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손님은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책 제목이 아니라 소설 속의 손님이 그렇다는 소리다. 여기서부터 손님을 맞은 등장인물과 독자들은 손님이 대체 왜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하원이라는 지방을 찾아왔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다. 그리고 경계심과 함께 책장을 넘긴다.
경계심을 갖게 된 원인은 그 손님이 한국어를 전혀 사용할 줄 모르는 외국인이기 때문이다. (진실은 이와 다르지만…….) 돈도 많은 외국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혼한 남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님>의 남성들은 젊고 팔팔한 여자를 후리러 왔나 보다. 그리고 여성들은 혹시 나에게 반해서 여기까지 찾아온 것은 아닐까. 어린이는 엄마를 남에게 빼앗기기 싫은 마음에. 각자 손님이 등장함으로써 생겨난 자신만의 편견을 가슴에 품고 손님을 대한다. 그런 분위기가 겉으로 잘 드러난다.
나 역시 그런 의문을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돈 많고 영어 잘하는 외국 국적의 남성.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무기가 되는. 그 스펙으로 손님은 무엇을 할지 궁금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돌발의 연속이었다. 이상한 전개였다. 그 외국인은 그들과 나에게는 손님의 입장이었지만, 괜찮다며 미련하게도 모든 바가지를 순순히 뒤집어썼다.
그런 담대한 손님과는 달리. 스스로 굴종적인 내면을 독백하고, 손님을 대하는 어린 여고생에게 굴종을 강요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흘리고, 그것도 부족해서 밖으로 까발리는 허표, 허순, 허도. 삼 남매의 모습이 극명하게 비교가 된 나머지 아주 실망스럽게 느껴졌다.
2. <손님>의 하루는 너무 빨리 지나갔다. 신기루 같은 하루였다. 손님은 이 하루를 하원에서 허씨 삼 남매와 허순의 동거남과 허순의 학교제자들. 허순의 아들과 함께 보냈다. 손님은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서울로 떠나는 버스에 앉아 눈물을 흘렸다.
이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시간이라는 장벽때문에 그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멀어져 버린 간극에 대한 원통함이었을까?
가혹한 환경이 그들을 불행하게 만들었고 그 불행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그들에 대한 가여움이었을까?
불행을 짊어진 그들이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돈. 그것이 굶주림이라는 부작용이 되어,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내놓으라고 할 정도로 그들을 타락시킨 것에 대한 또 다른 의미의 가여움이었을까?
이 모든 원통함과 가여움이 어머니가 겪었던 고통. 즉, 그를 입양 보낸 후 어머니가 견뎌야 했던 삶. 그것이 허순이 손님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는 장면을 통해 오버랩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감히 짐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