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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역사
버나드 로 몽고메리 지음, 승영조 옮김 / 책세상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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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폴리스- 근대의 숨은 이야깃거리들
스티븐 툴민 지음, 이종흡 옮김 / 경남대학교출판부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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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세계대전사 (양장)
존 키건 지음, 조행복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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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세계대전사 (양장)
존 키건 지음, 류한수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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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레오 스트라우스 지음, 함규진 옮김 / 구운몽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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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네 얼굴- 군주론 너머 진짜 마키아벨리를 만나다
퀜틴 스키너 지음, 강정인.김현아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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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덕목- 개정판
하비 맨스필드 지음, 이태영 외 옮김 / 말글빛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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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평전- 시인을 닮은 한 정치가의 초상
로베르토 리돌피 지음, 곽차섭 옮김 / 아카넷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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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로마의 역사 - 전설 같은 건국에서 장엄한 몰락까지, 세계를 지배했던 초강대국의 이야기
사이먼 베이커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로마사 입문을 위해 여기저기 뒤적거리다 고른 책이었는데 한 챕터만 본다고 들었던게 예상외로 내용이 알차서 끝까지 보고 말았다.

저자 사이먼 베이커는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한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연구자이다. 하지만 그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섭렵한 참고문헌을 보면 내공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키케로, 타키투스, 세네카, 수에토니우스, 플루타르코스, 카이사르, 요세푸스
폴리비우스, 리비우스, 베르길리우스, 아피아누스, 루카누스, 카시우스 디오, 플리니우스,
에우세비우스, 락탄티우스, 조시무스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 올림피오도루스

책은 위 1차 사료를 중심으로 최신 연구성과를 참고하여 연대기순으로 로마사를 서술해나간다. 그 중 가장 의미가 있었던 여섯 순간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있다.

1. 그라쿠스 - 민중혁명의 실패

2. 카이사르 - 공화정의 몰락

3. 네로 - 고귀한 혈통의 마지막 황제

4. 유대 반란 - 베스파시아누스와 티투스, 속주를 장악하고 황제가 되다, 그리고 요세푸스

5. 콘스탄티누스 - 기독교 제국의 탄생

6. 알라리크 - 서로마 멸망, 야만족의 힘에 굴복하다


기원전 167년에는 로마의 지중해 장악이 완결되었으며, 그해에 원로원은 이탈리아에 직접세를 면세할 수 있었다. 외국 속주에서 받는 보상금 덕분에 세금을 거둘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 p.55

로 마는 기원전 2C 공화정제를 바탕으로 시칠리아, 에스파냐, 카르타고, 그리스, 시리아, 이집트까지 점령하며 지중해 연안의 패권국가로 부상한다. 속주에서 제국으로 금은보화가 주체할 수 없이 흘러들어왔다. 로마인들의 세금은 면제되었다. 하지만 세금을 면제해주고도 넘치는 자금은 적절히 분배되지 못하고 귀족과 평민들 사이의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명문가 자손인 그라쿠스가 농지개혁을 시도하려고 했으나 원로원 보수파의 반대로 살해되고 만다. 귀족과 평민의 불평등 문제는 이상한 방식으로 해결되는데 민중의 편에 선 독재자, 즉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를 통해 공화국이 해체되고 왕정국가가 되면서 로마는 제국으로 발전한다. 민중의 권력은 왕에게로 넘어갔고 그 이후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자유를 더 좋아하는 것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공정한 주인만 있으면 된다."(Sallust, Histories, Book 4, 69, 18)

아우구스투스와 같은 황제들이 통치할 때는 국가는 그나마 잘 운영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네로 황제에 와서는 사치에 몰두한 나머지 평민들의 삶과 유리되고 결국 마지막 정통 왕조는 막을 내린다.
그 이후에는 힘센 놈이 황제가 되었다. 군사력을 등에 업은 속주 총독들, 예를 들면 유대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한 베스파시아누스와 티투스, 로마 사상 최대의 영토를 정복한 트라야누스, 그리고 수염난 하드리아누스 등이 그들이었다. 정복당한지 오래된 속주에서는 유명한 가문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로마인이 아닌 이민족 출신도 황제가 될 수 있었다. 제국이 팽창되는만큼 세금과 노예들이 본토로 흘러들어 시민들의 삶은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윤택하고 안정되었다. 이른바 '팍스 로마나' 5현제의 시대였다.

막센티우스가 권력을 쥐기 전 해(306년)에 이탈리아 주민들은 거의 500년 동안이나 누려오던 면세 혜택을 잃었다. - p.369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인 293년 4인 체제가 시행되었다. 두 명의 상급황제에게는 아우구스투스(혹은 정황제)라는 호칭이 부여되었다. 각 아우구스투스에게는 부관이 지명되는데 카이사르(준황제)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네 사람은 니코메디아(오늘날 터키의 이즈미트), 테살로니카(그리스), 시르미움(오느날 크로아티아의 미트로비츠), 아우구스타 트레베로룸(오늘날 독일의 트리어)에 머물렀다. 그 이후 로마는 새 황제들이 잘 들리지도 않았고, 세금도 다른 지방으로 흘러 들어가 마치 속주처럼 취급받았다.

에드워드 기번은 기독교를 가장 핵심적인 죄인으로 지목했는데, 이는 이 책이 집필되고 있던 시대의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다. 내세에 대한 믿음은 로마인들이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감내했던 강철 같은 결단력과 규율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것을 서서히, 피할 수 없이 진행하는 복잡한 몰락 과정이라고 본 기번의 견해는 그의 뒤를 이은 역사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자들은 그와 다른 관점을 취한다. 로마제국이 무너진 형태가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스타카토 스타일이었다고 보는 것이다. 로마의 몰락은 불가피한 일이 아니라 그 최후의 100년 동안 다가온 결정적이고 거창한 충격파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으며, 이 위기를 만들어낸 것은 야만족 침입자들이었다. - p.417

로마 특유의 개방성을 바탕으로 한 로마의 발전은 콘스탄티누스 때 기독교 제국으로 재탄생하면서 균열을 일으켰다. 그러나 기독교의 폐쇄성이 가장 큰 멸망의 원인은 아니었다. 저자는 강력한 야만인들의 잇따른 침입에서 멸망의 원인을 찾는다.

알라리크는 기독교도였으며, 그것도 지난 2년동안 주교들의 도움을 받아온 기독교도였다. 그들에 대한 존경심과 그 자신의 신앙 덕분에 성 베드로 대성당과 성 바울 바실리카는 성소로 보존되었다. 콘스탄티누스가 봉헌한 거대한 은제 성탄식의 컵을 제외한 기독교 보물과 그것을 보유하고 있던 교회들은 존중되고 그대로 보존되었다. 기원전 146년에 있었던 카르타고와 코린토스에 대한 로마군의 악명 높은 약탈, 전면적인 파괴와 대량 학살, 포로, 강탈이 표준이 된 사례들과는 대조적으로, 고트족의 로마 약탈은 정말로 대단히 비로마적이었다. - p.454

위 내용은 410년 8월 알라리크가 이끄는 고트족의 로마 약탈 사건을 이야기한다. 서로마 황제 호노리우스와의 협상 과정에서 보여주는 그의 모습은 어떤 로마인들보다 이성적이고 독실한 기독교도이며 믿음이 가는 사람이었다. 로마가 한 때 내세웠던 미덕들은 더이상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동로마 제국이 훈족의 침입을 막아내는 동안, 서로마 제국의 속주들은 야만족들의 손에 하나둘씩 넘어간다.
갈리아 지방은 고트족, 부르군트족, 프랑크족에게, 에스파냐 지방은 고트족, 수에비족에게, 북아프리카 지방은 반달족에게 빼앗기고 만다.

이제 서로마제국에게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이탈리아에 남아있는 로마군들은 주로 게르만족 용병들이었다.
속주를 전부 빼앗긴 로마에는 그들에게 지급할 재정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들의 장군인 오도아케르는 기존의 로마인 지주들을 내쫓고 빼앗은 토지를 부하들에게 보수로 지급했다.
그 면적은 이탈리아 전체의 3분의 1에 달했다.

서기 476년 오도아케르는 서로마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황제의 관복, 왕관, 자줏빛 망토를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있는 동로마 황제 제논에게 보냈다. 드디어 서로마 제국이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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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물질적 성공을 정신적 성숙이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할 때 많은 제국들은 멸망하고 말았다.

페르시아 -> 아테네 -> 스파르타 -> 테베 -> 마케도니아 -> 로마 -> ,,,, -> 미국 ? -> 중국 ?

로마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로마제국의 발전에는 환호했지만, 식민지의 아픔까지는 살피지 못했다.
그것이 그들을 멸망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제국주의 국가에서 식민지에서의 강력한 수탈로, 본토에서 인기를 얻는 예는 비일비재하다.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는 상상할 수 없을만큼 끔찍한 예다.

레오폴드 2세

1865~1909, 벨기에에서는 선정
성인남자에게 일반참정권 부여
자유무역정책, 석탄과 기계산업 고도화, 프랑스와 맞먹을 정도의 경제 발전
초등교육 의무화, 여자아이들도 중등학교에 입학
12세 이하의 아동 고용 금지, 12세 이상 노동시간 12시간 이하로 제한
노동자의 파업권 보장
도로와 철도 건설 등 대규모 공공산업으로 실업 감소, 도시화 촉진

1885~1908, 25년간 콩고 자유국 통치
콩고 3천만 국민에게는 투표권이 없어 레오폴드 규제할 수 없었다.
값비싼 상아 수탈, 고무 무역 착취
경찰 포르스 퓌블리크, 고무 할당량 맞추기 위해 고무 할당량을 맞추지 못한 자들에 대한 구타와 살해,
고문생산량 달성을 위협하는 사람들을 고문해 불구로 만들거나 죽게 했다.
심지어는 자신이 레오폴드를 위해 일했다는 증거로, 여자와 아이들의 오른손을 자르기까지 했다.
약 1000만 명에 달하는 사람이 죽임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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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바시스
크세노폰 지음, 천병희 옮김 / 단국대학교출판부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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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책 읽기 전에

헤로도토스(BC 484~425)와 투키디데스(BC 465~400)까지만 읽고 로마사로 넘어가려는데 크세노폰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소크라테스 제자라는데 스승의 포스가 그에게 어떻게 전달되었을지 궁금하다.


2. 크세노폰(BC 430/25~355/50)은 누구?

소크라테스(BC 470~399) 제자요, 플라톤(BC 427~347) 동창 되시겠다.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플라톤의 저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크세노폰의 작품인 '
소크라테스 회상'에서는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다고 한다. (이 작품은 아직 안읽어서 평가 불가)

이 책에서는 소크라테스와 크세노폰이 꽤 친한 관계로 나온다.

크세노폰은 편지를 읽고 나서 아테나이 출신의 소크라테스와 이번 여행에 관하여 의논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퀴로스가 아테나이 인들과의 전쟁에서 라케다이몬 인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었던 것으로 생각되고 있는 만큼 그의 친구가 되는 것은 아테나이 시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을까 염려하여 크세노폰에게 델포이에 가서 이번 여행에 관하여 신과 의논하도록 충고했다. 그래서 크세노폰은 그리로 가서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여행을 성공적으로 잘 마치고 목적을 달성한 뒤 무사히 돌아오기 위해서는 어떤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기도드려야 하는지 아폴론 신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폴론 신은 그가 어떤 신들에게 제물을 바쳐야 하는지 알려 주었다. 크세노폰은 돌아와서 소크라테스에게 예언을 말해 주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그것을 듣고, 그가 여행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머무는 것이 좋은지 먼저 묻지 않고 여행하기로 혼자서 결정하고는 어떻게 여행하는 것이 가장 좋겠는지 물었다고 그를 나무랐다. "하지만 자네가 그렇게 물었으니"하고 그는 덧붙였다, "신이 시키신 대로 해야 할 것이네."

- 크세노폰, 아나바시스, 3.1:5~6

책의 배경인 퀴로스 2세의 반란에 참가해서 실패한 후 아테나로 귀환하지만 정확하지 않은 이유로 아테네에서 추방되었다고 한다. 그의 또다른 저작인 '헬라스의 역사(Hellenica)'에 BC 350년대 중후반까지 언급되고 있어 70세 후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정된다.


3. ‘아나바시스’의 시대적 배경

책에서 다루고 있는 쿠낙사 전투(BC 401)에서 헬라스 귀환(BC 399)까지다.

이 시기는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4)이 막 끝난 가운데 지중해 전역에 전쟁의 후유증이 남아있던 시대였다.
그리스 전역이 황폐화 되다보니 저마다 먹을 거리를 찾아서 타지역으로 떠나는데, 헬라스 용병은 그리스의 인기있는 수출품이었다.

페르시아 제국은 페르시아 전쟁(BC 490~479)에서 자존심에 약간의 생채기가 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만만치 않는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는 아테네, 스파르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실리를 추구했다.


4. 책의 서술 방법

이 책은 용병으로 참가한 한 군인의 생환기로 회고록이자 자서전이요, 여행기이자 역사서라 할 수 있다.
지휘관의 미덕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으며, 은연 중에 비치는 자기 자랑도 빼놓을 수 없다.
자신을 3인칭으로 기술해 주관성을 배제하고 객관성을 높히는 서술 방법은
후대에 카이사르의 전쟁기에서도 사용되고 있어 인기가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5. 책의 내용

헬라스 인들이 퀴로스와 함께 내륙으로 행군하는 동안 전투가 있기 전까지 겪었던 일들과, 퀴로스가 죽은 뒤 흑해로 행군하는 동안 겪었던 일들과, 그들이 아시아에 있는 크뤼소폴리스에 도착하여 흑해의 입구에서 벗어날 때까지 육로와 해로로 흑해로부터 밖으로 행군하는 동안 행하였던 일들, [트라케에서 세스토스와 있었던 일들, 티브론에게 군대를 인계할 때까지의 일들을 기술하였다.]


- 크세노폰, 아나바시스, 7.1:1

다리우스 2세(재위 BC 422~404)가 죽자 장남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재위 BC 404~359)가 즉위했으나 아우인 모후의 지원을 등에 업은 퀴로스 2세가 반란을 일으키고 쿠낙사 전투(BC 401)가 발발한다. 크세노폰을 포함한 1만 명 이상의 헬라스 용병이 참전했지만, 퀴로스 2세가 전사해 반란은 실패한다.
남은 페르시아군이 전부 대왕의 군대로 넘어간 가운데 남아있는 헬라스 용병들은 지휘관들까지 팃사페르네스의 배신으로 잃고 만다.망연자실한 헬라스 1만 용병들, 각성한 크세노폰의 제안 아래 새로운 장군들을 임명하고 활로를 찾아나선다. 헬라스 용병들은 페르시아군에게 쫓기는 가운데, 도망간 지역에서도 이민족들의 저항에 부닥친다. 하지만 그들에겐 크세노폰이 있지 않던가. 크세노폰의 천재적인 전략과 부하들의 충성으로 우여곡절 끝에 흑해에 도착하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환영단이 아니었다.
같은 헬라스인에게 배신당해 모두 노예로 팔려갈 위기에 처한 순간, 고향으로 돌아가던 크세노폰이 되돌아와 그들에게 새로운 일거리를 제안한다. 트라케 지역의 왕족인 세우테스를 지원하여 왕권을 다시 되찾는 일이다. 병사들은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세우테스는 급료를 체불하고, 병사들은 그 탓을 크세노폰에게 돌린다. 크세노폰이 중간에서 급료를 가로챘다는 것이다. 마지막 자기의 입장을 변론하는 크세노폰. 사형 선고를 받기 전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차이가 있다면 크세노폰은 살아남는다는 것. 소크라테스 제자로서의 포스가 폭발한다. 이런, 은혜로 원수로 갚는 배은망덕한 놈들!!. 병사들은 반성하고 크세노폰은 위기를 넘긴다. 세우테스는 급료를 지불하고, 크세노폰은 티브론에게 병력을 인계한다. 티브론은 페르시아 제국의 팃사페르네스와 파르나바조스와의 한판을 앞두고 있다. 전체 행군의 길이는 1,150파라상게스(6,325km), 왕복 행군의 날 수는 1년 하고도 3개월이었다.


6. 기억에 남는 부분

1.8:8 쿠낙사 전투를 앞두고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병력이 다가오는 모습

오후가 되자 먼지가 이는 것이 보였는데, 처음에는 흰 구름 같더니 시간이 조금 지나자 들판 위에 멀리 뻗어 잇는 암흑 같았다. 적군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자 여기저기서 청동이 번쩍이더니 창들과 적군의 대열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1.9:16 쿠낙사 전투에서 전사한 퀴로스 2세에 대한 평가

누가 정의에서 탁월하기를 바라는 것이 명백하면, 그는 이런 사람들을 불의한 이익을 탐하는 자들보다 더 풍요하게 살 수있게 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2.6:1~6 팃사페르네스에게 배신당해 참수된 클레아르코스에 대한 평가

클레아르코스는 남달리 전쟁에 능하고 전쟁을 좋아했던 것 같다.... 불명예나 피해를 당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데도 전쟁을 택하는 것, 편안히 살 수 있는데도 단지 전쟁을 하기 위하여 노고를 원하는 것, 위험 없이 재산을 지킬 수 있는데도 전쟁을 함으로써 그것을 축내는 쪽을 택하는 것, 이런 것들이야말로, 생각건대,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의 행동인 것 같다.

2.6:21~25 헬라스 군을 배신한 것으로 의심되는 메논에 대한 평가

텟살리아 출신의 메논은 엄청난 부를 공공연히 열망했다.... 그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거짓 맹세와 거짓말과 기만이 지름길이라고 생각했고, 솔직과 진실은 어리석음과 같은 것으로 여겼다.... 그는 또 거짓 맹세를 일삼는 불의한 자들로 알려진 자들은 모두 잘 무장한 자들로 여기고 두려워했으나, 경건하고 진실한 자들은 유약한 자들로 여기고 이용하려 했다.

4.7:21~25 기나긴 행군 끝에 흑해에 도착하는 장면 (ㅠ,.ㅠ)

선두가 산에 올라 바다를 보는 순간 큰 함성이 일었다. 그러자 크세노폰과 후위는 그 소리를 듣고 앞에서도 다른 적군이 공격해 오는줄 알았다.... 그러나 고함 소리가 더 커지고 더 가까워지며 뒤따라가던 대열들이 잇달아 고함을 질러대는 앞 대열들을 향하여 달려가면서 사람의 수가 많아지는 만큼 고함 소리도 점점 더 커지자 크세노폰은 큰일이 난 줄 알았다.... 그들은 곧 군사들이 "바닫," "바다다,"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고, 그들이 외치는 소리는 대열들을 따라 전달되었다. 그러나 후위의 모든 부대들도 뛰기 시작했고 짐 나르는 짐승들과 말들도 앞으로 내달았다. 그리고 그들은 산정에 올랐을 때 모두들 눈물을 흘리며 서로 얼싸안았고, 장군들과 대장들도 마찬가지였다.


7. 책을 읽고 난 후

소크라테스의 제자 크세노폰, 2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1만 헬라스군을 이끌고 늠름하게 귀환하다.
소크라테스에게서 배운 모든 기술을 그는 전쟁터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그를 통해 살아난다.

설득력과 변론술은 천재적이다.
실 의에 빠진 병사들의 기운을 북돋아 활로를 찾아나가기 위해 상대방을 설득하는 장면과 마지막 급료를 떼먹었다는 누명을 쓰고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 처하자 자기의 입장을 변호하여 오히려 고발한 병사들을 미안하게 만드는 변론술은 정말 통쾌할 정도다.

지휘관으로서도 천재적이다.
지휘관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모두 파악해 적은 나이에도 지휘관에 등극하고 그것을 실전에 그대로 적용한다.
패전 후에도 곧바로 패인을 분석하여 대처하여 역공을 가하는가 하면, 전략상 가장 유리한 장소와 시간, 진형 등을 파악하고 결정하는 능력 등은 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시기를 받고 모함을 받았을 것이다.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껴진다.
허가 없는 완벽함, 그의 인생이 순탄치 않았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연대표> (p.247)

BC 401년 3월 사르데이스를 출발하다.
              7월 타프사코스에서 에우프라테스 강을 건너다.
              9월 쿠낙사 전투
            10월 자파타스 강변에서 팃사페르네스가 배신하다.
    10~11월~
BC 400년 2월 카르두코이족의 나라와 아르메니아를 통과하다.
              2월 흑해 남동해안의 트라페주스에 도착하다.
              3월 트라페주스를 출발하다.
            10월 뷔잔티온으로 건너가다.
BC 399년 1월 세우테스와 함께 하다.
              2월 트로아스 지방으로 건너가다.
              3월 군대가 페르가모스에서 티브론에게 넘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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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네이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베르길리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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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단테의 '신곡'을 읽기 위해서 읽었다.

단테는 '신곡'에서
베르길리우스를 단테의 지옥, 연옥 여행의 안내자로 등장시킨다.
(천국 여행의 안내자는 그의 연인이었던 베아트리체다.)

단테는 그의 시작(詩作)에 대한 모든 것을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반복해서 읽으며
배웠다고 했다.

'아이네이스'를 읽기 전에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그리고 여러 그리스 시인들의 비극들을 읽었다.

베르길리우스가 써내려간 '아이네이스'는
그리스 시인들의 작품, 특히 호메로스에 힘입은 바 크기 때문이었다.

베르길리우스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가문과 로마를 예찬하기 위해 '아이네이스'를 적는다.
다시 말하면 라틴어로 된 용비어천가요, 단군신화라고 할 수 있겠다.


<'아이네이스'의 배경>

베르길리우스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의 한 부분에서 힌트를 얻어
트로이아인 앙키세스와 미의 여신 베누스(아프로디테)의 아들인
아이네아스를 로마 건국신화의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또한 당시에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속한 율리우스 가문이
이울루스(Iulus), 즉 아이네아스의 아들 아스카니우스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얘기도
주인공을 선정하는데 큰 몫을 차지했다.

'아이네이스'는 12권으로 이루어진다.
1~6권까지는 지중해를 헤매며 여러 모험을 하게 함으로써 '오뒷세우스'의 전통을,
7~12권까지는 이탈리아에 도착한 아이네아스의 토착부족과의 전쟁을 그림으로써 '일리아스'의 전통을 계승한다.


<'아이네이스'의 줄거리>

내용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트로이아의 유민인 아이네아스는
아가멤논, 메넬라오스, 아킬레오스, 오뒷세우스 등의 그리스 연합군에게 패배해
폐허가 되어버린 트로이아를 떠나 제2의 트로이아를 건설하라는 신탁을 받는다.


<Federico Barocci, Aeneas' Flight from Troy, 1598, Galleria Borghese, Rome>

여전히 트로이아에 안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유노(헤라) 여신은 아이네아스의 항해를 계속해서 방해하고,
반대로 아이네아스의 어머니인 베누스(아프로디테) 여신은 계속해서 도와준다.

항해 도중 오뒷세우스가 칼륍소를 만나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처럼,
아이네아스는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를 만나 한동안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메르쿠리우스(헤르메스)가 다시 한 번 신탁을 전하고 아이네아스는 다시 항해를 떠난다.
실연의 슬픔을 이기지 못한 디도는 스스로 불더미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는다.

대망의 이탈리아에 도착한 아이네아스는
쿠마이의 예언녀 시뷜라의 도움으로 저승으로 가서
항해 도중 먼저 죽었던 아버지 앙키세스를 만나
앞으로 펼쳐질 로마의 위대한 역사와 인물들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된다.

저승에서 다시 돌아온 아이네아스는
라티움 지방을 통치하고 있던 라티누스왕과 그의 딸 라비니아를 만나 환대를 받고,
신탁을 받은 라티누스왕은 그를 사위로 삼으려 한다.

그녀의 약혼자를 자처하는 투르누스가 그 소식을 듣고는 분개하여,
여전사 카밀라와 에트루리아인에게 쫓겨난 폭군 메젠티우스,
그리고 주변 부족들을 모아 아이네아스 진영을 공격한다.

그동안 아이네아스는
예전에 이탈리아에 정착한 그리스인들의 왕인 에우안드루스와 아들 팔라스,
폭군 메젠티우스를 쫓아낸 에우트리아인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한편 어머니 베누스는 볼카누스(헤파이스토스)에게 의뢰해 아이네아스를 위한 방패를 만든다.

두 진영 사이에 일진일퇴의 전투가 벌어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가운데,
팔라스는 투르누스의 손에 전사하고,
메젠티우스는 격분한 아이네아스의 손에 전사한다.

마침내 투르누스와 아이네아스의 일전이 벌어지고
투르누스가 팔라스의 칼띠를 전리품으로 두르고 있는 것을 보고
격분한 아이네아스가 살려 달라고 간청하는 투르누스의 가슴에 칼을 꽂는다.

여기까지가 '아이네이스'의 대략적인 이야기다.


<트로이아와 그리스는 어떻게 화해하는가?>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트로이아와 그리스가 한 핏줄이라는 것을 언급하며
아이네아스가 에우안드루스의 도움을 청하는 부분이다.


           아틀라스
      _______I______
     I                    I
엘렉트라         마이야
     I                    I
다르다누스    메르쿠리우스
                          I
                   에우안드루스


트로이아의 시조인 다르다누스는 엘렉트라의 아들이고, 엘렉트라는 아틀라스의 딸이다.
그리스 왕인 에우안드루스는 메르쿠리우스의 아들이고, 메르쿠리우스는 마이야의 아들, 마이야는 아틀라스의 딸이다.
그러므로 트로이아와 그리스는 한 핏줄이라는 것이다.
물론 에우안드로스는 기꺼이 그를 도와준다.


<'아이네이스'의 미문>

'아이네이스'는
이야기 자체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생생한 문체로 유명하다.

베르길리우스는 암곰이 아기곰을 핥는 것처럼
거칠게 글을 내어 수차례에 걸쳐 다듬었다고 한다.


"그는 전쟁에서 대담한 부족의 무구들에 시달리게 하고, 자기 영토에서
 쫓겨나게 하고, 이울루스의 품에서 떨어져 도움을 애원하게 하고,
 자기 전우들이 무자비하게 살육당하는 것을 보게 해주소서.
 그리고 그는 마지못해 불평등한 평화 조약을 맺은 다음,
 왕국도 바라던 햇빛도 즐기지 못하고 요절하여 묻히지도 못한 채
 모래 한가운데에 누워 있게 해주소서. 이것이 내 기도이며,
 이 마지막 말을 나는 내 피와 함께 쏟아내고 있나이다."

- 아이네이스, 4권, 615~621행
* 아이네아스에게 실연당한 디도가 퍼붓는 저주다. 결국 아이네아스는 요절한다.


"공포가 그자의 두 발에 날개를 달아주었소."

- 아이네이스, 8권, 224행
* 아주 빠르게 도망치는 모습을 표현


"산 사람들을 시신들과 함께 묶어 그들이 서로 손과 손이,
 입과 입이 포개진 채-세상에 이런 고문이 다 있습니까!-
 비참한 포옹 속에서 고름과 시즙(屍汁)으로 녹아내리며
 긴 시간 동안 천천히 죽게 만들었지요."

- 아이네이스, 8권, 485~488행
* 에뤼트리아 폭군 메젠티우스의 잔혹한 폭정을 묘사


"적군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에 창은 윙윙거리며 날아가 타구스의 양쪽
 관자놀이를 지나더니 꿰뚫린 골 안에 머문 채 데워지고 있었다."

- 아이네이스, 9권, 418~419행
* 눈 앞에 관자놀이를 꿰뚤은 창이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 그려질 정도로 생생한 묘사


"에우뤼알루스가 죽어 나뒹굴며 아름다운 사지 위로
 피가 흘러내렸고, 목덜미는 어깨위로 축 늘어졌다.
 그 모습은 자줏빛 꽃이 쟁기날에 잘려 나가며 시들어지거나,
 아니면 양귀비꽃들이 소나기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목덜미를 늘어뜨리며 고개를 숙일 때와도 같았다."

- 아이네이스, 9권, 435~437행
* 용감한 에우뤼알루스의 죽음


"인간의 마음은 운명과 다가올 미래사를 알지 못하기에 행운이
 떠받쳐주면 절제할 줄 모르는 법이다."

- 아이네이스, 10권, 501~502행
* 아이네아스에게 죽을 줄 모르고 기고만장한 투르누스의 모습을 빗댐.


"그는 의식이 또렷한 가운데 목구멍에 칼을 받았고,
 그의 목숨은 피 물결을 타고 그의 무구 위로 쏟아졌다."

- 아이네이스, 10권, 906~907행
* 폭군 메젠티우스의 죽음


"마침내 창이 그녀의
 드러난 젖가슴 아래로 뚫고 들어가 매달린 채
 깊숙이 자리 잡고는 처녀의 피를 빨아마셨다."

- 아이네이스, 11권, 802~804행
* 여전사 카밀라의 죽음


"그는 분기등등하여 적의 가슴 깊숙이 칼을 찔렀다.
 그러자 투르누스의 사지가  싸늘하게 풀리며 그의 목숨이
 신음 소리와 함께 불만에 가득 차 지하의 그림자들에게로 내려갔다."

- 아이네이스, 12권, 951~952행
* 투르누스의 죽음이자 '아이네이스'의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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