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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편지 - 인류 문명에 대한 사색
최인훈 지음 / 삼인 / 2012년 1월
평점 :
책을 펼쳤다.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알고 싶은 다급함에 서둘러 찾았지만 없었다. 서문이 없었다. 서문이 있어야 할 곳엔 이 책을 편집하신 오인영 선생님의 여행 안내문이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분량이 꽤 길었다. 모르는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길래 그냥 넘겨버렸다.
다 읽고 나서 보니, 이 책은 최인훈 선생님의 전집 중에서 필요한 부분을 오인영 선생님께서 발췌하여 펴낸 책이었다. 이미 발표된 글들을 편집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맞춰서 분류해 놓았기 때문에 글이 연속적이지 않다는 것이 느껴졌다. 각각의 글을 읽는 과정이 마치 테트리스 게임 속의 도형이 떨어지는 모습같았다. 여러 모양의 도형처럼 가공된 글. 테트리스의 빈칸을 채워 쌓인 줄을 제거하는 활동은 <바다의 편지>가 이야기하는 글의 주제를 이해한 뒤, 정리하는 활동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오인영 선생님께서 제작한 <바다의 편지>는 원조 테트리스 게임처럼 점점 레벨이 올라간다. 길이라는 단어의 사유를 시작으로, DNA와 다른 (DNA´)라는 이데올로기적이며 문화적인 유전자라는 접근법은 차라리 이해하기 쉬운 단계에 속했다. 문화적인 유전자가 낳는 여러 가지 방향의 파생은최인훈 선생의 고유한 해석으로서 멈추지 않고 다음 레벨로 이어진다.
<바다의 편지>의 도형들의 숨 가쁜 축적과정. 지구에 대한 세계사를 인류의 문화적인 유전자의 발전으로 서술하는 접근 방법은 <총·균·쇠>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동양의 자그마한 반도에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접근하는 세계사의 해석은 기존의 유럽의 열강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도형과는 다른 도형을 만들어 내어 유고슬라비아, 베트남, 인도와 같은 넓은 곳의 깊은 문제로의 접근까지 이어지고, 구소련의 공산주의. 더 나아가서 포츠담 선언으로 만들어진 냉전과 데탕트로 아직까지 남과 북으로 분단된 한반도의 문제까지 아우른다.
<바다의 편지>
이 두꺼운 인문 서적의 제목이자, 책의 마지막을 차지하고 있는 소설의 제목이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사유의 흐름이 페이지를 넘길수록 도저히 모를 말만 계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 또한 테트리스 같다.
이 소설에서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고실험’의 산물이다. 쉽게 말하면, 그의 환상. 그의 꿈을 나타내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최인훈 선생은 문학은 현실이 아니라고 했다. 삶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문학을 통해 삶의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있다. 지금 우리의 삶보다 조금 더 현명한 삶을 살 기회가 문학 속에는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을 문학이라는 시야가 메워주기 때문이다. 제한적인 시야가 가질 수 있는 한계를 초월한 것이 바로 <바다의 편지>다. <바다의 편지>는 죽음이라는 순간의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문학이다.
<바다의 편지>의 시작과 끝은 어머니 뱃속의 10개월의 탄생과정과 정반대되는 죽음의 소멸과정에서의 분해과정을 담고 있는 듯했다. 각각의 장기가 해체되고,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상태에서의 다시 팔과 다리의 뼈가 각각의 DNA로서 떨어져 나간다.
같은 몸을 이루는 각각의 유전자의 분리의 과정을 통해 다른 존재를 느끼게 하는 분해과정. 그리고 살아있던 생애의 일상적인 기억과 문화(DNA´)의 해체 후 마지막까지 남겨진 어머니라는 한 단어.
그가 죽음의 해체를 그리고 있는 짧은 시간 동안 그는 그가 타고 있던 잠수함이 피격당했다는 사실과 그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인류의 역사적 재구성과 바닷속에서 가라앉고 있는 자신을 연결짓고 있다. 그 연결의 찰나 일어나는 기억들은 모두 <바다의 편지>의 앞부분에서 이야기 한 전부였다. 가라앉아 해체되고 있는 소설 속 자아와 동일시하는 순간. 내 머릿속에도 <바다의 편지> 속의 이야기가 재빠르게 떠돌아다닌다.
[네이버 북카페 서평이벤트를 통해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하였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