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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로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3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숙자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 버지니아 울프의 의식의 흐름은 체조로 따지면 신기술 같다고 해야 할까? 과거에 여홍철 선수의 여 뛰기가 있었다면, 현재는 양학선 선수가 자신의 이름을 딴 신기술을 사용해서 올림픽 메달에 도전한다고 한다.
의식의 흐름도 마찬가지다. 이 고난도의 서술법은 버지니아 울프의 기술이면서 만약 문학을 스포츠처럼 채점한다고 친다면 요소점수라는 항목에 포함될 만큼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서술법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소설가의 작품이 전문가(?)집단에게 좋은 평가를 얻기 위해서는 이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술을 잘 사용해서 이야기를 꾸려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의식의 흐름. 즉, 인물의 내적 독백을 사용하는 작품은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최근에 읽은 채드 하바크의 <수비의 기술>,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 속에 두루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이들 작품은 대체로 아주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내면을 비추는 의식의 흐름으로의 서술은 소설을 어렵게 만드는 큰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인물 화자와 독자 간의 어떠한 공감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작중 인물과 독자 간의 길들여짐이 필요한 어느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길들여짐의 주도권은 작가에게 달렸지만 결정권은 독자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작중 인물의 흐름이 텍스트에 고정된 상태인 것에 반해서, 독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의 여유로움이 훨씬 더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중 인물의 모든 시대적 공간적 환경을 독자가 맞추어 줘야 읽기가 순조로워진다. 그러므로 길들여짐의 정도가 소설의 가독성을 돕거나 해친다. 그런 면에서 <등대로>는 앞으로 읽을 수많은 의식의 흐름에 맞설 좋은 훈련프로그램이다. 이 책을 완독하면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2.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는 기술의 개발자답게 소설 전체에 그녀의 신기술을 난사한다. 딱히 줄거리가 없음에도 장면 장면마다 여러 인물의 내면을 꺼내놓고 바라봐주길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인물 간의 내적 대화를 놓치거나 그들과의 공감대가 끊어지면 바로 독자와 <등대로>의 이야기가 단절되는 불행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출항>이나 앞에서 예로든 소설보다 <등대로>가 훨씬 읽어내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등대로>의 속으로 자세히 들어가보면 의식의 흐름에 걸맞게 인물들에게 자연스럽게 관심이 쏠리게 되는데, 우선 램지부인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그녀의 희생이라고 할까. 조화를 유지하려는 노력이라고 할까. 램지부인 고유의 활동성이 돋보인다. 그녀는 가정은 물론 주위의 이웃들까지 모두 아우르는데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는 인물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 즉, 독자에게는 물론 타인에게 공감대를 얻고 싶은 존재들은 다양했다. 남편 램지를 비롯하여 찰스 탠슬리, 릴리 브리스코, 윌리엄 뱅크스, 오거스터스 카마이클, 민타 돌리, 폴 레일리. 그리고 램지 가족의 여덟 남매의 시점까지……. 하지만 그들은 뭐랄까 자기중심적이었으며 다소 경직되어 있고 뾰족했다.
각각이 가지고 있는 성향을 남들에게 부드럽게 꺼내 놓을 수 있도록 독려하여 대화의 장을 만들어내는데 능숙한 인물이 바로 램지부인이다. 이러한 약간의 가식적인 모습은 그림을 그리는 릴리 브리스코의 날카로운 관찰자 시점에 의해 선명하게 공개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총 3부로 구성된 <등대로>에서 램지부인이 사라진 이후를 보여주는 2부와 3부의 묘사들.특히 2부의 상황은 처참함 그 자체였다. 어머니라는 존재의 부재는 커다란 상실감을 낳는다. 램지부인의 힘. 여성의 힘으로서 홀로 가부장적인 독재와 폭정을 견뎌냈던 것이다. 그녀가 사라짐으로 존재했을 당시에는 미처 드러나지 않았던 어두움이 표출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소설 전체에서 그녀의 이름이 공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참! 마지막에 램지부인의 이름이라면서 사라라는 이름이 나오긴 하는데, 그 이름은 초판에만 한정적으로 나온 이름이다. 이것은 결혼하자마자 새댁으로 불리고, 시간이 지나면 누구네 엄마로 불리는 우리나라 어머니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은가?
페미니즘은 고대 여성에게 부여되었던 도덕적 굴레를 거부하고, 여성의 권력과 자유만을 추구하기 위해서 다른 이들을 해쳐도 상관이 없는 부정적인 언어인 줄로만 알았는데, 버지니아 울프의<등대로>의 램지부인의 모습에서 그런 부정적인 부분은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미실>과는 사뭇 다른 페미니즘의 모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