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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남자의 문제
하워드 제이콥슨 지음, 윤정숙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1. 유머
소설이라는 소개를 보고 오쿠다 히데오스러운 웃음 폭탄을 기대했건만. 예상
밖의 무거운 분위기와 소재의 난해함에 몸이 움츠러들고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그래서
이게 대체 유머 소설이 맞는지 궁금해서 유머 소설의 사전적 의미를 뒤적였다.
생활이나
인간성에서의 부정적 측면을 가볍고 악의없는 웃음으로 그려 낸 소설. 곰곰이
생각해보니 에피소드 여러 부분을 가볍고 악의없이 서술하려고 노력한다는 모습이 보인다는 점에서 이 책을 유머 소설로 부르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도
간혹 웃음도 터져 나오긴 했다. 쓴웃음.
어떤
장면에서 웃음을 유발할 수 있었는지 되짚어보자면 개인적으로는 ①
바르셀로나
점쟁이가 점지해준 인연. ②
여자에게
습격당해 빈털터리가 되는 줄리언 트레스러브. ③
유대인을
저주하기 위해 걸어놓은 베이컨을 맛있게 구워먹은 헤프지바. ④
가루지기도
아니면서 남성의 회복이 단순한 성기의 비교로 이루어진다는 것들이다.
2. 영국의
주류사회. 메타포스러운
BBC로
통칭하여 묘사되는 곳에서 뛰쳐나와 영화배우 몇몇을 닮은 얼굴로 대역모델이라는 직업으로 근근이 삶을 이어가는. 직업까지도 은유적인 설정. 즉, 잉글랜드
국적의 백인이라는 정체성을 순순히 포기했음을 의미하는 경계인. 주변인. 아웃사이더로
불릴만한 줄리언 트레스러브는 명실공히 영국사회에서 소외된 영국인이다.
애초에
가족이 없었던. 그래서
자신의 가정을 만드는 것에도 익숙하지 않은. 그렇게
두 이복형제를 자식으로 두었음에도 묵묵히 나홀로 사는 그에게 작가는 의지할 조그마한 작은 방을 딱 한 군데 지어준다. 그것이
다름 아닌 유대인계 영국인 사회였다는 점에서 작가는 주변인의 시선을 온전히 유대인들의 문제에 쏠리게
한다.
나
역시 유대인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그들의 문제(Finkler Question)를 바라보고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다만
이스라엘의 역사와 현재도 발생하는 하늘만 열린 감옥. 가자
지구에서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뿌리 깊은 갈등과 몇 년 전 이 지역에 전쟁이 발생했었던 기억들을 유추해 볼 때, 이
소설은 아마도 이스라엘에서 발생하고 있는 지역·문화·인종
간의 갈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비 이스라엘계의 유대인들의 하나의 관점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3. 소설 속으로 좀 더 들어가보면, 의지할
곳 없던 줄리언을 유일하게 받아주었던(친구. 샘
핑클러, 그리고
친구이자 멘토. 리보르
세프치크 , 그리고
애인 헤프지바) 영국
유대계의 작은 사회에 편입되어 유대인들의 소속감을 느끼며 안정을 찾으려 한다.
그리고
줄리언이 유대인을 통칭하여 일컫는 단어.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핑클러는 줄리언과 반대로 유대인 사회를 탐탁치않게 여긴다. 불륜을
저지르며, 부끄러운
유대인 모임을 만들어 활동한다. ‘부끄러운
유대인’은
이스라엘 인들이 팔레스타인 지방을 소유했던 아랍인을 무자비하게 공격한 것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결성된 단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두 사람의 문제(물론, 리보르
헤프지바의 여정도 포함)를
함께하는 소설의 결말은 다소 보수적인 쪽으로 기운다. 작가는
자신에게 지워진 한계를 초월하려는 유·무형의
노력을 무참히 짓밟는다. “당신은
어쩔 수 없는 영국인이고, 유대인에
불과해!”라고
말이다. 그들에게
진보는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사건은 이스라엘 그들만이 풀 수 있는 숙제라고 엄숙히 경고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멘토 리보르가 느꼈을 실망감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유대인의
사회로 편입하고자 했던 줄리언에게서 반유대주의자의 전형적인 특성이 나타나고, ‘부끄러운
유대인’의
단체를 이끄는 샘 핑클러의 의도가 순수한 것이 아닌 단순히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용되는 것도 모자라 본질적으로 핑클러는
‘부끄러운
유대인’이
비난하고자 했던 바로 그 부끄러움의 상징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