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헤로도토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전 읽기를 시작한지 1년이 넘었으나 아직 그리스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는 ‘신화의 시대’를거쳐 ‘역사의 시대’로 들어갈 차례다.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과장되고 허풍이 넘친다는 우려가 있지만,
직접 읽어보고 난 후에 판단하는게 낫겠다 싶어 바로 읽기에 돌입했다.

 
1. 헤르도토스는 누구인가?

헤로도토스는 BC 485년경 소아시아 카리아 지방(터키 서남부 지역) 할리카르낫소스(지금터키 보드룸) 시에서 태어났다.
 
이게 언제쯤인고 하니 페르시아 전쟁(BC 499~449) 중
다리우스 1세가 보낸 페르시아 제국군이 마라톤 평야(BC 490)에서 그리스 연합군에게  참패한 후,
다리우스 1세가 직접 복수의 칼날을 갈며 침략 준비를 하던 도중 사망하고
크세르크세스 1세가 새로운 페르시아의 황제로 등극한 그 때쯤이었다. (BC 486)
 
그가 태어났던 카리아 지방은 그리스인들이 식민지로 삼았던 곳으로 이오니아 지역으로 불리는데,
당시에는 페르시아 제국의 수중에 넘어간 상태였다.
 
어린 헤로도토스가 열심히 자라는 가운데,
크세르크세스는 대군을 모아 10 년만에 다시 그리스 본토를 침략한다.
BC 480년 테르모퓔레, 아르테미시온전투에서 선전하고
아테네까지 점령, 도시를 약탈하고 신전을 불태우며 승리를 확신하지만,
살라미스 해전에서 대패하자 두려워진 크세르크세스는
마르도니우스와 함께 30만 육군 병력만 남기고 해군 병력과 함께 퇴각한다.
 
BC 479년 마르도니우스가 이끄는 페르시아군은 또다시 아테네를 점령하지만
그리스 연합군과 맞선 플라타이아이 전투에서 참패한다.
얼마 남지 않은 페르시아군은 재빠르게 페르시아로 퇴각한다.
이런 어수선한 틈을 타 그리스군은 이오니아 지방을 회복하기 위해 함대를 보낸다.
사모스를 점령한 후 뮈칼레곶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도 그리스군이 승리함으로써
마침내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승자가 정해진다.
 
이렇게 이오니아 지방이 페르시아의 지배하에서 벗어나자
주변의 그리스인들이 살던 곳들에서도 여기저기 반란이 일어났을 것이다.
 
헤로도토스가 살았던 할리카르낫소스도 마찬가지였는데,
그 자신이 할리카르낫소스 참주 뤽다미스(Lygdamis)를 축출하는데 실패하자 사모스로 망명했던 사실로 알 수 있다.
(책에 나오는 사모스에 대한 상세한 기술은 이 시기의 경험으로부터 나왔을 것이다.)
 
그 후 BC 454년(31살)에 마침내 뤽다미스 축출에 성공하지만
동료들과의 견해차로 헤로도토스는 영영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BC 444년(41살)에 남이탈리아 범그리스 식민지 투리오이(Thourioi)로 이주했고 그 곳에서 살다가 사망했거나
마케도니아 펠라(Pella)에서 사망했다고도 한다.
 
BC 445/4년(40/41살)에는 아테네에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책을 낭독하여 돈을 벌었으며,
이 때 페리클레스(BC 495~429), 소포클레스(BC 496~406)와 친교를 맺었다고 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한 BC 431년(54살) 이후 몇 년 간의 전쟁을 체험한 그는
BC 424년(61살) 이전에 '역사'를 출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2. 헤로도토스 여행 경로
 
책에서도 알 수 있지만 헤로도토스가 여행했던 곳으로 추측되는 지역은
교통편이 발달한 지금 살펴봐도 어마어마할 정도로 광대하다.
어떻게 여행했는지는 의문으로 남아있다.
 
그리스 본토의 모든 지방, 소아시아, 남이탈리아, 시칠리아
 
흑해 연안 -> 스퀴타이족의 나라 -> 흑해 남안 -> 트라케 지방 -> 마케도니아 지방
-> 나일강 상류 엘레판티네시, 나일강 제1폭포 여행, 북아프리카의 퀴레네시 (이집트 4개월 여행)
-> 서아시아 튀로스시, 에우프라테스강, 바뷜론
 
 
3-1. ‘역사’의 시대적 배경

'역사'가 다루고 있는 고대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당시
중국은 공자(BC 552~479), 묵자(BC 480~390) 등 제자백가 사상가가 활약하던 춘추시대였으며,
인도는 석가모니(BC 563~480?)가 생로병사의 뜻을 깨닫고 열반에 들었던 시대였다.

 
3-2. ‘역사’ 출간 시기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책 안에서 펠로폰네소스 전쟁(6권 98장,7권 137장)이 언급되고 있으므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한 BC 431년과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아카르나이 구역민들'(523행 이하)에서 책이 언급되고 있으므로
희극이 공연된 BC 424년 사이에 출간된 것으로 보인다.
 
 
4. 책을 쓴 목적
 
헤로도토스가 책을 쓴 목적은 서문에 언급되어 있다.
 
이 글은 할리카르낫소스 출신 헤로도토스가 제출하는 탐사 보고서다.
그 목적은 인간들의 행적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망각되고,
헬라스인(그리스인)들과 비헬라스인(非그리스인)들의 위대하고도 놀라운 업적들이
사라지는 것을 막고, 무엇보다도 헬라스인들과
비헬라스인들이 서로 전쟁을 하게 된 원인을 밝히는 데 있다.

 
5. 책의 신빙성
 
나는 솔직히 말해 아이귑토스의 경계 말고 아시아와 리뷔에의 경계를 알지 못한다.(2권 17장)
 
내가 지금까지 아이귑토스에 관해 말한 것은 내가 직접 보고 판단하고 탐사한 것에 근거한다. (2권 99장)
 
나는 들은 것을 전할 의무는 있지만, 들은 것을 다 믿을 의무는 없으며, 이 말은 이 책 전체에 적용된다. (7권 152장)
 
정복하러 간 각 부족들과 마주칠 때 그 부족의 유래와 관습, 중요인물들의 에피소드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한 후 다시 사건을 진행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직접 여행한 곳은 사제나 서기, 부족민들의 얘기를 듣고 인용하며 자신의 견해를 덧붙인다.
 
 
6. 책의 내용
 
페르시아 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퀴로스 2세(재위 BC 559~529) 시기의 뤼디아와 메디아 왕국 정복,
캄뷔세스 2세(재위 BC 530~522) 시기의 아이귑토스(이집트) 정복,
다레이오스 1세(재위 BC 522~486) 시기의 스퀴티스(스키타이) 및 리뷔에(북아프리카) 원정 실패, 이오니아 반란(BC494),
마라톤 전투 참패(BC 490)를 통한 헬라스 원정 실패,
크세르크세스 1세(재위 BC 486~465) 시기의 테르모퓔라이 전투, 아르테미시온 해전, 살라미스 해전(BC 480),
플라타이아이 전투, 뮈칼레 전투(BC 479)를 통한 헬라스 원정 실패를 다루고 있다.
 
수많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다음과 같다.
 
1권 29~33장 솔론과 크로이소스
크로이소스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솔론 : 무슨 일이든 그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눈여겨 보아야 하옵니다.
        신께서 행복의 그림자를 언뜻 보여주시다가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뜨리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니까요.
 
1권 119장 퀴로스와 하르파고스 인육식사
 
2권 86장 아이귑토스 미이라 제작
 
3권 39~43장 사모스 참주 폴뤼크라테스의 행운의 반지
가장 아끼는 반지를 버리지만 잡은 물고기를 통해서 다시 되찾은 운좋은 폴뤼크라테스 이야기
매사에 성공하는 것보다는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살아가는 것이 더 낫기 때문입니다.
매사에 성공하는 사람치고 말로가 비참하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기에 하는 말입니다.
 
4권 73장 스퀴타이족 사우나
 
4권 149장 오이디푸스 가문 요절
 
6권 105장 마라톤 전투 원군을 스파르테에 요청한 전령 필립피데스
 
7권 35장 헬레스폰토스 바다를 채찍질하는 크세르크세스
 
7권 226장 테르모퓔라이 전투의 영웅 레오니다스와 디에네케스
페르시아인들과의 전투가 시작되기 전 그는 어떤 트라키스인에게서 페르시아인들이 활을 쏘면
화살들에 해가 가려질만큼 그들의 수가 엄청나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페르시아인들의 수가 많은 것에 놀라기는커녕 태연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트라키스 친구여, 그대는 좋은소식을 전해주시는구려.
 페르시아인들이 해를 가려준다면, 우리는 햇볕이 아닌 그늘에서 싸우게 될 테니 말이오.”

 
7.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원인
 
그렇다면 헤로도토스가 말하고 싶었던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 20척의 함선은 헬라스인들에게도,비헬라스인들에게도 화근이 되었다. (5권 97장)
 
다레이오스는 이오니아인들이 반기를 든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에 관해서는 아무언급도 않고 아테나이인들이 누구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리고 대답을 듣고 나서 활을 달라고 하더니 시위에 화살을 얹고는 하늘을 향해 쏘았다고 한다.
그리고 허공을 향해 화살을 쏘며 외쳤다고 한다.
“제우스시여, 제가 아테나이인들을 응징할 수 있게 해주소서!”
그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시종 가운데 한 명에게 식사 시중을 들 때마다
“전하, 아테나이인들을 기억하소서!”라고 세 번씩 외치도록 명령했다고 한다. (5권 105장)
 
이오니아 반란(BC 494)시 밀레토스 참주 아리스타고라스의 지원요청에 스파르테는 거절했지만
아테나이는 함선 20척을 제공함으로써 다리오스1세가 헬라스를 정복하기로 결심한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8. 페르시아 제국이 패배한 이유
 
그리스 연합군이 페르시아 대군에 맞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페르시아군의 기병에 중점을 둔 편제와 온갖 민족이 함께한 구성에 있었다.
 
페르시아인들은 경무장보병이었고 헬라스인들은 중무장보병들이었다. (9권 63장)
 
페르시아군에 수많은 이민족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페르시아군이 달아나자
적군과 맞붙어보지도 않고 달아났다. (9권 68장)
 
그리스 연합군의 데미스토클레스와 레오튀키데스는 페르시아군 내에 이오니아인이 많다는 것을 이용하여
전투 전에 그리스어로 전투에서 최선을 다하지 말라는 성명을 발표하여 내분을 불러 일으켰다.
이오니아인들이 마음을 돌이켜 그리스인들 편이 되거나 페르시아군이 그들을 불신해
더 이상 전투에 참가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의도였고 이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8권 22장, 9권 98장)
 
또 하나 가장 큰 이유는 페르시아 제국의 오만(Hybris)이었다.
 
그리스 연합군을 깔본 것은 물론이고 아테네 점령시 신전을 불태워 신들을 모독할 만큼 그들의 오만은 하늘을 찔렀다.
아르테미시온 전투에서는 북풍이 불어 페르시아 함대를 침몰시켰고,
플라타이아이전투, 뮈칼레 전투에서는 엘레시우스의 데메테르 성역 옆에서 벌어졌는데
페르시아군이 엘레시우스에 있는 자신의 신전을 불태운 까닭에 여신께서 그들을 멀리하신 것 같다. (9권 65장, 101장)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알려져 있는 것처럼 과장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자신이 직접 여행을 하면서
얻은 경험과 현지 사제, 서기, 주민들의 진술에 기반하여 사건을 기록하여 신뢰를 얻고 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에서처럼 신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있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의 객관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한 부분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또한 생생한 문체와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책 읽는 즐거움을 한 껏 배가시킨다.
키케로가 말했듯이 ‘역사의 아버지’라는 말이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음...
지옥편, 연옥편과는 다르게
천국편(Paradiso)은 정말 벅차다.

단테도 천국편을 쓰기 위해
지옥편과 연옥편을 썼다고
생각될 정도다.

책을 읽으면서 숨이 찬 적은 이번이 처음이며
내가 책을 읽었는지 영화를 봤는지 음악을 들었는지도
헷갈릴 정도다.

이미 많은 분들이 천국편을 읽었겠지만,
읽고 나면 독서의 또다른 차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힘들더라도 천국편까지 읽으시길 권한다.

아마도 단테는 자기가 평생동안 쌓아온
모든 지식을 천국편에 모두 쏟아놓았을 것이다.
한 사람의 평생을 책 안에 쏟아놓았으니
버겁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지옥편, 연옥편에서 베르길리우스가 길잡이가 되었고
천국편에서는 베아트리체가 길잡이가 된다.
베르길리우스가 인간의 학문을 상징한다고 하면,
베아트리체는 신의 학문, 즉 신학을 상징한다.
곧 천국편은 신학을 다루고 있으며,
단테 당시까지 신학계 내부에 축적된 거대한 교리문답서라고 할 수 있겠다.

신학은 커녕 성경도 다 읽어보지 못한 입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입각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등을 받아들이려니
생각해보면 버겁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단테도 자기가 본 것을 형언할 수 없다고 했으니
나도 내가 읽은 것을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겠으나
대충이라도 정리해보겠다.

천국에 도착한 단테는 베아트리체의 도움으로
천국에 있는 10개의 하늘로 오른다.

제1하늘 월천 : 폭력 때문에 서약할 수 없었던 영혼들
제2하늘 수성 : 아름다운 이름을 구한 영혼들
제3하늘 금성 : 사랑에 불탔던 영혼들
제4하늘 태양 : 지식인의 영혼들
제5하늘 화성 : 믿음을 위해 싸운 영혼들
제6하늘 목성 : 지상에서 정의를 행했던 영혼들
제7하늘 토성 : 묵상 생활을 한 영혼들
제8하늘 항성천 : 승리에 빛나는 영혼들
제9하늘 원동천 : 천사들의 거처
제10하늘 정화천 : 성삼위일체의 거처



<구스타프 도레, 천국편, 제14곡, 제5하늘, 화성천, 십자가 속 그리스도>


천국은 지옥이나 연옥과 다르게 행복과 기쁨만이 넘쳐난다.
하지만 천국도 지옥이나 연옥처럼
생전에 행했던 선행의 무게에 따라 등급이 매겨져 있으며
더 높은 하늘로 올라갈수록 더욱 행복하고 더욱 빛나고 더욱 기쁨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품었던 온갖 의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
사도(베드로, 야고보, 요한)들에게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자격을 얻고 난 후
마침내 단테는 하느님이 머무는 정화천(엠피리오)에 도착하여
행복과 기쁨의 극치를 맛보게 된다.

이상이 대략적인 내용이고 몇 가지 의문을 정리해본다.


1.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천국에 이를 수 있는가?



<구스타프 도레, 천국편, 제19곡, 단테와 베아트리체, 독수리 모습의 영혼들>

그러나 보라,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여,
그리스도여!'라고 외치는데 그들은 그리스도를
몰랐던 자들이라기보다 그에게서 멀리 떠난 자들임을.

- 단테, 신곡, 천국편, 제19곡, 106~108행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 마태복음, 7장 21~23절


예수천국, 불신지옥이 아니라,
예수천국에도 조건이 있단다.

예수를 믿고 예수의 뜻대로 행한 후에야
천국의 길에 이를 수 있으니
천국으로 향하는 문은 진정으로 좁은 문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 마태복음, 7장 13~14절


2. 천국에도 죄인들이 있는가?



<구스타프 도레, 천국편, 제3곡, 단테와 베아트리체, 피카르다 도나티, 코스탄차>

달의 하늘을 다루고 있는 제2곡~제5곡까지를 살펴보면,
수녀원에서 생활하다 환속한 영혼들이 나오는데,
베아트리체는 그들을 보고 절대적인 의지의 경우로 보면 죄를 지은 것이지만,
상대적인 의지로 보면 더 큰 죄를 피하기 위해서 작은 죄를 지은 것이기 때문에
용서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녀들은 더 높은 하늘로 오르지는 못하지만,
달의 하늘에 머물며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연옥행과 천국행을 나누는 죄의 경중을 어떻게 따질 것인지는 논란이 남는 부분이다.


3. 아담과 하와, 베아트리체는 어떻게 천국에 올랐나? (천국편, 제32곡)



<구스타프 도레, 천국편, 제31곡, 성모 마리아, 성 베르나르, 하와, 라헬, 베아트리체>

앞에서 다루었듯이 죄인도 천국에 오를 수는 있지만 낮은 단계의 천국에 머무른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인간으로서는 가장 높은 하늘인 제8하늘 항성천에 자리잡고 있다.
또한 가장 높은 하늘인 정화천의 자리배치에서
아담은 성모 마리아의 왼편에, 하와는 성모 마리아의 발치에 앉아있다.

선악과를 받아 먹어 인류에게 원죄를 안긴 사실을 고려하면
오히려 배반의 죄를 물어 지옥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어야지
가장 높은 자리의 천국에 있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이마미치 교수는 이 의문을 던지며 스스로 답을 한다.
단테는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을 하고 있지 않다.

아담은 분명 원죄의 근원이지만, 아담이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우리가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단테신곡강의, P.584

하지만 죄를 짖지 않았다면 구원받을 필요도 없었을 거라는 것을 생각하면 딱히 납득하기 힘들다.

내 생각은 다르다.
왜 단테는 아담과 하와를 천국에 앉힌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예찬이 아닐까 한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실 때 너그러운 아량으로
주셨고 또 그분의 덕성에 제일 부합된 데다가
무엇보다도 더 값지게 여기셨던 가장 큰 선물이
곧 자유의지였는데, 이것은 온갖
지성적 피조물들에게 한꺼번에든 따로따로든
주어졌던 것이며 또 주어지고 있는 것이라오.
- 단테, 신곡, 천국편, 제5곡, 19~24행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존재는 하느님이다.
하느님은 인간을 자신의 모습을 닮은 존재로 만들었다.
하나님의 인간에게 부여한 선물 중 가장 큰 선물은 자유의지다.

아담과 하와에 의해 하느님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먹게 되었지만,
그대신 하느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최고의 선물인 자유의지를 처음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 이후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원죄를 대속하기 전까지
인간들은 계속해서 자유의지를 사용했으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점점 하느님과 가까운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단테는 아담과 하와를 천국에 두었던 것은 아닐까?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이렇게 구분한다고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해하기 위해 믿었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믿기 위해 이해했다'.

단테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론을 따랐다고 한다.

단테는 누구보다도 중세적 관점에서 신곡을 집필하여 신을 예찬했지만,
또한 인간의 자유의지를 예찬함으로써
누구보다도 근세적 관점에 서있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단테에 이르러서야 인간은 신과 한몸이 되었다.

끝으로
베아트리체가 천국에 오른 것은
단테의 믿음, 소망, 사랑 때문 아니였을까.

베아트리체 덕분에
단테가 지옥과 연옥과 천국을 경험하고
우리가 그 세계를 경험할 수 있으니
베아트리체는 천국에 오를 자격이 있지 않을까.

근 1년 가까이 신곡과 함께한 여행이 끝났다.
다음 여행지는 어디가 될까?
나도 궁금하다.



<구스타프 도레, 천국편, 제31곡, 단테, 베아트리체, 지복자들의 장미>


<천국편 줄거리>

천국편 시간 내용
제1곡 1300년 4월 13일(수) 정오 천국, 묘사할 수 없을 정도의 광경, 인간으로서 똑바로 볼 수 없던 태양을 똑똑히 볼 수 있음.
단테는 땅을 벗어나 빛의 속도로 하늘을 향해 오르고 있는데 어떻게 인간의 몸으로 이것이 가능한가.
하느님의 섭리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제2곡 1300년 4월 13일(수) 제1하늘, 달(월천), 달그림자는 왜 나타나는가? 하느님의 빛은 동일하게 내리쬐지만 피조물들끼리 서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다르게 나타난다.
제3곡 1300년 4월 13일(수) 오후 1~3시 제1하늘, 달(월천), 서원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 가변적인 사람들, 피카르다 도나티, 코스탄차, 아베 마리아
제4곡 1300년 4월 13일(수) 오후 1~3시 제1하늘, 달(월천), 단테의 의문 1) 좋은 의지가 서원을 계속 지켜나가는데 타인이 어떻게 폭력으로 그 덕성을 감퇴시킬 수 있는가?
좋은 의지가 있더라도 폭력스런 삶과 함께 있다보면 물들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달에 있는 영혼들이 환속한 후에도 자기들이 좋은 의지를 가지고 살았다고 하지만 종교에 귀의하여 서원을 계속 지켜나간 삶보다는 아쉬움이 있을 수 밖에 없다.
2) 복받은 영혼들이 각각 다른 하늘에 나타난다면 영혼들은 별들로 되돌아간다는 플라톤의 말이 옳은 것인가?
모든 영혼은 하느님에게서 나오며 생전에 쌓은 공덕에 따라 다양한 하늘에 위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플라톤의 말은 틀리다.
라우레니우스, 무키우스, 알케마이온
제5곡 1300년 4월 13일(수) 제1하늘, 달(월천), 단테의 의문 1) 다른 선행으로 미쳐 마치지 못한 서원을 대신할 수 있는가?
하느님과 개인의 계약, 자유의지 외의 다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입다, 아가멤논
제6곡 1300년 4월 13일(수) 제2하늘, 수성천, 유스티니아누스, 로마의 역사 개략, 아이네아스, 아스카니우스, 호라티이-쿠리아티이, 사비니여인, 루크레티아(섹스투스), 토르콰투스, 퀸크티우스, 데키우스,
파비우스, 스키피오(한니발),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프톨레마이오스, 브루투스, 카시우스, 아우구스투스, 클레오파트라, 티베리우스, 티투스(예수의 죽음에 대한 하느님의 유대인에 대한 복수), 콘스탄티누스
제7곡 1300년 4월 13일(수) 제2하늘, 수성천, 단테의 의문 1) 정의의 복수가 어떻게 정의에 의해 보복을 받는가?
그리스도의 죽음은 두가지 면이 있다. 하나는 인간으로서 원죄를 갚은 것이고, 하나는 신으로서 유대인들에게 죽음을 당한 것이다.
티투스는 이들 유대인들에게 하느님의 복수를 한 것이다.
2) 왜 인간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의 죽음을 택하였나? 인간은 원죄를 가진 불완전한 존재, 인성, 신성을 함께 가진 그리스도가 대속할 수 밖에 없음.
3) 하느님이 창조한 모든 것이 영원하다면 왜 물, 불, 공기, 땅 등의 요소가 썩는 것인가? 짐승과 식물은 모습(형상)은 변하지만 성질(질료)는 영원하다.
모습이 변하기 때문에 영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원래 흙이었다. 인간의 육신은 썩지만 최후의 심판 때 부활하여 영생한다.
제8곡 1300년 4월 13일(수) 오후 5~7시 제 3하늘, 금성천, 샤를 마르텔, 단테의 의문 1) 선량한 부모에게서 어떻게 사악한 자식들이 태어날 수 있는가? 각자 다른 소명을 가지고 태어나므로 같은 부모에게서 다양한 자식들이 태어난다. 솔론, 크세르크세스, 멜기세덱, 다이달롯, 에서, 야곱, 로물루스
제9곡 1300년 4월 13일(수) 오후 7시 제3하늘, 금성천, 쿠니차 다 로마노,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임, 폴코 다 마스실리아, 라합, 피렌체는 루시페르가 세웠기 때문에 엉망.
제10곡 1300년 4월 13일(수) 오후 8시 제4하늘, 태양천(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 입각), 위대한 신학자들과 교부
토마스 아퀴나스, 알베르토 마그누스, 그라치아노, 피에트로 롬바르도, 솔로몬, 디오니시우스, 보에티우스 시지에리
제11곡 1300년 4월 13일(수) 제4하늘, 태양천, 토마스 아퀴나스, 성 프란체스코
제12곡 1300년 4월 13일(수) 오후 9시 제4하늘, 태양천, 보나벤투라, 성 도미니쿠스
제13곡 1300년 4월 13일(수) 제4하늘, 태양천, 토마스 아퀴나스, 단테의 의문 1) 솔로몬의 지혜는 왜 아담과 그리스도에 비할 수 없나요?
완전한 인간은 아담과 그리스도 밖에 없었다. 솔로몬의 지혜는 왕이 되기 위한 인간의 지혜이지, 신을 알기 위한 신의 지혜는 아니다.
판단에 너무 자신을 가지지 말고, 성급하게 분별하지 말라.
제14곡 1300년 4월 13일(수) 제4하늘, 태양천, 솔로몬, 단테의 의문 1) 육신이 부활할 때 이 빛들이 존재하는가? 부활한 육신이 더욱 빛날 것이다.
제15곡 1300년 4월 13일(수) 오후 9시~11시 제5하늘, 화성천, 십자가, 순교자, 핏빛, 카치아구이다(단테의 고조부), 십자군 전쟁 다마스커스 점령 전후 순교, 증조부 알리기에리는 연옥 제1권역에 있음
제16곡 1300년 4월 13일(수) 제5하늘, 화성천, 카치아구이다, 1091년, 자기와 가문의 조상은 피렌체에 있는 성 피에로의 제6구에서 태어남,
그 당시 피렌체 주민의 지금의 5분의 1, 위대했던 피렌체인들은 시대 안에서 사라져갔다.
제17곡 1300년 4월 13일(수) 제5하늘, 화성천, 카치아구이다, 단테의 미래 예언(추방, 기숙, 귀양살이), 바르톨로메오 델라 스칼라, 칸그란데 델라 스칼라
제18곡 1300년 4월 13일(수)~4월 14일(목) 제5하늘, 화성천, 카치아구이다, 여호수아, 마카베오, 샤를마뉴, 롤랑
제6하늘, 목성천, DILIGITE IUSTITIAM(정의를 사랑하라), QUI IUDICATIS TERRAM(땅을 심판하는 자들이여), 독수리 모양
제19곡 1300년 4월 14일(목) 제6하늘, 목성천, 독수리 형상의 영혼들, 단테의 의문 1) 그리스도교적인 신앙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 있었던 자들은 벌받아 마땅한가?
루시퍼조차도 유혹에 넘어갔는데 그보다도 못한 인간의 지성은 한계가 있고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 신 안에서야 비로소 구원이 가능하다.
신을 믿기만 할 뿐 악행을 저질렀던 자들은 천국에 오르지 못한다.
제20곡 1300년 4월 14일(목) 제6하늘, 목성천, 독수리 형상의 영혼들, 눈동자(다윗), 눈썹(트라야누스, 히즈키야, 콘스탄티누스, 구일리엘모 2세, 리페우스)
단테의 의문 1) 트라야누스, 리페우스는 이교도인데 어떻게 천국에 있는가?
트라야누스 황제는 이교도였지만 그레고리우스 1세의 기도로 천국에 왔고,
리페우스도 이교도였지만 그리스도의 영세 천년도 이전에 믿음, 소망, 사랑의 삼신덕에 의해서 영세를 받아 천국에 왔다.
제21곡 1300년 4월 14일(목) 제7하늘, 토성천, 황금층계(야곱의 사다리?), 웃지 않는 베아트리체, 너무 빛나면 단테가 세멜레처럼 불타버릴까 염려
카트리아 수도원의 성 피에트로 다미아노, 단테의 의문 1) 왜 당신같은 영혼들만이 곧 자기에게 이야기하도록 예정되었나? 아무도 모른다.
제22곡 1300년 4월 14일(목) 제8하늘, 항성천, 성 베네딕투스, 성 마카리우스, 성 로무알두스, 베네딕투스회의 수도자들, 베네딕투스회는 이미 도둑들의 소굴이 되어버렸다.
제23곡 1300년 4월 14일(목) 오후 3~9시 제8하늘, 항성천, 그리스도 개선의 무리(그리스도, 성모 마리아, 가브리엘 천사, 사도들), 항성천 -> 정화천
제24곡 1300년 4월 14일(목) 제8하늘, 항성천, 베아트리체, 단테의 천국입성자격 심사토록 요청
성 베드로(믿음 상징) 질문, 단테 답변
1) 신앙은 무엇인가? 단테의 답변, 바라는 것의 실체, 아직 오지 않은 것의 확증입니다.
2) 신앙이 어디서 유래하느냐? 성경 위에 널리 퍼진 성령의 흡족한 비
3) 그것들을 어찌 하느님의 말씀이라 여기느냐? 수많은 기적들
4) 그 기적들이 있었음을 누가 네게 증거했느냐? 기적들 없이 그리스도교가 퍼졌다면 더 큰 기적일 것이다
5) 너의 신앙은 어디로부터 비롯되었느냐? 오직 한 분이신 영원한 하느님
제25곡 1300년 4월 14일(목) 제8하늘, 항성천, 성 야고보(소망 상징), 소망이 무엇이며, 얼마나 소유할 수 있으며, 어디서 비롯되느냐?
소망이란 미래의 영광(축복)에 대한 확고한 기대감인데, 이것을 낳는 것은 하느님의 성총과 앞서가는 공덕입니다.
이 빛은 많은 별들, 특히 다윗의 시편, 야고보의 편지로부터 비롯됩니다.
성 요한(사랑 상징), 모습을 보려고 애쓰는 단테에게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만 영육이 함께 천국에 올랐고, 우리의 육신은 최후의 심판 때 함께하게 된다고 말한다.
제26곡 1300년 4월 14일(목) 제8하늘, 항성천, 단테 빛때문에 순간적으로 눈이 멈, 성 요한(사랑 상징)
1) 사랑이란 무엇이냐? 하느님
2) 왜 하느님을 사랑하느냐? 철학적 이론과 성서의 권위
3) 또 다른 이유는? 나의 창조, 그리스도이 죽음, 영원한 축복에 대한 소망
아담에게 단테가 질문
1) 아담이 창조된 것은 얼마전인가? 림보 4302년, 땅 930년
2) 아담은 지상낙원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살았는가? 일곱시간
3) 하느님은 왜 아담에게 분노했는가? 선악과를 먹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명을 거역했기 때문
4) 아담이 창조하고 사용했던 언어는 어떤 것이었는가? 바벨탑 사건 전에 사라짐
제27곡 1300년 4월 14일(목) 제8하늘, 항성천, 성 베드로, 교황 무리에게 일갈
제9하늘, 원동천, 가장 빠른 하늘, 베아트리체, 인간의 탐욕 일갈
제28곡 1300년 4월 14일(목) 제9하늘, 원동천, 찬란한 점(하느님)과 아홉 개의 둘레(천사들), 천사들의 합창, 천사들의 위계는 디오니시우스의 연구
제29곡 1300년 4월 14일(목) 제9하늘, 원동천, 베아트리체, 천사들의 창조, 만물과 함께 창조, 천사는 기억을 가질 필요가 없다. 오직 성서, 거짓 사면의 위험
제30곡 1300년 4월 14일(목) 제10하늘, 정화천, 천사들과 지복자, 단테 찬란한 빛의 너울(하느님)로 감싸이다, 지복자들의 장미, 하인리히 7세를 위한 옥좌
제31곡 1300년 4월 14일(목) 제10하늘, 정화천, 베아트리체 대신 성 베르나르가 인도, 단테 장미 꼭대기에 있는 빛나는 성모 마리아를 바라봄.
제32곡 1300년 4월 14일(목) 제10하늘, 정화천 묘사, 성모, 천사장 가브리엘, 하와, 라헬, 베아트리체, 사라, 리브가, 유딧, 룻, 헤브라이 여인
세례 요한, 프란체스코, 베네딕투스, 아우구스티누스, 다른 지복자들
구약, 신약을 믿는 자들, 어린이들의 영혼(아담 이래~아브라함, 부모들의 신앙, 아브라항~그리스도, 할례, 그리스도~, 영세)
베드로, 아담, 요한, 모세, 안나, 루치아
제33곡 1300년 4월 14일(목) 제10하늘, 정화천, 성 베르나르의 마리아께 드리는 기도. 단테가 하느님을 완전히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끌어달라.
하느님 속에서 완전한 행복과 기쁨을 느끼는 단테. 빛 속의 세 개의 둘레(삼위일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일만에 부활한 예수처럼,
3일만에 지옥을 벗어난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구스타프 도레, 연옥편, 제1곡, 카토와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저 높이 하늘에는 반짝이는 별이 보이고,
저 멀리 지평선 너머에는 바다가 보이는 곳.
연옥에 도착했다. 연옥 입구에는 카토가 지키고 있다.

연옥(Purgatorio)은 죄를 정화하는 곳이다.
지옥에 갈 정도로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천국에 갈 정도로 선행을 한 것도 아닌 영혼들이 모이는 곳이다.

어떤 영혼은 자기가 죄를 지은 생애의 3배에 해당되는 기간을 정죄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영혼은 5백년 이상을 정죄한 후에야 드디어 천국의 의지를 깨닫고는 천국에 들어설 수 있었다고도 말한다.
또한 그 기간은 이승에 있는 자기를 기억해주는,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기도해줄수록 줄어든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옥과 연옥은 뭐가 다른가?
지옥은 천국으로 갈 수 있는 희망이 없는 곳이며, (별이 보이지 않는 곳)
연옥은 천국으로 갈 수 있는 희망이 있는 곳이다. (별이 보이는 곳)

같은 죄를 지었더라도 죽기 전에 진심으로 회개를 했더라면
연옥에서 죄를 정화하며 천국으로 갈 기회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연옥은 7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교만, 시기/질투, 분노, 태만, 인색/낭비, 탐식, 애욕의 죄 등
지은 죄에 따라 영혼들이 머무는 곳도 다르다.

각 층에서는
죄와 반대되는 역사적 예와
그 죄를 정화하는 망령과
죄와 관계되는 역사적 예를 볼 수 있다.

연옥, 제일 위에는 지상낙원, 이른바 아담과 하와가 쫓겨났던 에덴동산이 있다.
그 곳에는 선악과 나무가 있으며,
과거의 죄를 잊게 해주는 레테라는 강과
선행의 기억을 새롭게 해주는 에우노에가 흐른다.



<구스타프 도레, 연옥편, 제9곡, 성 베드로 문 앞에서 천사를 만난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성 베드로의 문에서 천사에 의해 일곱 개의 P자(Peccati, 죄)를 이마에 새긴 단테는
각 층을 오를 때마다 한 개씩 지워나간다.
제7권역에서 연옥의 불을 통과하고 마지막 일곱 번째 P자가 지워진다.
지상낙원에서 마텔다가 안내를 하고 마침내 베아트리체를 만난다.



<구스타프 도레, 연옥편, 제30곡>

베아트리체는 왜 그렇게 길을 잃었냐고,
왜 자기가 살았을 때는 덕스럽게 살다가
자기가 죽자 세상의 쾌락에 기울었냐고 질책한다.

단테는 눈물을 흘리며 자기의 죄를 고백한다.

나는 눈물 흘리며 말했다. "당신의 얼굴이
사라지자마자 그릇된 즐거움이
현세적인 것들로 나의 발걸음을 돌려 놨다오."

- 연옥편, 제31곡, 34~36행

죄를 고백한 후 단테는 레테의 강에 몸을 담그고,
에우노에를 마시자 별들에게라도
솟아 올라갈 수 있을 만큼 순수해졌다.

연옥편은 지옥편과는 달리 상징이 많아 어렵다.

지옥에서와 달리 연옥에서 본 광경들은
단테에게 많은 의문을 갖게 만든다.


1. 왜 세상이 이토록 부패했는가? (제16곡)

세상은 그대 내게 일러 준 것과 같이
덕이 온통 메말라 황량하기 그지없고
사악만으로 무겁게 뒤덮여 있다오.
누구는 연유를 하늘에 두고 누구는 이 아래 두는데
내 그 연유를 깨닫고 또 그것을 남에게 알려 줄 수 있도록
그대가 나에게 가르쳐 줄 것을 간청하오.

- 연옥편, 제16곡, 58~63행

단테는 이 세상의 부패의 원인에 대해
연옥에서 분노의 죄를 정화하고 있는
롬바르디아 사람 마르코에게 묻는다.

이에 그 원인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왔던 마르코가 답한다.

만약 하늘의 탓이라면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는 말이니,
인간세상에는 정의도, 선에 대한 기쁨도 악에 대한 슬픔도 없을 것이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하늘의 탓이 아니라 인간의 탓이다.

하지만 세상의 정의와 선을 바로세우고 지키게 만드는 것은 통치제도다.
로마시대에는 세속의 권력인 황제와 정신의 권력인 교황이 서로 분리되어 평온했으나,
지금은 교권이 황제의 권력을 빼앗아 하나가 되었고
그 결과 어떤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는 혼돈의 세계가 되어버렸다.


2. 왜 사랑하는 것이 죄인가? (제18곡)

사랑하는 마음이 밖에서 우리 안에 제공되었을 뿐
영혼이 다른 발로 가는 것이 아니라면,
바르든 그르든 사람의 탓이 아닙니다.

- 연옥편, 제18곡, 43~45행

하나님이 인간을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권세, 명예, 타인의 불행, 돈, 음식)들을 사랑하도록 만들었다면
그게 어떻게 인간의 죄냐, 그건 하나님 탓 아니냐는 투정이다.

이에 베르길리우스는 답한다.

인간은 원초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능력과
선악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도 함께 타고나는데,
그것이 바로 자유의지이다.

쾌락이 아닌 자신을 오래도록 행복하게 해줄
선한 것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선택하는 것은
그 자신의 몫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탓이 아니라 인간의 탓이고, 인간의 죄이다.


3. 영혼들은 영양공급이 필요하지 않은데 왜 야위었나요? (제25곡)



<구스타프 도레, 연옥편, 제24곡>

생애에 먹는 것을 탐했던 자들이 굶주림과 갈증으로 피골이 상접한 모습을 보고
단테는 왜 영혼들이 저렇게 야위는지 의문이 생긴다.

이 질문에는 베르길리우스의 후배 시인이자 5백년 정죄 후 뜻을 깨닫고 연옥에서 천국으로 오르게 되는
로마 시인 스타티우스가 대신 답한다.

햇빛이 포도즙과 어울려 포도주가 되는 것처럼 영혼도 육신과 어울려 하나의 인간이 된다.
죽고 난 후에는 영혼은 육신에서 나와 지옥, 연옥, 천국으로 가게 되는데,
영혼은 육신에 행사했던 힘을 그대로 가지고 주위의 대기에 영향을 미쳐
망령의 모습을 띄게 된다.

이 망령들은 또한 같은 이유에서 감각 기관을 갖게 되고
말하고, 웃고, 울고, 한숨지을 수 있다.
바로 그 때문에 탐식가들은 야윌 수 있는 것이다.

천국편에서 계속하겠다.

<연옥편 줄거리>

연옥편 시간 내용
제1곡 1300년 4월 10일(일) 새벽 하늘과 별들과 바다가 보이는 세계, 연옥 입구, 문지기 카토
제2곡 1300년 4월 10일(일) 오전 6시 천사와 함께 날개 달린 배를 타고 바닷가 도착, 호흡하는 단테, 망령 무리들 중 친구 카셀라 발견(음악가), 성년이 선포되어 연옥에 오게 됨, 내 마음 속에 속삭이는 사랑, 카토의 게으름 질책
제3곡 1300년 4월 10일(일) 오전 6시 30분 연옥 입구, 첫째 비탈, 단테의 그림자, 만프레디, 전장에서 죽음, Quia
제4곡 1300년 4월 10일(일) 오전 9~12시 연옥 입구, 둘째 비탈, 태만(덕을 행항에 있어서 게으름)한 영혼들, 피렌체 사람 벨락콰(악기 제조, 하지만 영적 일이나 세상사에 태만, 연옥에서도 정죄와 기도에 태만)
제5곡 1300년 4월 10일(일) 연옥 입구, 둘째 비탈, 죽기 전 회개한 영혼들, 야고포 델카세로, 본콘테 다 몬테펠트로, 시에나의 피아
제6곡 1300년 4월 10일(일) 오후 3시 연옥 입구, 둘째 비탈, 폭력에 의해 죽음을 당한 영혼들, Zara, 기도의 효과(이승의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 연옥에 머무는 시간이 줄어듬), 만토바의 소르델로(베르길리우스와 동향 사람)
제7곡 1300년 4월 10일(일) 연옥 입구, 소르델로 안내, 해가 져서 이동할 수 없음, 휘황찬란한 계곡, 살베 레지나, 루돌프 1세, 오토카르 2세, 헨리 3세(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필리프 3세, 샤를 앙주 1세
제8곡 1300년 4월 10일(일) 오후 7시 연옥 입구, 세상사에 정신이 팔려 자신과 친지들에 대한 의무를 게을리한 망령들, 영혼들의 기도, 두 천사, 니노 비스콘티(단테의 친구), 계곡을 침입하는 뱀을 천사들이 내쫓음
제9곡 1300년 4월 10일(일) 저녁 9시~4월 11일(월) 오전 8시 단테의 첫 번째 꿈(독수리), 루치아 인도, 연옥의 문(성베드로의 문), 세 개의 계단(하얀색(참회), 검은색(고해), 붉은색(만족)), 이마에 일곱 개의 P자를 새김, 뒤를 돌아보지 마라!
제10곡 1300년 4월 11일(월) 아침 10시 연옥 제1권역, 교만한 죄, 겸손을 상징하는 조각(수태고지, 궤운반하는 다윗 왕, 트라야누스 황제), 교만한 죄, 바위를 등에 지고 걸어가면서 속죄하는 자들(시지푸스?)
제11곡 1300년 4월 11일(월) 오전 11시 연옥 제1권역, 교만한 죄, 주기도문, 옴베르토, 오데리시, 프로벤찬 실바니
제12곡 1300년 4월 11일(월) 정오 연옥 제1권역, 교만한 죄, 오만을 상징하는 조각(루시페르, 브리아레오스, 거인들의 상, 니므롯, 니오베, 사울의 상, 아라크네, 르호보암, 에리필레, 산헤립, 키로스, 홀로페르네스, 트로이), 천사가 첫 번째 P자를 지움
제13곡 1300년 4월 11일(월) 정오 연옥 제2권역, 시기/질투의 죄, 영혼들이 자비의 예를 외침(동정녀 마리아, 필라데스, 원수를 사랑하라), 털옷, 꿰맨 눈, 시에나의 사피아
제14곡 1300년 4월 11일(월) 오후 2~3시 연옥 제2권역, 시기/질투의 죄, 구이도 델 다카, 리니에리, 질투를 상징하는 천둥소리(카인, 아글라우로스)
제15곡 1300년 4월 11일(월) 오후 3~5시 연옥 제2권역, 시기/질투의 죄, 천사가 두 번째 P자를 지움, 제3권역, 분노의 죄, 온화의 예(마리아, 페이시스트라토스, 성 스테파노), 연기, 환영
제16곡 1300년 4월 11일(월) 오후 5시 연옥 제3권역, 분노의 죄, 연기가 자욱함, 롬바르디아의 마르코, 세상이 부패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 때문, 황제(속세)-교황(정신), 정교 분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세상이 혼란
제17곡 1300년 4월 11일(월) 오후 5~6시 연옥 제3권역, 분노의 죄, 벌받는 분노 상상(프로크네, 하만, 아마타), 천사가 세 번째 P자 지움, 제4권역, 태만의 죄, 사랑, 창조주를 향한 사랑
제18곡 1300년 4월 11일(월) 오후 12시 연옥 제4권역, 태만의 죄(창조주에 대한 사랑에 대한 태만), 모든 사랑은 가치있나, 인간은 본능과 자유의지를 함께 가지고 있으므로 옳은 사랑을 택할 수 있음
무리지어 달리는 영혼들, 열정적인 삶의 예(마리아, 카이사르), 게라르도 2세?, 태만의 예(이스라엘 민족, 아이네아스의 군졸들)
제19곡 1300년 4월 12일(화) 새벽 연옥 제4권역, 태만의 죄, 단테의 두 번째 꿈(세이렌), 천사가 네 번째 P자를 지움, 제5권역, 인색/낭비의 죄, 땅에 엎드려 울고 있는 영혼들, 내 영혼의 땅에 붙었도다, 하드리아누스 5세
제20곡 1300년 4월 12일(화) 오전 연옥 제5권역, 인색/낭비의 죄, 청빈의 예(동정녀 마리아, 파브리키우스, 성 니콜라우스), 위그 카페, 인색/낭비의 예(피그말리온, 미다스, 아간, 삼피라, 아나니아, 헬리오도로스, 폴리메스토르, 크라수스)
제21곡 1300년 4월 12일(화) 오전 연옥 제5권역, 인색/낭비의 죄, 지진과 노래(연옥->천국), 스타티우스(베르길리우스의 후배 시인, 5백년 정죄 후 뜻을 깨닫고 연옥에서 천국으로 오르게 됨)
제22곡 1300년 4월 12일(화) 오전 11시 연 옥 제5권역, 천사가 다섯 번째 P자를 지움, 베르길리우스, 스타티우스, 단테 함께 이동, 스타티우스의 죄는 낭비, 죽기 전에 회개하여 연옥에 있음, 태만의 죄도 범함, 연옥 제6권역, 탐식의 죄, 생명의 나무에서 들리는 절제의 예(마리아, 로마의 여인들, 다니엘, 세례 요한)
제23곡 1300년 4월 12일(화) 정오 연옥 제6권역, 탐식의 죄, 포레세 도나티(목마름, 굶주림, 부인 넬라의 기도)
제24곡 1300년 4월 12일(화)  연옥 제6권역, 탐식의 죄, 탐식가 보나준타, 젠투카, 또다른 나무에서 들리는 무절제의 예(켄타우로스, 헤브라이인), 천사가 여섯 번째 P자를 지움
제25곡 1300년 4월 12일(화) 오후 2~4시 연옥 제6권역, 탐식의 죄, 단테 질문(영혼들은 영양공급이 필요하지 않은데 왜 야위었나요?), 스타티우스 대답(멜레아그로스, 거울, 망령도 감감기관을 갖고 있음),
연옥 제7권역, 애욕의 죄, 정숙의 예(마리아, 디아나)
제26곡 1300년 4월 12일(화) 오후 4~6시 연옥 제7권역, 애욕의 죄, 불타는 길 위에서 서로서로 입을 맞추지만 짤막한 인사를 하고 다시 나아감, 색욕의 예(소돔과 고모라, 파시파에, 카이사르), 구이도 귀니첼리, 아르날도 다니엘로
제27곡 1300년 4월 13일(수) 연옥 제7권역, 애욕의 죄, 연옥의 불, 단테의 세 번째 꿈(레아, 라헬), 천사가 일곱 번째 P자를 지움, 베르길리우스의 마지막 안내
제28곡 1300년 4월 13일(수) 오전 6~7시 지상낙원(에덴동산), 마텔다, 레테(과거 죄를 망각), 에우노에(선행의 기억을 새롭게 함)
제29곡 1300년 4월 13일(수) 오전 7~8시 지 상낙원 묘사, 호산나, 일곱 개의 촛대, 스물네 명의 장로들, 네 마리의 짐승(사자, 황소, 사람, 독수리), 개선의 마차, 그립스(그리스도), 세 여인, 루가, 바울로, 야고보, 베드로, 요한(요한복음), 유다, 요한(요한묵시록)
제30곡 1300년 4월 13일(수) 베아트리체를 만남, 베르길리우스 사라짐, 베아트리체의 질책
제31곡 1300년 4월 13일(수) 베아트리체의 다그침(죄를 고백하라), 단테 지난 죄를 고해, 기절, 마텔다 단테를 레테에 담금
제32곡 1300년 4월 13일(수) 베아트리체, 단테, 마텔다, 스타티우스 이동, 선악과 나무, 마차를 공격하는 무리(독수리, 여우, 용)
제33곡 1300년 4월 13일(수) 정오 베아트리체 예연, 선악과, 인간의 학문(베르길리우스)으로는 신학(베아트리체)을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다, 에우노에 마심, 연옥 순례를 마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메로스베르길리우스를 건너 드디어 신곡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성경까지도 읽고 난 후에 봐야하겠지만,
너무 방대해 건너뛰어 신곡을 먼저 읽었다.

'인간의 손으로 만든 최고의 것'이라는 괴테의 상찬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단테의 신곡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라는
고전의 정의에 더할 나위 없이 부합하는 책이다.

서해문집에서 출간된 한형곤 교수의 완역본을 주로 하고,
민음사에서 출간된 박상진 교수의 완역본(전3권)에 나오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그림를 뒤척거리며
안티쿠스에서 출간된 이마미치 도모노부 교수의 '단테 신곡 강의'를 참고서 삼아 읽고 있다.

특히 '단테신곡강의'는 혼자 읽었으면 겉핥기에 그치고 말았을 무미건조한 책에
해석을 통해 생생한 뜻을 전달해주고 있어 매순간 감탄하면서 고맙게 보고 있다.

연옥편까지 읽고, 천국편이 남은 지금 생각해보니,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어 즐거움이 되었던 반면,
성경 공부를 하지 못한 부분은 큰 아쉬움을 안기고 있다.
특히 지옥편에서는 그리스로마신화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 반면,
연옥편부터는 성경 얘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구구절절한 얘기는 책을 직접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고,
지옥편(Inferno)에서 인상적이었던 몇 부분만 언급하기로 하겠다.


1.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은 35세의 단테 (1곡)



<구스타프 도레. 신곡, 지옥편, 제1곡>

단테는 '항연'에서 예수는 34세 때 십자가에 못박혀서 돌아가셨고,
인간의 절정은 35세 무렵이라고 말했다.
단테 자신도 1300년 자신이 35세가 되던 해에 피렌체의 장관 격인 '프리오레'에 선출되었다고 한다.
권력의 정점에 서는 순간 그는 길을 잃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나 자신도 그 무렵이다.
어두운 숲에서 길을 찾고 있는 단테의 모습에 나의 모습이 겹친다.


2. 지옥문 입구에 새겨진 구절 (3곡)

PER ME SI VA NELLA CITTA DOLENTE,
PER ME SI VA NELL'ETTERNO DOLORE,
PER ME SI VA TRA LA PERDUTA GENTE.

GIUSTIZIA MOSSE IL MIO ALTO FATTORE:
FECEMI LA DIVINA POTESTATE,
LA SOMMA SAPIENZA E'L PRIMO AMORE.

DINANZI A ME NON FUOR COSE CREATE
SE NON ETTERNE, E IO ETTERNA DURO.
LASCIATE OGNI SPERANZA, VOI CH'ENTRATE.

나를 지나는 사람은 슬픔의 도시로,
나를 지나는 사람은 영원한 비탄으로,
나를 지나는 사람은 망자에 이른다.

정의는 지고하신 주를 움직이시어,
신의 권능과 최고의 지와
원초의 사랑으로 나를 만들었다.

나보다 앞서는 피조물이란
영원한 것뿐이며 나 영원히 서 있으리.
여기에 들어오는 자 희망을 버려라.

- 지옥편, 제3곡, 1~9행

이 부분은 지옥여행에 앞서 지옥문에 새겨진 구절을 보여줌으로써
지옥에 대한 이미지를 충분히 상상하게 만든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으로 유명한 지옥문도 여기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다.

<로댕, 지옥문>

이 부분에 대한 이마미치 교수의 해석이 감동적이었다.

지옥은 어떠한 희망도 없는 곳이다.
그곳을 지나는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은 슬픔과 비탄과 고통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떤가.
그리고 나 자신은 어떤가.
슬픔과 비탄과 고통이 늘어가고 있는 이 세상은 이미 지옥이 아닌가.
타인에게 슬픔과 비탄과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나 자신이 이미 지옥이 아닌가.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려면 나 자신부터 천국이 되어야 한다.


3. 부절제보다는 폭력이, 폭력보다는 기만이, 기만보다는 배반이 더 큰 죄다.

지옥 아래로 갈수록 더 큰 죄다.
부절제(애욕, 탐욕, 낭비/인색, 분노)보다는 폭력(타인, 자신, 하느님)이,
폭력보다는 기만(사기)이, 기만보다는 배반(배신)이 더 큰 죄다.

삶에 있어서 상처를 준 부분을 살펴보면 충분히 이해된다.
육체에 상처를 입히는 것보다,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사기나 배신이 당연히 더 큰 죄다.


4. 제 머리를 들고 있는 베르트람 (28곡)



<구스타프 도레. 신곡, 지옥편, 제28곡>

똑똑히 보았고, 아직도 눈에 선한데,
머리 없는 한 몸뚱이가, 걸어가는
슬픈 망자의 무리에 뒤섞여,
잘린 머리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제등처럼 손에 들고 나아갔다.
그것이 우리를 보며 말하길 '오, 보라!'.

- 지옥편, 제28곡, 118~123행

지옥편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의 하나는
베르트랑이 제머리를 들고 말하는 장면이다.

그는 영국의 왕 헨리 2세의 맏아들 헨리를 꾀어 아버지를 배신하도록 했는데
아들 헨리가 죽은 후 헨리 2세가 그를 잡았다가 사면해 주었고,
그 후에 그는 수도사가 되었다.

하지만 지옥에서는 부자지간을 배반케 한 죄로
잘린 목을 제 손에 들고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단테의 기괴하면서도 섬뜩한 상상력의 일면이다.

연옥편에서 계속하겠다.


<지옥편 줄거리>

지옥편 시간 내용
제1곡 1300년 4월 7일(목) 밤~4월 8일(금) 아침 어두운 숲 속, 인생의 길을 잃은 35세의 단테, 베르길리우스를 만나다.
제2곡 1300년 4월 8일(금) 저녁 베르길리우스가 베아트리체의 명을 받아 단테를 구원할 안내자가 된 배경을 말하다.
제3곡 1300년 4월 8일(금) 밤 빛도 희망도 없는 지옥문, 빛이 없는 어둠 속 가득찬 비명과 소음, 카론의 배를 타고 아케론 강을 건너다.
제4곡 1300년 4월 8일(금) 제1지옥, 림보(변옥, 예수 이전의 사람들, 세례 이전의 유아들을 위한 곳), 천국에 갈 수 있는 희망이 없어 끝없는 한숨만 내쉼,
시인들(호메로스,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 루카누스),
영웅들(엘렉트라, 헥토르, 아이네아스, 카이사르, 카밀라, 펜테실레이아, 라비니아, 라티누스, 브루투스, 루크레티아, 율리아, 마르키아, 코르넬리아, 살라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데미크리토스, 디오게네스, 아낙사고라스, 탈레스, 엠페도클라스, 헤라클레이토스, 제논, 디오스코리데스, 오르페우스, 키케로, 리노스, 세네카, 유클리드, 프톨레마이오스, 히포크라테스, 아비세나, 갈레노스, 아베로에즈).
제5곡 1300년 4월 8일(금) 제2지옥, 애욕의 죄인들, 바람에 휩쓸려다니고 있음, 미노스가 지킴, 세미라미스(삼부라마트), 디도, 클레오파트라, 헬레네, 아킬레우스, 파리스, 트리스탄, 파올로(시동생)-프란체스카(형수)
제6곡 1300년 4월 8일(금) 제3지옥, 탐욕(탐식)의 죄인들, 케르베로스가 지킴, 비, 우박, 눈이 후려치는 진흙탕 속을 기어다니고 있음, 치아코, 최후의 심판
제7곡 1300년 4월 8일(금)~4월 9일(토) 새벽 제4지옥, 낭비/인색의 죄인들, 플루톤이 지킴, 서로를 욕하며 다투고 있음, 
제8곡 1300년 4월 9일(토) 새벽 제5지옥, 분노의 죄인들, 늪(스튁스)을 배를 타고 건너는 가운데, 플레기아스, 필립포 아르젠티, 디스 성벽의 악마들
제9곡 1300년 4월 9일(토) 새벽 제6지옥, 이교도들, 디스의 성벽 앞, 천사가 나타나 문을 염, 이교도들의 불에 그슬린 묘
제10곡 1300년 4월 9일(토) 새벽 제6지옥, 이교도들, 디스의 성벽 안, 에피쿠로스, 파리나타, 카발칸티
제11곡 1300년 4월 9일(토) 새벽 제6지옥 끝, 제7지옥에 대한 설명(이웃, 자신, 하느님에 대한 폭력으로 벌을 받음), 남색, 아나스타시우스 무덤
제12곡 1300년 4월 9일(토) 새벽 제7지옥-1, 폭력(이웃), 미노타우로스가 지킴, 피바다 속에 잠겨 있으면서 떠오르는 것들을 켄타우로스들이 화살로 쏨, 케이론, 네소스, 폴로스, 알렉산드로스, 아틸라 등 폭군
제13곡 1300년 4월 9일(토) 새벽 제7지옥-2, 폭력(자신)=자살자, 하르피이아가 지킴, 육체를 포기한 자들은 움직일 수 없는 나무가 되는 벌을 받음, 피에르 델라 비냐, 쟈코모 산토 안드레아, 라노
제14곡 1300년 4월 9일(토) 새벽 제7지옥-3, 폭력(하느님)=신성모독, 불비가 내리는 뜨거운 모래사장, 카파네우스
제15곡 1300년 4월 9일(토) 새벽 제7지옥-3, 브루네토(단테의 스승), 남색(자연의 섭리를 거스리는 것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
제16곡 1300년 4월 9일(토) 새벽 제7지옥-3, 구이도 구에르라, 테기아이오 알도브란디, 야코포 루스티쿠치, 굴리엘모 모르시에레
제17곡 1300년 4월 9일(토) 새벽 제7지옥 끝, 절벽, 고리대금업자들(일하지 않고 돈만 굴려서 이익을 얻는 것도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 게리온을 타고 제8지옥으로 내려감
제18곡 1300년 4월 9일(토) 새벽 제8지옥, 기만, 사기죄, 말레볼제, 10개의 굴
제8지옥-1, 유혹자, 베네디코 카치아네미코, 이아손, 벌거벗은 채 달리며 악마에게 채찍으로 맞고 있음
제8지옥-2, 아첨꾼, 알레시오 인테르미네이, 타이데, 똥물에 잠겨 있음
제19곡 1300년 4월 9일(토) 아침 6시 제8지옥-3, 고성죄(성직이나 성물을 매매), 니콜라우스 3세, 굴에 거꾸로 쳐박혀 있음
제20곡 1300년 4월 9일(토) 아침 6시 제8지옥-4, 점쟁이, 예언가, 암피아라오스, 테이레시아스, 아론타, 만토, 칼카스, 에우리필로스, 미켈레 스코토, 구이도 모나티, 아스덴테, 감히 앞을 내다본 이승과 달리 뒤만 볼 수 있도록 몸이 뒤틀려 있음
제21곡 1300년 4월 9일(토) 오전 7시 제8지옥-5, 탐관오리, 역청이 펄펄 끓고 있음, 떠오르면 마귀들이 작살로 찌름
제22곡 1300년 4월 9일(토) 오전 8시 제8지옥-5, 역청이 끊는 호수가, 열 명의 마귀, 치암폴로, 고미타, 미켈 찬케 등 탐관오리들
제23곡 1300년 4월 9일(토) 오전 9시 제8지옥-6, 위선자들, 금빛이 나지만 엄청나게 무거운 납외투를 입고 천천히 걸어다님, 카탈라노, 로데링고
제24곡 1300년 4월 9일(토) 오전 10시 제8지옥-7, 도둑, 뱀떼, 반니 푸치
제25곡 1300년 4월 9일(토) 오전 11시 제8지옥-7, 도둑, 손가락욕(반니푸치), 카쿠스(켄타우로스), 아뇰로, 부오소, 푸치오, 뱀과 인간이 서로 모습을 바꿈, 남의 물건을 훔친 것처럼 자신의 모습을 도둑맞음
제26곡 1300년 4월 9일(토) 정오 제8지옥-8, 사악한 집정관, 오뒤세우스, 디오메데스, 불꽃 속에서 타고 있음. (오뒤세우스의 또다른 모험이야기로 테네시의 시 '율리시스'의 소재가 된 것으로 생각됨)
제27곡 1300년 4월 9일(토) 정오 제8지옥-8, 시칠리아의 황소, 사형수, 구이도 다 몬테펠트로
제28곡 1300년 4월 9일(토) 오후 1시 제8지옥-9, 스캔들을 뿌리는 자들, 정치적, 종교적 불화 야기, 마호메트, 알리, 피에르 데 메디치나, 쿠리오, 모스카 데이 람베르티, 사지가 잘리거나 훼손되는 벌,
보르니오의 베르트람(자신의 잘린 머리를 들고 다니고 있음)
제29곡 1300년 4월 9일(토) 오후 1시 30분 제8지옥-10, 연금술사들, 시체썩는내가 나는 굴 속에 딱지앉은 몸을 피나도록 긁고 있음, 그리폴리노, 카포키오
제30곡 1300년 4월 9일(토) 오후 2~3시 제8지옥-10, 쟌니 스키키(위장), 미라(근친), 미친 듯 달려들어 다른 놈을 물어뜯음, 아다모(화폐위조), 갈증에 시달림, 보디발의 아내(야곱유혹), 시논(트로이목마), 서로 욕을 함.
제31곡 1300년 4월 9일(토) 오후 3~4시 제8지옥과 제9지옥 사이, 거인들, 니므롯(바벨탑), 에피알테스, 안타이오스(단테와 베르길리우스를 코치토스로 내려줌)
제32곡 1300년 4월 9일(토) 오후 4~6시 제9지옥, 가장 큰 죄인 배반, 배신
제9지옥-1, 카이나(친족배반, 아벨을 죽인 카인에게서 유래), 코치토스 얼음에 쳐박혀 벌받고 있음, 나폴레오네-알렉산드로 형제
제9지옥-2, 안테노라(조국배반), 머리까지 얼음 속에 파묻힌 채 고개를 들고 있음, 보카델리 아바티(구엘프당 배반)
제33곡 1300년 4월 9일(토) 오후 6시 제9지옥-2, 안테노라(조국배반, 트로이를 배반한 안테노르에게서 유래), 한놈이 다른놈의 머리를 굶주린것처럼 깨물어 뜯고 있음, 우골리노 백작, 루지에리 주교, 굶어 죽음
제9지옥-3, 톨로메아(친구, 동료배반, 손님신의 배반, 손님을 죽인 프톨레매오에게서 유래), 엎드려 얼굴을 하늘로 향하고 있어 눈물이 눈에 괴지만 얼음이 되어 울 수 없음, 알베리고, 세르 브란카 도리아(악마에게 영혼을 팜, 파우스트 연상)
제34곡 1300년 4월 9일(토) 저녁 제9지옥-4, 주데카(은인배반, 예수를 판 유다에게서 유래)
루시페르(세 개의 얼굴, 여섯 개의 날개, 가운데 입에는 유다, 왼쪽 입에는 브루투스, 오른쪽 입에는 카시우스를 물고 있음(브루투스와 카시우스는 카이사르 배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좁은 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9
앙드레 지드 지음, 오현우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 마태복음 7장 13절

어린 제롬은 숙모가 딴남자와 도망간 후
자신의 처지에 슬퍼하던 사촌누나 알리사에게 반한다.

어느날 그는 목사의 '좁은 문'에 대한 설교를 듣고는
조용하면서도 침착한 알리사를 위해 '좁은 문'으로 향한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가는 문은 매력도 없을 뿐더러
자기가 좁은 문을 찾아가기에 적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둘의 사랑을 방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둘 다 세간의 흘러넘치는 흔한 사랑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다.
더 높은 차원의 삶. 더 큰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 나눈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인지라 이런 삶에 지친다.
수년간 편지로 오가며 한껏 높아진 상대에 대한 환상은
서로 만날 때마다 상처를 입힌다.
점점 만남은 뜸해지고 여전히 사랑하던 그들의 삶은 파괴된다.

제롬은 세속의 행복을 택하려 한다.
하지만 이미 되돌아갈 수 없는 것을 알고 있는
알리사는 더 큰 행복을 위해 사랑을 버리려 한다.
그게 제롬과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면서.
바로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더 큰 행복을 위해 사랑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칠수록
사랑은 그녀의 발목을 붙잡는다.
물론 신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세속의 사랑에서 오는 행복 이상의
더 큰 행복은 그녀에게 주지 않는다.

제롬은 그녀가 유산으로 남긴 일기장을 읽고 그녀의 진심을 알게 된다.
그는 혼자서 살아간다.
사실 그에겐(그녀에겐) 한 사람이 사라졌어도 삶에는 변함이 없다.
살아있을 때도 그들은 거의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지드의 좁은 문은 요약하자면,

내세에 준비된 더 큰 행복을 위해
현세에 보장된 소소한 행복을 버리는 것이
과연 잘한 일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제시하는 것처럼
남들이 하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아주 매력적이다.
하물며 보물지도처럼 그 끝에 상상할 수 없는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는데야 피할 이유가 없다.
가는 과정에서의 고통정도야 나중에 얻게될 기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런 선택이 극단으로 치달아갈 때 고통은 상상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인투 더 와일드가 그 예가 될 수 있겠다.
'좁은 문'의 이야기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행복한 일이 또 있겠는가.
하물며 서로 사랑하는 상황에서야 더할 나위 있겠는가.
신이 예비해놓았다는 행복이 무엇일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저것과 바꿀 수 있을 정도의 것일까.

알리사도 불쌍하고, 제롬도 불쌍하고,
줄리에트도 불쌍하고, 지드도 불쌍하다.
신이 아닌 인간이 참 불쌍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