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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마뇽 - 빙하기에서 살아남은 현생인류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김수민 옮김 / 더숲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1. ‘아프리카 이브’. 아프리카 대륙에서 탄생한. 그들의 진화과정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화산폭발로 말미암은 극악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초인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현생인류의 조상.크로마뇽인은 생존을 위해 먹이를 따라서 유럽대륙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그렇게 그들은 혹한의 환경에 차츰 적응해나갔다.
37.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역사상 중대한 시점이면서도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시기인 10만 년 전과 5만 년 전 사이의 어느 한 시점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현대인과 같은 완전한 인지능력을 발달시켰다는 것이다.
그 이동의 결과. 4만 년 전 빙하시대. 그 과거의 어느 한 장소에서 크로마뇽인과 네안데르탈인은 우연히 마주쳤다고 한다. 이 마주침의 순간. 두 종의 시선이 서로 마주치는 순간을 <크로마뇽>은 극적으로 그려냈다. 그렇지만 시선이 마주친 두 인류의 종 가운데 크로마뇽인은 살아남아 현재 인류의 조상이 되었고, 네안데르탈인은 지구 상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고 한다.
183. 그들(크로마뇽인)은 냉혹하고 건조한 지역에서 생명을 유지하는 길이 정보를 공유하는 것에 달려 있음을 잘 알기 때문에 누구도 정보를 자신만 알고 있으려고 하지 않는다. 속도와 이동성, 지속적인 혁신, 계획, 그리고 독창성이 현생인류가 아프리카에서 근동 지역으로 집단이주를 하는 동안 호모 사피엔스가 생존할 수 있게 해준 자질이었다.
206. 그들(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가 가지고 있었던 상상력과 자아인식 능력이 부족했다. 크로마뇽인 사회에서 볼 수 있는 현생인류가 가진 사전계획능력과 모든 복잡한 사회 메커니즘이 없었다. 오리냐크기 사람들(크로마뇽인)은 사회적 상호관계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수명이 더 길어진 큰 무리의 일원으로 생활했다. 기술혁신은 흔한 일이었고 지식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쉽게 전달됐다.
네안데르탈인은 사라졌고, 크로마뇽인이 남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의 답(혹자는 ‘바늘’이라는 한 단어로 생존의 모든 이유를 말하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전혀 바람직스럽지 않은 요약처럼 여겨지는)이 바로 브라이언 페이건의 <크로마뇽>이 내세우는 핵심 내용이고, 그것에서 더 나아가 저자는 크로마뇽인의 발자취를 추적하고, 일부 장면을 소설처럼 복원시켜 독자들의 눈앞에 펼쳐놓는다.
다만, 아쉬운 것은 눈앞에 펼쳐지는 그들의 삶은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유적과 과학자들의 탄소연대측정에 전적으로 의존한 삶의 복원이고, 책에서 드러나는 이와 같은 불완전함은 어쩔 수 없는 결과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흥미를 위해서라면 아예 소설처럼 복원해놓은 장면만을 나열하면 좋았을 텐데, 복원하게끔 했던 원인을 제공했던 조각들까지 <크로마뇽>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 호락호락한 책은 아니었다.
2. 나는 단순한 이유에서. 어쩌면 아무런 이유 없이. 호모 사피엔스에 속하는 현생인류이자 우리들의 선조. 크로마뇽인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가벼운 마음가짐으로서의 시작이었다. 그래서일까. 몇 만 년 전 빙하시대에서 살아남은 크로마뇽인의 삶으로부터 무언가 배울 점을 찾아보자는 <크로마뇽>의 교훈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불평을 했다.
‘많은 위인. 유명인의 삶을 배우는 것도 모자라 생존만을 위해서 살았던 그들의 삶을 배워야 하는가?’, ‘생존이라는 단 하나의 의미 말고, 어쩌면 다른 것(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 즉, 삶의 의미)을 추구해야 할 우리가 과연 그들의 삶을 배우기 위해 기를 쓰며 달려들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빙하시대를 살았던 인종의 생존기록을 배워야 할 만큼 오늘의 사회 모습이 빙하시대의 얼어붙은 빙하처럼, 차가운 눈빛을 가진 이름 모를 사람들의 모습에서 현실을 인정할 수밖엔 없지만 그래도 조금은 삐딱해졌다.
배우려 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인 그들의 삶의 기록은 내 기억 속으로 이미 들어와 버렸다. 억지로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 크로마뇽인의 생존기록을 고통스럽게 탐색하는 행위보다 차라리 이런 방식처럼. 이런 느낌처럼. 책이 남긴 기록을 내 기억 속으로 자연스럽게 흡수하여 그들을 반추하려는 지금 이 순간의 자그마한 노력과 행동이 개인적으로는 더 보람 있는 결과물이 아닌가? 라는 자기 위안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