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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들의 음모
파트리스 라누아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8월
평점 :
물리학자가 쓴 철학과 과학을 넘나드는 몽환적 미스터리라는 부제목은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문구였다. 그러나 책을 다 덮고 장시간 생각하고 내린 결론은 무엇인가 아쉽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반전과 궤를 같이한다는 것에서 찾아오는 허무함이었다.
주인공인 물리학자 ‘로익’이 사랑했던 여인 ‘파트리샤’가 옭아매고 있던 추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도 바로 ‘로익’을 둘러싸고 있던 정신적인 올가미(클라라, 솔)에서 벗어나서 자기가 스스로 비밀을 받아들였을 때 ‘저주’(?)는 풀려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 소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한 남자의 정신적 치유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고 있는 셈이다.
잘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나는 왠지 책을 쓴 사람이 “너는 너를 속인단다.”라는 결론만을 얻기 위해, 모든 이야기들의 조건을 설정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보통은 그런 저자의 목소리가 강하게 나타나지 않게 한 다음 갑작스레 깨닫게 해야 정상이 아닐까?
특히, 이야기의 전개를 이끌어가기 위해서 등장하는 ‘비밀의 상자를 열기 위한 다섯 가지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로익과 솔과의 대화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해 주지만 그 물음에 대한 답이 너무나 어려운 것이라 저자의 개입이 너무나도 지나치게 곁들여 지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솔직히 “네가 생각하고 보는 것은 전부가 아니란다.”라고 한 문장으로 끝맺음을 하면 사실 너무나 단순하고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저자의 목소리를 억지로 내기 위한 이 장치들이 나에겐 익숙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도리어 나에게 이 책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 책의 내용 중 건질 만한 내용들은 많았다. 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에게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들어주는 '질문 다섯 가지'와 왕이 자신의 딸에게 맞는 사위를 찾기 위해 일어나는 ‘나비의 음모’이야기가 바로 그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왜냐하면 모든 답은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십만 송이의 장미
국왕은 공주의 혼사를 위해 십만 송이의 장미를 진열해 놓고, 모든 사내들에게 숨어있는 진짜 장미 한 송이를 찾게 되는 사람이 공주의 사위가 될 것임을 천명한다. 그 소식을 듣고 무수하게 많은 사람들이 기를 쓰고 진짜 장미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공주를 차지하게 된 인물은 나비 한 마리를 데리고 와서 나비가 꿀을 찾아서 날아가게끔 유도한 마음씨 착한 재단사였다.
“나비는 너와 다른 현실 속에 산단다. 나비는 사물을 너와 다르게 보지. 나비의 세상 속엔 벽화가 존재하지 않아. 그들에게 양분을 제공하는 진짜 꽃만 존재하지. 반면 너의 세상 속엔 벽화가 존재하고 그 벽화가 너에게 현실을 감추지.” (55쪽)
질문 1. 무한이란?
솔은 묻는다. 도대체 하늘의 무한이란 무엇인지. 거기에 대한 로익. 아니 저자의 해답은 다음과 같다. 결국 당신이 무한하다고 믿는다면, 그림의 선이 보여주는 유한한 직선은 무한하다고 생각했던 당신의 생각을 부숴버리게 되는 것이고, 만약 유한하다고 생각하면 선의 길이에 해당하는(루트2)라는 무리수가 당신의 유한함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네가 보는 그림의 선(루트2)은 유한해. 양쪽 모서리에서 끝이 나니까. 그런데 계산을 해서 얻는 숫자(루트2)는 무한해. 다시 말해서 선은 그림으로 보면 유한하고 계산을 통해 보면 무한해. 그래서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있단다. 우리는 무한이 존재한다고, 무한이 우리의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세계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편에 설 수 있어. 아니면 무한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 그것은 수학적 환상을 뿐이라고” (193쪽)
질문 2. 현실과 상상의 차이란?
솔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었다. “현실은 우리가 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이고, 상상은 우리가 생각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그러나 저자는 그런 이분법적인 사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들은 중요해. 하지만 우리가 그것들을 바라보는 방법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단다. 한쪽 측면에서는 현실이고 다른 측면에서는 상상인 것은 없어. 다시 말하면 사물은 그 둘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지. 중간 상태로 말이야. 너는 상상 속에서 사물들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으면서 그 사물들이 네 안에 들어오도록 사물들을 배열하지. 둥근 달을 보면서 너는 원을 상상할 거야. 그런데 완벽한 원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아. 하나의 개념일 뿐이지. 네가 읽을 수 있게, 뜻을 해독할 수 있게, 주위의 사물들에 의미를 부여해줄 수 있게 도와주는 개념 말이야.” (197쪽)
“결국, 네가 너 자신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받아들인다는 거지. 세상을 이해하는 것, 세상을 창조하는 것은 바로 너야. 세상이 네 안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고. 너는 너의 머리로 세상의 사용법을, 이야기를, 영화를 만들지. 네가 ‘세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결국 그런 거야.” (197쪽)
즉, 현실과 상상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인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어떤 것을 상상하면 그것대로 현실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자기가 생각하기에 달렸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은 것이었다. 결국 이 세상에는 정해져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질문 3. 의식이란?
의식에 대한 저자의 대답은 애매모호했다.
“너는 지금 의식으로 의식을 정의하잖니. 내가 의식한다는 걸 느끼므로 나는 나를 의식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느낀다. 왜냐하면 내가 의식하니까.” (227쪽)
“벽에 비친 내 손의 그림자 말이에요. 마치 내 의식 같아요. 존재하지만 내가 붙잡으려하면 사라지잖아요.” (232쪽)
‘의식하는 것을 느끼므로 나의 자아는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의식하지 못하고 있으면 당신의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정도로 해석하면 될까? 어쨌든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역시 의식에 대한 자신만의 ‘자아’와 관련되었다고 해석해 볼 수 있겠다.
질문 4. 시간은 왜 우리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죠?
저자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시간이 존재하지 않다니? 그럼 시계는 무엇이고 달력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의 궁금증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가 시간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우리 정신의 창조물이야. 그것이 다른 사물들을 서로 연결시켜주지. 왜냐하면 사물들은 폭풍우처럼 움직이고 흔들리기 때문이야. 네게는 그 사물들이 시간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보이지. 불은 나무를 태우고 꺼지지. 꽃은 시들어. 그동안 태양은 하나씩 빛을 잃어. 하지만 그 모든 시간들은 서로 관련이 없어. 우리가 사물들을 관찰하면서 보편적인 시간을 만들어내고 연결할 뿐이지.” (246쪽)
“우리는 속임수를 쓰고 있어. 우리는 시간을 같은 강물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머릿속 이외의 곳에는 존재하지 않아.” (247쪽)
“사람들은 시간에 대해 기억으로서의 시간인 ‘똑’과 ‘움직임으로서의 시간 ’딱‘을 구분하지 않아. 각각의 물체, 각각의 사물들은 자기 고유의 ’딱‘을 자기 사다리에 조금씩 떨어뜨리지. 구체적인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 이를테면 나뭇잎이 한 장 떨어지고 불꽃이 하나 꺼질 때 그건 ’딱‘으로부터 나오는 거야.” (248쪽)
이 말을 종합적으로 따져본다면 우리가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개념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교유한 규칙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즉, 다른 생물체를 통해서 바라보는 시간적 개념은 인간이 바라보는 것과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예를 들어 나뭇잎 한 장 떨어지는데 10초가 걸린다고 했을 때, 10초란 시간은 인간의 기준에서 10초 ‘똑’ 한 것이 되고, 하루살이가 바라봤을 때 그 10초는 또 다른 시간적 개념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인 것이다.
질문 5. 신은 누구에요?
마지막 다섯 번째로 등장하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 물음은 바로 신에 대한 물음이다. 물음에 대한 저자의 대답 역시 짐작하겠지만 ‘신’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함을 또 한 번 우리에게 각인시켜준다.
“신은 바로 우리라고, 우리의 이미지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종교는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해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면전에 다가온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면 사람들은 그런 교묘한 것을 고안해낸다고, 그리고 그 다음에는 자기들끼리 서로 치고받고 죽이지 않기 위해 신을 이용한다고. 그런데 실제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다고. 신들은 그렇게 전쟁의 주인이 되고 인간 권력의 열쇠가 되었다.”(257쪽)
결국, 모든 것은 우리가 만들어 낸 허상이요. 우리는 그것에 얽매여 살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스스로 알게 되었을 때 저자가 만들어낸 주인공 ‘로익’은 자신을 억압하고 있던 모든 것들에게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진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 그가 펼쳐놓은 이야기보따리에서 물리학자의 끈질김이 고스란히 드러남을 느낄 수 있었다. 소설의 내용들 보다는 그가 풀어놓은 인간 탐구의 답을 되새기는 것이 참으로 고된 일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