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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 - 몸에 관한 詩적 몽상
김경주 지음, 전소연 사진 / 문학동네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밀어>라는 책은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책이다. 나는
시인 김경주가 뱉어내는 속삭임이 (몸을 감싸고 있는 각 부위에 대한 의학, 철학, 미학, 언어학, 인류학의 개념들이) 두꺼운 외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인 김경주의 또렷한 말투는 그것이 바로 벗은 몸 자체라고 하고 있다.
나는 비밀스러운 속삭임에 저항하면서, 아주 간헐적인 간격으로
지배당하며 몸의 언어를 읽어나갔다. 몸을 둘러싸고 있는 저자의 연관 고리가 나에게 친숙한 몇몇의 경우. 나는 지배당했고, 연관 고리의 모양새가
낯선 경우엔 격렬히 저항했다. 솔직히 말해서 저항했다는 표현보다는 심한 압박을 받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그즈음 문근영을 문근영이 아니게 만들었던 ‘시뮬라크르’라는 단어를
김경주의 <밀어>에서 다시 발견한다. ‘그런 것인가? 그가 몽상하는 신체의 편린들이 우리가 매일 보는 그 몸이 아닌 또 다른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불현듯 머릿속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 궁금증을 풀어줄 전투가 시작되었다.
내 존재의 범위가 허락하는 다수가 인정하는 보편적이고 고정 관념적인
언어와 그가 사유하는 거대한 존재가 표출해내는 밀어가 부닥쳤다. 사실 이 전투의 결말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고정된 관념에
안주하고 있던 몸의 해석과 오래전에 관념의 사슬을 끊어버린 자유와 저항의 몽상은 누가 봐도 분명한 힘의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어리석게도 서평단이라는 깃발을 펄럭이며 순순히 그의
아지트로 먼저 돌진했기 때문에, 주위의 어떤 동료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고립무원의 상황에 놓인 셈이다. 마치 시인이 파놓은 깊은 구덩이에 빠져서
시인의 실존을 실어 날아오는 수류탄의 파편에 온몸을 가격당해서 고통을 겪는 상황이 바로 이 밀어를 읽어내는 지금의 나의 상황과 유사하다.
하물며 이 위기 속에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다른 블로그와 언론을
찾아보아도 나의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시 문학계의 아이돌로 칭송받는 시인의 존재에 모든 매체가 굴복하였고, 그들은 이
<밀어>를 두고, 몸의 몽상을 시적 언어로 표현해낸 수작이라는 칭찬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예문들을 남기며 항복했다.
"몽정은 타인의 몸과 나누는 성교가 아니다. 자신의 육체와 벌이는
성교다." (몽정기 중에서)
"보통 비만인 사람에게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몸의 리듬은 선과 골격의
리듬이다. 쇄골에 빗물이 고이는 사람이 있다. 쇄골은 육체가 기적적으로 이루어낸 선의 풍경." (쇄골 중에서)
"사람은 상대가 좋아지지 않으면 절대로 그 사람의 귀를 만지지
않는다는 것이 내가 오랫동안 실험한 영역이다." (귓불 중에서)
"발목이 살 속에 감추고 있는 이 복숭아 한 송이는 발목의 오두막
안에 동글게 놓여 있다." (복사뼈 중에서)
"현대의 생물종학설(生物種學說)은 말한다. 미세한 단세포 짚신벌레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선천적인 생리 리듬에 의해 몸이 제어되며 모든 생물은 시계처럼 조절 능력이 있어 각자의 고유한 체내 리듬을 유지한다고.
항문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하루에 일정한 주기로 벌어졌다가 오므려지고 다물어졌다가 헤헤헤, 벌려지고 쪼그라들었다가 꽉 조이듯 항문
속에는 뻐꾸기가 산다. 뻐꾹, 뻐꾹, 새똥이 나온다." (항문 중에서)
“눈망울은 몸 안의 천문대이다. 눈시울은 눈망울 아래에 퍼져 있는
엷은 은하이다.”(눈망울 중에서)
'젖무덤은 불심(佛心)을 만나러 가는 처녀지'…. (젖무덤
중에서)
“모든 언어는 제 흔적에 내려앉는 나비가 되려 한다. 나비는 시가
되려는 그 언어에만 앉는다. 내 날개뼈 사이에 숨어 있다가도.” (날개뼈 중에서)
"잇몸은 모국어가 입안에서 하나의 혀도 거치지 않고 하나의 치열도
빠뜨리지 않고 흘러나올 때 보여지는 입안의 풍경이다. 비리고 붉은 살의 풍경이다. 잇몸은 말의 풍경이 입안에서 부서진 흔적이다." (잇몸
중에서)
"무릎이라는 단어 속에도 아주 작은 연골들이 숨 쉬고 있는 것이다.
모음에 해당하는 음성(ㅜ,ㅡ)의 '미미한' 사이가 자음(ㅁ,ㄹ,ㅍ)의 '형형(炯炯)한' 체언으로 들어와 '무릎'이라는 발음 속에 음성의 연골을
생성하는 것이다." (무릎 중에서)
"시에 대해 내가 가지고 싶은 꾸준한 은밀함이 하나 있다면 시로서 내
안의 저 깊은 속귀에 가루처럼 따뜻한 소란(巢卵)들을 흘려주고 달래주는 몸의 기관을 하나 갖고 싶다는 것이다. 그것이 타인의 기관에도 하나 있는
공간, 고막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좋지 아니한가." (고막 중에서)
이 상황 속에서도 나란 놈은 무심코, LG 트윈스의 이번시즌 라인업을
예상하는 기사에 눈길을 돌렸다. 각 포지션에 알맞게 들어차 있는 선수의 면면을 확인하는데 갑자기 위화감이 찾아왔다. 왜일까? 각각의 선수가
가지고 있는 개성을 물리적인 의미의 단순한 이름과 사진으로 표현했다는 사실이 불만이었던 것이다. 시인은 그렇게 나란 놈을 항복시켰다.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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