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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 (반양장) ㅣ 펭귄클래식 3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박찬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지킬박사와 하이드 (The 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
사원 김아영은 상냥하지만 딸 김아영은, 꽃집주인 이효진은 친절하지만 엄마 이효진은,
친구 김범진은 쾌활하지만 아들 김범진은, 부장 김기준은 자상하지만 남편 김기준은.
얼마 전 TV를 통해 본 이 공익광고에서 타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포장하려고 에너지를 쏟느라 정작 집에서는 피곤한 현대인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가 만들어낸 19세기 말의 영국사회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그 정도가 더 훨씬 더 심했다. 적어도 우리 사회는 일탈행위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행위로 인정하지만, 그 시대는 일탈행위를 용납하지 않을뿐더러 그것을 두고 ‘도덕적인 정신병’ 이라고 배척했으니 말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속의 지킬 박사는 남의 눈을 의식하며 자신을 속이는 행위에 반기를 드는 인물이다. 한 평생을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쾌락을 추구하는 인간 고유의 본능을 감추어 왔던 지킬은 쾌락을 끝내 참지 못하고, 인간의 이중성을 분리하는 위험한 실험을 진행한다.
“만약 각각의 본성을 별개의 개체에 담을 수 있다면, 참을 수 없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사는 일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부조리한 존재는 그의 고결한 쌍둥이의 열망과 자책으로부터 해방되어 그만의 길을 가고, 정의로운 존재는 흔들림 없이 확고하게 높은 곳을 향한 그의 길을 가면 될 것이다.” -107p-
좋은 의미에서 시작된 실험은 선과 악을 분리해내는데 까지는 성공했지만, 평생 동안 짓눌려왔던 악 ‘하이드’의 힘을 과소평가 했던 나머지 결국에는 실패하고 만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알 수없는 위화감을 불러일으키는 ‘하이드’는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파괴하는 것도 모자라서 거꾸로 ‘지킬’을 흡수하려한다.
악을 분리하기 위해 먹었던 약은 어느새 선의 모습을 되찾기 위한 약으로 변해버리고, ‘하이드’의 악행을 멈추게 할 수 없었던 ‘지킬’은 결국 모든 진실을 고백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음과 동시에 ‘하이드’를 처단한다.
지킬박사의 실험은 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순점을 개인적인 문제로 해결하려 했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정신병(개인적인 문제)으로 경원시 하지 않고, 인간이 가진 악한 부분을 인정하고, 그것을 표출할 수 있는 장치를 건전한 방향으로 만들었다면 지킬박사처럼 선과 악을 강제적으로 분리하려는 생각자체를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시대고발의 문학이다.
시체도둑 (The Body-Snatcher)
2번째 단편인 <시체도둑> 이야기는 1820년대 실제로 있었던 시체 도굴꾼의 연쇄살인과 그 시체를 실습 교재로 거래한 해부학 강사 사건을 다룬 작품이라고 한다. 이 실화는 그 사건이 흐른 오랜 시간 뒤에 맥팔레인과 페츠가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이야기는 페츠의 기억을 빌려서 재구성된다.
능력 있는 해부학 강사 K와 그의 조교 맥팔레인과 페츠는 비도덕적인 사건에 얽혀있었다. 그것은 바로 범죄자들과 시체매매 행위였다.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으나 개인의 성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발을 들어놓고야 만다.
새벽이 되면 시체를 가져오는 범죄자와 페츠는 거래를 했고, 어떤 날은 어제까지 살아있었던 동료였던 갤브라이스도 살해되어 돈과 교환되지만, 한번 발을 들여놓은 곳에서 발을 빼는 것은 지금까지 해왔던 일의 보상차원에서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점점 더 범죄와 무감각해져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한편, 맥팔레인은 시체거래를 묵인하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친구 그레이를 살해하고 그 시체를 페츠와 직접 거래하고 돈까지 챙기면서 태연하게도 두개골을 원하는 사람에게 잘 넘겨주라고 당부하는 악랄함을 보인다.
스티븐슨은 인간과 돈이 비교될 수 있다는 사실에 자체에 분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이 분노를 물질로 둔갑한 인간 존엄성의 타락을 직접적인 교환의 모습으로 그려낸 <시체도둑>을 빌어 표출하고 있다. 생명을 돈과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이야기는 그의 또 다른 단편 <자살클럽>에서도 이어진다.
오랄라 (Olalla)
단편집의 세 번째 이야기 <오랄라>는 제목인 동시에 사랑과 가문의 업보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 주인공의 이름이다.
근친혼이라는 것이 언제 근절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유럽의 왕족과 귀족정치 체제에서는 기득권을 유지할 목적으로 계속 이어져 내려왔던 것 같다. 우리나라는 대표적으로 신라 때에 골품제도라는 유명한 신분제도 아래서 근친혼이 성행하였었고, 1471년 조선시대의 성종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근친혼이 금지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오랄라의 가문은 오래전에는 왕족과도 교류할 정도로 이름 높은 귀족가문이었지만 근친혼의 영향 때문인지 점차 쇠락해져가고, 결국 그녀의 어머니와 오빠 펠리페 그리고 오랄라 이렇게 세 명 만이 남아 타인들과의 관계를 끊은 채로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곳에 소설 속의 ‘나’는 요양을 목적으로 방문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나’의 눈으로 근친혼이 폐해를 직접 목격하게 된다.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조상들의 초상화가 전부 같은 모습이고, 그녀의 어머니는 동물의 습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펠리페는 발달이 덜된 상태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근친혼의 저주에 걸리지 않은 오랄라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지게 되고, 사랑의 힘으로 잘 살게 될 것이라고 그녀를 설득하지만 오랄라는 후대의 인물들에게 그녀의 저주받은 유전자를 전해주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마침내 저주를 끊어버리기를 결심. 십자가에 몸을 기댄다.
결국 자신들의 신분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전통이 반대로 그들의 대를 끊어 버리는 결말을 맞게 되는 상황을 표현함으로써 스티븐슨은 근친혼에 대한 사회적인 금지의견 조성에 한몫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