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과 전장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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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그 애가 노상 하는 말이 이 세상에는 누구나 바라는 그 파랑새가 없다는 거예요. 치루치루 미치루는 산을 넘어 파랑새를 찾아갔다가 못 찾고 집에 와서 파랑새를 보았다 하지만 그건 바보였을 거라는 거예요. 제일 바보들이 회색새를 파랑새라 믿고 살고, 그 다음 바보들이 때때로 회색 새를 보면서 파랑새로 볼려고 애를 쓰고, 그 다음 눈이 바로 박힌 사람들이 제대로 회색으로 본다는 거예요. 제일 바보가 인생을 속아 살아서 병신이지만 저 자신은 좋고, 다음은 비겁하고 미련스런 인생을 살고, 세 번째는 숫제 아무것도 없다는 거예요. 진리는 공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 애는 세 번째에 속하니 자기는 아무래도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거죠." 

 

1. 파랑새를 언급하는 단락의 말처럼. 만약, 파랑새가 없었더라면 지영과 가화는 이름 모를 누군가처럼 삶의 의지를 단념하고. 순순히 세상을 떠났을것이다. 그런데 이 두 여인은 전쟁 한복판에서 아주 억척스럽게 삶을 이어나간다. 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들이 지키고 싶었던 새로운 파랑새가 있었던 것일까?  

 

지영의 경우에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이 오히려 더 삶의 의욕이 없어보였다. 이미 그때 당시의 대한민국은 해방된 이후에도 가부장의 권위가 지속되던 사회였었고, 그러한 세상에서 그녀가 자주적으로 무언가를 도모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혼인을 한 몸이고, 아이까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굴레를 벗어던지고, 나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떠나. 조용히 살기로 마음먹는다.   

 

그런데 6. 25 전쟁이 발발하면서부터 <시장과 전장>의 본격적인 막이 오른다. 과거와 현재를 지탱하던 모든 가치관이 힘을 잃어버리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자신과 가족들의 생존 가치 그 하나만이 남게 되었다. 이 말은 그녀가 애를 쓰면 이룰 수 있는 무언가가 생긴 것이다. 그 무언가는 바로 자신의 가족들의 안위였다.  

 

한편, 가화는 목숨을 잃기 직전 기훈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이 사건으로부터 <시장과 전장>의 어쩌면 가장 중요한 부분이 시작되었다. 회색새가 가득한 하늘에서 지영이 발견한 새로운 파랑새가 가족이었고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다면, 가화가 발견한 파랑새는 흥미롭게도 한 남자였고, 그 남자에게 원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지영과 가화는 각각 전쟁 속에서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을 찾은 인물들이지만. 두 사람이 파랑새를 찾기 위해 내디뎠던 방향에는 차이점이 있었다. 지영은 순간순간마다 이성적인 판단을 하려고 애썼다. 그녀는 공산주의를 기피했고, 남편을 빨갱이로 몰아서 수감시킨 대한민국의 정치 체제도 증오했다. 

 

하지만 가화는 공산주의나 자본주의 양쪽을 고려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 남자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곳으로 발걸음을 했을 뿐이다. 아주 본능적이다. 그렇지만 그 본능이 내린 선택을 두고 그녀를 바보라고 부를 수는 없을 듯하다. 가장 인간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기훈은 자신을 흔들리게 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단호했고 냉소적이었다. 잔인함과 온화함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스승의 말처럼 시인 같은 사람이었다. 기훈은 자신의 힘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커뮤니스트. 즉,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소설 내내 그의 공산당 활동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하지만 그의 스승 석산 선생. 그리고 한솥밥을 먹던 장덕삼 같은 인물과의 사상에 대한 논쟁을 통해서 극단주의자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그리고 극단주의를 직접 행하는 것은 기훈과 덕삼 같은 부르주아 출신의 지식인이 아니라 뼛속까지 프롤레타리아인 노동자의 본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즉, 맨 처음 인용한 파랑새의 단락을 기준으로 봤을 때, 회색새를 그냥 파랑새로 믿는 사람들이 정말 무섭다는 것이다. 이유 없이 맹목적으로 행하는 자들 말이다. 중국의 홍위병처럼…. 기훈은 그들의 설득력 있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자신이 평생 배우고 행동해왔던 근본적인 가치에 그런 무서운 오류를 인정하는 순간 그의 삶은 헛된 삶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살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장덕삼과는 달리 최후의 순간을 준비한다. 그러나 그를 쫓아온 가화는 그에게서 멀리 떠나보내고 싶었다. 

 

이처럼 <시장과 전장>의 세 인물. 지영. 기훈. 가화의 인생에서 우리는 회색새 밖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그 상황에서도 파랑새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초인적인 모습에 담긴 숭고함. 그리고 위대함을 볼 수 있었다. 

 

자살을 선택했던 이름 모를 누군가처럼 이 세상에는 파랑새가 없다는 절망 앞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 만이 볼 수 있는 새로운 파랑새를 발견하여. 전쟁의 한 가운데 팽배한 회의주의를 보기 좋게 깨뜨려버린 인물은 지영과 가화였고, 회색새를 보며 자신이 보는 것이 파랑새일 것이라고 믿으려 애쓰다가 마지막에서야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깨닫는 인물이 기훈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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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데이터가 만드는 세상 - 데이터는 알고 있다
빅토르 마이어 쇤버거 & 케네스 쿠키어 지음, 이지연 옮김 / 21세기북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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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떤 책은 디지털 환경의 복잡하고, 무한한 정보의 흐름에 취해서 정작 기억해야 할 것을 잊어버리는 상태를 걱정한다. 그래서 디지털 치매라는 용어를 만들어서 디지털 환경과의 거리를 유지하라고 권고한다. 한편, 어떤 책은 당신에게 다가오는 엄청난 데이터를 낭비하지 말고, 그것을 경제적으로 이용하라고 권유한다. 우리는 이러한 양측의 주장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빅 데이터가 만드는 세상>은 후자에 관한 주장을 받아들이는 책이다. 이 책은 데이터, 데이터 분석 기술, 데이터 활용에 대한 아이디어. 이렇게 세 가지 요소를 통해서 빅 데이터 세상이 제공하는 정보를 받아들이라고 주장한다. 

 

데이터를 활용하여 창출해낸 결과는 인과성보다는 상관성. 즉, 데이터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알고자 하는 것에 대한 원인보다는 결과에 중점을 둔 것이지만, 그 정도만 예측할 수 있더라도 많은 부분에서 심각한 문제 발생을 막을 수 있으므로 사회적으로 비용 절감 효과를. 그리고 데이터를 분석해서 소비자의 성향을 예측할 수 있으므로 마케팅 효과의 측면에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말한다.   

 

2. 빅 데이터를 만드는 데이터, 분석 기술, 아이디어. 세 가지 조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데이터라고 말한다. "IT 기술에서 중요한 것은 더 이상 'T'가 아니다. 'I'다. 왜냐하면, 데이터는 가공되지 않는 금광과 같기 때문이다." 라고 작가는 비유한다. 데이터의 보유와 다양성을 통해서. 분석가와 기획자들은 데이터를 수집할 당시 예측하지 못했던 2차적 문제에 관해서 예측할 수 있는 도구를 생성할 수 있고, 많은 데이터를 통해 예상 확률을 더욱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3. 빅 데이터로 모든 확률을 계산하고 해석하는 세상에 부작용은 존재한다. 그것은 인터넷에서 우리가 남기는 데이터 잔해를 통해서 자신도 모르게 나의 정보가 외부로 누출될 수 있고, 그러한 데이터 잔해의 분석 결과. 우리가 저지르지도 않은 미래의 범죄 가능성을 예상하여 우리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또한, 데이터를 맹신하는 사회적 환경과 자신의 성과라는 압력에 굴복하여 데이터를 조작하여 각종 비리를 저지를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데이터 세상의 부작용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인간적인 정의감에 호소하는 일밖에 없고, 데이터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도덕성에 호소하는 길밖에 없는 듯하니 통제와 규제라는 측면에서 좀 더 연구가 필요한 듯도 싶다. 

 

4. 나는 데이터 수집 필요성과 그것을 책과 연관 지어서 생각해본 적이 있다. 우리가 읽고 기억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유용한 구절들을 데이터 저장과 검색이 동시에 가능한 공간에 입력해두고, 필요할 때 검색 도구를 통해 추출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고, 나는 그것을 블로그를 통해서 할 수 있다고 봤다. 이미,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집필을 위해서 개인 공간에 유용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고 한다.

 

집필을 위해서가 아니라 책을 잘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도 자신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데이터를 저장할 필요가 있다. 책을 읽으면서도 사유를 일으킬 수 있는 데이터에 갈증을 자주 경험했었다. 문제는 그것을 수집하기 위해 걸리는 시간인데. 단순한 수작업을 통해서는 엄청난 제약이 있기 때문에 스캐너 같은 기구를 통해서 지금의 PDF나 전자책의 형식처럼 스마트폰에 이미지로 디지털화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한 글자씩 데이터로 처리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해 봤었다. 

 

5. 그것을 거의 완벽하게 이뤄낸 사례가 있다. 엘리엇 부가 쓴 <자살을 할까 커피 한잔 할까>라는 책이다. 이 책은 아주 유명한 작가들의 잠언을 수집해서 그것을 데이터로 만들었고, 하나의 키워드를 검색해서 나온 결과를 이어 붙여서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하나의 짧은 글을 창조해내는 작업을 수행했다. 

 

6. 역시.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이 블로그를 지금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가진 공간으로 만들어놔야겠다. 그런 생각을 해본다. 스캐너를 통해서 PDF 파일을 만들고, 그것을 키워드를 통해서 검색이 가능하게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더 생각해봐야겠다. 지금도 이러한 기능이 가능한지도 궁금하다.  네이버 책의 본문 검색 기능 같은 것을 원한다. 구글은 몇 천만권의 책을 스캔해서 키워드를 검색하면 그 키워드가 과거와 현재 얼마나 많이 쓰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south korea와 north korea나 korea, japan, china의 사용 빈도를 조사해볼 수 있다. 이 도구를 사용해서 남성과 여성의 입력 빈도를 분석하고 여성의 검색 증가 추세를 발견하고, 그것을 여성의 신분 상승이라는 결론으로 매듭짓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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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사랑 세계문학의 숲 32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김석희 옮김 / 시공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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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소설에서는 나오미라는 팜므파탈의 매력을 가진 여인이 등장한다. 일본 탐미주의 문학의 상징으로 불리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당연히 나오미가 풍기는 매혹적이면서도 성적으로 은밀한 아름다움이었다. 

 

작가와 동일시되는 일인칭 화자인 가와이 조지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날카로운 가시를 가진 장미를 대하듯이 나오미의 아름다움을 탐닉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치명적인 가시에 찔려 아파함으로써 아름다움의 실체는 형상화된다. 조지는 가시에 찔린 상처를 보듬을 겨를도 없이 계속 자신을 할퀴어주기를 갈구한다. 자기를 떠나지만 않는다면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를 마쳤다. 조지에게 있어서 나오미란 존재는 그러했다. 

 

2. 나오미. 그녀의 매력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본이 추종했던 모더니즘의 그늘이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들이 일제강점기의 시련을 겪을 동안. 그 당시 일본에는 그들을 강하고 부유하게 만들어준 서양문물에 대한 사대주의가 번성하여 모든 가치의 우선순위를 서양의 기준에 맞춰버리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세태는 그들이 즐겨 쓰는 '하이칼라'라는 상징적인 단어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겉으로는 낮잡아 부르나 모든 사람들이 하이칼라를 추구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다. 이처럼 전 사회가 사대주의 풍토에 길들여져버렸고, 뿌리 깊은 사대주의 덕분에 조지의 작은 키와 고르지 못한 치열, 그리고 황인종 특유의 누렇고 가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것에 대해서 심각한 컴플렉스가 생겼다. 

 

따라서 그는 서양인같이 하얀 피부와 고른 치열을 가진 나오미의 모습은 자신이 추구해야 할 이상향처럼 생각되었을 것이다. 그 순간, 조지는 자신이 가진 풍요로운 재산을 무기로 그녀를 성장시키고 소유함으로써 대리만족을 추구하려는 마음을 먹게 되었고 말이다.

 

3. 결국, 나오미의 음탕한 기질은 처음부터 자신의 컴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녀에게 접근한 조지가 불러온 자업자득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소설 사이에는 그녀의 출신 성분에 관해서 문제를 삼는 부분이 여러번 나오는데, 그것은 자신의 욕망이 잉태한 것에 대한 책임을 다른 곳에 돌리려는 수작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4. 개인적으로 <미친사랑>의 사랑이야기는 작가가 우려하는 것과는 달리 어처구니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본다. 당연히 그럴 수 있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경험으로도 알고 있다. 내면의 아름다움보다 외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다가 비극을 맞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으면서도 익히 깨달은 바도 있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 역시. 나오미와 조지의 방식처럼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적인 의미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래서는 안 될 사랑이라고 말하는 작가이자 화자 자신은 끝까지 책임져버리니 어떤 면에서는 무식하고, 또 어떤 면에서는 용감하다고도 할 수 있다. 어쩌면 그래서 이 소설의 원래 제목이 미친 사랑이 아니라 바보의 사랑이면서 미치광이의 사랑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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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도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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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는 말이 있다. 소설 <표류도>를 남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불륜이야기가 될 것이고, 나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로맨스가 될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불륜보다는 로맨스로 소설을 읽어주길 바라는 것 같아 보였다. 왜냐하면 <표류도>는 미혼모이자 불륜녀 강현회의 일인칭 시점에서 이야기를 그려내기 때문이다.

 

'나'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반드시 강현회라는 여인에 대한 많은 공감이 필요하고, 공감대가 무사히 형성되었다면 우리는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었던 한 여성의 인생을 반추해나가기 때문에 불륜녀라는 이미지는 어느 순간 기억에서 사라진다. 그 대신 거듭 찾아오는 시련에 절망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여인의 초상이 똬리를 틀고 앉는다. 그 아픔을 느꼈다면 그 순간부터 그것을 이겨내려고 하는 의지를 지닌 주인공으로 뇌리에 남게 된다. 

 

만약, <표류도>의 불륜의 이미지가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면, 이 소설은 사람들을 쉽게 통제하기 위해 암묵적으로 합의된 사회적 규범을 어기는 것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지닌 이야기가 될 것이다. 남의 남자를 탐하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아닐뿐더러. 그 조바심이 낳은 불안이 당신을 집어삼킬 것이라는 경고 말이다. 따라서 강현회의 삶은 인과응보의 성격이 짙어진다. 

 

2. 강현회 그녀는 참으로 아픔이 많은 여인이었다. 현회 뿐만 아니라. 광희의 인생 또한 참으로 비극적이었다. 과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살면서 아픔이 없었던 사람이 어디 있었겠느냐만 서도, 이렇게 한마디 말로 그녀들의 아픔을 이해하려는 것은 어찌 보면 무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를 아무렇지 않게 불륜녀로 낙인 찍는 것 역시 무례다. 그녀의 구구절절한 사연은 <표류도>를 통해 비로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테고, 그녀의 사연 중에 많은 부분이 현재 우리 곁에 머물고 계신 어르신이 쌓으셨던 섬들이 표류했었던 모양이 바로 이러할 것이다,  

 

3. <표류도>는 일반적인 사실주의 소설과는 다르게 의식의 흐름을 통해 최대한 진실에 가깝게 그녀의 내면을 묘사하는데 거의 대부분의 페이지가 할애된다. 이 부분이 참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이 부분에서 나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통찰이 담긴 문장을 많이 수집할 수 있었다. 많은 부분이 부조리에 관한 내용이긴 했지만 말이다.  

 

4.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실린 해설을 읽어보니 박경리 작가의 인물에 대해서 의지와 긍정의 정신을 지닌 초인론이라는 틀에 담아 평을 하는데, 그것을 읽으며 <카프카의 서재>에서 읽으면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생각을 했다.  

 

한 인간의 미래를 예측할 수조차 없는. 현재 걷는 길이 과연 올바른가에 대한 확신이 전혀 없는 없는 상황.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부조리인데, 인간은 그러한 부조리를 느끼면서도 그것에 반항해야 하는. 반항이라기보다는 부조리 속에서도 어떻게든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서야 한다는 작가의 집념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책 ---- <카프카의 서재> 

 

어떻게든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 즉, 우리의 현실이 비록 궁핍하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최대한 충실하게 보내야 한다는 것이 <표류도>의 교훈이었다. <표류도>는 그녀의 의지의 불씨가 꺼질 뻔한 위기의 상황에서 희미한 빛을 보여주며 끝을 맺는다. 그러므로 빛이 어떤 모양일지는 우리의 상상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빛이 사라졌을 수도 있고 말이다.  

 

5. 그 외에도 그녀의 세 남자. 감정의 남자 상현. 지성의 남자 찬수. 의지의 남자 환규의 인물을 지켜보는 일도 흥미로웠다. 셋 다 매력적인 남성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본능에서 우러나오는 애정을 현회로부터 얻지는 못했지만, 현회가 성적으로 매력있는 여인이 아니라 훌륭한 정신을 가진 한 사람의 인간임을 알아보고, 끝까지 그녀의 곁에 남아주었던 환규가 멋있게 느껴졌다. 소설 대부분에서는 김 선생이라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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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왜 존재하는가 - 역사를 관통하고 지식의 근원을 통찰하는 궁극의 수수께끼
짐 홀트 지음, 우진하 옮김 / 21세기북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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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꾸만 책을 고르는 기준이 내 능력을 벗어난 책을 기준으로 삼는 것 같다. 나를 냉정하게 몰아대는 것 같다. 재미와 가독성이라는 측면보다는 나는 대체 어디까지 읽을 수 있을지 시험해보려는 욕구가 꿈틀댄다. 원래대로라면 평생 만나보기 어려울 책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더 일부러라도 찾아서 읽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2. 더딘 독서에 대한 자기 위안과 변명은 이쯤에서 접어두고. 이 책을 읽을 사람들을 위해서 하고 싶은 말은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에 관한 답을 얻기 위해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부터 얻어낸 대답은 많지만, 그것이 정말 확실하다 할만한 답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존재의 확실성에 관한 맹신은 한쪽에 젖혀두고 세상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에 관한 다양한 관점을 산책하듯이 읽어내는 것이 현명하게 이 책을 대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3. 어떻게 보면 왜 존재하는가? 에 대한 물음보다는 세상이. 그리고 내가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덜 고민스러운지도 모르겠다. 이 책도 그런 측면을 보인다. 초반에는 상당히 형이상학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무한의 세상이라는 관점. 그리고 '신'이 개입했다는 생각을 가진 학자와의 대화를 통하여 세상에 관하여 접근하지만. 

 

그 언덕을 넘어가면. 물리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의 양자이론의 관점을 통해 초반의 형이상학적인 모호함에서 다소 합리적인 논의로 이동한다. 그리고 마지막. 형이상학적인 관점에서도 불가사의하고, 합리성을 추구하기 위한 통합이론도 자라나지 않는 상황에서 '왜'라는 질문에서 '어떻게'라는 질문으로 이동한다. 그 동시에 세상에 관한 질문에서 나 자신의 의식이라는 관점에서 세상을 끌어안는다. 

 

4. 개인적으로는 플라톤의 동굴처럼 세상은 이미 정해져 있지만, 그것 완벽하게 볼 수 없는 한정된 경험을 통해서 세상을 이해하고 있는 가진 실존에 근거한 인간이라는 관점. 양자이론의 불확정성의 원리처럼 인간은 시간과 에너지를 완벽하게 관찰할 수 없다는 관점. 그리고 양자론의 개념으로부터 분산하는 과정이 다중우주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관점을 지지하고 있다. 그래서 또 다른 지구에 살고 있는 나와 똑같은 나의 현재도 궁금해하는 편이다.

 

그리고 이런 불완전한 인간이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세상을 이해하려는 이유는 살아가는 동안 어디에도 없는 곳에서 무로 향하는 수많은 길로 이어지는 한 가지 방향을 걷는 과정이 바로 철학이므로 삶에서 죽음에 이르는 인간의 다양한 길 가운데 자신만이 걸을 수 있는 하나의 길을 선택하기 위함일 것이다.  

 

5. 작가가 이 세상을 이해하려는 이유는 이러했다. 

 

"세상에 무가 존재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아무런 법칙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법칙도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 법칙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허용될 것이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면, 무는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무가 존재한다면, 무는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무는 그 자체를 용납할 수 없다. 그러므로 무엇인가가 존재해야 한다. 증명 끝."  - 프롤로그-

 

이 책에는 프롤로그 이외에도 그들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풀어내려는 시도를 아주 많이 하는데. 그와 관련한 서적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6. 책을 살펴보면 처음에 추천사가 상당히 많이 적혀있다. 앞서 읽은 기브앤테이크도 그랬었는데, 이 책에 대한 추천사도 한 둘도 아니고, 너무 빼곡해서 주의 깊게 읽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 만약 추천사를 넘겨서 읽는 분이라면 책을 읽고 난 뒤. 반드시 추천의 글을 다시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처음에 느낀 허공에다가 손을 휘젓는 느낌과는 달리 책의 내용이라는 실체가 확립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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