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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몬 라
빅토르 펠레빈 지음, 최건영 옮김 / 고즈윈 / 2012년 5월
평점 :
1. 냉전 시대에 달이란 무엇이었을까? 대항해시대. 유럽 열강이 제국을 건설하려고 하는 경쟁심에 착취당해야 했던 미지의 아프리카 대륙. 그것과 같았을까? 역사가 새겨놓은 기억처럼 오늘날에도 달을 정복하면 그들의 이데올로기로서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섣부른 믿음과 꿈이 미국과 소련 양강의 시선을 우주로 향하게 하였다. 그 시대를 살았던 당사자에게 ‘달’이 그들의 이상이자. 구세주였을지도 모르겠다.
달 탐사가 끝난 후.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우주탐사의 계획은 현재까지도 여전히 진행 중인) 인공위성의 개발에 만족하고 있는 지금 현재의 시점으로만 바라본다면 그들의 경쟁은 새로운 땅. 새로운 자원. 미지의 생명체를 발견하려는 기존의 목표에 미치지 못했고, 냉전 시대에 이뤄놓은 이데올로기의 전투력을 세계시민에게 뽐내기 위한. 마치 어린아이와도 같은 치기어린 다툼이 되고야 말았다.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했던 사회주의자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희생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돼지 같은 자들은 냉전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거짓 이상에 젖어 우주를 동경해왔던 오몬 라와 같은 소년들의 소망을 이용한다. 영웅이라는 이름으로 떠받들겠다고 하지만, 소년들을 대하는 돼지들의 모습은 영웅을 대하는 것이 아닌 희생양을 대하는 모습과 같다. 그들은 철저히 오몬 라 외에도 1차, 2차, 3차 로켓 분리대에 타고 있던 어린 목숨을 착취한다.
빅또르 올레고비치 뻴레빈의 <오몬 라>는 이처럼 부조리의 늪에 빠져 버린 사회주의의 현실을 폭로한다. 자본에 착취당하지 않기 위해 건설하고자 했던 유토피아. 유토피아 사회를 추구하려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또 다른 착취가 이루어지는 역설이 존재한다.
이 착취는 사회주의 체제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본성에 따른 착취가 됨을. 그러므로 유토피아의 한계는 체제의 문제가 아닌. 인간 본성의 문제라는 <동물농장>에서 배웠던 기존의 입장은 변하지 않는다. 하여튼 간에 인간 본성의 문제 혹은 사회주의의 모순만을 소재거리로 삼았다면 <오몬 라>는 평범한 소설로 전락했을 것이다.
2. 최인훈의 <바다의 편지>를 봤을 때, 인간이라는 존재의 해체 순간. 죽음을 뼈와 살에서DNA의 분해로 해체되는 과정과 마지막에 남겨진 어머니의 이미지로서 그려내는. 한정적인 공간 안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섣불리 예상 조차 할 수 없었던. 태초의 모습을 바라보게 했던 어마어마한 충격에 휩싸였던 기억을 꺼내본다.
그리고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기억력(능력)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이기적인지 그리고 그 불완전함으로서 만들어내는 혼자만의 완벽한 현실을 목격할 수 있다. 그리고 파트리스 라누아의 <나비들의 음모>에서도 마찬가지로 불완전함은 그려진다. 그리고 이 불완전함을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능력이 인상깊었다.
빅또르 올레고비치 뻴레빈의 <오몬 라> 역시. 인간 존재를 탐구하는 저자이자 1인칭 화자가 풀어내는 의식의 흐름과 의식의 내면을 서술하고 있는 방식이 돋보인다. 이 방식을 단순히 의식의 흐름이라기 보다는 달에 성공적으로 착륙한 오몬 라의 뇌리에 모스크바의 풍경이 펼쳐지는 그래서 달과 지구의 그 공간적인 거리가 제로로 수렴하는 모습처럼 의식의 확장과 그 표현이 두드러진다.
한편, 빅또르 올레고비치 뻴레빈의 <오몬 라>를 훌륭한 소설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최인훈, 불리언 반스, 파트리스 라누아 등의 소설(언급한 소설에 한함)이 부조리의 폭로와는 관계 없이 어떤 벽을 마주한 상황에서의 인간 존재의 탐구에 탐닉하고 있는데 반해서 뻴레빈은 사회 부조리에서 생성된 어떤 의식과 그 의식에 대한 확장으로서 그 둘을 연관지어 발전시켜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음사 모던클래식은 아마도 이 작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3. 마지막으로 나는 이 소설을 읽음으로써 좋은 소설을 보는 눈을 더 기른 것 같고(책 뒤에 첨부한 해설자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단순히 역사적 현실과 처절함만을 나열하는데 만족하는 소설이 아닌. 이런 방식(부조리와 부조리를 겪는 인간 내면의 흐름, 그리고 무한대의 확장)처럼 연결성이 분명하고 뛰어난 소설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스토리의 연결이 확연하지 않아도, 의식의 서술로 텍스트에 돌풍이 몰아닥쳐도 무조건 용서할 준비가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