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화력 -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 충남대학교출판부(CNU Press)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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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남자들이란 개별적인 것, 목전의 것에 더 치중하는데, 하긴 당연한 일이겠지요. 남자들은 행위와 활동을 사명으로 삼고 있으니 말이에요. 반대로 여자들은 오히려 생활 속에서 상호연관된 것을 생각하는데, 이 역시 똑같이 의당한 일입니다. 여자들의 운명과 그 가족의 운명이 이러한 상관관계에 연결되어 있으며, 그리고 이런 상관관계를 그들이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9p-  

괴테의 친화력. 이 소설에서 괴테는 그가 정의하는 남성과 여성을 최대한으로 형상화한 에두아르트(A)와 샤를로테(B)를 등장시킨다. 그리고 여기에다 또 다른 남녀 오토 대위(C), 오틸리에(D)를 등장시킨다. 괴테는 친화력에 대한 인간의 반응성에 관한 실험이자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기서 미리 말해둘 것은 처음에 두 사람 모두 친화력의 실험을 따르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샤를로테는 두 사람 사이에 이질감이 생길 수 있는 존재의 진입을 사전에 차단하려 한다. 하지만 그녀의 의지는 오틸리에가 처한 불안한 상황 때문에 꺾이고 만다.  

서로 만날 때 재빨리 맞붙어 서로 규정해 주는 그런 자연물질들을 우리는 친화성을 띤 물질이라고 부릅니다. 서로 대립되어 있지만, 아니 어쩌면 그것들이 서로 대립되어 있다는 바로 그런 이유로 인하여 다른 어떤 것 보다 결정적으로 서로를 찾고 붙잡고 변화시키면서 함께 새로운 물체를 만들어내는 알칼리성 물질과 산성의 물질에서 이런 친화성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38p-  

우리에게 기체형태로 알려져 있는 연한 산과 결합된 일종의 순수한 석회흙. 이런 석회의 한 조각을 묽은 황산 속에 집어넣으면 이 황산은 석회를 잡아당겨 그것과 함께 석고가 되어 나타나게 됩니다. 반대로 연한 기체의 산은 달아나 버립니다. 여기에 하나의 분리가, 하나의 새 결합이 일어납니다. 따라서 이제는 ‘선택적 친화성’이란 말을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실제로 한 관계가 다른 관계보다 우선적으로 선호되고, 하나의 관계가 다른 것에 앞서 선택되는 것 같은 모양을 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40p- 

 이 글에서의 친화력은 주관적인 기준으로 선택하는 개념이 아니라 자연적 필연성에 관한 개념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친화력을 바라보는 그들의 관점은“자연의 원소에게나 적용되지 그것들 보다 몇 단계 높은 위치에 있는 인간에게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정도의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괴테의 친화력은 등장인물들의 오판을 비웃듯 점점 더 거부할 수 없는 힘을 가진다. 과연 A(에두아르트)와 B(샤를로테)의 결합된 상태에서 C(오토 대위)와 D(오틸리에)로 요약되는 첨가물의 반응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순순히 AD 와 BC의 치환된 관계로 굳어질까? 아니면 그 굳어짐을 방해하는 무엇이 있는 걸까?  

등장인물 간의 애틋한 감정들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벌이려는 행각을 현시점에서 바라볼 때 그것은 불륜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와 같은 천륜을 깨뜨리는 행위에 대해서는 지금의 법은 말할 것도 없고 아주 오랜 시절부터 즉, 변신이야기나 그리스비극과 같은 이야기들은 그 행위자들에게 아주 엄격한 벌을 내렸다.  

소설에서는 비극적 결말을 등장인물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쓰인 장치가 있는데, 그것은 A(에두아르트)와 B(샤를로테)사이에서 태어난 C(오토 대위)와 D(오틸리에)를 닮은 아이였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분명히 A(에두아르트)와 B(샤를로테)의 아이였지만, A(에두아르트)와 B(샤를로테)의 모습이 하나도 없이 C(오토 대위)와 D(오틸리에)의 모습만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두 사람을 부정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A(에두아르트)와 B(샤를로테). 더 나아가 C(오토 대위)와 D(오틸리에)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고였던 셈이다.  

B(샤를로테)는 아이속의 C(오토 대위)와 D(오틸리에)를 모두 발견하고 하늘의 경고를 깨닫게 되나, A(에두아르트)는 아이 속에서 D(오틸리에)의 모습만을 발견한 채, 잘못된 운명(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자신, 깨져버린 술잔)에 의거하여 D(오틸리에)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 순간 비극은 시작된다. 그의 아들 오토, 오틸리에. 마지막으로 에두아르트까지 이어지는 비극적 결말은 무분별한 욕망을 통제해왔던 수 세기에 걸쳐 전해진 신의 계율을 쉽사리 거부할 수 없음을 잘 보여준다.  

읽기에 따라 어떻게 보면 에두아르트의 마지막 희생을 토대로 이 소설을 ‘이루지 못한 숭고한 사랑을 그린 남녀의 이야기’ 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이 사랑을 숭고하다기 보다는 무모하다고 해석하고 싶다. 왜냐하면 앞서 이 사랑은 인간이 자연계의 원자들과 하등 차이가 없는 길 (신중한 이유를 가진 주관적인 관점의 기준보다는 어떤 운명이나 필연적인 결과물로 믿는 방식)을 걷다가 맞은 비극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처음 자연계를 비웃었던 것처럼 인간이라면 괴테가 내린 친화력의 시험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만 했다. 어쩌면 이 답이 괴테가 내린 인간이란 존재의 답 중에 하나의 모습인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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