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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시골무사 이성계 - 운명을 바꾼 단 하루의 전쟁
서권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1. 갑작스레 울려 퍼지는 화살촉 끝 부분에 둥그렇게 달린 명적의 울음소리가 나를 전쟁터의 한복판으로 데려다 놓았음을 알렸고, 예고 없이 시작되는 단 하루 동안의 서막은 이성계를 새로이 조명하려는 열 권짜리 <시골무사 이성계>라는 제목의 대하소설 네 번째 권의 책장을 넘기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네 번째 권의 즈음을 읽고 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이민족으로 구성된 가별치라는 군대를 조직하여 오랑캐를 방어했던 북쪽 변방의 일개 무명 장수였던 이성계가 왜적의 침입을 기회로 고려의 중심부로 이동하고 있고, 서서히 자신 앞에 실체를 드러내는 권문세족의 차별과 괄시의 눈길과 마치 조만간 박동소리가 멎을 것 같은 고려를 살리기 위한 자신의 노력에 대한 허무한 감정이 한데 뒤엉켜<시골무사 이성계>의 황산대첩의 과정을 통해서 분노라는 이름으로 폭발하기 때문이다.
저들은 하늘은 인간을 위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오. 그러기에 국가의 치란은 하늘에 달려 있다 하고 모든 것을 운명 탓으로 돌리게 만들었다오. 백성을 굴욕의 노예로 지내도록 여태껏 현혹시켰던 것이외다. 하늘을 빙자한 기만이요, 모든 이욕을 저희들끼리 독차지하려는 고약한 술책이었던 거요. 하늘은... 개인의 운명이나 나라의 성쇠와는 그 어떤 관계도 없소. 문제는 우리요. - 312p -
“46세의 이성계, 역성을 꿈꾸기 시작하다!”라는 뒷 표지의 문구에 대한 원인이면서 “왜 이성계는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속 시원한 답이 <시골무사 이성계>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고려에 종속된 신하가 아닌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한 이성계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
2.고작 하루의 전투임에도 불구하고 빈번하게 발발하는 변안열, 정몽주와 이성계, 정도전의 갈등양상을 지켜보면서, 상대가 나를 깔볼 때, 상대와 말이 전혀 통하지 않을 때, 가치관이 완벽하게 상충할 때는 우선, 자신의 철학을 올곧게 밀고 나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렇게해야 자신에게 후회를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후에 타협을 해도 늦지 않음을 <시골무사 이성계>는 일러준다.
덧붙여, <시골무사 이성계>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전쟁을 치뤄야만 하는 이유에 대한 각자의 필연적인 운명이 격렬하게 충돌하는데, 그들에게 직면한 절박한 상황과 입장은 각 인물에 대한 동등한 성질을 부여해주는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이 동등함은 이성계의 깨우침을 통한 승리의 공식을 만들어내는 진부함을 방지한다. 각자의 입장에 대한 이해가 명확하므로 전투 내내 한시도 긴장감을 내려놓을 수 없었던 것 같다.
3. <단심가>로 유명한 고려 말의 충신. 정몽주를 고려 말기의 기득권인 권문세족(실제로는 정몽주는 신진사대부 출신 이라고 함)을 대변하기 위한 상징적인 인물로서의 설정과 그에 맞춘 행동과 어투가 상식을 파괴하는 의아함. 한편으로는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고려라는 나라는 유지하면서 서서히 개혁해야한다는 정몽주의 온건파적 성향에 대하여 작가는 죽느냐 사느냐를 목전에 둔 황산대첩의 위험을 들이대며 명확한 입장을 밝혀주기를 촉구한다. 따라서 정몽주의 온건파는 개혁의 반대가 된다.
세상은 언제나 칼끝 위의 맨발이었다. 생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이란, 베어져 굴복하거나 광기로 뛰어 칼 위에 놀거나 그중 하나였다. - 295p -
4. 1380년의 9월에 벌어진 황산대첩. 현재 지리산의 어느 자락에 있는 남원성의 인월이라는 곳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에는 전쟁소설이지만 향토문학으로서의 가치도 충분하다. 달을 끌어온다는 뜻의 인월에서 착안한 수 천개의 풍등이 대첩을 승리로 이끄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