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박사와 하이드 (반양장) 펭귄클래식 3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박찬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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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킬박사와 하이드 (The 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   

 

  

사원 김아영은 상냥하지만 딸 김아영은, 꽃집주인 이효진은 친절하지만 엄마 이효진은,

 친구 김범진은 쾌활하지만 아들 김범진은, 부장 김기준은 자상하지만 남편 김기준은.

 

얼마 전 TV를 통해 본 이 공익광고에서 타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포장하려고 에너지를 쏟느라 정작 집에서는 피곤한 현대인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가 만들어낸 19세기 말의 영국사회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그 정도가 더 훨씬 더 심했다. 적어도 우리 사회는 일탈행위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행위로 인정하지만, 그 시대는 일탈행위를 용납하지 않을뿐더러 그것을 두고 ‘도덕적인 정신병’ 이라고 배척했으니 말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속의 지킬 박사는 남의 눈을 의식하며 자신을 속이는 행위에 반기를 드는 인물이다. 한 평생을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쾌락을 추구하는 인간 고유의 본능을 감추어 왔던 지킬은 쾌락을 끝내 참지 못하고, 인간의 이중성을 분리하는 위험한 실험을 진행한다.

 

“만약 각각의 본성을 별개의 개체에 담을 수 있다면, 참을 수 없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사는 일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부조리한 존재는 그의 고결한 쌍둥이의 열망과 자책으로부터 해방되어 그만의 길을 가고, 정의로운 존재는 흔들림 없이 확고하게 높은 곳을 향한 그의 길을 가면 될 것이다.” -107p-


좋은 의미에서 시작된 실험은 선과 악을 분리해내는데 까지는 성공했지만, 평생 동안 짓눌려왔던 악 ‘하이드’의 힘을 과소평가 했던 나머지 결국에는 실패하고 만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알 수없는 위화감을 불러일으키는 ‘하이드’는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파괴하는 것도 모자라서 거꾸로 ‘지킬’을 흡수하려한다.


악을 분리하기 위해 먹었던 약은 어느새 선의 모습을 되찾기 위한 약으로 변해버리고, ‘하이드’의 악행을 멈추게 할 수 없었던 ‘지킬’은 결국 모든 진실을 고백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음과 동시에 ‘하이드’를 처단한다.


지킬박사의 실험은 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순점을 개인적인 문제로 해결하려 했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정신병(개인적인 문제)으로 경원시 하지 않고, 인간이 가진 악한 부분을 인정하고, 그것을 표출할 수 있는 장치를 건전한 방향으로 만들었다면 지킬박사처럼 선과 악을 강제적으로 분리하려는 생각자체를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시대고발의 문학이다.


                    시체도둑 (The Body-Snatcher)

 

2번째 단편인 <시체도둑> 이야기는 1820년대 실제로 있었던 시체 도굴꾼의 연쇄살인과 그 시체를 실습 교재로 거래한 해부학 강사 사건을 다룬 작품이라고 한다. 이 실화는 그 사건이 흐른 오랜 시간 뒤에 맥팔레인과 페츠가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이야기는 페츠의 기억을 빌려서 재구성된다.

 

능력 있는 해부학 강사 K와 그의 조교 맥팔레인과 페츠는 비도덕적인 사건에 얽혀있었다. 그것은 바로 범죄자들과 시체매매 행위였다.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으나 개인의 성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발을 들어놓고야 만다.


새벽이 되면 시체를 가져오는 범죄자와 페츠는 거래를 했고, 어떤 날은 어제까지 살아있었던 동료였던 갤브라이스도 살해되어 돈과 교환되지만, 한번 발을 들여놓은 곳에서 발을 빼는 것은 지금까지 해왔던 일의 보상차원에서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점점 더 범죄와 무감각해져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한편, 맥팔레인은 시체거래를 묵인하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친구 그레이를 살해하고 그 시체를 페츠와 직접 거래하고 돈까지 챙기면서 태연하게도 두개골을 원하는 사람에게 잘 넘겨주라고 당부하는 악랄함을 보인다.


스티븐슨은 인간과 돈이 비교될 수 있다는 사실에 자체에 분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이 분노를 물질로 둔갑한 인간 존엄성의 타락을 직접적인 교환의 모습으로 그려낸 <시체도둑>을 빌어 표출하고 있다. 생명을 돈과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이야기는 그의 또 다른 단편 <자살클럽>에서도 이어진다.

                               오랄라 (Olalla)


단편집의 세 번째 이야기 <오랄라>는 제목인 동시에 사랑과 가문의 업보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 주인공의 이름이다.


근친혼이라는 것이 언제 근절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유럽의 왕족과 귀족정치 체제에서는 기득권을 유지할 목적으로 계속 이어져 내려왔던 것 같다. 우리나라는 대표적으로 신라 때에 골품제도라는 유명한 신분제도 아래서 근친혼이 성행하였었고, 1471년 조선시대의 성종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근친혼이 금지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오랄라의 가문은 오래전에는 왕족과도 교류할 정도로 이름 높은 귀족가문이었지만 근친혼의 영향 때문인지 점차 쇠락해져가고, 결국 그녀의 어머니와 오빠 펠리페 그리고 오랄라 이렇게 세 명 만이 남아 타인들과의 관계를 끊은 채로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곳에 소설 속의 ‘나’는 요양을 목적으로 방문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나’의 눈으로 근친혼이 폐해를 직접 목격하게 된다.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조상들의 초상화가 전부 같은 모습이고, 그녀의 어머니는 동물의 습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펠리페는 발달이 덜된 상태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근친혼의 저주에 걸리지 않은 오랄라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지게 되고, 사랑의 힘으로 잘 살게 될 것이라고 그녀를 설득하지만 오랄라는 후대의 인물들에게 그녀의 저주받은 유전자를 전해주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마침내 저주를 끊어버리기를 결심. 십자가에 몸을 기댄다.


결국 자신들의 신분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전통이 반대로 그들의 대를 끊어 버리는 결말을 맞게 되는 상황을 표현함으로써 스티븐슨은 근친혼에 대한 사회적인 금지의견 조성에 한몫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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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빛 - 검은 그림자의 전설 안개 3부작 1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송병선 옮김 / 살림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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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자루스 얀의 관점으로 생각해봤을 때.

 “ 모든 아이들은 마음속에 자기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여자를 간직하고 있어요. 어머니는 결코 꺼지지 않는 빛과 같지요. 하늘 높이 떠 있는 별과 같아요. 하지만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그 빛을 지우려고 애쓰면서 살았어요.” -210p-

가난과 애정결핍. 그리고 아동학대에 시달리던 어린 라자루스는 장난감에게 애정을 쏟아 붓는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장난감을 루시퍼의 발명품이며, 사악한 그림자가 생겨날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라자루스에겐 장난감은 루시퍼가 아니라 가브리엘이었다. 그랬기에 라자루스는 장난감의 주인 다니엘 호프만의 만남이 이루어지기를 하루빨리 기도했다.

여기서 라자루스에게 따뜻한 어머니가 되어주진 못했지만 , 어쨌든 어머니란 존재는 빛. 즉, 선함의 의미이고, 장난감은 악의 의미가 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장난감 공장을 가진 다니엘 호프만은 악의 근원쯤으로 해석해볼 수 있겠다. 줄거리는 계속된다.

부모를 잃은, 의지할 곳 없는 그의 앞에 홀연히 모습을 드러낸 다니엘 호프만은 소원이 이루어지게 해줄 테니, 오직 다니엘 호프만에게만 마음을 주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건다. 라자루스는 그를 따뜻하게 대해줬던 유일한 사람. 호프만의 조건을 수락한다.

시간이 흘러, 모든 어린이들에게 장난감을 안기고 싶다는 소원을 이뤄낸 라자루스에게 나타난 알렉산드라 알마 마티스라는 여인은 라자루스의 차가운 심장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그것은 호프만과의 약속이 깨짐을 의미했고, 약속을 어긴 라자루스에게 호프만의 징벌이 내려진다. 사랑을 추구하는 선의 라자루스와 호프만에 영혼을 팔았던 악의 라자루스의 싸움이 시작된다.

악의 라자루스는 빛을 지워야한다. 왜냐하면 악의 라자루스는 그림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빛의 소멸. 즉, 알렉산드라의 죽음만이 악의 라자루스의 목표가 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전투는 악의 승리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라자루스에게 또 다시 사랑의 감정이 찾아오는데 그 대상은 바로 이레네와 도리안의 어머니 시몬 소벨이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방해하려고 또 다시 악의 그림자가 깨어나면서 사건들이 이어진다. 그리고 라자루스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극단적인 선택이란 바로 -비록 생활이 어려웠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들어냈던 악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소멸시키는 방법은 오직 자기 스스로의 소멸 밖에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라자루스를 희생시킨다.-는 것이다.

사폰은 내가 아는 한 어둠이라는 단어와 가장 친숙한 소설가다. 사폰은 어둠을 표현해내는 자체도 훌륭하지만, 어둠을 찢어내는 순간을 묘사하는 감각이 더욱 탁월하다. 그는 온갖 존재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하늘의 별과 달과 같은 것뿐 아니라 무엇인가를 바라봄에서 생기는 눈빛을 가지고도 만들어낸다.

그와 동시에 사폰은 매우 잔인한 사람임을 이 소설을 통해 알 수 있다. 극의 흥미를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고 써 갈길 수 있는 그의 모습을 발견하고 실망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다. 근데 이 그림자보다 훨씬 더 독한 그림자가 있다고 한다. 쉽게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다.
 

“세상에는 그림자들이 있어. 너와 내가 그날 밤 크래븐무어에서 싸웠던 그 그림자보다도 훨씬 더 사악한 그림자들이 말이야. 그런 그림자들 옆에 있으면, 다니엘 호프만의 그림자는 그저 아이들 장난에 불과해. 그건 바로 우리 각자의 마음에서 나오는 그림자야.” -276-

이야기의 또 다른 인물 이레네와 이스마엘는 이 잔인한 사건을 편지에서 언급하면서 서로를 기억하는 연결고리 정도로 생각한다. 그리고 훨씬 더 사악한 그림자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전쟁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설마 그런것인까? 그 사악한 그림자란 전쟁이라는 그림자인것인가? 시대적인 시점을 1937년으로 맞춘것을 보니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왜냐하면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날짜가 1939년 9월 1일. 바로 그 사건이 일어난 2년 후의 9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276페이지의 저 글은 1947년. 즉, 2차대전이 끝나고 2년 후에 쓰여졌기 때문이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또 다른 의미에서 무서운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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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은 붉은 구렁을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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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회 자체가 책 읽는 사람에게 냉담해요. 책을 읽는 다는 건 고독한 행위고, 또 시간이 걸리잖습니까. 그런데 일본사회는 바빠요. 사회생활도 해야 하고, 정상적으로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이 느긋하게 책을 읽을 시간 따위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91p-  

일본사회에 만연해 있는 독서인구의 감소라는 문제점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탄생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음을 저자 온다 리쿠는 책속 논쟁 중의 한 장면을 통해 공개한다. 그리고 저자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제목과 같은 <<삼월의 붉은 구렁을>>이라는 허구의 책을 등장시키는 장치를 만듦으로서 책 안 읽는 일본인들에게 접근한다.  

우선, 저자는 허구의 책. <<삼월의 붉은 구렁을>>의 희소가치를 높이는 작업을 진행한다. 작자 미상의 총 200부만 인쇄된 책으로 단 하루밖에 빌릴 수 없다는 <<삼월>>은 누군가로 인하여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책 속 <<삼월>>은 <삼월>을 통해 이 이야기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도 읽고 싶을 만큼, 강력한 궁금증을 가진 책으로 탈바꿈한다. 내용이 무엇인가는 관계없이 단순히 사라지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삼월>>의 존재여부를 추리해나가지만 결국 그 모든 작업들이 회장이 꾸민 한편의 쇼라는 결말로 허무하게 끝을 맺는다. 그러나 2부에서는 한 편집자의 추적을 통해, <<삼월>>의 실존여부와 저자(<<삼월>>의 저자)의 정체가 동시에 밝혀지면서 본격적으로 <<삼월>>에 관한 이야기로 전개되나 싶었더니 또 다른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3부에서는 이전이야기. 즉, <<삼월의 붉은 구렁을>>의 탄생비화임을 암시하는 자살사건이 등장한다. 이야기 자체가 가지고 있는 숨 가쁜 전개와 잘 짜인 구성은 독자들로 하여금 사건 그 자체를 겪게 된 두 주인공의 삶에 깊이 빠져들게 하면서, 죽기 직전 그녀가 남긴 노트를 주목하게끔 한다. 이로써 우리는 <<삼월>>의 비밀이야기를 공유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4부. 문제의 4부에서 저자(온다 리쿠)는 혼란이라는 색채를 띠고 실제모습을 드러낸다. 책의 구성을 말끔하게 마무리 짓지 않았다는 사실을 가지고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모습은 참으로 상상 밖의 전개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또 하나의 <<삼월>>의 판타지를 첨가함으로서 읽는 내내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만들었다.  

책 속의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 완벽하게 내용을 갖추어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 모두 출간되어 있다고 한다. 독서인구의 감소라는 문제를 놓고, 추리소설 작가라는 저자의 개성을 잘 살려낸 <삼월의 붉은 구렁을>은 새로운 시도 그 자체에 큰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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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화력 -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 충남대학교출판부(CNU Press)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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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란 개별적인 것, 목전의 것에 더 치중하는데, 하긴 당연한 일이겠지요. 남자들은 행위와 활동을 사명으로 삼고 있으니 말이에요. 반대로 여자들은 오히려 생활 속에서 상호연관된 것을 생각하는데, 이 역시 똑같이 의당한 일입니다. 여자들의 운명과 그 가족의 운명이 이러한 상관관계에 연결되어 있으며, 그리고 이런 상관관계를 그들이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9p-  

괴테의 친화력. 이 소설에서 괴테는 그가 정의하는 남성과 여성을 최대한으로 형상화한 에두아르트(A)와 샤를로테(B)를 등장시킨다. 그리고 여기에다 또 다른 남녀 오토 대위(C), 오틸리에(D)를 등장시킨다. 괴테는 친화력에 대한 인간의 반응성에 관한 실험이자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기서 미리 말해둘 것은 처음에 두 사람 모두 친화력의 실험을 따르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샤를로테는 두 사람 사이에 이질감이 생길 수 있는 존재의 진입을 사전에 차단하려 한다. 하지만 그녀의 의지는 오틸리에가 처한 불안한 상황 때문에 꺾이고 만다.  

서로 만날 때 재빨리 맞붙어 서로 규정해 주는 그런 자연물질들을 우리는 친화성을 띤 물질이라고 부릅니다. 서로 대립되어 있지만, 아니 어쩌면 그것들이 서로 대립되어 있다는 바로 그런 이유로 인하여 다른 어떤 것 보다 결정적으로 서로를 찾고 붙잡고 변화시키면서 함께 새로운 물체를 만들어내는 알칼리성 물질과 산성의 물질에서 이런 친화성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38p-  

우리에게 기체형태로 알려져 있는 연한 산과 결합된 일종의 순수한 석회흙. 이런 석회의 한 조각을 묽은 황산 속에 집어넣으면 이 황산은 석회를 잡아당겨 그것과 함께 석고가 되어 나타나게 됩니다. 반대로 연한 기체의 산은 달아나 버립니다. 여기에 하나의 분리가, 하나의 새 결합이 일어납니다. 따라서 이제는 ‘선택적 친화성’이란 말을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실제로 한 관계가 다른 관계보다 우선적으로 선호되고, 하나의 관계가 다른 것에 앞서 선택되는 것 같은 모양을 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40p- 

 이 글에서의 친화력은 주관적인 기준으로 선택하는 개념이 아니라 자연적 필연성에 관한 개념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친화력을 바라보는 그들의 관점은“자연의 원소에게나 적용되지 그것들 보다 몇 단계 높은 위치에 있는 인간에게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정도의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괴테의 친화력은 등장인물들의 오판을 비웃듯 점점 더 거부할 수 없는 힘을 가진다. 과연 A(에두아르트)와 B(샤를로테)의 결합된 상태에서 C(오토 대위)와 D(오틸리에)로 요약되는 첨가물의 반응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순순히 AD 와 BC의 치환된 관계로 굳어질까? 아니면 그 굳어짐을 방해하는 무엇이 있는 걸까?  

등장인물 간의 애틋한 감정들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벌이려는 행각을 현시점에서 바라볼 때 그것은 불륜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와 같은 천륜을 깨뜨리는 행위에 대해서는 지금의 법은 말할 것도 없고 아주 오랜 시절부터 즉, 변신이야기나 그리스비극과 같은 이야기들은 그 행위자들에게 아주 엄격한 벌을 내렸다.  

소설에서는 비극적 결말을 등장인물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쓰인 장치가 있는데, 그것은 A(에두아르트)와 B(샤를로테)사이에서 태어난 C(오토 대위)와 D(오틸리에)를 닮은 아이였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분명히 A(에두아르트)와 B(샤를로테)의 아이였지만, A(에두아르트)와 B(샤를로테)의 모습이 하나도 없이 C(오토 대위)와 D(오틸리에)의 모습만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두 사람을 부정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A(에두아르트)와 B(샤를로테). 더 나아가 C(오토 대위)와 D(오틸리에)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고였던 셈이다.  

B(샤를로테)는 아이속의 C(오토 대위)와 D(오틸리에)를 모두 발견하고 하늘의 경고를 깨닫게 되나, A(에두아르트)는 아이 속에서 D(오틸리에)의 모습만을 발견한 채, 잘못된 운명(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자신, 깨져버린 술잔)에 의거하여 D(오틸리에)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 순간 비극은 시작된다. 그의 아들 오토, 오틸리에. 마지막으로 에두아르트까지 이어지는 비극적 결말은 무분별한 욕망을 통제해왔던 수 세기에 걸쳐 전해진 신의 계율을 쉽사리 거부할 수 없음을 잘 보여준다.  

읽기에 따라 어떻게 보면 에두아르트의 마지막 희생을 토대로 이 소설을 ‘이루지 못한 숭고한 사랑을 그린 남녀의 이야기’ 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이 사랑을 숭고하다기 보다는 무모하다고 해석하고 싶다. 왜냐하면 앞서 이 사랑은 인간이 자연계의 원자들과 하등 차이가 없는 길 (신중한 이유를 가진 주관적인 관점의 기준보다는 어떤 운명이나 필연적인 결과물로 믿는 방식)을 걷다가 맞은 비극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처음 자연계를 비웃었던 것처럼 인간이라면 괴테가 내린 친화력의 시험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만 했다. 어쩌면 이 답이 괴테가 내린 인간이란 존재의 답 중에 하나의 모습인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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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 Takeout Classic 6
클라우스 제하퍼 지음, 황수경 옮김 / 생각의나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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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페터 에커만의 <괴테와의 대화>를 읽고 있는 중이다. 헌데, 흥미로운 책장넘김을 방해하는 괴테의 읽어보지 못했던 작품을 접하게 된다. <에그몬트>, <토르콰토 타소>, <친화력>, <헤르만과 도로테아>, <노벨레>등.

이들은 한번 나오고 말겠지 싶었는데, 수 차례 반복되어 언급된다. 그래서 이 책을 잠시 덮고서 위의 책들을 찾아보았는데 절판된 책들이 많아 구하기 쉽지 않았다. 마지못한 마음에 읽게 된 책이 바로 <괴테>라는 책이다.

이 책은 생각의 나무 TAKEOUT CLASSIC이라는 시리즈물 14권 중에서 6번째 책으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을 때, 니체에 대해 궁금해서 이 시리즈의 니체를 구입하는 김에 전권을 다 구매해 둔적이 있었다.

<니체>도 그렇고 <괴테>. 이 책도 괴테가 저술했던 작품들을 줄거리 위주로 요약해 놓은 책이다. 따라서 원전을 읽을 때처럼 ‘반드시 내용을 이해하겠다.’ 는 생각으로 무섭게 덤벼들 필요는 없다. 그저 가볍게 읽어볼 수 있는 성격의 책이다. 그래서 테이크아웃 시리즈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책 덕분에 위에서 언급한 책들의 내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어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특히, 줄거리 곳곳에 이것이 줄거리인지 견해인지조차 모를 정도로 짤막하게 등장하는 저자의 견해는 원전에서 깨닫지 못한 것을 지적해주었기 때문에 이미 읽었던 책들 중 특히, 파우스트 2부를 새로이 펴들게끔 만들었다.

사실 파우스트 2부를 읽으면서 장소나 인물들이 갑자기 바뀌고 등장하는 통에 이해를 전혀 하지 못해서 마음 한구석에 불편함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은 그런 불편함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고마운 존재였다.

민음사 <파우스트> 번역 364p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백성과 살고 싶다. 그러면 순간을 향해 이렇게 말해도 좋으리라.
<멈추어라,  정말 아름답구나!>
<내가 세상에 남겨놓은 흔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ㅡ 이같이 드높은 행복을 예감하면서 지금 최고의 순간을 맛보고 있노라.>

<괴테> 45p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사람들과 서고 싶다. 바로 그 순간을 향해 나는 말할 수 있다.
<시간아 멈추어라! 이 순간이 정말 아름답구나!>
내가 이 세상에 남겨놓은 흔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파우스트, 조심해!>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는 기쁘게 외쳤다.
<그런 드높은 행복을 예감하면서 나는 지금 최고의 순간을 즐기는 것이다.>
파우스트가 드디어 만족을 느꼈다. 그리고 이것으로 메피스토는 계약 중 그의 부분을 충족시켰다. 이전에 파우스트 스스로 그 계약을 한 방울의 피로 서명했던 것이다.

지금 다시 이렇게 되새겨보니, ‘너’와 ‘이 순간’ 이 불러오는 차이가 너무나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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