아요? 악독한 영국 식민정부도 21일 전에 모든 사태를 풀었다는 뜻이죠. 단식까지 하며 항의할 때는 적어도 귀기울이는 것이 사람 모습이고, 또 정부가 할 일 아닌가요?”

아룬다티는 보팔에서 돌아온 바로 뒤였고, 다시 시위자들과 연대해 마안강으로 갈 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이라며 가시가 돋친 말들로 정부를 질타했다. “현장에 가보니 논쟁거리랄 것도 없었어요. 철거민들은 ‘찍’ 소리 한번 질러보지 못한 형편이었는데, 정부 놈들이 기득권과 편견만으로 모든 걸 결정하고 말았으니….”

아룬다티의 독설을 듣고 있자니, 그의 오직 한편뿐인 소설 <변변찮은 것들의 신>(The God of Small thing·한국판 번역제목은 ‘작은 것들의 신’)이 풍성한 상징과 은유에 살아 꿈틀대는 표현들-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창조적인 묘사- 로 문단을 발칵 뒤집어놓은 기억이 슬금슬금 되살아났다.

<변변찮은 것들의 신>은 위대한 소설들이 그런 것처럼, 글을 읽고 있으면 저절로 그 ‘아름다움’에 빨려들었다. 특수한 조건을 지닌 카스트 제도에 뿌리박은 케랄라의 절박한 사랑을 그린 이 소설은 따지고 보면, 별난 것도 없이 세상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일반적 시대상과 인물군상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모든 인물들이 독특한 관계로 규정되었지만 사실은 세상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보편성이 있다는 점인데, 그게 바로 이 소설의 특징이었다. 또 델리 독자가 읽어도 뉴욕이나 서울 독자가 읽어도 공감할 수 있는 그 ‘승부처’였던 셈이다.

상상과 은유로 핵무장 비판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글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는 멋진 체험을 한 기억이 났다. 그의 글은 케랄라, 그 자체였다. 싱싱하고 풍부한 열대, 어디든 녹음이 드리워져 있고 수백 가지 색깔이 어우러진 케랄라가 그 소설에 은은히 배어 있었으니 말이다.

케랄라는 인도 최초의 ‘빨갱이주’로 자주 공산당이 집권한 탓에 이상향을 꿈꾸는 제3세계 시민들이 열렬히 지지를 보낸 곳이었다. 게다가 1세기께부터 보금자리를 꾸민 기독교도들이 많이 사는 곳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모든 이들이 <변변찮은 것들의 신>을 좋아한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케랄라주의자’들 사이에선 아룬다티가 기독교도와 공산주의자들을 너무 거칠게 다루었다고 불만이 많은 걸 보면…. 또 호사가들은 시작도 끝도 없는 이 소설을 문학적 체계가 빈약한 터무니없는 공상이라고 무시해버리기도 했다.

아무튼 문학적으로 아룬다티가 ‘무서운 아이’로 평가를 받는다면, 그의 정치적 비평은 ‘무책임하고 지식 없는 분석가’, ‘도락 비평가’ 같은 더 험한 소리를 듣는 것도 사실이다.

국가 건설이 최우선이라는 강박감에 사로잡힌 인도 사회에서 아룬다티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여자” 정도로 치부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더라도 분명한 건, 사회운동 분야에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아룬다티의 정치 비평들이 사회상을 반영하고 영감을 불러내는 원천 노릇을 해왔으니, 어이 하리오!

한번 보자. 아룬다티 이전에는 감히 누구도 핵무장을 비판하는 논리로 ‘상상’과 ‘은유’를 사용한 적이 없었다. 98년 인도-파키스탄이 핵실험을 끝내자, 맞받아치듯 써낸 <상상의 끝>(The End of Imagination)이라는 수필은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핵무기를 이용해 ‘공포문학’의 새로운 기원을 열었다고도 할 수 있는 이 글은 핵개발론자들의 부도덕성을 속시원히 고발했다. “괴팍한 힌두광신주의자들과 주전론자들이 요구하는 폭탄의 동굴로 들어가느니 차라리 1인공화국을 세우는 게 더 행복한 일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죠.” 아룬다티는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예쁘게 웃었다.

짓궂은 생각에 넌지시 한마디 던져보았다. “근데, 왜 최근 인도-파키스탄 사이에 핵전쟁이 현실로 다가왔는데도 델리를 떠나 멀리 도망치지 않았죠?” 그는 이내 겁먹은 아이처럼 심각해졌다. “우리가 어디로 도망칠 수 있나요? 내가 도망치면 모든 게,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친구들도 나무도 집도 강아지도 다람쥐도 새도 모조리 재로 변할 텐데, 내가 뭘 사랑하며 누가 날 사랑하며, 그래서 어디서 살 수 있겠어요?”

통계자료를 독자들의 감정 속으로


사진/ 나르마다강 현장을 시찰하는 아룬다티 로이(오른쪽)와 환경운동가 메다 파트칼. 그는 마안강 댐의 주민보상을 요구하며 동료들과 29일간의 단식을 했다. (Asia Network Documentary)


나는 평소 사회운동가 아룬다티를 ‘아룬다티답게’ 하는 건, 모든 이들이 식상해하고 보기 귀찮아하는 사회 통계자료를 글쓰기의 밑감으로 삼아 독자들의 감정 속으로 고스란히 실어다줄 수 있는 능력 덕이란 생각을 자주 해왔다. 그 대상이 핵폭탄이건 댐이건 철거민 문제건 또 엘리트개발주의의 폐해건 간에, 그이는 인권단체나 환경운동가, 근본주의 경제학자들과 늘 교통하면서 개발한 통계를 현실 속에 또박또박 박아넣는 기막힌 재주가 있는 글쟁이였다. 그 동력으로 <위대한 공동의 선>(The Greater Common God) 같은 수필도 나온 것이었다.

그동안 운동판에 어슬렁거리며 아룬다티를 사랑해온 이들이 좀 안타깝게 여긴 점이 있었다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아룬다티의 논리가 다른 분야보다 정확도와 전망 면에서 좀 처진다는 것이었는데, 지난해 ‘9월11일 공격’ 뒤에 아룬다티는 <무한한 정의의 대수>(The Algebra of Infinite Justice)라는 수필 하나를 던지며 모든 비판의 종지부를 찍었다. 대 테러전쟁과 무장철학을 앞세운 부시 독트린에 대한 그야말로 파괴적인 비평은 아룬다티를 다시 보게 했고, 모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델리의 여름을 상징하는 뇌우가 아룬다티의 창을 흔들자, 그의 네 마리 강아지 가운데 두 마리가 방으로 뛰어들었다. 그 순간 나는 언젠가 그이가 내게 한 말뜻을 깨달았다. “나는 운동가이고 나는 행동하지만 나는 조직만을 좇는 운동가는 아니다.” 아룬다티는 학창시절부터 정치선동가였고, 결국 가족과 충돌하면서 케랄라를 떠났다. 그 뒤로 수많은 논쟁과 투쟁에 휩쓸렸지만 단 한번도 조직이나 정당에 참여한 적이 없었다. 자유로운 정신 속에 남아 있기를 간절히 바란 탓이었을까? 무엇에 참여했든 또는 참여하지 않았든 간에 그에 대한 비난과 논쟁을 거둘 시간이 왔다. 아룬다티는 비범한 인물로, 사회운동의 보물로 반역적인 세력들에게 충격을 안겨주는 인도 사회 속에 누구보다 깊숙이 참여해왔으니.


[ 아시아 네트워크 ] 2002년08월21일 제423호 

“격렬한 운동이 사악한 것을 쫓는다”


사진/ (Asia Network Documentary)


아룬다티의 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그가 자신의 개성적인 부분이라 표현한 욕실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그 개인적 공간을 스스럼없이 공개했다. 샴푸를 눈여겨봤더니 카디였다(카디: 유기농법을 중심으로 전통방식에 따라 집에서 만드는 옷감을 비롯해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는 새로운 환경상품 이름).



요즘 어떤 화두를 잡고 있나요.

사람들과 교통하기 위한 어떤 운명적인 인력(引力) 같은 것이에요. 그게 날 움직이는 동력이기도 해요.

설교 같은데.

아니. 문학이라고 하더라도 진실을 말하고 누구와 교감하겠다는 뜻이지, 누구를 깔보며 말하겠다는 건 아니죠. 내겐 사실과 감각이 다를 수 없어요. 가령 내 글을 통해 정치적 사안을 다른 이들의 감각기관으로 실어나른다는 뜻이죠. 궁극적으로 얼마나 정직하게 말하느냐가 문제인데, 난 정직하지 않은 예술은 영속적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없다고 믿어요.

그 정직함을 판단하기 위해 당신은 세속적인 현실에 발을 딛고 있어야 하는데, 달걀값과 쌀값이 얼마인지 알고 있나요.

물론 확실히 알고 있죠. 어떤 상표로 대답해드릴까? 내 수익은 주로 ‘변변찮은 것들’- <변변찮은 것들의 신>이라는 소설 제목을 아룬다티는 이렇게 줄여 불렀다- 에서 나오는데, 그전에는 참 힘들었어요. 가난이란 내가 ‘내가’ 되는 걸 막는 심각한 장애 같은 것이었죠.

자유는 성취하기 힘든 건데, 특히 편견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제로 삼아보면 어떨까요. 당신은 개고기를 먹나요.

(몹시 놀라 당황하며)아니요. 무슨 질문이 갑자기 그래요. 난 개고기 안 먹어요.

왜, 그게 애완동물이라서. 아니면 또 다른 깊은 사연이라도 있어서.

애완동물이라는 점을 떠나서, 난 오랫동안 우리 삶에 뿌리내려온 금기나 금지 같은 걸 쉽사리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지 않아요. 그래도 개나 뱀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공격하거나 하진 않아요. (호쾌하게 웃으며)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만 아니라면 다 먹읍시다. 됐죠?

윤리가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란 말을 하고 싶은 건가요. 보편적인 윤리의 기준은 없다고.

아뇨. 분명 있죠. 인종이나 문화 또는 민족과 상관없이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가치로서 정의와 인간의 존엄성 같은 건데, 대량살상 무기나 인종학살의 공포 없이 살아야 하는 것 따위는 타협할 수 없겠죠.

그럼 개인의 윤리는. 당신은 얼마만한 자유를 개인에게 주고 있나. 가장 친한 친구가 동성애자로 변한다면.

성의 자유는 근본 중의 근본이죠. 누구도, 누구의 그 자유를 침해할 수 없어요.

어떤 글에서 당신은 날마다 한두 시간을 헬스클럽에서 보낼 정도로 지독히 육체적 건강에 몰입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건 당신이 정신의 자유를 좇는 해방된 사람으로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요.

격렬한 운동이 내 속에 잠재된 사악한 것들을 몰아낸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난 늘 운동하고 육체를 건강하게 만들려고 해요. 이건 무슨 의무라기보다 놀이예요. 전 재미없는 일은 죽어도 못해요.

아직 못다 한 것 중에서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라도 있나요. 소설 쓰는 일말고.

뭐 별달리…. 정치적인 글을 계속 쓰겠다는 것말고는. 분명한 건 ‘선전’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있어요. 다국적 기업과 컴퓨터 지배라든지 개발우선주의를 조장하고 있는 세계화 같은 걸 깨부수는 적극적인 선전 같은 것을. 우리 모두가 이런 일을 같이 해야 하지 않을까요? 델리에서도 서울에서도!

프라풀 비드와이(Praful Bidwai) 전 <타임 오브 인디아> 편집장·핵 전문 칼럼니스트


[ 아시아 네트워크 ] 2002년08월21일 제423호 

사방에서 물어뜯기

누가 아룬다티를 ‘몹쓸년’이라고 했는가?

아룬다티는 <변변찮은 것들의 신>을 써내기 3년 전부터 이미 논쟁에 휘말렸다. <밴디트퀸>으로 더 유명한 풀란 데위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셰칼 가풀스 필름’에 맞서 심한 싸움을 한 탓이었다. “풀란 데위의 경험을 섹스와 난동에만 초점을 맞춘 흥밋거리로 전락시켰다. 풀란에 대한 배반이다.” 아룬다티의 말에 귀기울이는 이들은 적었고, 추악한 법적 논쟁이 벌어지면서 아룬다티는 많은 이들을 잃었다. 결국 영화만 떼돈을 벌었다.

그로부터 아룬다티는 온갖 부류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먼저 힌둣와(Hindutva) 지원자들은 아룬다티를 “빨갱이 허섭스레기 같은 년”이라고 했다. 아룬다티가 바지파이 총리의 집권당을 ‘힌두광신주의자’, ‘군국주의자’, ‘남성우월주의자’ 집단이라 비판해온 탓이다. 아룬다티가 반쪽 기독교 가문 출신이란 것도 비난거리가 되었다.

자본주의 지배계급에 해당하는 개발주의자들은 아룬다티를 ‘러다이트’(산업혁명 때 실직을 염려해 기계파괴운동을 벌인 직공단)에 비유하며 ‘발전의 적’으로 몰아붙였다. 이들은 아룬다티가 지식 부족으로 개발에 따른 이익을 계산할 줄도 모르면서 “오직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난했다.

기득권이 있는 일부 권력자들은 아룬다티를 평화·환경·인권운동가로 인정하면서도, 그런 윤리적인 것들이 결코 국가의 이익을 창조하지는 못한다며 점잖게 타이르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폭탄이 필요하다. 개발은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다. 결국 가난한 이들은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는 말을 늘 품고 다니는 무리들이다.

“아룬다티는 계급과 상관없는 인물이니 가식적으로 참여하지 말라”는 운동권 주변의 비판도 있다. “아룬다티가 선정적으로 사안을 과장하는 탓에 오히려 운동에 지장이 있다.” 대개 아룬다티의 유명세나 개인 스타일에 비난의 초점을 맞춘 것들이었다.

환경역사가 라마찬드라 구하 같은 이는 지난해 아룬다티를 이렇게 모욕하기도 했다. “아룬다티는 쇼우리의 왼쪽이다.” 쇼우리란 자는 한때 개혁운동가였는데, 사회가 붙여준 도덕성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며 집권당에 붙은 인물로 사회운동 진영에서 크게 비난받았다. 라마찬드라는 아룬다티를 “무책임한 여자”라고 했다. 아룬다티가 나르마다댐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을 비판한 걸 꼬집으며 “대법원과 헌법만은 비판할 수 없다”고 우겼다. 심지어 자신도 핵무장 반대를 외치면서, 유독 아룬다티가 핵무기를 반대하는 건 눈뜨고 볼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간디주의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마땅한 무기가 없었는지 자신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온 ‘전통’이라는 이빨을 들이대며 으르렁거렸다. “아룬다티는 지나치게 현대주의자”라는 것이다.

프라풀 비드와이(Proful Bidwai) 전 <타임 오드 인디아> 편집장·핵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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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밖으로 나갈까?"라는 김승희의 화두는 안의 세계를 버리기보다는 변화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밖으로 나가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안의 팽창과 유연화에 기여한다. 사실, 밖은 언제나 '밖'에 있다. 밖은 그 누구도 완전히 도달할 수 없는 영원한 미지의 영역이다. 하지만 문을 열고 바깥의 신선한 공기로 안을 환기하지 않으면 안은 부패한다. 그 안의 안, 현실의 가장 폐쇄된 곳에 사는 존재가 바로 '여성'이다. 김승희는 제도적 현실이라는 구중 궁궐 깊숙이 광활한 들판의 바람을 휘몰아오기를 원한다. 그녀는 홀로라도 달려나가 바람을 몰고 오고자 뜨거운 투혼을 불사른다. 자신이 어두운 동굴에서 백 일을 견딘 웅녀의 후손이 아닌, 일찌감치 햇빛 비치는 세상으로 뛰쳐나간 호랑이의 딸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김수이 "상처받은 타자에서 진정한 주체로" [여성문화의 새로운 시각](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여성문화총서 1999) 3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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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글쓰기나 공부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은 심각한 심리적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 자신의 삶과 내면의 미궁에 빠져 쓸쓸한 절망과 자책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글쓰기와 공부가 생계를 돕기는커녕 위협하는 현실에서, 현실을 향한 비판의 칼은 부메랑처럼 돌아와 반성하는 자에게 꽂힌다. 반성은 이제 현실이 아닌, 반성하는 자의 눈을 겨누는 칼이 되었다. 자신의 눈을 찌른 오이디푸스의 칼은 이처럼 변형된 형태로 현대에도 살아 있다. 돌이켜 보건대, 현대사에서 지식인의 반성이 이렇게 참담한 자기 모멸감을 동반한 적은 없었다. 일제 치하와 한국전쟁, 유신시대와 피의 80년대 등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가혹한 시대였지만, 최소한 지식인의 존재 기반을 '역사·사회적으로' 공인한 행복한 시대였다. 그러나 오늘의 시대는 지식인들에게 존재의 붕괴와 내적인 파탄을 '개별적으로' 강요하고 있다. 말을 바꾸면, 작가와 지식인이라는 단어의 의미 자체가 공허하고 빈약한 내용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요약하면 이렇다. 무능과 무력과 무의미!

갖가지 '무(無)∼'의 자의식에 시달리는 지식인은 부당한 현실 세계와 끝없이 갈등한다. 이 갈등은 자신의 내면이 삶의 근거인 이들에게 자아의 붕괴를 끊임없이 경험하게 만든다. 계속되는 내적 붕괴는 삶과 내면의 미궁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아예 나가는 길조차 봉쇄해 버린다. 너무 많이 왔기에 돌아갈 수도 없으며, '나'를 둘러싼 것이 어둠뿐일 때, 현실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은 끝내 자책과 모멸감으로 화한다. 이 중 가장 나쁜 것은 애초에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글을 쓰고 공부하는 일이 잘못된 삶의 출발점이었다는 결론은 '존재론적으로' 참혹하다. 글쓰기와 공부로 채워진 자신의 삶과 내면을 통째로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고통스럽기만 했던 길은 그 길을 걸어온 자의 내면에 그대로 새겨진다. 미궁이란 공간의 개념이 아니다. 아무리 곧고 넓은 길도, 엉키면 '미궁'이 된다. 미궁은 길이 꼬여 스스로에게 들러붙은 교착 상태이며, 길의 자기 함몰 상태이다.

작품과 지식 생산자(오늘날 지식인은 지식 생산자나 전달자로 전락하고 있다. 지식인 자신과 현실 체계의 내·외적 요인의 동시 작용 때문이지만, 둘은 분리되지 않는다. 현실 체계에 힘을 가하는 담론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담론의 주체가 힘을 갖고 있어야 한다. 현실 체계의 권력을 어떤 형태로든 소유하고 있지 않으면, 이른바 '잘 나가'지 않으면, 그는 말할 수 없거나 말해도 무시당한다. 작가와 작품 역시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의 시대에 진정한 저항과 창조의 정신은 이렇게 눈을 뜬 채 쇠퇴하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은 단적으로 말해 권력과 자본, 즉 정치와 경제적인 문제이다. 사실, 이 둘 또한 다른 것이 아니다.)의 현실에 대한 절망적인 진단은 그 자체로는 별 의미가 없다. 내가 미궁에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빠져나가야만 한다. 미궁은 삶의 공간이 아니라, 모험과 탈출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궁을 관통하는 길을 찾아낼 때, 미궁은 다시 '길'이 된다. '미궁'을 본래의 '길'이 되게 하는 것, 우리 시대의 작가와 지식인의 중요한 역할은 이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궁을 빠져나가는 데 유용한 도구는 아이러니이다. 아이러니는 단지 문학과 예술의 수사법이 아니다. 아이러니는 삶의 본질이며 속성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작품과 지식을 생산하는 '무기력한 일'의 피로감은 그 작품과 지식에 의해 해소될 수 있다. 글쓰기와 글읽기의 '무기력한 일'에 따른 절망은 그 무기력한 일의 산물인 글을 통해 소진된다. 내면의 미궁을 비추는 빛이 어둠을 완전히 없애는 경우는 드물지만, 도처에는 크고 작은 빛들이 사력을 다해 어둠을 몰아내고 있다. 본질적으로 글이란 타자를 향한 발화이며, 타자의 어둠을 한 순간이라고 밝혀줄 때 그에게로 가서 "꽃이 된다". 특히 시는 창작의 주체인 시인 자신을 포함해 모든 존재에게 빛이 되기를 꿈꾸는 장르이다. 그런데, 어둠으로 상징되는 억압과 남성적 질서를 극복한 결과물이 '꽃'이라니! 때가 되면 시드는, 한낱 연약한 아름다움이라니! 그런데 때가 되면 시드는 연약함이야말로 여성성의 핵심이며 가장 눈부신 미덕이다. 근대의 남성중심문화가 갖는 가장 치명적인 악덕은 때가 되어도 시들 줄 모른다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때가 되어도 시들지 않고 진시황처럼 영생의 욕망을 탐닉하기에 급급한 추악한 권력, 도무지 휴식과 쇠락을 배우지 못하는 인간들, 사용기한이 다하고도 썩지 않는 상품의 잔해들…….

그리하여 우리 삶의 어두운 미궁의 한 구석에서 꽃이 되기를 꿈꾸며 빛나는 등불들 가운데, 임영조의 시집 그림자를 지우며(2002)는 부드럽고도 깊은 빛으로 우리를 매혹한다. 어쩌면 이 시집은 미로들 사이에서 출구를 가리키고 있는 반짝이는 작은 화살표인지도 모른다.

(이하생략)

-[여/성이론] 통권 제7호에 실린 김수이의 임영조 시집 서평 "미궁의 아이러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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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은 자기가 이 세계 속에서 이야기를 고른다고 상상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허영심 때문일 겁니다. 실제로는 정반대로, 이야기가 작가를 골라냅니다. 이야기는 스스로를 우리에게 드러냅니다. 공적인 이야기든, 사적인 이야기든, 이야기는 우리를 지배합니다. 이야기 자신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라고 명령합니다. 넌픽션과 픽션은 이야기를 전하는 데에 있어서 기법의 차이일 뿐입니다. 내가 정확히 알 수 없는 이유로, 픽션은 내게서 춤추듯 흘러나오고, 논픽션은 내가 매일 아침 일어나 맞이하는 이 고통스럽고 깨진 세계가 비틀어 짜듯이 내보냅니다.

- 아룬다티 로이 "9월이여 오라" 녹색평론 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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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일사천린데 글은 엉망이라면 공부를 접는 게 낫다. 생각이 표면에서만 떠돌 뿐 되새겨지지 않은 증거이기 때문이다. 말도 제대로 끝맺지 못하는 사람은 아예 책도 들여다보지 말아야 한다. 생각도 정리되어 있지 않을뿐더러 책 한 권도 끝까지 읽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 강유원 "내가 공부하는 방법" (현대사상 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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