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의 탄생 - 최초의 멘토가 가르치는 정의와 자유, 지도자의 덕목
프랑수아 드 페늘롱 지음, 강미란 옮김 / 푸르메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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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서양 문학의 발원지 같은 작품이다후대의 사람들은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읽으며 많은 영감을 받았고대표적으로 단테의 신곡괴테의 파우스트라는 명작이 호메로스 서사시의 공백이나 형식을 빌어서 탄생되었다는 이야기를 저번에 한 적이 있다.

 

인터넷 서점의 분류기준으로 인문학에 자리를 잡은 책 18장 중 초반부 10장까지 발췌하여 정리해놓은 책<멘토의 탄생>이라는 자계서 같은 제목이 붙은 책. 원제 <텔레마코스의 모험> 정확히 분류하자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에서 소개되었던 명사프랑수아 드 페늘롱의 계몽소설로 볼 수 있다.

 

계몽소설이라는 요소와 주인공과 주인공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주위에 등장하는 조건으로 이 책과 비슷한 느낌의 소설을 아는 한도에서 찾아본다면 대략 볼테르의 <캉디드>나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시리즈 정도를 들 수 있겠다.

 

2. 내용에 대하여 이야기하자면 <멘토의 탄생>은 오디세우스(율리시스)가 자신의 고향인 이타카로 돌아오지 못했던 세월 동안. 왕국을 노리고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와 결합하려는 무리가 있었는데오디세우스의 아들인 텔레마코스가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직접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모험을 페늘롱의 상상력으로 꾸며낸 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텔레마코스의 곁에는 노인의 모습으로 변하여 그를 보좌한 멘토가 있었는데그 멘토가 <멘토의 탄생>에서 이야기하는 최초의 멘토이며그 신은 다름 아닌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아테나)였다보너스로 사랑의 비너스(아프로디테), 그녀의 아들 큐피트(에로스), 넵투누스(포세이돈)는 오디세우스에게 적대적인 신들이었다.

 

노인의 모습으로 분한 멘토는 그녀의 칭호에 걸맞게 텔레마코스에게 지혜와 이성을 강조한다모든 가치의 최우선적 기준이 이성이어야 함을 가르친다전쟁을 싫어하고,관용과 중용의 미덕을 설파한다그리고 고난이라는 경험과 그것의 극복을 중요하게 여겨 때때로 텔레마코스를 홀로 남겨두고 지켜보기도 한다.

 

3. 이 책을 보면 이성적이며 지혜로운 사람들이 사는 나라로 베티카라는 곳이 나오는데그 나라의 사람들은 자기가 필요한 이상의 것에 절대 욕심을 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이곳은 캉디드에게 다이아몬드 산의 다이아몬드를 마음껏 가져가라고 했던 마야인이나유토피아에서 설명했던 이상적인 국가관과 흡사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베티카의 사회구조가 오늘의 자본주의 국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는 것이다정말 공산주의적인. 폭군이 지배하는 잘못된 공산주의가 아닌 이건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유토피아적인 공산주의 사회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멘토의 탄생>에서 주장하는 이성과 지혜의 힘이 틀렸다는 말로 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다우리가 미네르바의 가르침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 가르침은 보편적인 '선'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4. 만약, 페늘롱이 생각하는 사회가 가능했다면 멘토가 주장하는 가치와 완전히 상반된 성격을 가진 마키아벨리즘이 애초부터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설 수 없었을 텐데실제로는 마키아벨리즘의 필요성도 용인하고 그것을 이용하려는 분위기도 만연해있다.

 

이처럼 씁쓸하게 다가오는 현시창은 우리로 하여금 들려오는 모든 목소리를 차단하고 마냥 홀로 욕심을 버리고 착하게 살라고 강요할 수 없게 되었다. 탐욕을 쫓는 이들에게는 멘토와 텔레마코스의 동맹군이 아드라스토스와 벌인 대항전처럼 우리도 단호하게 그들을 맞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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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하일지 지음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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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손님은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책 제목이 아니라 소설 속의 손님이 그렇다는 소리다여기서부터 손님을 맞은 등장인물과 독자들은 손님이 대체 왜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하원이라는 지방을 찾아왔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다그리고 경계심과 함께 책장을 넘긴다.

 

경계심을 갖게 된 원인은 그 손님이 한국어를 전혀 사용할 줄 모르는 외국인이기 때문이다. (진실은 이와 다르지만…….) 돈도 많은 외국인이기 때문이다게다가 이혼한 남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님>의 남성들은 젊고 팔팔한 여자를 후리러 왔나 보다. 그리고 여성들은 혹시 나에게 반해서 여기까지 찾아온 것은 아닐까. 어린이는 엄마를 남에게 빼앗기기 싫은 마음각자 손님이 등장함으로써 생겨난 자신만의 편견을 가슴에 품고 손님을 대한다. 그런 분위기가 겉으로 잘 드러난다. 

 

나 역시 그런 의문을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돈 많고 영어 잘하는 외국 국적의 남성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무기가 되는그 스펙으로 손님은 무엇을 할지 궁금했다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돌발의 연속이었다이상한 전개였다. 그 외국인은 그들과 나에게는 손님의 입장이었지만, 괜찮다며 미련하게도 모든 바가지를 순순히 뒤집어썼다.

 

그런 담대한 손님과는 달리스스로 굴종적인 내면을 독백하고손님을 대하는 어린 여고생에게 굴종을 강요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흘리고그것도 부족해서 밖으로 까발리는 허표허순허도. 삼 남매의 모습이 극명하게 비교가 된 나머지 아주 실망스럽게 느껴졌다.

 

2. <손님>의 하루는 너무 빨리 지나갔다. 신기루 같은 하루였다손님은 이 하루를 하원에서 허씨 삼 남매와 허순의 동거남과 허순의 학교제자들. 허순의 아들과 함께 보냈다손님은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서울로 떠나는 버스에 앉아 눈물을 흘렸다.

 

이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시간이라는 장벽때문에 그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멀어져 버린 간극에 대한 원통함이었을까?

 

가혹한 환경이 그들을 불행하게 만들었고 그 불행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그들에 대한 가여움이었을까?

 

불행을 짊어진 그들이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돈. 그것이 굶주림이라는 부작용이 되어,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내놓으라고 할 정도로 그들을 타락시킨 것에 대한 또 다른 의미의 가여움이었을까?

 

이 모든 원통함과 가여움이 어머니가 겪었던 고통. 즉, 그를 입양 보낸 후 어머니가 견뎌야 했던 삶. 그것이 허순이 손님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는 장면을 통해 오버랩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감히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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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박한 파국 - 슬라보예 지젝의 특별한 강의
이택광.홍세화.임민욱 지음 / 꾸리에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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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임박한 파국읽기를 마치고나는 무엇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마무리 지어야 할지 솔직히 모르겠다아마도 지금부터 쓴 글들은 나의 오독의 절정을 보여주는 결과물이 될 것이다내가 무엇을 쓴 것인지도 모를 그런 오독.

 

책을 읽으면서 찾아왔던 생각들로 빼곡하게 채워넣은 여러 문장의 글줄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그것보다 더 정확한 개념을 옮겨놓고 싶다는 오기가 생긴다아주 넓은 터널 입구를 활개치며 돌아다니지 못하는 편협함과 부족함이 스며든다. 공부가 필요하다.

 

2. 우리는 이야기한다. 이데올로기의 종언. 그런데 사실 이건 웃기는 소리다그러므로 지젝의 의견은 옳다. 특히, 우리나라의 실정은 이데올로기의 끝이 아니라 승자와 패자가 나뉜 휴전상태.

 

승자의 위치에 있는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정치적인 이름으로 우파 보수는 자신들에게 위치가 찾아올 때마다패자의 역습을 경고한다. 이런 경고를 학습해온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우파좌파중도에 상관없이 승자의 이데올로기적인 개념이 스며들어있다그래서 이데올로기의 자극이라는 약발이 기가 막히게 잘 먹힌다.

 

이데올로기의 영향은 더 이상 없다. 이 말 자체도 이데올로기적인 말이다.

 

3. <임박한 파국> 중에서 지젝이 말하고 있는 함축적인 거짓말이라는 요소, 일반 대중들이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아프리카 빈민을 돕는다고 생각하는 착각이나분리수거를 통해 환경보호를 실천한다는 오류들을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당선인이 잘 활용했던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선거 하루 전날도올 김용옥 선생은 인터넷 공간에 <혁세견문>을 발표했다그 내용을 살펴보면 민생은 스스로 그들의 문제를 해결했었다정치는 민생을 해결하지 못한다.” 대통령 한 사람의 능력으로 절대 민생을 살리지 못한다. 진실은 국민이 스스로 민생을 살린다.는 뜻의 문장이 있었다. 이것은 참말로 여겨진다. 

 

그런데 박근혜 당선인은 국민에게 자신이 직접 민생을 살리겠다고 말했다그리고 민생을 살리겠다는 메시지에 호응하여 과반수의 사람들이 그녀의 손을 들어주었다어쩌면 투표한 이들이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고 투표함에 넣는 순간 내 손으로 민생을 살렸다는 함축적인 거짓말이 발현되었을 것이다.

 

4. 인간은 절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다.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말이다그래서 하나의 체제 유지란 불가능하다왜냐하면, 인간과 인간 사이에 불평등의 간극은 점차 벌어지고질투를 유발하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임박한 파국>이다.

 

5. 이 세상은 희망과 절망이 궤를 함께하여 돌아간다고 볼 수 있다그래서 지금의 세상은 무조건적인 비판과 체제 부수기는 통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식인이라면 비판적인 관점으로 현실을 조망하고좌파와 우파의 이데올로기적인 개념. 허상과도 같은 형이상학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서 가장 중요한 현실에 문제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정립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실용정신다운 실용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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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쇼크 - 구글과 페이스북, 그들은 어떻게 세상을 통제하는가?
카르스텐 괴릭 지음, 박여명 옮김 / 시그마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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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SNS 쇼크>의 원제는 독일어로 GEMEINSAM EINSAM이라고 한다번역된 책을 읽기 전에 원서의 제목과 뜻을 미리 인지하고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그냥 읽기 시작했다가 부랴부랴 이 단어의 의미를 찾아보았다.

 

함께지만 외로운개별 단어가 각각 '공동의'와 '고독한' 이라는 형용사인데조합하니 목차에 있는 '함께지만 외로운' 이라는 머리말과 일치했다.

 

2. 제목을 되새김질하니 뭔가 쓴 것을 다시 먹는 기분이다SNS의 세계 속의 사람들 대부분이 한마음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결과는 외로웠다는 점에서 아주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이 책이 다루는 <쇼크>의 정체 중에서 SNS 속 목소리의 진정성에 대한 부분은 이 책의 내용 일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일단 요즘 느끼고 있는 생각이기 때문에 살짝 기록해두고 넘어가기로 한다.

 

3. 이 책은 구글트위터페이스북애플그리고 국내로 확장하면 카카오톡과 네이버,다음네이트와 같은 소셜 기업이 달성해야 할 목표가 누리꾼들에게 편리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제공하기 위함이 아니라 수익창출이며그것을 광고효과의 극대화를 통해 달성하려는 분명한 의도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음을 밝힌다.

 

광고수익 창출을 위해서 엄청나게 큰 데이터베이스 공간을 구축한 소셜 기업들은 사용자들이 남긴 웹 기록의 발자국을 추적하여 개인의 성향을 파악하고, 판매할 물건을 쌓아놓고 기다리는 기업에게 적절한 사용자에 대한 정보를 무단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방식의 마케팅 기법은 빌 게이츠가 쓴 <생각의 속도>라는 책에서 언급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SNS 쇼크>가 주장하는 것은 빌 게이츠가 생각하는 편리성이라는 장점에 숨겨진 그림자에 대한 부분이었다.

 

공개하고 싶지 않은 개인정보가 인터넷을 이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사용자도 모르게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 기업의 막강한 영향력 아래에서 취합되어그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구성된 광고페이지가 사용자들이 입력한 검색결과 사이에 노출되는 현상을 비판하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가 비판받아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현실에서는 대하는 상대방에 따라 여러 성향을 띄는 개인의 인격적 특성을 무시한 채인터넷 세계의 인격체를 그들의 기준에 따른 데이터로 저장축적하여수학처럼 계산 가능하며, 가공할 수 있는 도구들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4. 결국, 이런 상태까지 진행되면 <가장 인간적인 인간>이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서 구글과 페이스북이 짜놓은 매트릭스를 경계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큰 설득력을 얻게 된다.

 

왜냐하면, 개인정보의 유출뿐만 아니라 소셜 기업들이 사용자의 관심사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쳐놓은 각종 하이퍼링크의 덫은 무의식적으로 사용자들에게 클릭을 강요하게 하여 시간을 소모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이퍼링크를 넘나들며 인터넷을 즐기는 행위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정보를 주입하는바그 정보들이 단기기억에서 장기기억으로 옮겨지지 못하는 비극을 초래하여몇 시간 뒤에 내가 인터넷으로 무엇을 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바보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이용자들에게 소셜네트워크 내에서 얻은 정보만을 가지고 생각을 확장하여 새로운 콘텐츠를 조립할 시간적 여유도 주지 않고소셜기업들은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 우리들에게 갈취만 하고 도망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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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색인
이상문 지음 / 책만드는집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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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선이 끝났다그리고 결과에 대해서 많은 말들이 오간다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바로 하루 전의 트위터에는 갑작스런 경험론적 관점에서의 논쟁이 불거졌다경험해보지 않았으면 그들에게 뭐라고 할 수 없다는 논조의 글이었다.

 

나는 이 글을 경제성장을 이뤄낸 대통령의 향수에 기인한 선택을 무턱대고 비난하지 말아 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사실 투표결과에 대하여 비난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비난하려고 하지도 않았다우리에게 부여된 과제는 누군가에게 책임을 넘기는 것이 아니라 양극화된 투표결과에 대한 세대 간의 이해라고 생각했다.

 

2. 이상문의 <황색인>은 요 며칠 내가 가지고 있던 고뇌를 어떻게 알았는지 톱니바퀴를 맞추듯 적당한 시기에 찾아와주었다. <목수의 연필>의 커버에 새겨진 문구어떤 역사책보다 이 소설을 읽는 것이 역사를 이해하는데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문구가 <황색인>의 책장을 넘기는 내내 떠올랐다.

 

베트남의 역사가 궁금해서 관련 서적을 검색해봤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황색인>의 액자소설화 된 일부분에서 월남의 역사를 고스란히 옮겨두었기 때문이다그것은 외세의 힘겨루기 속에서 왕정복고를 이루려 했던 띠엔의 쭝똑마우홍이라는 단체가 제 삼자인 박노하 병장에게 의도적으로 학습시키려 했던 내용이기도 했다.

 

3. 프랑스의 식민지로 살았고세계대전이 종료된해방 이 후에도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그들의 역사는 우리가 일제의 지배 속에서 살았고, 해방 후 미국과 소련의 이데올로기 싸움과 그 대립을 이용하여 권력을 움켜쥐었던 역사에 대한 환유적인 장치로 보였다.

 

띠엔의 쭝똑마우홍은 이데올로기로 양분된 권력의 틈바구니에서 상부의 지시에 따라 의미도 모른채 우왕좌왕 헤매던 많은 사람들에게는 민족자결주의와 같은 진실된 등불이라고 생각된다다소 과격하긴 했지만 말이다.

 

만약그 등불이 꺼지게 된다면 건널 수 없는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영문도 모른채 마치<암흑의 핵심>에서 묘사한 것과 똑같은 풍경을 자신의 손으로 재연해야 할 것이고그 충격으로 비극적인 삶을 마감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도 엿보였다.

 

4. <황색인>에서 박노하 병장은 이러한 경고를 보았다그는 다행스럽게도 베트남의 역사를 이해하려고도 노력했다그들의 역사와 그들의 투쟁을 이해하고는 간섭하지 않으려고도 했다. 그들 모두를 적과 동지가 아닌 인간으로 바라봤다.

 

타자를 바라보는 동안 자신에게 내재된, 태생에 관련한 비극적인 진실도 알아버렸다.그렇지만 그는 진실에 맞서기로 했다. 그는 계속해서 진실이 적힌 편지지를 읽을 것이었다전진하고자 하는 의지가 보였다이것이 <황색인>이 전하고픈 교훈적인 메시지였다.

 

5. 하지만 현실은 이상을 따라와주지 못한다. 그것은 불변의 진리다. <황색인>이 비추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있다. 박노하 병장의 경우보다 훨씬 더 높은 가능성의 경우를 지닌.  직접적으로 전투에 참전했던 군인의 경우를 유추해본다.

 

그들. 즉, 참전 군인 다수의 정신은 황폐해져 간다극한의 공포와 마주한 그들의 뇌는 파충류화 되어간다. 그들 중 일부는 허만호 병장처럼 되었고, 또 다른 이는 그곳에 마취제를 바르면서 라이따이한을 잉태시켰다

 

이러한 아픔을 공유하는 세대가 바로 50대 이상의 세대인 것이다. 누군가의 판단에 의해 강제로 파견되었던  그들은 그렇게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여전히 그들이 짜놓은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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