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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키호테, 부딪혔다, 날았다 - 라만차 돈 키호테의 길
서영은 지음 / 비채 / 2013년 8월
평점 :
돈 키호테는 어떤 인물인가? 미친놈인가? 이상주의자인가? 아니면 절박한 자인가?
1. 나에게 돈 키호테는 확실히 정리하지 못한 미묘한 캐릭터다. 돈 키호테에 대하여 생각할 때마다 내 머릿속은 마치 줄다리기를 할 때 가운데 매듭이 왔다갔다하는 것처럼 두 가지 생각이 양쪽에서 서로 힘껏 줄을 잡아당긴다.
내가 바라보는 돈키호테. 그 생각 중 하나는 기사소설에 빠져서 현실을 바라보는 눈을 잃어버린 채 미쳐버린. 괴짜로서의 돈 키호테다. 그런데 이렇게 돈키호테를 괴짜로. 그리고 이 문학을 기사도를 풍자하기 위한 문학이라고 생각하면, 대체 작가는 뭐하러 이렇게 길게 썼나 싶은 생각이 든다.
두 번째 생각은 낭만주의자. 이상주의자라는 관점에서의 돈 키호테다. 그는 남들이 미쳤다고 손가락질을 하건 말건, 자신이 가야 할 곳을 향해 갔고, 지켜야 하는 둘시네아 공주를 지켜낸다. 그리고 산초 외.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그의 기행은 점점 시간이 지나갈수록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봤을 때도 위대한 모험으로 인식된다.
2. <돈 키호테 부딪혔다 날았다>의 관점은 위의 두 가지 중에서 후자에 많이 근접해있었다. 하지만 <부딪혔다, 날았다>에서 만들어낸 돈 키호테의 이미지는. 내가 그저 낭만적이고,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초월한다.
작가는 돈 키호테가 한 행동이 남들이 보기에 낭만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해야만 그의 앞에 놓인 답답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돈 키호테는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 로 해석했고, 그러한 초인적인 돈키호테의 믿음을 고차원적인 것으로 승화시켰다.
250.
가만히 있어도 깨어 있는 눈처럼 모든 것을 낱낱이 의식하는 이것이 '나'라면, 어둠은 그 의식하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어둠에 오롯이 비추인 이 의식은, 밝은 곳에서는 '보이는 모든 것'에 의해 굴절되고 차단되어 생각의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었던 '어떤'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원형질이 아닐까. 형태 이전, 시간 이전의 원형질은 어둠 속의 잠에서부터 그 생명활동을 시작한다. 나는 지금 시간을 거슬러 생명의 원점에 있다. 근원으로 돌아온 시간.
251.
내 의식 안에서 이전의 '나' 또는 이후의 '나'를 구분지어주는 시간이 사라지면서 나는 까마득한 태초의 '나'가 될 수도 있고, 까마득한 미래의 '나'가 될 수도 있다. 원형질인 '나'는 하나, 근본에 내포된 하나이나, 시간에 따라 수많은 편재가 있어왔다.
따라서 인생이란 부채 같은 것이어서, 접혀진 한 면이 한 생이라면, 하나의 부채 안에서 여러 개의 생으로 나뉘어 있어, 나뉘어진 생을 접으면 이전의 나와 겹쳐질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 '여기'와 '거기'는 의식이 구분하는 차이일 뿐, 공간의 차이는 아니다. 공간이 사라졌으므로 시간도 무로 돌아간 것이다.
3.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문장이 <돈 키호테, 부딪혔다, 날았다>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가 아닌가 싶다. 작가가 돈 키호테의 모험 길을 지나치면서 경험으로 깨달은 것은 가시적인 물체로 이루어진 세계가 진짜 세계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의식에 집중했을 때, 드러나 보이는 세계가 바로 진정한 세계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돈 키호테는 기사소설을 보고 미친 사람이 아니라 정말 미치도록 심심할 것 같이 황량한 지역에서 먹을거리가 풍족한 삶을 살며, 자신도 모르게 나태해져버린 상황에서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따라 자신의 의지로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기사가 되기로 했고, 그렇게 행동한 용기있는 인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4. 돈 키호테는 그런 인물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각을 간략히 정리해본다. 작가가 이 여행을 기획하고 책을 쓴 이유는. 어떻게 보면 돈 키호테와 세르반테스가 살았던 시대와 너무나도 비슷한 우리의 현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 보이지만, 정신적으로는 빈곤한. 즉. 다양한 것처럼 보이던 인생이 막상 선택의 순간에 직면할 때쯤에는 실제로 우리가 남들의 편견 없이 선택할 수 있는 인생의 길(대기업 취업, 혹은 공무원)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이는 세상에서 남의 기준보다는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여 자기만의 인생 길 찾기를 독려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