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톨의 밀알 - 개정판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5
응구기 와 시옹오 지음, 왕은철 옮김 / 들녘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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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반전(反轉)이다. <한 톨의 밀알>은 케냐의 키쿠유 족에 대한 영국의 식민 지배와 투사 키히카의 희생과 배신자를 처단하려는 키쿠유 인들의 단합과 해방이라는 뜻을 가진 우후루(Uhuru)의 결말이 예상했던 어떤 결말과는 완전히 달랐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요한복음 1224(키히카의 성경에 검은 줄이 그어져 있는 부분) -352p-

 

혁명가 키히카는 단합된 아프리카인들의 희생으로 케냐의 독립을 이루리라 결심했다. 미국의 링컨과 인도의 간디가 했던 것처럼 그도 케냐를 백인의 지배 하에서 구출해내고 싶었다. 하나님의 소명을 타고났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의 생각은 말 그대로 급진적이었다. 주위의 다른 케냐인은 혼탁한 세상에서 그저 살기를 원할 따름이었다.

 

별탈 없이, 불의에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돈을 벌어, 예쁜 아내를 만나 자식을 낳고 기르면서 오손도손 잘 살고 싶은 소망. (이 소설에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고한다. 아마도 예상보다 엄청 많을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바로 키히카의 생각과는 완전히 다른 일반 소시민들이 원하는 삶이었다. 이 삶을 그리워했던 상징적인 인물이 무고였다.

 

응구기 와 시옹오의 <한 톨의 밀알>은 투쟁하지 않는, 그렇다고 배신을 하지도 않는 니힐리스트무고에 대한 이야기와 키히카의 사망 이후, 무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고를 키히카의 뒤를 이을 투쟁의 지도자로 만들려는 대중의 아둔하면서도 맹목적인 시선을 비판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무고를 지도자로 만들기 위한 노력에는 그들의 증언이 큰 몫을 하는데, 대표적으로 기코뇨와 기투아의 증언을 들 수 있겠다. 기투아는 적의 총알 때문에 다리 하나를 잃은 것이 아니라 교통사고로 잃었다. 그러나 이미 그는 자기를 속이고 있었던 기투아는 무고를 높이면서 자신까지 높아지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홀로 남겨둔 아내에 대한 그리움. 가족의 그리움이라는 유혹으로 고문하는 백인에게 자백하고 석방된 기코뇨. 그는 수용소에서 생활을 아무런 내색 없이 견뎌내는 무고의 저항을 보면서 숭고한 의미로 해석했고, 무고를 엄청난 정신력의 소유자로 포장했다.

 

백인과 흑인 간의 갈등은 일반적으로 격렬한 싸움을 불러오게 마련인데, 이 소설은 백인과 흑인 간의 갈등 사이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을 보수적인 이기심을 마치 덫을 놓아두듯이 숨겨둔다. 그리고 안락함에 따른 행위들. , 덫에 걸린 인물들의 속내가 드러난다.

 

어쩔 수 없는 행위는 그들로 하여금 정당성을 논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토로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선과 악의 대비를 통해 투쟁을 벌이는 이야기에 비해 훨씬 더 사실적이다. 이 정당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선악의 개념을 희석한다. 따라서 <한 톨의 밀알>에서 드러나는 흑인에 대한 백인의 시각은 아주 양호하다.

 

아프리카의 프로스페로를 계획하는 백인들. 할례를 제거하고 아프리카인을 바르게 키워내겠다는 톰슨 식의 선민사상은 키히카의 독립적을 위한 투쟁만큼이나 이기적이며 급진적이기도 하다. 결국, 이 소설은 백인의 급진성과 흑인의 급진성 사이에 놓인 소시민의 고뇌를 다룬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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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 - 그의 생애와 시대
이사야 벌린 지음, 안규남 옮김 / 미다스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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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칼 마르크스그의 생애와 시대>. 이 책을 읽고 사상과는 관계없이 그가 살아온 방식에 대하여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다진정한 자유를 탐색하고자 노력했던 그는 오랜 시간 축적되어 건설된 사회 체계 속에 파묻혀버린 인간이 아닌사회와 자신을 동일 선상에 두었던 독립된 개체로서독서와 경험을 통해 관점을 반듯하게 세우고현실을 날카롭게 사유하면서 세계의 정의를 탐구했던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마르크스는 아주 불행한 인물이었다공산주의 사상가 중에서 가장 유명했기 때문에150년이라는 역사적 흐름에 따른 비난을 가장 먼저 받아들여야만 했다그는 이 세상을 밝혀내기 위해서 생애의 절반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나머지 절반을 바쳤지만우리는 소수의 부의 문제를 언급할 때마다 스스럼없이 그의 이론을 꺼내면서도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에 마르크스를 욕한다.

 

2. 저자인 이사야 벌린에게도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다그는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입을 벌리고만 있지 않았다평전을 위해 마르크스만 바라봤던 것이 아니라 이 책이 유럽의 철학사로 읽어도 충분할 만큼 마르크스의 사상에 영향을 끼친 모든 흐름을 책 한 권에 무섭게 몰아넣었다버릴 문장이 눈에 띄지 않았다따라서 모든 문장에 집중해야 했다연거푸 커피를 들이켰다.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선언했던 마르크스의 변증법과 유물론최소 두 가지의 요소가 서로 치고받음으로써 발전했고발전과정에 있는 모든 것은 주위의 물질에 관련성을 가지며 존재한다는 사상 변증법과 유물론을 저자 이사야 벌린은 책의 서술 방식으로 차용하고 있었다앞부분인 <서론>, <청소년기>, <정신철학>, <청년 헤겔학파>, <파리>, <역사적 유물론>까지가 특히 그랬다.

 

쉽게 말해서헤겔의 정신철학이나 루소볼테르몽테스키외 같은 백과전서파의 계몽주의나 그 외 프루동바뵈프생시몽푸리에라쌀레바쿠닌뒤링등과 같은 무수한 유사 사회주의 사상과 사상가들과의 투쟁과정의 서술은 변증법적이었고투쟁으로서 <칼 마르크스: 그의 생애와 시대>가 형성되는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이라는 칼 마르크스는 유물론적 이미지로 구성되었다.

 

3.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것도 포기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얻었다책을 읽는 이유가 인간의 악함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본성이 악하다면 악과의 투쟁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마르크스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관념적이면서 계몽적인 끝맺음이 좀 그렇긴 하다마르크스는 관념적이고 추상적 인간보다는 구체적인 사회 발전 속에 있는 또 다른 인간상을 탐구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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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선언 - 새날고전묶음 2
마르크스.엥겔스 지음, 김기연 옮김 / 새날 / 199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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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지난 날 겪은 역사적인 특수성 때문에 <공산당 선언>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기가 꽤나 껄끄럽게 느껴졌다마르크스의 잉여자원 착취라는 개념에 상당한 부분 동의하고 있으면서도 말이다그래서 마르크스에 대해서 반대보다는 현상으로 접근해보자실제로서의 이해를 길러보자.’고 생각했다.

 

실제로서의 이해란 다름 아닌 대안적 성격으로서의 방향 모색이다미국의 월가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점령하라>의 바람이 부는 지금의 상황신자유주의에 대한 비난이 곳곳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지금의 흐름 속에서부의 양극화로 급격히 전개되는 자본주의 낭떠러지에 직면하여 새로운 대안을 탐색하기 위한 행위의 시작점이 <공산당 선언>이다.

 

2. 인류의 역사 이래로 끊임없이 벌어진 계급투쟁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공산당 선언>에서 선택한 비장의 카드 중 하나는 <유토피아>에서도 언급되었던 사유재산제도의 폐지였다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가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했었던 바로 그것이었다.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억압하는 자와 억압받는 자는 때로는 은밀하고 때로는 공공연한 투쟁을 끊임없이 벌여 왔다그리고 이 투쟁은 언제나 사회 전체의 혁명적 개조로 끝나든가아니면 서로 투쟁하는 계급들이 함께 몰락함으로써 끝을 맺었다. -11p-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산업혁명 이후에 급격하게 발전한 생산수단을 사용한다면 잉여자원의 낭비 없이 분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고새롭게 형성된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이 분명히 종식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를 현실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프롤레타리아의 자발적인 움직임으로서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공산당 선언>을 발표할 당시 프롤레타리아의 수준(?)은 벌어진 계급만큼이나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그렇지만 절대 조급해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점진적인 공산화가 <공산화 선언>의 뜻이었다.

 

3.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가 주체가 되지 못한 잘못된 사례를 반동적 사회주의부르주아 사회주의비판적공상적 사회주의라고 정의한 뒤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이 내용에 따르면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려는 라파엘의 조급함이 방법이라는 측면에서 잘못을 불러오는 비판적-공상적 사회주의임을 알 수 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일제 강점기 이후 많은 지식인들이 사회주의 이념에 경도되어 북한으로 건너갔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했던 탐욕을 막지 못해 북한 주민을 착취대상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 유토피아 서평 중 -

 

유토피아의 서평을 쓰면서 언급했던 <김수영 평전>에서 봤던 당시 지식인들과 국민의 참혹한 경험은 <공산당 선언반동적 사회주의 내지는 부르주아 사회주의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왜냐하면북한의 사회주의는 소련 장교출신인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체제였고김일성을 주축으로 한 세력에 일부 지식인이 합세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서 프롤레타리아가 희생되었거나 지금도 희생당하는 사회주의이기 때문이다.

 

4. 결국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꿈꾸는 제대로 프롤레타리아가 주가 되어서 평등사회를 만들어내는 공산주의의 이상은 시작되지도 않았다지금껏 우리는 반동적 사회주의를 공산주의로 오해했었던 것이다자본주의와의 이데올로기 싸움을 위한 무자비한 착취로서 반동적 사회주의가 실패한 것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불고 있는 1퍼센트와 99퍼센트의 싸움에 기대를 걸어 봐도 될 것 같다왜냐하면, 99퍼센트의 프롤레타리아가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그에 발맞춰 정치인들이 내놓은 복지정책의 내용이 <공산화 선언>의 주요한 사항과 부분적으로 일치하는 것에 눈길이 간다

 

지금 상황에 만족하면 보수적이고그렇지 않으면 진보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나는 지금의 사회가 만족스럽지 않다·고교생까지 등골 브레이커로 계급을 나눠서 차별하는 사회가 싫다그래서 진보적인 위치에 서고 싶다훨씬 더 평등한 사회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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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 읽는 연암 박지원 소설편 작품으로 읽는 연암 박지원
주영숙 지음 / 북치는마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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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품으로 읽는 연암 박지원>에서 두 작품을 만났다. <소설 속의 연암 박지원>이라는 작품과<시대 속의 연암 박지원>이라는 작품이다전자가 연암 박지원의 글을 현대의 언어와 운율로 편역한 글이라면후자는 연암의 글을 편역한 주영숙 작가가 연암 박지원의 전기(傳記)를 다룬 작품이다.

 

2. <소설 속의 연암 박지원>은 애초부터 박지원의 <연암집>에 수록된 여러 종류의 글 가운데서 양반전허생전호질 같은 연암의 소설만을 연대기 순으로 뽑아냈다광문자전에서 시작하여 열녀함양박씨전으로 마무리하는 연암의 풍자와 해학이 담긴 글들은 편자가 의도하는 최소한의 목적인 즐거움을 달성시켜준다더 나아가 양반 신분의 비천한 상황을 드러내는 18세기 조선 사회의 모습 또한 읽을 수 있다.

 

열전(列傳)의 형식으로 구성된 각 소설을 읽으면서 프랑스의 소설가 발자크가 떠올랐다프랑스의 사회상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거대한 인간희극이라는 작품에서 발자크가 만들어낸 인물관계가 끊어지지 않고 연결되는 것처럼연암의 열전에서도 같은 성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 이쪽저쪽에서 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물론 엄청난 비약일 수도 있다그저 연암의 사회풍자와 인물의 연속적인 등장에서 발자크가 떠올랐을 뿐이다.

 

3. 정조는 당시에 통용되던 고문(옛 성현의 언행을 다룬 글처럼, 심오한 진리를 담은 격식과 권위가 있는 문장)의 파괴가 경박해 보이면서도 황당무계한 허구성을 담은 소설류의 짧고 자질구레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연암의 <열하일기> 때문이라고 비난한다정조는 온 나라에 문체반정(문체를 바른 곳으로 회복하라)의 조치를 취한다

 

정조는 연암으로 하여금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긴 글을 고문의 형식으로 써서 바치기를 명하나,연암은 그 명령에 이방익 표류기라는 또 다른 폐사소품체의 글을 지어 바쳤다고 하니 강심장이 따로 없다.

 

그나저나 정조는 참으로 이상한 왕이다그의 글이 천박해 보인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방익 표류기의 소재거리를 냅다 던져주지를 않나비문을 지을 때 왕의 명이라는 말을 속이고 연암에게 글을 받아오라고 하니 말이다정조도 그새 연암의 문장에 중독되어버렸단 말인가?


어쨌든 겉과 속이 다른 왕이 일으킨 문체반정의 기운이 조선 문인들에게 지속적으로 퍼져 나감에 따라 연암의 <열하일기>는 오랜 세월 필사본으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1932년에서야 연암문집이 간행되었다고 전한다. 언젠가는 반드시 <열하일기>와 <연암집>을 읽어봐야겠다.

 

4. <시대 속의 연암 박지원>에서 가슴으로 다가온 부분은 연암이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점이다.세기의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그의 글이 우울증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치열한 노력의 산물이었다니 꿈에도 상상해보지 못한 이야기였다.


대체 무엇이 그를 우울하게 했을까권력의 달콤함에 유혹당하지 않으면서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처연하게 살아온 그에게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었을까혹시문드러져 내리는 조선에서 고작 세태를 비웃는 글을 쓰는 일 말고는 할 줄 아는 일이 없다는 좌절감이 그를 우울하게 만든 것일까?바로 앞에 읽은 시골무사 이성계의 대처방법과는 사뭇 다른 연암 박지원의 대처방법에 눈길이 쏠렸다.

 

5. 아직은 연암에 대해서 확실하게 뭐라고 평하기엔 너무나도 이른 것 같다이번에 읽은 <작품으로 읽는 연암 박지원>은 연암을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일 뿐이다.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라는 책도 연암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지만, 그 책은 엄연히 글쓰기에 관한 책이니 논외로 두자.

 

마장전 


귀에 소곤거리는 말은 필시 진실이 아니가. 남에게 누설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함도 깊은 사귐이 아니요, 그 속정 얼마나 깊은지를 드러내는 사람 또한 훌륭한 벗이 아니다. -34p-


사람을 사귀는 데에는 상대를 이해해 주는 게 가장 중요하고, 즐겁기로는 서로 공감하기보다 더한 게 없다. -37p-


민옹전


가난뱅이가 모두 신선이라오. 부자들은 늘 세상에 애착을 가지지만 가난뱅이는 늘 세상에 싫증을 느끼거든. 세상에 싫증을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신선이 아니고 무엇이겠고? -66p-

 

김신선전 


세상에서 못내 명예를 좋아하게 되면 자연히 겉모습에만 치중하게 되고, 그 모습에 의탁해서 언제까지나 없어지지 않으리라 기대한다.  -102p-


허생전


대체로 남에게 뭔가를 빌리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 포부를 과장하여 신용을 얻으려 하는 법이다. 그러다보면 얼굴빛은 점점 더 비굴해지고, 말은 중언부언을 면치 못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봐라! 저 손님은 옷과 신이 비록 남루하기 이를 데 없지만, 말은 간결하고 눈빛은 오만하며 얼굴엔 부끄러운 빛이 조금도 없질 않더냐? 일체 물질적인 것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인물임에 분명하다. -16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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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숙 2012-07-27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 소개를 너무 알뜰하게 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품으로 읽는 연암박지원 2권이 9월초에는 발간될 것 같은데요,
연암박지원의 화려한 문체를 읽으면 언제나 가슴이 쿵쿵 뛰곤 합니다.
 
[전자책] 시골무사 이성계 - 운명을 바꾼 단 하루의 전쟁
서권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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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갑작스레 울려 퍼지는 화살촉 끝 부분에 둥그렇게 달린 명적의 울음소리가 나를 전쟁터의 한복판으로 데려다 놓았음을 알렸고예고 없이 시작되는 단 하루 동안의 서막은 이성계를 새로이 조명하려는 열 권짜리 <시골무사 이성계>라는 제목의 대하소설 네 번째 권의 책장을 넘기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네 번째 권의 즈음을 읽고 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이민족으로 구성된 가별치라는 군대를 조직하여 오랑캐를 방어했던 북쪽 변방의 일개 무명 장수였던 이성계가 왜적의 침입을 기회로 고려의 중심부로 이동하고 있고서서히 자신 앞에 실체를 드러내는 권문세족의 차별과 괄시의 눈길과 마치 조만간 박동소리가 멎을 것 같은 고려를 살리기 위한 자신의 노력에 대한 허무한 감정이 한데 뒤엉켜<시골무사 이성계>의 황산대첩의 과정을 통해서 분노라는 이름으로 폭발하기 때문이다.

 

저들은 하늘은 인간을 위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오그러기에 국가의 치란은 하늘에 달려 있다 하고 모든 것을 운명 탓으로 돌리게 만들었다오백성을 굴욕의 노예로 지내도록 여태껏 현혹시켰던 것이외다하늘을 빙자한 기만이요모든 이욕을 저희들끼리 독차지하려는 고약한 술책이었던 거요하늘은... 개인의 운명이나 나라의 성쇠와는 그 어떤 관계도 없소문제는 우리요. - 312p -

 

“46세의 이성계역성을 꿈꾸기 시작하다!”라는 뒷 표지의 문구에 대한 원인이면서 왜 이성계는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속 시원한 답이 <시골무사 이성계>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고려에 종속된 신하가 아닌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한 이성계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

 

2.고작 하루의 전투임에도 불구하고 빈번하게 발발하는 변안열정몽주와 이성계정도전의 갈등양상을 지켜보면서상대가 나를 깔볼 때상대와 말이 전혀 통하지 않을 때가치관이 완벽하게 상충할 때는 우선자신의 철학을 올곧게 밀고 나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왜냐하면그렇게해야 자신에게 후회를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그런 후에 타협을 해도 늦지 않음을 <시골무사 이성계>는 일러준다.

 

덧붙여, <시골무사 이성계>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전쟁을 치뤄야만 하는 이유에 대한 각자의 필연적인 운명이 격렬하게 충돌하는데그들에게 직면한 절박한 상황과 입장은 각 인물에 대한 동등한 성질을 부여해주는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이 동등함은 이성계의 깨우침을 통한 승리의 공식을 만들어내는 진부함을 방지한다각자의 입장에 대한 이해가 명확하므로 전투 내내 한시도 긴장감을 내려놓을 수 없었던 것 같다.

 

3. <단심가>로 유명한 고려 말의 충신정몽주를 고려 말기의 기득권인 권문세족(실제로는 정몽주는 신진사대부 출신 이라고 함)을 대변하기 위한 상징적인 인물로서의 설정과 그에 맞춘 행동과 어투가 상식을 파괴하는 의아함. 한편으로는 신선함으로 다가왔다고려라는 나라는 유지하면서 서서히 개혁해야한다는 정몽주의 온건파적 성향에 대하여 작가는 죽느냐 사느냐를 목전에 둔 황산대첩의 위험을 들이대며 명확한 입장을 밝혀주기를 촉구한다따라서 정몽주의 온건파는 개혁의 반대가 된다.

 

세상은 언제나 칼끝 위의 맨발이었다생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이란베어져 굴복하거나 광기로 뛰어 칼 위에 놀거나 그중 하나였다. - 295p -

 

4. 1380년의 9월에 벌어진 황산대첩현재 지리산의 어느 자락에 있는 남원성의 인월이라는 곳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에는 전쟁소설이지만 향토문학으로서의 가치도 충분하다달을 끌어온다는 뜻의 인월에서 착안한 수 천개의 풍등이 대첩을 승리로 이끄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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