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이란 무엇인가 - 종이책에서 전자책까지
캘빈 스미스 지음, 이재석 옮김, 한기호 감수 / 안그라픽스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난이도 : 


1. 이 책은 출판을 산업으로 보는 책이다. 출판은 산업인 것은 당연하고, 출판은 엄연히 출판 산업이라는 업종으로 분류되지만, 출판에 산업이라는 단어를 넣으니 신성한 무언가가 더럽혀지는 기분이 든다. 책 읽는 사람 대부분이 책을 신성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혹자는 직접 돈을 주고 사서 읽는 책이 진짜라고 생각한다. 공짜로 읽는 책은 출판 산업이라는 목적에 충실하므로 돈을 주고 읽어야 빚진 게 없다는 논리고, 그래야 책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객관성이 보장된다는 이야기다. 약간 삼천포로 이야기가 빠지는데. 그에 대한 내 입장은 간단하다. 나는 돈을 주고 보는 책이건, 그렇지 않은 책이건 같은 기준에서 똑같이 읽고 쓰려고 노력한다. 근데, 돈을 주고 보는 책은 이렇게 긴 이야기를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서평단으로 활동하면서 읽는 책이 나를 더 공부시킨다. 이런 공부가 남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일 아니겠는가?

 

2. 보통 사람들은 막연하게 좋은 원고가 좋은 책이 만들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나 역시 그랬다. 낭중지추라고, 좋은 책은 언젠가 빛을 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해왔다. 하지만. 전 세계 출판사가 펴내는 책에는 자신들의 책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책이라는 자부심이 깃들어 있다. 그 자부심은 모든 프로야구팀이 4강에 진입하겠다는 포부와 같다. 하지만 시즌이 끝날 때 4강에 들어가는 팀은 4팀밖에 없다. 그리고 우승은 단 한 팀이다. 이처럼 모든 책이 다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훌륭한 책. 솔직하게 까놓고 말하자면 자신이 공들여 다듬은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기 위해 출판인들은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출판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좋은 원고는 필수 조건이고, 그 이외에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3. <출판이란 무엇인가>에서 소개하는 출판인들의 임무는 제각각 다르다. 

 

편집자의 역할 (출판 기획, 저자 발굴, 원고 의뢰, 끊임없는 피드백, 편집) 

에이전시의 역할 [출판 계약 협상, 외서 출판권 계약. 소속 작가와의 긴밀한 피드백(편집자 대행)] 

저자의 역할 (창작, 집필, 작가와 작품에 대한 브랜딩 작업, 홍보와 프로모션 활동 참여, 대외칼럼) 

출판사의 역할(출판 계약, 인쇄, 유통 협의, 판매 부수 결정, 홍보 프로모션에 필요한 비용 투입, 저작물의 권리 독점과 보호)

디자이너의 역할 (다양한 버전의 저작물에 대한 표지디자인 제작, 홍보용 디자인 제작) 

마케터의 역할 [독자의 시선에 노출되기 위한 홍보 (유명인사나 블로거의 서평이나 평론) 와 프로모션 (공간 광고, 포스터, 카탈로그, 웹사이트, 배너, 미디어 광고)의 모든 과정 총괄. 판촉 (할인행사) 활동]

 

그들이 만든 책을 많은 독자에게 전하기 위한.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목적을 위하여 출판사와 저자. 그리고 서점이라는 다른 직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이 한 권의 책을 세상과 독자들 앞에 내놓는다.   

 

지금 내가 숨 쉬는 공간에서 함께 살고 있는 책. 이렇게 리뷰를 쓰고 있는 이 책 역시. 출판인들이 독자의 관심이라는 아주 협소한 영역을 비집고 들어와 안착시킨 큰 정성의 결과로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4. <출판이란 무엇인가>는 책이 만들어지는 복잡한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21세기 출판의 다음 변화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은 아주 커다란 변수다. 익히 알다시피 디지털 환경으로 발전하는 산업 구조가 바로 그것이다. <출판이란 무엇인가>는 디지털 사회의 진입에 따른 전자책의 성장세에 직면하여 기존의 출판 체제에서 어떤 변화를 선택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 

 

이 부분은 저작권과 출판 계약의 변경. 그리고 종이책과 전자책의 출간 후. 수익률 배분에 관한 이야기. 데이터 수집. 메타데이터를 통한 도서 노출 같은 마케팅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인터넷 세상에 직면하여 원고의 길이가 짧아지고, 시각적인 자료와 빠른 접근성에 대한 생각들이 담겨 있다. 

 

5. 아쉬운 점은 책의 가격이다. 27,000원. 원서의 가격은 이 두 배에 달하므로 그것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인 것도 같지만, 출판 개론서라는 점에 비해서 가격이 좀 비싸다고 느껴지는 것은 솔직한 심정이다. 

 

책 내용에서도 마케팅의 요소는 4P (제품, 가격, 장소, 판촉) 라고 말하면서, 가격이 이렇게 비싸니…. 책을 홍보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혈의 누 - 이인직 소설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29
이인직 지음, 권영민 책임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난이도 : 


1. 이인직 (1862 ~ 1916), 한일의정서 (1904), 혈의 누 (1906 ~ 1908), 일제강점기 (1910 ~ 1945) 

 

현실. 특히, 정치나 사상적인 부분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 있다면, 누구나 그것을 바꾸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인간이라면 그것은 당연한 본능이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기는 매우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 년 전,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던 혼란의 시기에 이인직은 선택했다. 일본의 근대화 모델을 따르기로 말이다. 

 

70. 구씨의 목적은 공부를 힘써 하여 귀국한 뒤에 우리나라를 독일국 같이 연방도로 삼되, 일본과 만주를 한데 합하여 문명한 강국을 만들고자 하는 비사맥(비스마르크) 같은 마음이요. -혈의 누-

 

이번 고블린의 토론은 <혈의 누> 였지만, 뒤에 실린 <귀의 성>, <은세계>를 읽지 않고 넘어가려니 찝찝했다. 그래서 남은 분량을 다 읽었다. 그 결론은 이렇다. 이인직의 소설은 "조선 말기의 부조리를 폭로하는 동시에, 일본과 미국의 지식을 받아들여 조선을 근대화하려는 이상향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을 계몽시키려한다."로 정리할 수 있겠다. 

 

<혈의 누>가 자신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대중에게 드러내려는 목적이 강한 소설이라면, <신의 성>과 <은세계>는 그러한 자신의 주장에 대한 당위성. 그러니까 자신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덧붙임을 위한 소설이었다. 

 

이인직. 순수하게 소설가로서 판단하자면 그는 타고난 이야기 꾼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흥미롭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데 능한 이인직 소설의 치명적인 약점이라면, 소설 속 인물이 조선의 부조리를 몸소 겪으면서. 탐관오리 척결과 동시에 근본적인 체질 개선. 즉, 근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일본과 미국에서 근대 지식을 배우지만. 조선으로 귀국한 주인공은 아무런 활약도 하지 않은 채. 소설이 미완성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으로 봤을 때, 이인직은 지금껏 배운대로만 하면 분명 달라질 것이라고. 미래를 낙관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주입식 교육을 통해서 근대화의 거시적인 모델과 이상적인 모습까지는 그릴 수 있지만,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것을 실제로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추구하는 계몽주의는 뜬구름 잡는 소리에 가깝다.

 

2. 어떤 의도

 

이 소설을 다 읽었지만, 나는 여전히 이인직의 의도가 궁금하다. 이인직의 판단이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 내린 결정이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이익과 권력 추구를 우선시해서 내린 결정이었는지 말이다. 인간이란 그렇게 단정적으로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기에 흑백으로 분리해 논할 것이 아니라, 그 혼탁함의 비율이 3 : 7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본다.  

 

그런 의도 (3 : 7의 마음)로서 그가 친일을 택했다면, 그것은 그 당시 자신이 받은 교육을 통해 얻은 지식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학습한 친일 제국주의 식민사관)을 짜내서 내린. 자신에게 있어서는 가장 현명한 선택1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마음을 백 보 양보해서 헤아린다면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그가 살아 목격하지 못했던 강점기의 세월 동안. 자신의 손으로 쓴 우리의 글자와 말까지 그들에 의해 말살되고, 두 차례의 세계 대전동안 일제가 차마 입에 담기 힘들 정도의 만행을 우리에게 저지르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선택이 임진왜란이 남긴 치욕의 기록물인 징비록의 반복을 낳을 것이라는 생각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을 것이다. 

 

이처럼 시간과 공간적으로 제한되었던 이인직의 시야는 그릇된 선택을 낳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을 예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그가 택한 선택이 가져올 치욕스러운 역사를 알기 때문에 이인직의 선택 자체가 애초에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따라서 친일파들을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라고 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결과론을 보고 모든 잘못에 대한 모든 비난을 퍼붓는 것의 지나친 감도 있다.

 

3. 진짜 매국노

 

최근 심심찮게 들려오는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 소송 소식에 분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이인직 같은 과거의 사람들 (정확히 말해서, 강점기 이전. 조선의 근대화에 대해서 잘못 판단한 사람들)은 미래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친일사전에 등재하는 것으로서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으로 끝나는 일이다. 

 

친일사전에 등재한다는 의미는 과거의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하지 않게 하려는 목적과 미래를 알건 모르건 간에. 일단 선택에 대한 잘못과 그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의미가 공존한다. 즉, 지금이 일제강점기가 아닌 이상. 그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잘못된 선택으로 낳은 치욕적인 과거와 현재를 모두 알고 있는 그들의 후손은 적반하장 국가에게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한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사재를 모두 털어 만주의 독립군을 지원한 분도 계신데 말이다. 정말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대체 무엇이 그리 떳떳해서 자신들의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선택은 자유지만, 책임은 따르는 것이 이 나라의 법칙인데 말이다.  


  1. 이 시기는 그의 또 다른 소설 귀의 성과 은세계에서 다루고 있는 것처럼 조선 내에는 재물을 위해 무고한 사람을 매질해서 죽이는 탐관오리가 득세하고, 조선 외부에서는 청나라, 러시아, 일본이 호시탐탐 한반도를 노리던 진퇴양난. 거기에서 승자가 살짝 일본으로 기우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과거 개화파 김옥균이 그랬던 것처럼 조선은 일본을 모델로 삼아 근대화를 이룩하고 (이인직은 김옥균의 사상에는 동조하지만, 그들처럼 자주적인 근대화를 꾀할 시기는 물 건너갔다고 생각. 왜냐하면, 이미 일본은 두 차례의 승리를 통해서 타국으로부터 한반도의 통제권을 거머쥐었기 때문) 와신상담하며 가장 강력한 연방으로 거듭날 때를 기다린다는 의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 - 신화에서 찾은 '다시 나를 찾는 힘'
구본형 지음 / 와이즈베리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1. 판도라의 마음 상자

 

최초의 여인 판도라. '모든 선물을 다 받은 여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그녀는 제우스가 인류에게 설치한 덫이었다. '미리 보는 자'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불'을 선물한 것에 대한 대가로 제우스는 신들과 모의하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판도라를 창조한다. 

 

그녀는 아테나로 하여금 직물 짜는 법을, 아프로디테로부터는 아름다움과 고통스러운 욕망, 그리고 사지를 나른하게 하는 교태를, 헤르메스로부터는 거짓과 속임수라는 설득력을, 아폴론으로부터는 음악을 받았다고 한다.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그녀는 프로메테우스의 동생인 '나중에 알게 되는 자'인 에피메테우스에게 선물로 보내진다. 프로메테우스는 동생에게 제우스를 경계하라 이르고, 신비의 상자를 건네며 절대로 열어 보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그것은 인간 세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쓸모가 없는 것들을 모아둔 상자였다. 그런데 형의 말을 새겨듣기에는 판도라가 너무 아름다웠다. 그래서 에피메테우스는 형의 경고를 무시하고 판도라를 아내로 삼는다. 남자는 그러하다. 이것은 남자의 법칙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생활을 이어가던 중. 판도라는 그 상자에 대해서 궁금증을 품게 된다. 결국, 그녀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신비의 상자를 열어 보게 된다. 그 순간 상자에 갇혀 있던 불순한 것들이 세상으로 번졌다. 깜짝 놀란 판도라가 황급히 상자를 다시 닫았지만. 모든 불행의 원인들이 세상으로 떠나가고, 마지막 남아있던 '희망'이라는 이름의 불순물만이 상자 속에 남아있게 되었다. 희망만이 사라진 세상이 마침내 도래하였다.

 

2. 마음 상자에 담긴 것들

 

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에서는 판도라의 상자에서 해방된 악한 것들을 다룬다. 상자에서 빠져나간 악한 것들은 또 다른 신화와 어우러져 인간에게 다시금 되돌아온다. 한편, 판도라의 마음 상자에서 해방된 것들은 아래와 같다. 

 

시간, 애욕, 변화, 자아에 대한 무지, 자기애, 배고픔, 분노, 혐오, 무익하고 희망이 없는 일을 반복하는 것, 아름다움의 유혹, 허영, 거짓말, 탐욕, 집착, 과도함과 지나침, 오만, 비웃음, 골육상쟁의 피, 잔혹함, 폭력, 운명, 불복종, 실타래, 사유의 불능, 이별, 탯줄(의존), 교활함, 복수의 칼, 불균형.  

 

3. 부정적인 것을 통한 긍정적 변화를 꾀함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나 심리학자 칼 융은 인간의 내면에는 바닷속 동물처럼 수많은 정신이 거주하고 있으며, 그 정신은 서로 자아를 차지하기 위해 싸운다고 한다. 이 내면의 다툼들은 '유치하고 기괴하며 비도덕적이다.' 신화는 가면 너머 존재하는 인간의 붉은 욕망들의 다툼을 야생의 언어로 생생하게 들려준다. 그리하여 '꽃처럼 피어나는 그 솔직함과 진실함 앞에 기만에 찬 무리의 삶을 돌아보며 얼굴을 붉히게 만든다.' 만일 우리가 서로 다투는 이 원형질의 욕망들을 잘 판독하고 이해할 수 있다면 자아에 대한 새로운 시계를 확보함으로써 건강한 자기경영의 진보가 가능할 것이다."

 

'자기계발을 위해 책을 읽는다. 혹은 책을 읽음으로써 자기계발을 한다.' 처럼 얼핏 같아 보이지만 다른 의미를 가진 질문 사이에서 구본형 작가는 적절한 균형을 잡는다. 작가는 신화를 독자에게 들려주고, 거기에 덧붙여 자신이 공부해온 인문학적 개념을 추가한 뒤, 그것으로부터 깨달은 자기경영의 정수를 마지막에 덧붙이는 방식으로 신화를 읽어나간다. 

 

"신화는 인간을 벗긴다. 아무것으로도 가려지지 않은 인간의 원시를 보여준다.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날것들을 신에게 뒤집어씌운 이야기다. 동시에 인간의 미욕과 통찰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신화는 인간의 무의식에 대한 이야기이며, 상징을 통해 벌거벗은 인간이 무엇인지를 들려준다." 

 

그래서 신화는 단순히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인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든 것이 돌아오는 곳 창비청소년문학 52
존 코리 웨일리 지음, 이석연 옮김 / 창비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난이도 : 

 

1. 소설의 구조 

 

이 소설은 하나의 사건과 그 사건의 일어난 원인. ( 동생 가브리엘이 갑자기 행방불명된 과거의 시점)과 사건 후의 사람들의 모습 ( 가브리엘의 형인 주인공 '나' 컬린 위터의 눈으로 바라보는 자신과 가족과 주변인들의 심적 고통)이 병렬구조로 서서히 확장되어가는. 쉽게 말하자면 그런 효과를 통하여 의도적으로 작가의 메시지를 부각시키려는 목적을 가진 그런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모든 사건의 이유를 나중에 공개하는 이와 같은 구조는 상당히 중요한 설정으로 보인다. 가브리엘이 행방불명 된 이유가 최대한 나중에 공개되어야 한다는 점은 실제로 소설을 읽어보면. 소설을 유기체로 봤을 때, 그것으로 인해 이 소설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40페이지 남겨두고 예상한 '설마 그럴리가 싶었던' 어처구니 없는 이유가 어처구니없게도 정말 적중해버려서 살짝 김은 샜다. 

 

이러한 어처구니 없음은 하느님의 왼손'이라는 은유적인 상징을 직유로 해석한 한 인간. 부모와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이 이루고자 한 길을 향해 걸음을 옮겼던 인간이 지금껏 이루어놓은 성과가 모두 헛된 것이 되고 말았다는 다소 허무한 결말로 정리된다.

 

2. 희망을 잃어버린 도시에 사는 염세주의 소년

 

전체적인 배경이나 인물들의 이미지는 상당히 칙칙하다. 하물며 소설의 첫 문장이 "나는 열일곱 살 때 처음으로 시체를 보았다."였으니 오죽할까? 게다가 그 시체가 다른 사람도 아닌. 그의 사촌 형이다. 그러고 보면 <모든 것이 돌아오는 곳>이라는 소설의 제목 또한 참으로 역설적으로 들린다. 

 

그런데 생뚱맞게 이처럼 죽음의 기운이 만연해 있고, 희망도 없이 허물어져 가는 '릴리'라는 지역에 희귀동물. 나사로 딱따구리가 살고 있다는 소문이 흘러들어온다. 지역 사람들의 신경은 온통 그것을 관광상품으로 만들어서 돈을 벌 궁리에 쏠린다. 햄버거 가게의 메뉴에 딱따구리 이름이 들어가고, 호텔 이름도 갑자기 나사로로 바뀌어버리고, 미장원을 운영하는 주인공의 어머니도 마치 모히칸 스타일을 연상케하는 딱따구리 헤어스타일을 유행시켜서 웃음을 제공한다. 

 

물론, 우리의 주인공.  염세주의자 이자 중2병 환자인 컬린 워터와 그의 친구 루커스 케이더에게는 그런 사실이 크게 환영받거나 중요하게 생각할 만한 사건은 아니다. 그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나사로 딱따구리 따위가 아니라 연애와 우정이고, 동생이 사라진 이후부터는 동생의 행방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사실, 컬린 워터라는 소년은 이렇게 진한 가족애를 풍기는 성향의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의 심경은 동생이 왜 사라져 버렸는지 모르겠다는 심리적 압박이 가중될수록 더욱 동생을 그리워한다. 그의 어머니 또한 나사로 딱따구리의 존재를 기원하며 상업 활동에 매진하긴 했지만, 그녀 역시 사라진 가브리엘의 행방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가족들의 내면을 읽어내고 공감하는 것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3. 가브리엘은 왜?

 

그것은 한 남자의 시기와 질투에 의해 일어난다. 물론, 한 남자는 가브리엘이 신화에 등장하는 가브리엘과 같은 이름이기 때문에 어쩌면 이것은 운명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저 변명일 따름이다. 자신의 탐욕을 숨기고 싶은 마음에 아무 말이나 내뱉은 추함의 증명이다. 

 

4. 모든 것이 돌아오는 곳

 

신화와 전설에 대한 부정적이며, 허구적인 측면이 부각되면 될수록 가족과 우정의 그리움과 사랑의 크기는 커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무신론적이다. 즉, 추상적인 것이 무형의 존재가 사라지는 대신 인간과 가족에게 필요한 요소들이 돌아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돈 키호테, 부딪혔다, 날았다 - 라만차 돈 키호테의 길
서영은 지음 / 비채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돈 키호테는 어떤 인물인가? 미친놈인가? 이상주의자인가? 아니면 절박한 자인가?

 

1. 나에게 돈 키호테는 확실히 정리하지 못한 미묘한 캐릭터다. 돈 키호테에 대하여 생각할 때마다 내 머릿속은 마치 줄다리기를 할 때 가운데 매듭이 왔다갔다하는 것처럼 두 가지 생각이 양쪽에서 서로 힘껏 줄을 잡아당긴다. 

 

내가 바라보는 돈키호테. 그 생각 중 하나는 기사소설에 빠져서 현실을 바라보는 눈을 잃어버린 채 미쳐버린. 괴짜로서의 돈 키호테다. 그런데 이렇게 돈키호테를 괴짜로. 그리고 이 문학을 기사도를 풍자하기 위한 문학이라고 생각하면, 대체 작가는 뭐하러 이렇게 길게 썼나 싶은 생각이 든다.  

 

두 번째 생각은 낭만주의자. 이상주의자라는 관점에서의 돈 키호테다. 그는 남들이 미쳤다고 손가락질을 하건 말건, 자신이 가야 할 곳을 향해 갔고, 지켜야 하는 둘시네아 공주를 지켜낸다. 그리고 산초 외.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그의 기행은 점점 시간이 지나갈수록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봤을 때도 위대한 모험으로 인식된다.  

 

2. <돈 키호테 부딪혔다 날았다>의 관점은 위의 두 가지 중에서 후자에 많이 근접해있었다. 하지만 <부딪혔다, 날았다>에서 만들어낸 돈 키호테의 이미지는. 내가 그저 낭만적이고,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초월한다. 

 

작가는 돈 키호테가 한 행동이 남들이 보기에 낭만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해야만 그의 앞에 놓인 답답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돈 키호테는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 로 해석했고, 그러한 초인적인 돈키호테의 믿음을 고차원적인 것으로 승화시켰다.

 

250.


가만히 있어도 깨어 있는 눈처럼 모든 것을 낱낱이 의식하는 이것이 '나'라면, 어둠은 그 의식하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어둠에 오롯이 비추인 이 의식은, 밝은 곳에서는 '보이는 모든 것'에 의해 굴절되고 차단되어 생각의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었던 '어떤'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원형질이 아닐까. 형태 이전, 시간 이전의 원형질은 어둠 속의 잠에서부터 그 생명활동을 시작한다. 나는 지금 시간을 거슬러 생명의 원점에 있다. 근원으로 돌아온 시간. 


251.


내 의식 안에서 이전의 '나' 또는 이후의 '나'를 구분지어주는 시간이 사라지면서 나는 까마득한 태초의 '나'가 될 수도 있고, 까마득한 미래의 '나'가 될 수도 있다. 원형질인 '나'는 하나, 근본에 내포된 하나이나, 시간에 따라 수많은 편재가 있어왔다. 


따라서 인생이란 부채 같은 것이어서, 접혀진 한 면이 한 생이라면, 하나의 부채 안에서 여러 개의 생으로 나뉘어 있어, 나뉘어진 생을 접으면 이전의 나와 겹쳐질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 '여기'와 '거기'는 의식이 구분하는 차이일 뿐, 공간의 차이는 아니다. 공간이 사라졌으므로 시간도 무로 돌아간 것이다. 

 

3.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문장이 <돈 키호테, 부딪혔다, 날았다>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가 아닌가 싶다. 작가가 돈 키호테의 모험 길을 지나치면서 경험으로 깨달은 것은 가시적인 물체로 이루어진 세계가 진짜 세계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의식에 집중했을 때, 드러나 보이는 세계가 바로 진정한 세계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돈 키호테는 기사소설을 보고 미친 사람이 아니라 정말 미치도록 심심할 것 같이 황량한 지역에서 먹을거리가 풍족한 삶을 살며, 자신도 모르게 나태해져버린 상황에서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따라 자신의 의지로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기사가 되기로 했고, 그렇게 행동한 용기있는 인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4. 돈 키호테는 그런 인물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각을 간략히 정리해본다. 작가가 이 여행을 기획하고 책을 쓴 이유는. 어떻게 보면 돈 키호테와 세르반테스가 살았던 시대와 너무나도 비슷한 우리의 현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 보이지만, 정신적으로는 빈곤한. 즉. 다양한 것처럼 보이던 인생이 막상 선택의 순간에 직면할 때쯤에는 실제로 우리가 남들의 편견 없이 선택할 수 있는 인생의 길(대기업 취업, 혹은 공무원)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이는 세상에서 남의 기준보다는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여 자기만의 인생 길 찾기를 독려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