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자들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쉰 살이 될 때까지 무의미하고 저급한 직업을 전전하며 뼈 빠지게
일하다가 갑자기 전국을 날아다니게 되다니. 손에 술을 들고 이것저것 따지고 재는 귀찮은 인간이 되다니.” -330p-
찰스 부코스키의 3부작 중 마지막 이야기라고 알려진
<여자들>에서는 쉰 살까지 이어진 노동에서 벗어나 전업 작가의 길을 걷는 헨리 치나스키의 삶을 조명한다. 실제로 찰스 부코스키는
노동을 그만두고 집필활동을 하는 대가로 출판사로부터 매달 100달러를 받는 종신계약을 맺었다고 전해진다.
“당신의 글쓰기는 날것 그대로예요. 마치 쇠망치 같아요. 하지만 그
안에 유머와 상냥함이 있죠.” -94p-
치나스키가 늦은 나이에 얻게 된 부와 명예는 욕설과 비속어로 가득한
쇠망치 같은 문장 속에 담겨진 특유의 유머와 상냥함 때문에 얻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특이한 이력을 소유한 작가의 유들유들하면서 마초스러운
문체는 일상 속에서 쉽게 접하지 못한 맛이었기 때문에 많은 편지가 치나스키 집 앞의 우편함에 도착하고, 낯선 여성들이 그의 집 초인종을 누르게
한다.
여성을 거부할 까닭이 전혀 없어 보이는 마초남 치나스키와 팬이라고
자처하는 여인들의 포르노그라피. <여인들>은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다. 다만, 조심해야 할 것은 <여인들>에서 그려지는
포르노의 수위다. 까놓고 말해서 그냥 포르노다. 그리고 이 포르노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진다. 끝날 것 같으면 신기하게 다른
여성과의 포르노가 시작된다. 쉴 틈이 없다.
"당신은 창녀를 원하는 거야. 사랑을 두려워하니까."
-90p-
어째서 항상 더 많은 여자를 원하는 건가? 뭘 하고자 하는 거지?
새로운 연애를 하면 흥분이 되지만 힘들기도 했다. 첫 키스, 첫 섹스는 언제나 극적이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재미있다. 그다음에는 천천히,
그렇지만 반드시 모든 결점과 광기를 드러내게 된다. 그들에게 나는 점점 더 하잘것없어진다. 그들도 내게 점점 더 하찮아진다.
-105p-
천한 여자일수록 더 좋다. 그렇지만 여자들, 좋은 여자들만 보면 겁이
났다. 그들은 결국에는 내 영혼과 내게 남아 있는 부분, 내가 지키고 싶은 부분을 원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창녀들, 천한 여자들을
원했는데 그들은 치명적이며 냉정해서 개인적 요구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떠나도 잃어버릴 게 없다. 그렇지만 동시에 아무리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해도 상냥하고 착한 여자를 원했다. 어느 쪽이든 나는 잃게 된다. 강한 남자라면 둘 다 포기하리라. 나는 강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자들, 여자들이라는 이상과 계속해서 힘겹게 씨름했다. -109p-
그런데 누가 봐도 이런 비정상적인 이성 관계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 문제의 답은 치나스키의 피해의식이다. 사회 하층민의 삶에 익숙한 그에게 달려드는 여성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생경한
풍경이고, 치나스키는 이 상황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그녀들이 삶이 아니라 허구에 반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항상 술을 옆에 끼고, 환각제 같은 약물에 의존하면서 그녀들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것을 거부한다. 작가가 묘사하는 성행위는 마초스러워 보이나
전혀 마초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무책임한 치나스키의 남성은 만나는 여성들이 바뀜에도 요지부동이다.
한 남자가 많은 여자를 필요로 할 때는 그 여자들이 다 쓸모가 없을
때뿐이다. 이 여자 저 여자랑 붙어먹으면서 너무 많이 돌아다니다 보면 남자는 정체성을 잃게 된다. -417p-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치나스키의 비정상적 사랑은 사라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게 되고, 정리된다. 그런데 이 과정이 포르노에 비하면 너무 약하다. 더 큰 문제는 해결방식이 전혀 평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라는 모든 것을 참고 다 받아줘야 했다. 그게 어쩌면 사랑이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자들>의 모든 것을 근본적인 사회적 구조로 인한
주인공의 자존감 하락으로 해석하고, 그사실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점이라고 확대하기에도 좀 껄끄럽다. 워낙에 방탕하고 퇴폐적인 쾌락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가 클수록 그에 수반해서 나타나는 부작용도 크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쉽사리 인정하기에도 좀 미안한 심정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은 읽을 가치가 충분한 문학작품이라는 것이다. 무엇을 발견하든 말이다.
[네이버
북카페 서평이벤트를 통해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하였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