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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가족
공선옥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3월
평점 :
가난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가? 정말 ‘돈’이라는 것이 우리 어머니의 말씀처럼 반드시 움켜쥐고 있어야 하는 생명줄이었던가? 정말 그랬던가? 그렇다면 왜 우리들은 그 생명줄을 담보로 부동산인지 주식인지를 하면서 하염없이 오르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인가? 그사람들은 아직 배가 부른 사람들인가?
안타깝게도 공선옥 님의 <유랑가족>에서는 그런 배부른 ‘돈’이란 없다. 투자를 명목으로 쌓아둔 돈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하루 먹고 살기 빠듯한 ‘돈’, 정말로 살기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생명줄인 ‘돈’만 있을 뿐……. <유랑가족>에서는 안타까운 우리의 이웃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래서 이 책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띈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희망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다. 그렇게 <유랑가족>은 대책없이 소시민들의 가난한 삶을 양껏 풀어놓는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문학평론가 ‘방민호’님이 논하는 가난이라는 의미는 더욱 우리들을 반성하게 만든다. 그리고 반성없는 시대상황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오늘날 가난은 무능력하고 낡은 것, 더러운 것, 혐오스러운 것, 그리하여 일종의 페스트 같고 에이즈 같은 것이다. 암과는 달리 그것들은 전염에 대한 공포를 야기하는 질병이다. 오늘날 가난은 바로 그처럼 전염에 대한 공포를 야기하는 몹쓸 질병과 같은 것으로 취급된다.” (254쪽)
“세계 자본주의 메커니즘에 일층 더 긴박되어 초국적화한 대기업에 대한 심리적 의존이 없이는 한순간도 숨 쉴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무감각해지고 타인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잃어버렸다. 집단적인 노력을 통해서 사회적 발전의 흐름과 성격을 바꾸어보려는 마음보다는 로또 복권에 당첨되면 그날로 나는 해방이고 우리 식구에게도 누가 러브하우스를 지어 주었으면 하는, 환상적이자 동시에 속물적인 사고법이 무한증식을 해나가고 있다.” (257쪽)
IMF이후 소시민들의 생활고
한껏 거품이 일었던 1990년대가 지나고 1990년대 말. 우리들에게 불어 닥친 비극은 바로 IMF이었다. 실제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가정들이 IMF로 인한 경기침체와 함께 무너져갔는데, 나의 외가댁 친척들 몇몇 분들도 하시던 사업을 접어야 할 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입으셨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들이 자주 접했던 뉴스에서는 소시민들의 삶을 조명하기는 커녕 무슨 기업이 부도가 나고 합병이 되었는지와 같이 도산한 사업가들의 이야기만이 지속적으로 흘러나왔고 나라를 부도에서 구하기 위해 '금모으기'만 외치곤 했었다. 나라의 위기 앞에서 모든 것은 국가의 안위에 맞추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은 <유랑가족>의 사진작가 ‘한’이 취재를 위해 전국방방곡곡을 떠돌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었다. 졸지에 일자리를 잃어버린 남편. 먹고 살려다가 헤어 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빠져버린 많은 아내. 가족이 찢어지게 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아야 하는 아이들. 그마저도 의지할 수 없으면 혼자 남겨진 아이들.
그 뿐인가 강제로 도시 재개발 지역의 대상이 되어 떠나야 하는 사람들. 또 수몰 예정지의 희생자들. 도대체 그들은 이제 어디로 가서 살아야 하는가? 혹시 그들이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있는가? 따로 떼어놓고 보면 너무나도 안 되었고 측은한 이들의 삶이지만 저자는 <유랑가족>이라는 제목 하에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올리면서 우리들에게 메가톤급의 충격을 불러 일으킨다.
2009년 유랑가족. 용산, 쌍용…….그리고 금융위기
벌써 아홉 달로 접어든 흐른 2009년은 너무나도 힘든 한해였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모두가 움츠러든 한해였으며, 그로 인해서 ‘쌍용’으로 상징되는 수많은 기업들의 도산위기와 구조조정으로 인해서 많은 노동자들이 힘들어했던 한해였다. 그리고 ‘용산’으로 상징되는 가뜩이나 얼어붙은 시대상황에 그들을 내쳐버린 정부로 인해 소시민들의 삶은 더욱 궁핍한 한해였다.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대기업들의 수출실적은 너무나도 좋은 편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다시금 주식투자의 유혹이 스믈스믈 기어 나온다. 이러한 대기업들과 주식투자자들. 그리고 <유랑가족>으로 대변되는 이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부풀어 오른 유동성은 지금 누구의 손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는가?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그들 사이의 연결고리는 이미 끊어진 것처럼 보인다. 서민들에게 단비가 되어줄 정부의 지원은 너무나도 요원해보이기만 한다. 사실 처음에 이 책을 처음 읽으면서 70년대 시대상을 묘사한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 시간과 공간을 같이 살아가는 2009년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였다.
<유랑가족>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
가난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청빈사상의 고취도 좋다. 그리고 자원해서 이웃을 돕는 사회참여도 좋다. 하지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이러한 현실을 많은 사람이 깨닫게 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회 속의 음지에 살고 있는 이들이 이토록 ‘돈’이라는 존재에게 핍박받고 있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아니 어쩌면 알고 있으면서 행여나 전염병 같이 나에게 옮을까 두려워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애써 외면하면 외면할수록 그 사실은 더욱 현실이 되어 우리의 발목을 붙들 것만 같아서 너무나도 무섭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책을 더욱 많은 사람이 읽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좋은 기회에 우리의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공선옥 작가의 글을 읽어서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슬픈현실을 꾹꾹 눌러담고 있는 이 책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한켠이 먹먹해졌다. 빤짝이가 나눔 해 준 이 책. 가난이라는 주제를 회피하지 않고 적나라하게 우리에게 보여주는 공선옥님의 글이 조금이나마 우리들에게 퍼질 수 있도록 반드시 나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