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 평전 - 애국과 매국의 두 얼굴
윤덕한 지음 / 중심 / 199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는 이완용이 우리가 알고 있던 악랄한 매국노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밝혀냄으로써 무엇을 알리고자 했던 것일까? 저자는 을사조약과 한일합방만 해도 이완용 등 을사5적의 탓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구한말은 이완용 못지않은 매국노로 득실거리는 매국노 천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을사조약 당시 법부대신이던 이하영만 하더라도 일본군이 절대 철수하면 안된다는 반민족적 책동을 한 매국노이고, 합방 당시 궁내부대신이던 민병석, 친일개화파였던 윤웅렬 등도 합방의 공로로 작위를 받은 매국노였다.

“과연 이완용과 이하영 민병석 윤웅렬의 매국 행위가 얼마나 차이가 있다고 한쪽은 묘까지 파헤쳐지고 그 자손은 얼굴을 들지 못하는데, 다른 쪽의 자손은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가로 떵떵거리며 윤웅렬의 조카 윤치소의 아들(윤보선)은 대통령으로, 민병석의 아들 민복기는 대법원장으로, 이하영의 손자 이종찬은 육군참모총장으로 이름을 날리는가.”

“거듭 강조하지만 이완용은 만고의 매국노다. (그러나) 망국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민비나 대원군이 저지른 죄과는 이완용의 그것에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고 무거운 것이다. 우리는 이완용에 대한 단죄와 함께 이들 망국배와 매국노들에 대해서도 공정한 역사의 심판을 내려야 한다. 그렇지않고 모든 책임을 이완용 한사람에게만 묻는다면 그것은 또 다른 역사의 이지메이며 그를 속죄양으로 삼은 대다수 매국노들의 비열한 책임전가다.”

흔히들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다는 말들을 하지만, 사실 역사도 끝난 바둑처럼 복기를 하면서 검토해볼 수 있는 대상이다. 당시 한반도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세력균형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전세계적으로 러시아-프랑스-독일의 동맹과 일본-영국-미국의 동맹이 대립하고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중에 러일 전쟁에서도 영국과 미국은 전쟁비용의 대부분을 제공하면서 일본을 지원하였고 일본은 그 때문에 군사강국 러시아를 격파할 수 있었던 것이다. 러일 전쟁에서 패배한 후유증으로 러시아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짜르는 축출 당하고 제헌의회가 소집되기에 이른다. 일본이 한반도를 강대국들의 묵인 아래 합병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혁명의 와중에서 러시아라는 국가 자체가 사라져버렸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청나라도 1900년 의화단의 반란을 계기로 대륙 전체가 혁명기에 돌입하게 되고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이라는 국가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이 같은 국제 정세 아래에서 신흥 강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의 한반도 점령을 막는데 도움을 줄만한 세력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에서 우리의 왕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권력다툼에 외세를 이리저리 동원하다가 결국에는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완용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일본과 내선일체 되는 것이 국민들을 위해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는 이런 식으로 자신의 행동을 포장했지만, 그 당시 그의 행동을 떳떳하게 질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적어도 왕실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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