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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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쉰 살이 될 때까지 무의미하고 저급한 직업을 전전하며 뼈 빠지게 일하다가 갑자기 전국을 날아다니게 되다니. 손에 술을 들고 이것저것 따지고 재는 귀찮은 인간이 되다니.” -330p-

 

찰스 부코스키의 3부작 중 마지막 이야기라고 알려진 <여자들>에서는 쉰 살까지 이어진 노동에서 벗어나 전업 작가의 길을 걷는 헨리 치나스키의 삶을 조명한다. 실제로 찰스 부코스키는 노동을 그만두고 집필활동을 하는 대가로 출판사로부터 매달 100달러를 받는 종신계약을 맺었다고 전해진다.

 

“당신의 글쓰기는 날것 그대로예요. 마치 쇠망치 같아요. 하지만 그 안에 유머와 상냥함이 있죠.” -94p-

 

치나스키가 늦은 나이에 얻게 된 부와 명예는 욕설과 비속어로 가득한 쇠망치 같은 문장 속에 담겨진 특유의 유머와 상냥함 때문에 얻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특이한 이력을 소유한 작가의 유들유들하면서 마초스러운 문체는 일상 속에서 쉽게 접하지 못한 맛이었기 때문에 많은 편지가 치나스키 집 앞의 우편함에 도착하고, 낯선 여성들이 그의 집 초인종을 누르게 한다.

 

여성을 거부할 까닭이 전혀 없어 보이는 마초남 치나스키와 팬이라고 자처하는 여인들의 포르노그라피. <여인들>은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다. 다만, 조심해야 할 것은 <여인들>에서 그려지는 포르노의 수위다. 까놓고 말해서 그냥 포르노다. 그리고 이 포르노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진다. 끝날 것 같으면 신기하게 다른 여성과의 포르노가 시작된다. 쉴 틈이 없다.

 

"당신은 창녀를 원하는 거야. 사랑을 두려워하니까." -90p-

 

어째서 항상 더 많은 여자를 원하는 건가? 뭘 하고자 하는 거지? 새로운 연애를 하면 흥분이 되지만 힘들기도 했다. 첫 키스, 첫 섹스는 언제나 극적이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재미있다. 그다음에는 천천히, 그렇지만 반드시 모든 결점과 광기를 드러내게 된다. 그들에게 나는 점점 더 하잘것없어진다. 그들도 내게 점점 더 하찮아진다. -105p-

 

천한 여자일수록 더 좋다. 그렇지만 여자들, 좋은 여자들만 보면 겁이 났다. 그들은 결국에는 내 영혼과 내게 남아 있는 부분, 내가 지키고 싶은 부분을 원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창녀들, 천한 여자들을 원했는데 그들은 치명적이며 냉정해서 개인적 요구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떠나도 잃어버릴 게 없다. 그렇지만 동시에 아무리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해도 상냥하고 착한 여자를 원했다. 어느 쪽이든 나는 잃게 된다. 강한 남자라면 둘 다 포기하리라. 나는 강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자들, 여자들이라는 이상과 계속해서 힘겹게 씨름했다. -109p-

 

그런데 누가 봐도 이런 비정상적인 이성 관계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 문제의 답은 치나스키의 피해의식이다. 사회 하층민의 삶에 익숙한 그에게 달려드는 여성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생경한 풍경이고, 치나스키는 이 상황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그녀들이 삶이 아니라 허구에 반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항상 술을 옆에 끼고, 환각제 같은 약물에 의존하면서 그녀들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것을 거부한다. 작가가 묘사하는 성행위는 마초스러워 보이나 전혀 마초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무책임한 치나스키의 남성은 만나는 여성들이 바뀜에도 요지부동이다.

 

한 남자가 많은 여자를 필요로 할 때는 그 여자들이 다 쓸모가 없을 때뿐이다. 이 여자 저 여자랑 붙어먹으면서 너무 많이 돌아다니다 보면 남자는 정체성을 잃게 된다. -417p-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치나스키의 비정상적 사랑은 사라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게 되고, 정리된다. 그런데 이 과정이 포르노에 비하면 너무 약하다. 더 큰 문제는 해결방식이 전혀 평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라는 모든 것을 참고 다 받아줘야 했다. 그게 어쩌면 사랑이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자들>의 모든 것을 근본적인 사회적 구조로 인한 주인공의 자존감 하락으로 해석하고, 그사실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점이라고 확대하기에도 좀 껄끄럽다. 워낙에 방탕하고 퇴폐적인 쾌락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가 클수록 그에 수반해서 나타나는 부작용도 크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쉽사리 인정하기에도 좀 미안한 심정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은 읽을 가치가 충분한 문학작품이라는 것이다. 무엇을 발견하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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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분 인생 - 진짜 나답게 살기 위한 우석훈의 액션大로망
우석훈 지음 / 상상너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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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이라는 단어를 잔인하게도 ‘혹시는 없다.’로 정의하시는 우석훈 선생님의 <1인분 인생>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혹시는 없는’ 마흔의 삶을 주제로 하는 수필집이다. 그리고 그 속엔 일상생활의 친숙함과 명박시대 대한민국의 난감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내가 그리는 미래의 한국은, 좌파도 우파들에게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우파도 좌파들에게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그래서 훌륭한 사람들이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 결국 그렇게 힘을 모아 행복이 넘쳐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52p-

 

자기 주변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서로서로 돌보는 나라다. 자기 골목, 아파트 같은 층, 최소한 그 안에서 굶는 사람들이 없도록 서로를 돌볼 수 있는 나라, 아무도 굶지 않고, 아무도 정서적으로 빈곤하지 않고, 아무도 문화적으로 소외되지 않는, 그런 나라. -159p-

 

우 선생님께서 바라는 미래의 대한민국의 모습은 지금의 상황으로 추측했을 때는 상상할 수조차도 없는 굉장한 유토피아적인 사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대라는 ‘필승카드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면 세끼 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요. 아내와 자녀의 미래를 행복하게 고민할 수 있는 나라를 꿈꾸는 것은 비단 그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꿈이리라.

 

마흔이 되면, 사실 우리는 이제 누군가에게 나무가 되어 주어야 한다. 정신적인 것이든 물리적인 것이든, 이제 받아야 할 것보다 주어야 할 것이 더 많아진다. 그런데도 무엇인가를 계속 받으려는 소년처럼 게걸스럽게 손에 쥐려고만 하면, 정말 추한 꼰대로 늙어갈 뿐이다. -27p-

 

그런데 이 꿈이 마흔이 되고, 쉰이 되고, 예순이 되어도 탐욕스럽게 부를 탐하고 비리를 저지르는 시대의 기득권. 스크루지 무리에 의해 짓밟히고 있다. 그들은 어린이에게 꿈을 꾸어라 면서, 막상 그 어린아이가 성인이 되면 눈높이를 낮추라고만 한다. 그리고 맞는 곳이 없으면 알아서 창업을 하라고 한다.

 

<88만원 세대>를 읽고, 짱돌과 바리케이트를 준비하고 있는 절박한 처지에 우석훈 선생님의 신간이 당연히 청춘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았으리라 착각하고 읽기 시작한 것은 독자인 내가 책임져야 할 몫이지만, 이 책의 어디를 둘러봐도 40대를 위한 책이라는 포지셔닝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점(심지어 갑남을녀라고 표현)은 출판사에서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이 책을 마흔이 넘은 분들이 읽는다면, 어떤 평을 남길까. 개인적으로 너무 궁금하기 때문이다. 나는 머리로는 -털털한 편한 복장으로 1,600cc 해치백을 몰고 회의에 참석하려다가 입장을 거부당하자 쿨하게 “그러지요.” 라고 말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우 선생님의 일상에 주목하면서도 손으로는 윗세대에 대한 강력한 반감을 드러내려는 어쩔 수 없는 심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선생님의 말씀에 모두 수긍해버리고 나면, 마치 내가 불혹의 나이를 넘겨버린 애늙은이가 되는 이상한 기분이 들게 될까 두렵기도 하고, 실제로도 그런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보다는 미래의 나를 위해서 이쯤에서 그만두고 싶다. 좋은 말을 다른 곳에 많이 옮겨 적어놨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적 피부에 끼어 있는 때를 벗겨 내고, <조선일보>의 루틴. 즉, 조선일보가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의심 없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의식을 버리자는 우 선생님의 제안을 같은 연배의 삼촌이나 이모나 고모들은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참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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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 - 몸에 관한 詩적 몽상
김경주 지음, 전소연 사진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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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라는 책은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책이다. 나는 시인 김경주가 뱉어내는 속삭임이 (몸을 감싸고 있는 각 부위에 대한 의학, 철학, 미학, 언어학, 인류학의 개념들이) 두꺼운 외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인 김경주의 또렷한 말투는 그것이 바로 벗은 몸 자체라고 하고 있다.

 

나는 비밀스러운 속삭임에 저항하면서, 아주 간헐적인 간격으로 지배당하며 몸의 언어를 읽어나갔다. 몸을 둘러싸고 있는 저자의 연관 고리가 나에게 친숙한 몇몇의 경우. 나는 지배당했고, 연관 고리의 모양새가 낯선 경우엔 격렬히 저항했다. 솔직히 말해서 저항했다는 표현보다는 심한 압박을 받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그즈음 문근영을 문근영이 아니게 만들었던 ‘시뮬라크르’라는 단어를 김경주의 <밀어>에서 다시 발견한다. ‘그런 것인가? 그가 몽상하는 신체의 편린들이 우리가 매일 보는 그 몸이 아닌 또 다른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불현듯 머릿속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 궁금증을 풀어줄 전투가 시작되었다.

 

내 존재의 범위가 허락하는 다수가 인정하는 보편적이고 고정 관념적인 언어와 그가 사유하는 거대한 존재가 표출해내는 밀어가 부닥쳤다. 사실 이 전투의 결말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고정된 관념에 안주하고 있던 몸의 해석과 오래전에 관념의 사슬을 끊어버린 자유와 저항의 몽상은 누가 봐도 분명한 힘의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어리석게도 서평단이라는 깃발을 펄럭이며 순순히 그의 아지트로 먼저 돌진했기 때문에, 주위의 어떤 동료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고립무원의 상황에 놓인 셈이다. 마치 시인이 파놓은 깊은 구덩이에 빠져서 시인의 실존을 실어 날아오는 수류탄의 파편에 온몸을 가격당해서 고통을 겪는 상황이 바로 이 밀어를 읽어내는 지금의 나의 상황과 유사하다.

 

하물며 이 위기 속에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다른 블로그와 언론을 찾아보아도 나의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시 문학계의 아이돌로 칭송받는 시인의 존재에 모든 매체가 굴복하였고, 그들은 이 <밀어>를 두고, 몸의 몽상을 시적 언어로 표현해낸 수작이라는 칭찬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예문들을 남기며 항복했다.

 

"몽정은 타인의 몸과 나누는 성교가 아니다. 자신의 육체와 벌이는 성교다." (몽정기 중에서)

 

"보통 비만인 사람에게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몸의 리듬은 선과 골격의 리듬이다. 쇄골에 빗물이 고이는 사람이 있다. 쇄골은 육체가 기적적으로 이루어낸 선의 풍경." (쇄골 중에서)

 

"사람은 상대가 좋아지지 않으면 절대로 그 사람의 귀를 만지지 않는다는 것이 내가 오랫동안 실험한 영역이다." (귓불 중에서)

 

"발목이 살 속에 감추고 있는 이 복숭아 한 송이는 발목의 오두막 안에 동글게 놓여 있다." (복사뼈 중에서)

 

"현대의 생물종학설(生物種學說)은 말한다. 미세한 단세포 짚신벌레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선천적인 생리 리듬에 의해 몸이 제어되며 모든 생물은 시계처럼 조절 능력이 있어 각자의 고유한 체내 리듬을 유지한다고. 항문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하루에 일정한 주기로 벌어졌다가 오므려지고 다물어졌다가 헤헤헤, 벌려지고 쪼그라들었다가 꽉 조이듯 항문 속에는 뻐꾸기가 산다. 뻐꾹, 뻐꾹, 새똥이 나온다." (항문 중에서)

 

“눈망울은 몸 안의 천문대이다. 눈시울은 눈망울 아래에 퍼져 있는 엷은 은하이다.”(눈망울 중에서)

 

'젖무덤은 불심(佛心)을 만나러 가는 처녀지'…. (젖무덤 중에서)

 

“모든 언어는 제 흔적에 내려앉는 나비가 되려 한다. 나비는 시가 되려는 그 언어에만 앉는다. 내 날개뼈 사이에 숨어 있다가도.” (날개뼈 중에서)

 

"잇몸은 모국어가 입안에서 하나의 혀도 거치지 않고 하나의 치열도 빠뜨리지 않고 흘러나올 때 보여지는 입안의 풍경이다. 비리고 붉은 살의 풍경이다. 잇몸은 말의 풍경이 입안에서 부서진 흔적이다." (잇몸 중에서)

 

"무릎이라는 단어 속에도 아주 작은 연골들이 숨 쉬고 있는 것이다. 모음에 해당하는 음성(ㅜ,ㅡ)의 '미미한' 사이가 자음(ㅁ,ㄹ,ㅍ)의 '형형(炯炯)한' 체언으로 들어와 '무릎'이라는 발음 속에 음성의 연골을 생성하는 것이다." (무릎 중에서)

 

"시에 대해 내가 가지고 싶은 꾸준한 은밀함이 하나 있다면 시로서 내 안의 저 깊은 속귀에 가루처럼 따뜻한 소란(巢卵)들을 흘려주고 달래주는 몸의 기관을 하나 갖고 싶다는 것이다. 그것이 타인의 기관에도 하나 있는 공간, 고막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좋지 아니한가." (고막 중에서)

 

이 상황 속에서도 나란 놈은 무심코, LG 트윈스의 이번시즌 라인업을 예상하는 기사에 눈길을 돌렸다. 각 포지션에 알맞게 들어차 있는 선수의 면면을 확인하는데 갑자기 위화감이 찾아왔다. 왜일까? 각각의 선수가 가지고 있는 개성을 물리적인 의미의 단순한 이름과 사진으로 표현했다는 사실이 불만이었던 것이다. 시인은 그렇게 나란 놈을 항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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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편지 - 인류 문명에 대한 사색
최인훈 지음 / 삼인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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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쳤다저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알고 싶은 다급함에 서둘러 찾았지만 없었다서문이 없었다서문이 있어야 할 곳엔 이 책을 편집하신 인영 선생님의 여행 안내문이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분량이 꽤 길었다모르는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길래 그냥 넘겨버렸다.

 

다 읽고 나서 보니이 책은 최인훈 선생님의 전집 중에서 필요한 부분을 오인영 선생님께서 발췌하여 펴낸 책이었다이미 발표된 글들을 편집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맞춰서 분류해 놓았기 때문에 글이 연속적이지 않다는 것이 느껴졌다각각의 글을 읽는 과정이 마치 테트리스 게임 속의 도형이 떨어지는 모습같았다여러 모양의 도형처럼 가공된 글테트리스의 빈칸을 채워 쌓인 줄을 제거하는 활동은 <바다의 편지>가 이야기하는 글의 주제를 이해한 뒤정리하는 활동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오인영 선생님께서 제작한 <바다의 편지>는 원조 테트리스 게임처럼 점점 레벨이 올라간다길이라는 단어의 사유를 시작으로, DNA와 다른 (DNA´)라는 이데올로기적이며 문화적인 유전자라는 접근법은 차라리 이해하기 쉬운 단계에 속했다문화적인 유전자가 낳는 여러 가지 방향의 파생은최인훈 선생의 고유한 해석으로서 멈추지 않고 다음 레벨로 이어진다.

 

<바다의 편지>의 도형들의 숨 가쁜 축적과정지구에 대한 세계사를 인류의 문화적인 유전자의 발전으로 서술하는 접근 방법은 <총·균·쇠>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동양의 자그마한 반도에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접근하는 세계사의 해석은 기존의 유럽의 열강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도형과는 다른 도형을 만들어 내어 유고슬라비아베트남인도와 같은 넓은 곳의 깊은 문제로의 접근까지 이어지고, 구소련의 공산주의더 나아가서 포츠담 선언으로 만들어진 냉전과 데탕트로 아직까지 남과 북으로 분단된 한반도의 문제까지 아우른다.

 

<바다의 편지>

 

이 두꺼운 인문 서적의 제목이자책의 마지막을 차지하고 있는 소설의 제목이처음에는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사유의 흐름이 페이지를 넘길수록 도저히 모를 말만 계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 또한 테트리스 같다.

 

이 소설에서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고실험의 산물이다쉽게 말하면그의 환상그의 꿈을 나타내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최인훈 선생은 문학은 현실이 아니라고 했다. 삶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문학을 통해 삶의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있다. 지금 우리의 삶보다 조금 더 현명한 삶을 살 기회가 문학 속에는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을 문학이라는 시야가 메워주기 때문이다. 제한적인 시야가 가질 수 있는 한계를 초월한 것이 바로 <바다의 편지><바다의 편지>는 죽음이라는 순간의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문학이다.

 

<바다의 편지>의 시작과 끝은 어머니 뱃속의 10개월의 탄생과정과 정반대되는 죽음의 소멸과정에서의 분해과정을 담고 있는 듯했다각각의 장기가 해체되고뼈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상태에서의 다시 팔과 다리의 뼈가 각각의 DNA로서 떨어져 나간다.


같은 몸을 이루는 각각의 유전자의 분리의 과정을 통해 다른 존재를 느끼게 하는 분해과정그리고 살아있던 생애의 일상적인 기억과 문화(DNA´)의 해체 후 마지막까지 남겨진 어머니라는 한 단어.  

 

그가 죽음의 해체를 그리고 있는 짧은 시간 동안 그는 그가 타고 있던 잠수함이 피격당했다는 사실과 그 사건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인류의 역사적 재구성과 바닷속에서 가라앉고 있는 자신을 연결짓고 있다그 연결의 찰나 일어나는 기억들은 모두 <바다의 편지>의 앞부분에서 이야기 한 전부였다가라앉아 해체되고 있는 소설 속 자아와 동일시하는 순간. 내 머릿속에도 <바다의 편지속의 이야기가 재빠르게 떠돌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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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평전
최하림 지음 / 실천문학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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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대전환기에서 사각지대에 숨어 중립을 견지한다는 것은 좌나 우로 기울어져 상처받고 절망하는 사람보다 올바르다고 하기 어렵다. 그 상처와 절망은, 그들의 시대를, 그들이 온몸으로 사는 데서 받는 것이며, 상처받지 않고 절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의 시대를, 그들이 거죽으로 산다는 것을 뜻한다. -116p-

 

김수영 전집의 글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자유와 참여의 정신을 조금이나마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왜?”라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왜 그토록 자유를 갈망했고, 시가 현실참여의 성격을 나타내야 한다고 했을까?” 그런데 절판이 되어 구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이 책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남겨준 것 같다.

 

김수영 시인은 일제강점기를 경험했고, 대한민국의 해방을 경험했고, 신탁통치를 경험했고, 6·25전쟁을 경험한 근대사의 증인이다. 이 세월 동안 그는 산문집처럼 격렬한 목소리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지는 않았다. 다만 연극에 심취해있던 눈이 커다랗고 서양인처럼 잘생긴 청년에 불과했다. 강점기와 해방기 때가 끝난 직후, 그의 나이 고작 25세였으니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해방 후 좌익과 우익의 대립 사이에서도 그는 제3의 길(모더니즘의 흐름을 따라감)을 모색했다. 그가 우물쭈물 갈피를 못 잡던 바로 그때 6·25전쟁이 터졌고, 강제로 북쪽으로 끌려간 의용군 생활과 남쪽으로 탈출하면서 거꾸로 미군에게 반공포로로 잡혀 거제수용소라는 무시무시한 곳에 수감된다.

 

평전 내에서 짤막하게 소개되는 수용소 생활의 모습은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에서 그려진 하루따위는 정말로 평범한 일상이라고 보일 정도로 충격적인 모습이었고 반드시 그와 관련된 서적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거제수용소 내에서의 찬공포로와 반공포로와의 갈등과 포로들 간의 다툼 속에서 낳은 수용소 속의 다른 6·25전쟁을 겪으면서 그는 사상적으로 제대로 갈피를 잡지 못했기 때문에 얻게 된 결과물이라고 자책한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그는 아마도 거죽으로 산다고 말했을 것이다.

 

김은실은 부르는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김수영의 큰 눈을 보았다. 그리고 포로 복장을 보았다. 그리고 복장에 붙어 있는 ‘prisoner of war(P.W.)’라는 영자를 보았다. 그녀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이 빨갱이 새끼!”하고 소리쳤다. 김수영은 벼락을 맞은 듯,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뒷걸음쳐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사건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177p-

 

전쟁 때의 여러 트라우마로 그는 아마도 미군과 소련군이 38선으로서 하나의 이데올로기만 존재하도록 갈라버린 대한민국 정부의 상황을 지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승만 정부의 독재정치로 말미암아 벌어진 4·19혁명을 그 혁명이 의거의 성격(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끝없는 이의제기를 하지 않고 현상적이고 윤리적인 차원에 그친 의거)에 더 가까움에도 그것을 민중의 힘으로 이루어낸 값진 혁명이라고 소개한다.

 

왜냐하면, 시인이 보기에 그날은 남과 북도, 미국도 소련도 없고, 오로지 ‘독재타도’의 정신만이 대한민국의 서울의 하늘과 땅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웃지 않는 삭막한 얼굴을 가진 서울이 그때만큼은 활화산처럼 불타올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의 저항정신은 자라고 있었던 것 같다. 저항정신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의 눈에 보이는 모순이 가득한 대한민국의 상황에 더욱 많은 양의 자유가 필요해 보였을 것이다. 그 자유라는 치료제를 위해서 그는 참여시를 쓰자고 독려했던 것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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