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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치와 소새와 개미 ㅣ 우리 작가 그림책 (다림) 4
최민오 그림, 채만식 글 / 다림 / 2003년 2월
평점 :
풍자소설로 유명한 채만식의 우화를 그림책으로 만든 " 왕치와 소새와 개미"는 동화와 본격 소설의 중간에 위치하는 성격의 글이다. 서로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서 등지고 있는 왕치와 소새, 또 둘을 바라보고 있는 개미의 모습에서 뭔가 한판 승부를 예고하는 표지그림이다. 우화소설을 물활론적 사고에 입각하여 아이들의 문학으로 재화한 이 작품은 의인화되어 있는 왕치, 소새, 개미를 통하여 인간의 여러 가지 성격이나 태도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머리가 벗겨진 왕치, 주둥이가 나온 소새, 허리가 잘록한 개미 등 동물의 생김새를 이야기 소재로 삼아 재미있게 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원본의 한자어나 옛말을 현대의 어법에 맞게 고치면서 작가만의 판소리계 사투리와 말맛을 살려 이야기의 재미를 더했다. '부우연, 얼큰한, 구수우한 , 짭짤한, 골콤한 ’ 등에는 우리말의 맛깔스러움이 그대로 살아 있다. 더구나 글자 크기를 달리하여 어휘의 강약을 표현한 부분이 돋보인다.
하는 일 없이 더부살이만하던 왕치를 골려 주기 위해 소새와 개미는 돌아가면서 잔치를 준비하자고 제안한다. 먹는 즐거움만 생각하고 선뜻 찬성을 하고 나선 왕치는 결국 자신의 차례가 되어서는 곤욕을 치른다.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살아나고도 오히려 능청스럽게 너스레를 떤다. 이런 왕치의 모습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과 감사함에 인색한 우리를 표현하고 있다.
흑백과 칼라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그림은 글의 재미를 더해 읽는 이에게 생동감을 준다. 상황에 따라 세 동물의 표정변화가 풍부하여 주인공들의 감정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흑백으로만 처리된 일부분은 수묵화의 깊은 느낌을 전달하기도 한다. 소새가 주둥이로 잉어의 눈을 꿰어 낚아채는 장면, 잉어가 왕치는 잡아 먹는 장면은 실로 생동적이다. 잉어의 뱃속에서 풀쩍 뛰어나오는 왕치의 모습을 펼친 면에 하나 가득 채운 과감한 구도는 상황을 극대화하고 있다.
본문이 조금 긴 듯 하지만 재미있는 그림이 곁들여 있어서 초등학교 1~`2학년 아이들이 읽기에 적당하다. 한편 이 책은 동화구연에 적절한 책이다. 사투리, 속어 등의 말맛을 적절히 살려 구연한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을 것이다. 늘 게으른 왕치는 친구들의 미움을 산다. 하기 싫은 일이라고 하지 않는다면, 결국 다른 친구들이 곤란을 겪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집단 생활의 규칙체계를 익힐 수 있다. 또한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친구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얄밉기만 하던 왕치지만 때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염려하며 자신의 잘못인양 걱정을 한다. 친구란 즐거움도 어려움도 함께 하는 소중한 존재임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어리석고 염치없으며 거만한 왕치와 괴팍하고 인정 없으나 재치있고 부지런한 소새와 부지런하고 너그러우며 낙천적인 개미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노력없이 손쉽게 결과만 얻으려는 사람들, 항상 불평만 늘어놓는 사람들,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 차가운 웃음을 던지는 사람들. 세 동물들의 내력담을 통해 이기적인 태도를 버리고 조화로운 공동체 생활을 추구하자는 작가의 우회적인 꾸짖음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