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30초 - 하루 30초, 새로운 나로 거듭나는 시간
다나카 우루베 미야코 지음, 김현영 옮김 / 이레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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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에 대해서 가장 먼저 말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너무 가볍고 얇다. 하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내용은 군더더기 하나 없는 핵심이 되는 내용들만 이 책에 빼곡하게 있었다.” 라고 말이다.

일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많은 긴장의 시간이 우리들을 거쳐 간다. 특히나 발표와 같이 대중들에게 자신을 어필하기 위한 행동을 할 때는 더욱 긴장감의 강도는 커진다. 나 같은 경우는 그때마다 우리는 책 속의 좋은 이야기들이나 나의 자신감을 높일 수 있는 문구를 기억하려고 애쓰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이제 그런 마인드컨트롤 방법 외에도 괜찮은 방법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비법들을 소개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부정적인 행동을 초래하게 하는 원인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넘어가보자. 

자극 :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상황 평가 : 사고  

필터, 자극을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결정하는 부분

감정 : 평가를 통해 내려진 결론을 감정으로 드러낸다. 불안하거나 기분이 가라앉는 심리

신체 : 평가를 통해 내려진 결론을 감정을 거쳐 신체반응으로 나타낸다. 또한 직접 반응을 내여 신체반응으로 바로 드러내기도 한다.

이 책의 지은이 다나베 우루베 미야코씨는 우리의 심리 사이클이 4가지의 단계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평가’라는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자극을 받아들여서 행동으로 표출되기 이전에 우리가 그 자극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모든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자세히 설명을 곁들이지 않더라도 모든 사람이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별것 아닌 것에도 상처를 입었던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조그만 어긋남이 나중에 가서는 걷잡을 수 없이 큰 어긋남으로 변해버린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박수를 치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정말? 나는 실제로 책을 손에서 내려놓고 손바닥이 벌게지도록 박수를 쳐보았다. 결과는 물론 확실히 무엇인가 속을 짓누르고 있던 것이 내게서 흩어짐을 느낄 수가 있었다.

손목에 고무 밴드를 두르고 안 좋은 생각이 날 때마다 한 번씩 튕겨주면 효과가 만점이라고? 정말? 나는 실제로 손목에 고무 밴드를 두르고 안 좋은 생각을 할 때나 멍 때리고 있을 때나 손목에 밴드가 보이면 한 번씩 튕겨주었다. 그랬더니 금세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되지‘라는 생각과 함께 다시 집중을 할 수 있게 해주는 효과가 있었다.

내가 나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자기대화’라는 것이 유용하다고? 정말? 그러고 보니 내가 나를 길들이는 과정에 있어서 나는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반성해본다. 순간순간에 나를 컨트롤할 수 있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그 목소리를 표면으로 끄집어내어 다시 나의 온몸에 퍼붓는다면 반드시 그 효과가 상당할 것이다. 지금 바로 소리쳐보자 내가 나에게 “나는 할 수 있다.”라고 말이다.

정말 나쁜 기운을 몰아내기 위한 호흡법을 하면 효과가 있을까? 상상해보자. 나의 체내에는 게으름 입자가 가득 차있어서 내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면 내가 그것을 한데로 모아서 밖으로 배출 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책에서 가르쳐주는 대로 폐 속의 횡격막을 크게 부풀린 다음 나쁜 것들을 모조리 쓸어 담자. 그리고 천천히 내뱉어보자. 나는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은데 당신은 어떠한가?

이 모든 것이 책의 제목인 <1日30초>에 부합되는 멋진 컨트롤 방법이 아닐까? 박수를 치고, 고무줄을 튕기고, 나에게 잘했다, 못했다 격려하는 말을 하고, 깊은 숨을 내뱉는 행위들. 이 모든 것을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책에는 그 방법 밖에 없냐고? 절대 그렇지 않다. 나는 단지 책을 덮고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순대로 말해본 것에 불과하다. 이 책에는 이외에도 30초 동안 우리의 정신을 바로잡을 수 있는 많은 방법이 존재한다. 게다가 이해를 돕기 위한 귀여운 삽화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다.

한 손에 잡혀서 왠지 멀리 떨어뜨리기 쉬운 이 책이 내 가방 속의 눈에 잘 띄는 곳에 위치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긍정적인 마인드가 물밀듯이 솟아난다. 이 책이 제공하는 모든 비법을 머릿속에 새겨 넣을 때까지 한시도 이 책을 떨어뜨려 놓지 않으리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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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들의 음모
파트리스 라누아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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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가 쓴 철학과 과학을 넘나드는 몽환적 미스터리라는 부제목은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문구였다. 그러나 책을 다 덮고 장시간 생각하고 내린 결론은 무엇인가 아쉽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반전과 궤를 같이한다는 것에서 찾아오는 허무함이었다.

주인공인 물리학자 ‘로익’이 사랑했던 여인 ‘파트리샤’가 옭아매고 있던 추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도 바로 ‘로익’을 둘러싸고 있던 정신적인 올가미(클라라, 솔)에서 벗어나서 자기가 스스로 비밀을 받아들였을 때 ‘저주’(?)는 풀려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 소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한 남자의 정신적 치유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고 있는 셈이다.

잘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나는 왠지 책을 쓴 사람이 “너는 너를 속인단다.”라는 결론만을 얻기 위해, 모든 이야기들의 조건을 설정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보통은 그런 저자의 목소리가 강하게 나타나지 않게 한 다음 갑작스레 깨닫게 해야 정상이 아닐까?

특히, 이야기의 전개를 이끌어가기 위해서 등장하는 ‘비밀의 상자를 열기 위한 다섯 가지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로익과 솔과의 대화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해 주지만 그 물음에 대한 답이 너무나 어려운 것이라 저자의 개입이 너무나도 지나치게 곁들여 지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솔직히 “네가 생각하고 보는 것은 전부가 아니란다.”라고 한 문장으로 끝맺음을 하면 사실 너무나 단순하고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저자의 목소리를 억지로 내기 위한 이 장치들이 나에겐 익숙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도리어 나에게 이 책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 책의 내용 중 건질 만한 내용들은 많았다. 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에게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들어주는 '질문 다섯 가지'와 왕이 자신의 딸에게 맞는 사위를 찾기 위해 일어나는 ‘나비의 음모’이야기가 바로 그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왜냐하면 모든 답은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십만 송이의 장미

국왕은 공주의 혼사를 위해 십만 송이의 장미를 진열해 놓고, 모든 사내들에게 숨어있는 진짜 장미 한 송이를 찾게 되는 사람이 공주의 사위가 될 것임을 천명한다. 그 소식을 듣고 무수하게 많은 사람들이 기를 쓰고 진짜 장미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공주를 차지하게 된 인물은 나비 한 마리를 데리고 와서 나비가 꿀을 찾아서 날아가게끔 유도한 마음씨 착한 재단사였다.

“나비는 너와 다른 현실 속에 산단다. 나비는 사물을 너와 다르게 보지. 나비의 세상 속엔 벽화가 존재하지 않아. 그들에게 양분을 제공하는 진짜 꽃만 존재하지. 반면 너의 세상 속엔 벽화가 존재하고 그 벽화가 너에게 현실을 감추지.” (55쪽)

질문 1. 무한이란?

솔은 묻는다. 도대체 하늘의 무한이란 무엇인지. 거기에 대한 로익. 아니 저자의 해답은 다음과 같다. 결국 당신이 무한하다고 믿는다면, 그림의 선이 보여주는 유한한 직선은 무한하다고 생각했던 당신의 생각을 부숴버리게 되는 것이고, 만약 유한하다고 생각하면 선의 길이에 해당하는(루트2)라는 무리수가 당신의 유한함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네가 보는 그림의 선(루트2)은 유한해. 양쪽 모서리에서 끝이 나니까. 그런데 계산을 해서 얻는 숫자(루트2)는 무한해. 다시 말해서 선은 그림으로 보면 유한하고 계산을 통해 보면 무한해. 그래서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있단다. 우리는 무한이 존재한다고, 무한이 우리의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세계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편에 설 수 있어. 아니면 무한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 그것은 수학적 환상을 뿐이라고” (193쪽)

질문 2. 현실과 상상의 차이란?

솔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었다. “현실은 우리가 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이고, 상상은 우리가 생각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그러나 저자는 그런 이분법적인 사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들은 중요해. 하지만 우리가 그것들을 바라보는 방법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단다. 한쪽 측면에서는 현실이고 다른 측면에서는 상상인 것은 없어. 다시 말하면 사물은 그 둘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지. 중간 상태로 말이야. 너는 상상 속에서 사물들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으면서 그 사물들이 네 안에 들어오도록 사물들을 배열하지. 둥근 달을 보면서 너는 원을 상상할 거야. 그런데 완벽한 원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아. 하나의 개념일 뿐이지. 네가 읽을 수 있게, 뜻을 해독할 수 있게, 주위의 사물들에 의미를 부여해줄 수 있게 도와주는 개념 말이야.” (197쪽)

“결국, 네가 너 자신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받아들인다는 거지. 세상을 이해하는 것, 세상을 창조하는 것은 바로 너야. 세상이 네 안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고. 너는 너의 머리로 세상의 사용법을, 이야기를, 영화를 만들지. 네가 ‘세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결국 그런 거야.” (197쪽)

즉, 현실과 상상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인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어떤 것을 상상하면 그것대로 현실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자기가 생각하기에 달렸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은 것이었다. 결국 이 세상에는 정해져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질문 3. 의식이란?

의식에 대한 저자의 대답은 애매모호했다.

“너는 지금 의식으로 의식을 정의하잖니. 내가 의식한다는 걸 느끼므로 나는 나를 의식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느낀다. 왜냐하면 내가 의식하니까.” (227쪽)

“벽에 비친 내 손의 그림자 말이에요. 마치 내 의식 같아요. 존재하지만 내가 붙잡으려하면 사라지잖아요.” (232쪽)

‘의식하는 것을 느끼므로 나의 자아는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의식하지 못하고 있으면 당신의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정도로 해석하면 될까? 어쨌든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역시 의식에 대한 자신만의 ‘자아’와 관련되었다고 해석해 볼 수 있겠다.

질문 4. 시간은 왜 우리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죠?

저자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시간이 존재하지 않다니? 그럼 시계는 무엇이고 달력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의 궁금증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가 시간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우리 정신의 창조물이야. 그것이 다른 사물들을 서로 연결시켜주지. 왜냐하면 사물들은 폭풍우처럼 움직이고 흔들리기 때문이야. 네게는 그 사물들이 시간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보이지. 불은 나무를 태우고 꺼지지. 꽃은 시들어. 그동안 태양은 하나씩 빛을 잃어. 하지만 그 모든 시간들은 서로 관련이 없어. 우리가 사물들을 관찰하면서 보편적인 시간을 만들어내고 연결할 뿐이지.” (246쪽)

“우리는 속임수를 쓰고 있어. 우리는 시간을 같은 강물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머릿속 이외의 곳에는 존재하지 않아.” (247쪽)

“사람들은 시간에 대해 기억으로서의 시간인 ‘똑’과 ‘움직임으로서의 시간 ’딱‘을 구분하지 않아. 각각의 물체, 각각의 사물들은 자기 고유의 ’딱‘을 자기 사다리에 조금씩 떨어뜨리지. 구체적인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 이를테면 나뭇잎이 한 장 떨어지고 불꽃이 하나 꺼질 때 그건 ’딱‘으로부터 나오는 거야.” (248쪽)

이 말을 종합적으로 따져본다면 우리가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개념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교유한 규칙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즉, 다른 생물체를 통해서 바라보는 시간적 개념은 인간이 바라보는 것과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예를 들어 나뭇잎 한 장 떨어지는데 10초가 걸린다고 했을 때, 10초란 시간은 인간의 기준에서 10초 ‘똑’ 한 것이 되고, 하루살이가 바라봤을 때 그 10초는 또 다른 시간적 개념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인 것이다.

질문 5. 신은 누구에요?

마지막 다섯 번째로 등장하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 물음은 바로 신에 대한 물음이다. 물음에 대한 저자의 대답 역시 짐작하겠지만 ‘신’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함을 또 한 번 우리에게 각인시켜준다. 

“신은 바로 우리라고, 우리의 이미지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종교는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해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면전에 다가온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면 사람들은 그런 교묘한 것을 고안해낸다고, 그리고 그 다음에는 자기들끼리 서로 치고받고 죽이지 않기 위해 신을 이용한다고. 그런데 실제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다고. 신들은 그렇게 전쟁의 주인이 되고 인간 권력의 열쇠가 되었다.”(257쪽)

결국, 모든 것은 우리가 만들어 낸 허상이요. 우리는 그것에 얽매여 살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스스로 알게 되었을 때 저자가 만들어낸 주인공 ‘로익’은 자신을 억압하고 있던 모든 것들에게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진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 그가 펼쳐놓은 이야기보따리에서 물리학자의 끈질김이 고스란히 드러남을 느낄 수 있었다. 소설의 내용들 보다는 그가 풀어놓은 인간 탐구의 답을 되새기는 것이 참으로 고된 일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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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심리학 - 미래의 나를 완성해주는, 20대를 위한 인생강의
곽금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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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20대를 살아가는 많은 한국인들은 참으로 고달프지 않을 수 없다. 20대 초반. 낭만을 기대했던 우리에게 IMF라는 폭풍은 이제껏 화목했던 가정을 '돈'으로써 깨뜨려버렸고, 그것을 극복해나가면서 힘겹게 20대를 졸업을 앞둔 시점인 지금.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선 20대들에겐, 금융위기라는 장벽이 또 다시 우리의 길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수 많은 시간의 흐름과 그 속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과거의 20대를 살아냈던 다른 세대의 힘겨움을 우리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도 분명히 그 고통을 말로 표현해낼 수 없겠지만, 우리도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은 같은 혼란스러움을 겪고 있는 나약한 인간인지라 이 앞이 보이지 않는 혼란의 시대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잘 하는가에 대한 해답이 그렇게 쉽게 떠오르지만은 않는다.

혹자는 우리를 두고 ‘88만원 세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비정규직, 인턴, 아르바이트 등으로 얼룩진 20대 초반의 사회 진출은 우리들에게 88만원과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바꿔주기를 강요한다. 우리는 힘들게 비전 없는 일자리를 전전하고 난 후에야 그것이 나의 성장에 또 하나의 장애물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고야 만다. 이것은 그야말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싸움이며, 가진 세대와 못 가진 세대와의 싸움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래서 ‘짱돌’과 ‘바리케이드’ 를 들고서 20대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우리들은 이 ‘짱돌’과 ‘바리케이드’ 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분명히 우리들은 그것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고민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20대 심리학>이라는 책을 통해 ‘어떻게’라는 모호함을 걷어낼 수 있는 멋진 도구를 발견해낸 것 같다.

서울대학교에서 ‘흔들리는 20대’라는 강의를 개설하고, 우리 20대들의 인생 상담을 자처하신 곽금주 교수님이 고스란히 이 책에 녹여낸 강의의 정수를 맛보고 있노라면 우리들은 스스로 그녀가 요구하는 우리 세대의 문제점과 핵심을 쉽게 짚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 핵심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의 걱정거리에서 자유롭지 못해서 또 한걸음을 자유롭게 내딛을 수 없었던 ‘연인과의 사랑’ 과 ‘부모와의 관계’에 대한 해법 또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핵심은 자기 자신을 알고 자신을 우뚝 세우는 것

누가 이런 말을 못할까? 태초의 성인에서부터 옆집 바보 형까지 누구나 알고 있고,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그 이야기가 바로 20대를 살아감에 있어서 ‘어떻게’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해답이었다. 그러나 <20대 심리학>에서는 자신을 알 수 있는 법과 자존감을 끌어올리는 법을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알려준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뛰어나다고 볼 수가 있다.  

“보는 ‘나‘인 ‘I-self'는 적극적인 관찰자로서 자기에 대한 일관적이고 통합적이며 주체적인 상이다. ‘I-self'는 자신의 행동이 특정 결과를 도출하고 이에 대해 상대가 예상했던 반응을 보일 때 형성된다. I-self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조절하고 대상의 반응을 도출해낼 수 있는 주체로서 ’나‘에 대한 개념이다.” (31쪽)

“반면에 ‘보여지는 나’인 ‘Me-self'는 수동적인 관찰 대상으로서의 ’나‘를 가리킨다. ’나‘는 보고 행동하는 ’나‘일 뿐만 아니라, 보여지고 기대되는 ’나‘이기도 한 것이다. ‘Me-self'는 지각되고 평가되는 대상으로서의 ’나‘에 대한 감각이다. 특히 ‘Me-self'는 타인의 인식과 평가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이후 자존감이나 정체성 형성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으며 사회성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32쪽)

저자는 ‘보는 나’인 ‘주체적인 자아’와 ‘보여지는 나’인 ‘객체적인 자아’ 둘 다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즉 ‘주체적인 자아’를 가지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인식과 이해를 길러 주는 활동이며 ‘객체적인 자아’는 타인의 감정과 사고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감능력을 길러주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많은 자기계발 서적들 중에서 타인의 눈을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런 책의 내용을 잘못 해석하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라는 주장으로 인식하기가 쉽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에게 ‘보여지는 나’에게도 신경을 써야한다고 일러준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며, 그것이 또한 나중에 자신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방법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저자는 우리가 스스로 ‘I-self'와 ‘Me-self'를 정확히 인지하는 것에서 자기 자신의 현재를 면밀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을 기본으로 진로를 위한 성공지능의 스위치를 꾹 눌러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성공지능의 스위치를 켜라

“성공지능이라는 능력은 자신의 장점을 포착하고 단점 혹은 약점을 수정하거나 강화시키는 활동에 따라 달라지며 분석적ㆍ창의적ㆍ실용적 능력 간의 균형을 통해 얻어진다. 성공지능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환경에 적응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환경을 자신에게 맞게 변화시킬 중 알아야하며, 적합한 환경을 선택할 줄 아는 능력이다.” (170쪽)

‘일곱 번 넘어져도 일어나는 개구리 소년’과 같이 성공지능이 높은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길을 알았으면 그 길을 따라 전력으로 움직이며 설사 장애물이 있더라도 힘차게 헤쳐나간다고 한다.

나 같은 경우는 많은 지식들을 사람들에게 쉽게 소개시켜 주는 것이 가장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작은 목표는 좀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고,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출판업계에 취직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조금 부족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내가 읽은 책들 중에 좋은 책들을 서평으로나마 찾아볼 수 있도록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에 하나씩 뿌려놓으면서 문장력을 기르는 동시에 좀 더 새로운 정보를 흡수하고 있다. 

지금 내가 하는 활동이 앞으로의 나의 진로와 성공과 행복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임을 어린 시절 매 맞아가며 일하시는 어머니를 방해하면서 까지 한글을 공부했던 나의 기억과 울며 떼쓰면서 동네 책방에 가입해놓고 기뻐했던 일들을 통해서 나는 깨달았기 때문에 현재 나는 이와 같은 수행의 기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며, 나는 반드시 내가 원하는 그 목표를 달성하리라 확신하면서 이 일을 계속 하고 있다.

20대를 위한 실천적 맵핑 기술

대학의 진로관련 교양과목을 수강해보면 아마도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엔 그런 과목을 통해서 많은 도움을 얻었기 때문이다. ‘인간 행동의 이해’ 라는 과목을 수강하면서 받은 심리테스트의 결과는 나를 상당히 당혹스럽게 했던 기억이 난다.

왜냐하면 앞으로 무엇을 잘할 것이라는 기대치는 매우 높았던 반면에 그 무엇을 하기 위한 ‘무엇’이라는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고, 또한 그 무엇이 되기 위한 준비가 매우 부족했음을 스스로 인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성격에 관련해서 나온 결과들도 내가 가진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으며, 또한 수업 시간에 이루어지는 활발한 토론식 수업도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이나마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고, 하나의 점으로 접근해나감을 실지로 느끼면서 나 역시 발전해 나가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만약 그런 교육을 받지 못하더라도 상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책의 마지막 장에 등장하는 몇 가지의 테스트는 이미 유사한 강의를 들어본 내가 판단했을 때,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인생의 그래프 그려보기’ 라던가 ‘내 사랑 근원 찾기’ 같은 테스트 같은 경우 매우 효과적인 도구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테스트의 목표는 물론 ‘나 자신을 정확하게 파악하기일 것’이며, 그를 통한 자신감을 가지고 모든 것을 바라보게 함에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의 초점을 ‘나와 진로와 성공’에 맞추어 보았지만, 자신이 가장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이 책은 ‘사랑과 결혼’ 이 될 수도 있고, ‘부모와의 관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쪼록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현재에 좌절하지 않고,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우리에게 닥친 모든 어려움을 슬기롭게 헤쳐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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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츠만의 원자 - 물리학에 혁명을 일으킨 위대한 논쟁
데이비드 린들리 지음, 이덕환 옮김 / 승산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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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학에의 도전’이라는 그 험난한 길을 헤쳐나간 인물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코페르니쿠스, 다윈 등……. 그들은 그 시대가 이루어놓은 과학적 기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몇 세기를 뛰어넘는 획기적인 이론으로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볼츠만의 원자>에 등장하는 루드비히 볼츠만은 19세기 말의 여러 가지 새로운 현상들로 인해 기존의 이론이 위협받고 있던 고전물리학이라는 정상개념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과학자였다. <볼츠만의 원자>는 그의 정상과학에의 도전기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는 책이다. 

볼츠만이 활동했던 그 당시 상황은 증기기관의 발전으로 인한 산업혁명이 1세기가 지난 어느 정도의 완숙기를 거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기체를 부풀려서 일을 하는 현상은 이해를 했고, 그것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에 적용하긴 했지만, 도대체 그것이 왜?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었고, 이해할 수 없어도 그렇게 크게 불편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미 그런 현상이 원자의 움직임으로서 이루어진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19세기의 과학은 원자라는 개념을 인정하고 있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즉, 원자라는 개념은 또한 ‘신의 법칙’에 위배되는 이론이고 ‘원자’라는 것이 실제로 눈에 보이는 물질이 아니었던 탓에 개념자체가 부족했던 상태였다.

이 책은 ‘원자’라는 개념이 고대 그리스 때부터 쌓여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기원전의 인물 루크레티우스는 ‘원자론’을 이용해서 무신론을 주장했었고, 그러한 사상의 ‘왜’ 라는 의문점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그 시대까지 이어져왔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19세기의 과학에서 ‘원자’라는 개념은 그 자체가 있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증거부족’이라는 장애물에 부딪혀 ‘원자론’은 ‘정상과학’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예측해볼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볼츠만을 위시한 여러 물리학자들은 획기적인 이론들을 쏟아낸다. 헬름홀츠, 맥스웰, 클라우지우스, 로슈미트 등. 바야흐로 이 시기는 물리적 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 힘을 쏟았던 과도기의 중심이었고, 볼츠만도 여기에 합세하여 ‘원자’가 있음을 가정하면서 ‘이론물리학자’의 면모를 발휘한다.

볼츠만의 기체이동 방정식

맥스웰이 발견한 기체의 확률적 분포도는 볼츠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볼츠만은 클라우지우스가 개발해낸 '열역학 2법칙‘의 개념을 고정된 시각에서 바라보지 않고, 확률적으로 새롭게 고찰한다.

즉, 어떤 열적 평형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가역적ㆍ비가역적 현상이 모두 일어날 수 있지만, 확률적으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실제에서는 모든 현상이 비가역적으로 일어난다고 해석했던 것이다.

좀 더 쉽게 이야기 하자면 잉크를 한 방울 떨어뜨렸을 때, 잉크 분자들은 최적의 평형상태로 이동하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그 잉크 분자 하나는 1의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고, 잉크 분자 1억 개는 2의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을 때, 실제에서는 2의 현상으로 움직임일 가능성이 더 높고 실제로 그렇게 보이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것을 볼츠만은 S = kㆍ logW라는 식으로 표현해냈다.

그리고 볼츠만은 S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H-정리‘라는 새로운 개념도 창조한다.

“H를 유도하는 과정에서는 원자들이 열적 평형이라는 안정한 분포에 도달할 때까지 끊임없이 서로 쫒아 다니면서 충돌한다는 생각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엔트로피의 증가는 원자들의 움직임에 적용되는 역학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그러나 S의 정의에서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원자의 움직임에 대한 역학적인 설명이 사라져버렸다. 볼츠만은 원자들의 분포가 어떻게 만들어져서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원자들의 가능한 상태 또는 배열에 대해서만 생각함으로써 엔트로피를 정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28쪽)

마흐의 공격과 에너지론

그러나 볼츠만의 이론을 가장 극렬하게 반대했던 인물은 마흐였다. 사실 수학적인 정리에 있어서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마흐의 철학이지만 미지의 세계를 걷고 있는 과학계에서 바라볼 때, 마흐의 철학은 상당히 고리타분하고 엄격한 개념이지만, 그래도 과학자들은 마흐의 의견을 상당부분 만족시키려고 노력함을 이 책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마흐의 철학은 간단히 말해서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믿자.”는 것이었다. 즉, 실제 세계에서 밝혀낼 수 있는 도구들만 사용해서 현실을 증명할 수 있어야만 타당한 이론이라는 것이었다. 마흐의 눈에는 애초에 ‘원자’라는 물질이 볼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토대로 이루어진 볼츠만의 이론에 대해서 매우 극단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보인다.

그리고 마흐의 철학을 수용하여 모든 것을 에너지를 기본으로 하여 설명하려고 했던, ‘에너지론’의 추종자들은 마흐와 합세하여 볼츠만에게 신랄한 비판을 보내고 있었다. 나중에 들어와서야 ‘에너지론’을 주장하던 과학자들도 그들의 이론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이론을 가정하여 증명해야 했기 때문에 마흐와 다른 길을 걷게 되지만, 그 당시의 볼츠만의 반대의견을 제시했던 이들은 볼츠만의 이론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었으며, 자신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들을 대하면서 볼츠만은 정신적으로 나약해져만 간다.

미국에서의 깁스의 활약

다른 유럽권에서는 마흐의 철학이 볼츠만이 살던 독일권의 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 약했고, 미국에서는 아예 그런 이론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신대륙이었다. 그리고 그 미국에서 깁스는 열역학에 있어서 혁신적인 이론을 발표하게 된다.

그는 모든 인자를 조합해서 하나의 그래프로서 열역학을 설명했다. 지금껏 나타난 모든 현상을 종합적으로 통합하여 그는 ‘G'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게 되고, 통합적인 이론으로서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가장 핵심적인 이론으로 배우고 있게 된다.

나는 열역학을 배우면서 ‘깁스 에너지’를 증명하기 위한 식에서 왜 이전에 증명했던 식들을 가져와서 사용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즉, 깁스의 발견은 지금껏 혼란스러운 상황을 일거에 혼합하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고, 또한 볼츠만의 위치를 한 단계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발견이었던 것이다.

막스 플랑크와 아인슈타인

막스 플랑크도 역시 처음에는 볼츠만의 확률적인 개념을 반대하던 인물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는 복사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전전긍긍 하던 중 공간을 쪼개서 확률적으로 계산했던 볼츠만의 방법으로 똑같이 복사광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플랑크의 ‘양자가설’이 등장한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양자가설’ 받아들였고, 볼츠만의 이론을 더욱 새롭게 인식한다.

“복사 에너지의 ‘양자’ 하나하나를 물리적으로 독립된 존재로 취급하면, 전통적으로 열역학적 방법으로 유도한 식과 일치하는 복사광의 에너지와 엔트로피를 얻을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물리적인 기체가 독립된 원자로 이루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전자기파의 ‘기체’도 명백한 양자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그의 주장은 그 의미가 명백하면서도 놀라운 것이었다. 에너지를 작은 부분으로 나누는 것은 단순히 수학적인 요령이 아니라 실제로 전자기 복사의 물리적인 본질에 대한 새롭고 놀라운 발견을 뜻하는 것이었다. 양자는 정말 에너지의 원자였다.” (273쪽)

그렇게 아인슈타인은 양자의 개념을 받아들여 빛의 파동에너지가 설명하지 못했던 부분을 증명함으로써 ‘광전효과’를 증명할 수 있게 되고, 그는 또한 ‘브라운 운동’에 대한 현상을 해석하게 되면서 실제로 원자를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 증명하는데 성공한다.

그것은 획기적인 발견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겠다고 했던 반대파들에게 실제로 현상을 눈에 보여줌으로서 반세기동안 끌어온 원자가설에 대한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볼츠만의 이론들이 정상과학으로 당당히 진입함을 의미하는 사건이었다. 

나약해져버린 볼츠만

하지만 볼츠만은 이미 너무나 정신적으로 황폐해져버린 상태였다. 그의 인생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그는 반대에 직면했고, 그는 그들을 이기기 위해서 철학에도 손을 대기도 했지만 그는 서서히 자신이 이제껏 이루어놓은 것을 보존하기에 급급했고,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가 없게 되었다.

게다가 그의 시력은 점점 더 나빠져가면서 스스로 탐구활동을 지속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여건 속에 놓여있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가 제기했던 이론들이 급속도로 발전해나가는 ‘신과학’의 물결을 접할 수 없었고, 그렇게 저물어 갔던 것이며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볼츠만이 우리에게 준 것

사실 우리들은 이론을 정립한 아인슈타인에 대한 관심은 지극히 높지만 볼츠만 같이 ‘정상과학’에 투쟁했던 인물들에 대한 이해는 거의 전무한 상태였지 않나 반성해본다. 볼츠만은 단순히 확률적 이론을 우리에게 일반적인 이론으로 받아들이게 한 공로 외에도 더욱 커다란 업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볼츠만이 먼저 보는 것만을 유일하게 믿던 그들과 싸워서 성과를 거둘 수 있었기 때문에 그 후에 태어난 많은 이론물리학자들의 가설을 무조건 반대하지 않게 되었고, 수용할 수 있게 토대를 마련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불확정성원리’를 볼츠만의 확률적 이론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한 노력이 없었다면 과연 그것이 우리들에게 받아들여졌을까? 또한 ‘초끈이론’과 같은 현재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새로운 이론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을까?

아마도 볼츠만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또한 19세기의 볼츠만과 마찬가지로 주류 과학자들 사이에서 엄청난 반대와 탄압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며 우리의 과학적 지식은 상당히 퇴보한 상태에 있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볼츠만의 원자>라고 하기에 원자의 발견과 현재까지의 상황을 서술한 책으로 알고 있었는데, 열역학적인 발견과 양자역학의 뿌리를 파고드는 책이어서 약간은 당황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학문을 이해하기 위한 근본적인 개념을 파고드는 책이라서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솔직히 <볼츠만의 원자>를 전부 이해하기엔 나의 지식이 너무 짧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그들 사이의 이야기를 ‘나만의 언어’로 집약시키기 위해서 노력해보았다. 이 책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열역학>을 배우기 전에 입문서로 읽어본다면 상당히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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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가족
공선옥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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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가? 정말 ‘돈’이라는 것이 우리 어머니의 말씀처럼 반드시 움켜쥐고 있어야 하는 생명줄이었던가? 정말 그랬던가? 그렇다면 왜 우리들은 그 생명줄을 담보로 부동산인지 주식인지를 하면서 하염없이 오르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인가? 그사람들은 아직 배가 부른 사람들인가?  

안타깝게도 공선옥 님의 <유랑가족>에서는 그런 배부른 ‘돈’이란 없다. 투자를 명목으로 쌓아둔 돈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하루 먹고 살기 빠듯한 ‘돈’, 정말로 살기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생명줄인 ‘돈’만 있을 뿐……. <유랑가족>에서는 안타까운 우리의 이웃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래서 이 책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띈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희망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다. 그렇게 <유랑가족>은 대책없이 소시민들의 가난한 삶을 양껏 풀어놓는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문학평론가 ‘방민호’님이 논하는 가난이라는 의미는 더욱 우리들을 반성하게 만든다. 그리고 반성없는 시대상황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오늘날 가난은 무능력하고 낡은 것, 더러운 것, 혐오스러운 것, 그리하여 일종의 페스트 같고 에이즈 같은 것이다. 암과는 달리 그것들은 전염에 대한 공포를 야기하는 질병이다. 오늘날 가난은 바로 그처럼 전염에 대한 공포를 야기하는 몹쓸 질병과 같은 것으로 취급된다.” (254쪽)

“세계 자본주의 메커니즘에 일층 더 긴박되어 초국적화한 대기업에 대한 심리적 의존이 없이는 한순간도 숨 쉴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무감각해지고 타인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잃어버렸다. 집단적인 노력을 통해서 사회적 발전의 흐름과 성격을 바꾸어보려는 마음보다는 로또 복권에 당첨되면 그날로 나는 해방이고 우리 식구에게도 누가 러브하우스를 지어 주었으면 하는, 환상적이자 동시에 속물적인 사고법이 무한증식을 해나가고 있다.” (257쪽)

IMF이후 소시민들의 생활고

한껏 거품이 일었던 1990년대가 지나고 1990년대 말. 우리들에게 불어 닥친 비극은 바로 IMF이었다. 실제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가정들이 IMF로 인한 경기침체와 함께 무너져갔는데, 나의 외가댁 친척들 몇몇 분들도 하시던 사업을 접어야 할 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입으셨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들이 자주 접했던 뉴스에서는 소시민들의 삶을 조명하기는 커녕 무슨 기업이 부도가 나고 합병이 되었는지와 같이 도산한 사업가들의 이야기만이 지속적으로 흘러나왔고 나라를 부도에서 구하기 위해 '금모으기'만 외치곤 했었다. 나라의 위기 앞에서 모든 것은 국가의 안위에 맞추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은 <유랑가족>의 사진작가 ‘한’이 취재를 위해 전국방방곡곡을 떠돌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었다. 졸지에 일자리를 잃어버린 남편. 먹고 살려다가 헤어 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빠져버린 많은 아내. 가족이 찢어지게 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아야 하는 아이들. 그마저도 의지할 수 없으면 혼자 남겨진 아이들. 

그 뿐인가 강제로 도시 재개발 지역의 대상이 되어 떠나야 하는 사람들. 또 수몰 예정지의 희생자들. 도대체 그들은 이제 어디로 가서 살아야 하는가? 혹시 그들이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있는가? 따로 떼어놓고 보면 너무나도 안 되었고 측은한 이들의 삶이지만 저자는 <유랑가족>이라는 제목 하에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올리면서 우리들에게 메가톤급의 충격을 불러 일으킨다. 

2009년 유랑가족. 용산, 쌍용…….그리고 금융위기

벌써 아홉 달로 접어든 흐른 2009년은 너무나도 힘든 한해였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모두가 움츠러든 한해였으며, 그로 인해서 ‘쌍용’으로 상징되는 수많은 기업들의 도산위기와 구조조정으로 인해서 많은 노동자들이 힘들어했던 한해였다. 그리고 ‘용산’으로 상징되는 가뜩이나 얼어붙은 시대상황에 그들을 내쳐버린 정부로 인해 소시민들의 삶은 더욱 궁핍한 한해였다.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대기업들의 수출실적은 너무나도 좋은 편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다시금 주식투자의 유혹이 스믈스믈 기어 나온다. 이러한 대기업들과 주식투자자들. 그리고 <유랑가족>으로 대변되는 이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부풀어 오른 유동성은 지금 누구의 손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는가?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그들 사이의 연결고리는 이미 끊어진 것처럼 보인다. 서민들에게 단비가 되어줄 정부의 지원은 너무나도 요원해보이기만 한다. 사실 처음에 이 책을 처음 읽으면서 70년대 시대상을 묘사한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 시간과 공간을 같이 살아가는 2009년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였다.

<유랑가족>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

가난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청빈사상의 고취도 좋다. 그리고 자원해서 이웃을 돕는 사회참여도 좋다. 하지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이러한 현실을 많은 사람이 깨닫게 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회 속의 음지에 살고 있는 이들이 이토록 ‘돈’이라는 존재에게 핍박받고 있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아니 어쩌면 알고 있으면서 행여나 전염병 같이 나에게 옮을까 두려워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애써 외면하면 외면할수록 그 사실은 더욱 현실이 되어 우리의 발목을 붙들 것만 같아서 너무나도 무섭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책을 더욱 많은 사람이 읽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좋은 기회에 우리의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공선옥 작가의 글을 읽어서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슬픈현실을 꾹꾹 눌러담고 있는 이 책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한켠이 먹먹해졌다. 빤짝이가 나눔 해 준 이 책. 가난이라는 주제를 회피하지 않고 적나라하게 우리에게 보여주는 공선옥님의 글이 조금이나마 우리들에게 퍼질 수 있도록 반드시 나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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