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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9
앙드레 지드 지음, 오현우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 마태복음 7장 13절
어린 제롬은 숙모가 딴남자와 도망간 후
자신의 처지에 슬퍼하던 사촌누나 알리사에게 반한다.
어느날 그는 목사의 '좁은 문'에 대한 설교를 듣고는
조용하면서도 침착한 알리사를 위해 '좁은 문'으로 향한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가는 문은 매력도 없을 뿐더러
자기가 좁은 문을 찾아가기에 적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둘의 사랑을 방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둘 다 세간의 흘러넘치는 흔한 사랑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다.
더 높은 차원의 삶. 더 큰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 나눈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인지라 이런 삶에 지친다.
수년간 편지로 오가며 한껏 높아진 상대에 대한 환상은
서로 만날 때마다 상처를 입힌다.
점점 만남은 뜸해지고 여전히 사랑하던 그들의 삶은 파괴된다.
제롬은 세속의 행복을 택하려 한다.
하지만 이미 되돌아갈 수 없는 것을 알고 있는
알리사는 더 큰 행복을 위해 사랑을 버리려 한다.
그게 제롬과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면서.
바로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더 큰 행복을 위해 사랑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칠수록
사랑은 그녀의 발목을 붙잡는다.
물론 신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세속의 사랑에서 오는 행복 이상의
더 큰 행복은 그녀에게 주지 않는다.
제롬은 그녀가 유산으로 남긴 일기장을 읽고 그녀의 진심을 알게 된다.
그는 혼자서 살아간다.
사실 그에겐(그녀에겐) 한 사람이 사라졌어도 삶에는 변함이 없다.
살아있을 때도 그들은 거의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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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드의 좁은 문은 요약하자면,
내세에 준비된 더 큰 행복을 위해
현세에 보장된 소소한 행복을 버리는 것이
과연 잘한 일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제시하는 것처럼
남들이 하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아주 매력적이다.
하물며 보물지도처럼 그 끝에 상상할 수 없는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는데야 피할 이유가 없다.
가는 과정에서의 고통정도야 나중에 얻게될 기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런 선택이 극단으로 치달아갈 때 고통은 상상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인투 더 와일드가 그 예가 될 수 있겠다.
'좁은 문'의 이야기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행복한 일이 또 있겠는가.
하물며 서로 사랑하는 상황에서야 더할 나위 있겠는가.
신이 예비해놓았다는 행복이 무엇일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저것과 바꿀 수 있을 정도의 것일까.
알리사도 불쌍하고, 제롬도 불쌍하고,
줄리에트도 불쌍하고, 지드도 불쌍하다.
신이 아닌 인간이 참 불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