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늑대 - 미네르바의 올빼미 02 미네르바의 올빼미 2
멜빈 버지스 지음, 유시주 옮김, 이선주 그림 / 푸른나무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번뜩이는 누런 눈을 가진 늑대가 독자를 잔뜩 노려보고 있는 표지는 강한 인상을 준다. 저자가 야생 동물에 대하여 애착을 가지고 늑대의 입장에서 기술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저자는 현대인들에게 각인된 늑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동물학적 지식을 통해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결코 늑대가 사람을 잡아먹기 위해 먼저 공격하거나, 가축만을 먹이로 삼는 동물이 아니라고.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모든 것을 지배해도 좋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하고 실제로 많은 부분을 편리한대로 지배하며 살고 있다. 야생 동물도 예외가 될 수는 없어서 인간에게 해를 주는 수많은 동물들이 죽고 멸종되어 가고 있다. 늑대도 그 중의 한 종으로 인간에게 사냥되어 진다. 그래서 이제는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동물이 되어 버렸다.
 벤이 실수로 사냥꾼에게 늑대 이야기를 흘린 후부터 생존을 위한 게임은 시작된다. 잔인한 사냥꾼은 작은 새끼들마저 박제감으로나 생각하고 목을 비틀어 버린다.  그레이컵으로 늑대를 잡으려는 사냥꾼과 새끼를 구해내려는 늑대들의 두뇌 싸움에서 사냥꾼은 보기 좋게 패배한다. 하지만  곧 그레이컵은 어미도 동료도 없는, 이세상에 단 하나뿐인 외톨이가 되고 만다. 제니의 도움으로 살아 남기는 하지만 어디 정착할 곳도, 기댈 곳도 없다.
 박진감 있는 전개를 보이고 있지만 독자의 마음은 무겁다. 산업 사회가 자연을 훼손시키고, 도시의 발달로 인간은 자연과 멀어지게 되었다. 관심에서 밀려난 자연은 훼손되고 파괴되어  동식물의 멸종을 가져왔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사냥꾼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비록 벤의 가족처럼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보호하는 따뜻한 인간이 있다 할지라도 이미 멸종되어 버린 동식물을 되살릴 수는 없다.
 영국 전역을 떠돌아다니던 늑대는 낯익은 냄새를 발견한다. 바로 사냥꾼의 냄새다. 이제 쫓는 자와 쫓기는 자가 바뀌었다. 하지만 사냥꾼은 자신이 쫓기면서도 마지막 늑대를 죽일 수 있다는 오만은 버리지 못한다. 일생을 함께 지내 온 제니마저 죽이는 돌이킬 수 없는 잘못까지 저지르면서.  사냥꾼은 그레이컵을 피해 절벽에서 바다로 뛰어들고, 추위와 패배감으로 의지가 마비된 채 바다 속으로 가라 앉는다.
 작가는 최후의 늑대 그레이컵을 죽이지 않았다. 영국 아니 지구 어딘가에 그레이컵의 후손이 살아 남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살려 둔 것이다. 한편 사냥꾼과 함께 인간의 추악한 공격본능이나 파괴 본능도 사라지기를  희망했을 것이다. 벤의 가족처럼 생명을 소중히 아끼고 보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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