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stella.K > 성공의 법칙은 반드시 배반한다

‘경영학계의 구루’라고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올해 95살이 되었습니다.
최근에 그가 그동안 썼던 글과 강연 등을 모아서
매일 한페이지씩 1년 365일 동안 읽을 수 있도록 정리한
‘데일리 드러커(Daily Drucker)’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드러커는 요즘도 강연을 하고 글을 쓰고 컨설팅을 한다는군요.

 

 

 

드러커의 책들은 워낙 많은데,
그중 아무 책이나 골라서 아무 페이지나 들쳐서 읽어봐도
늘 좋은 생각거리를 주기 때문에
제가 가끔씩 집어들고 읽기 좋아하는 책들입니다.

어젯밤에는 잠이 안와서
‘데일리 드러커’를 들고 여기저기 읽어봤는데,
이런 내용이 눈에 띄었습니다.

 


“성공의 법칙은 늘 배반한다”는 것입니다.
‘성공’이란 새로운 현실과 그에 따른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결국 성공을 달성하기까지 한 기업이나 인간을 끌어올렸던 방식은
성공하는 순간 새로운 현실에는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구식’이 된다는 겁니다.
드러커는 말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말은 동화에나 나오는 것이라고.

 

예전에 하버드대생들의 공부방법에 관한 책에서도 이런 부분을 읽었는데,

하버드에 입학하기까지 고등학교 시절의 공부 방법과

하버드에서 공부 잘하는 방법은 완전히 다르다는 겁니다.

대학에서는 혼자 도서관에 쳐박혀 책을 붙들고 씨름하는 것보다는

다른 학생들과 토론하면서 다양한 관점을 배우고

여러 가지 참고자료를 보는 것이 더 중요한데 학생들이 그것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고등학교 때 공부를 정말 잘했던 '공부의 수퍼스타'들일수록 이 문제를 더 심각하게 겪는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시절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예전의 우등생들은 집요하게 과거의 성공방식에 집착해서 혼자서 미친듯이 공부하기 시작하는데

그럴수록 점점 더 성적은 떨어진다는 겁니다.

바로 여기가 '성공의 법칙이 배반하는 순간'입니다.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고,

그래서 새 방식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벌이지요.

 

'옛날에는 잘 나갔는데 요즘은 왜 이 모양일까'라는 의문과 싸우고 계시다면,

아마 과거의 성공법칙을 고수하다가 변화의 계기를 놓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제기해보는 것도 해결의 실마리가 될 지 모릅니다.

 

또 한가지 눈길을 끌었던 페이지는 성공한 40대가 맞는 위기에 관한 겁니다.

지식노동자들은 전통적인 은퇴연령을 지난 후인 노년에도 계속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육체노동자가 아니라면 나이가 들어 활동력이 좀 떨어진다 해도
일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지요.


하지만 지식노동자들은 ‘정신적으로 지쳐버리는’ 새로운 위험에 부닥치게 됩니다.
특히 40대 지식노동자들은 공통적으로 ‘탈진(burnout)’ 상태라는 괴로움에 빠지는데,
이 탈진의 원인은 ‘스트레스’가 아니라 ‘지겨움’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단히 성공적인 최고기업의 경영진이 어느날 드러커에게
“우리 회사의 엔지니어들이 다 기운이 빠졌습니다.
왜 그런지 좀 알아봐주시겠습니까”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드러커는
능력있고 보수도 많이 받는 10여명의 성공한 엔지니어들을 면담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회사의 성공에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나는 이 일을 좋아합니다.
벌써 10년 이상 이 일을 해왔고, 아주 익숙하고, 자부심도 갖고 있어요.
나는 자면서도 일을 할 수 있을 정도지요.
그런데 이 일은 더 이상 나에게 도전의식을 주지 않아요. 그냥 지겹습니다.
더 이상 매일 아침 회사에 가기를 고대하지 않아요.”

 

경영진은 이런 사람들을 다른 자리로 옮겨주는 방법을 택하는데,
드러커는 그것은 잘못된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의미의 흥미를 다시 회복하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들은 나중에 다른 일을 할 계획을 갖게 된다면,
-예를 들어 은퇴 후 고등학교에 가서 수학과 과학을 가르치겠다는 식의 계획 말입니다-
갑자기 일이 다시 만족스럽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드러커는 40대가 되기 전에 후반부 인생의 목표를 세워놓으라고 조언합니다.
현재 하는 일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지금부터 추구하면,
잘하면서도 지겹게만 느껴지는 현재의 일이 의미가 생긴다는 겁니다.

 

드러커가 쓴 또 한편의 글도 40대의 인생계획에 관한 것인데,
성공한 지식노동자들은 40대가 되면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이미 평생 동안 이룰 것을 거의 다 이룬다고 합니다.
기업경영자든 교수든 의사든 일에 관한 한 40대에 이미 정점에 달한다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남는 것은 승진이나 그런 것들인데,
살다 보면 그런 분야에서 좌절 한번 겪지 않고 살아가기는 어렵지요.

 

그런데 만일 자신의 인생에서 일이 전부라면
이런 좌절이 곧 인생의 좌절과 동의어가 되지요.
그러니까 일과는 무관한 다른 분야의 관심을 미리 키워놓으라는 것입니다.
봉사활동을 한다든지 취미생활을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일과는 다른 분야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계발하고 발전시켜야
직장에서 좌절을 겪는다 해도 또 다른 분야의 성공은 지킬 수 있다는 것이지요.

 

지금 당장 눈 앞에 펼쳐진 치열한 경쟁의 세계가 주는 압박감을 견디고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하지는 말라는 이야기겠지요?
투자에서도 그렇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데도 ‘리스크 분산’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출처:14번가의 기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모처럼 집에 오도카니 앉아 있다. 십수일 동안 아침 일찍 나가서 하루 종일 냉동실같은 건물에서 개떨듯 했더니 몸살이 나려고 한다. 하지만 오늘도 어머니는 슬슬 내 눈치를 보면서 같이 나가자는 신호를 계속 보내신다. <저 안 나가요. 먼저 가세요.> 섭섭한 표정이다. 코칭스타일을 모르시는 어머닌 아마 이해 못하실거다. 규범을 철석같이 지키고 농업적 근면성을 숭상하는 어머니는 S형. 나는 그렇게는 죽어도 못 살 것 같은 정반대 D형.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 스타일은 존중해주실꺼져.(?!)

(여기서 잠깐. 기록을 남긴다는 차원에서 한줄 적어둔다. 요즘 컬투 정찬우가 <그때그때 달라요><쌩뚱맞져> 등의 유행어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데 그가 흉내내는 사람은 최근 뜨고 있는 영어강사 이모양이라고 한다. 내가 그녀를 만난 게  9년쯤 되나.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사무실로 찾아온 이양은 첫눈에도 범상치 않은 외모와 발음의 소유자였다. 자칭 미녀강사였지만 상당한 각도로 돌출한 앞니와 무녀를 연상케하는 부리부리한  눈, 역대로 내가 목격한 색깔중에 가장 붉게 칠해진 입술. 결례의 표현이지만 울퉁불퉁한 몸매에 분주한 걸음걸이. 그날 그녀는 초면인 나를 구석으로 데려가 사주를 봐주었고, 얼마후엔 내 손을 잡아끌며 와이셔츠 바람으로 삼청동 선생님(?)댁에 데리고 갔다. 진위는 알수 없으나 이모양은 귀신이 보인다고 했다.

이양의 꿈은 방송출연. 하지만 아무도 가능성을 높게 보진 않았다. 그러나 이양은 우여곡절 끝에  굿모닝팝스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맡게 됐는데 그 이후 1~2년동안 그녀가 보여준 입지전적인 노력은 눈물없인 볼 수 없는 인간승리 드라마 그 자체였다. 거칠고 갈라진 성대를 타고났고, 영국에서 유학을 했던 탓인지 발음도 다소 낯설었던게 사실이다. 게다가 해괴한 스캔들로 장기집권에서 낙마한 전임자의 빠다바른 듯한 진행과는 대조적으로 투박하고  거침없어서 청취자들의 반발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영어 동네도 빤해서 모진 험담과  금방 떨려날 거라는 구설이 꼬리를 무는데도 정작 당사자는 쾌활하기 짝이 없었다. 다른 강의는 다 접고 오로지 굿모닝팝스에만 올인했던 그녀는 마침내 자기 스타일을 개발해 오늘날 그 유행어가 전국민에게 알려지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외모면에서도 괄목상대하여 체형이 콜라병모양이 된데다, 얼굴도 작아진 듯 오목조목 예쁜이로 변신했다는 뒷얘기. 나와는 무척 친해서 허물없이 지냈다. 비록 연거푸 몇번 모임 약속을 펑크내는 바람에 그녀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지만. )

요즘 정신이 산란해서 그런지 자꾸 얘기가 옆길로 샌다. 본론이랄 것도 없지만 오늘 오랜만에 책한권을 떼었다.< 위대한 여행 - 별을 따라간 네번째 왕의 전설>(에자르트 샤퍼 지음) 1백35쪽의 작은 책이다. 이쯤은 단숨에 읽어치우리라 쉽게 보고 달려들었다. 활자 크기도 동화책 수준이라 한결 만만했는데. 결국 마지막 장을 덮고나니 겨울해가 뚝 떨어졌다. 네시간 동안 집중하고 읽었다. 다른 책의 세곱쯤 시간이 걸린 셈이다.

러시아의 작은 왕은 위대한 왕이 태어난다는 예시를 받고 그를 경배하기 위해 단신 말에 오른다. 그의 손에는 큰 왕에게 바칠 보석과 아마포, 담비가죽, 그리고 꿀통이 들려져 있었다. 밝게 빛나는 별을 따라가는 여행길에서 세명의 왕을 만났다. 너무 고상하고 위엄있는 세 사람에게 열등감을 느낀 작은 왕은 사막에 진주를 뿌리면서 <우리 동네엔 이런거 많다>라고 뽐내지만 곧 후회한다. 그날 밤 혼자 마굿간에서 자던 작은 왕은 거지여인의 출산을 돕게 되고 그녀와 아기에게 선행을 베푼다. 그녀는 작은 왕을 마음속의 왕으로 섬기겠다고 한다. 그후 작은 왕은 여행길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선물로 가져간 물건들을 나눠주고 급기야는 어느 소년 대신 노젓는 노예로 팔려가기에 이른다. 그후로 삼십년이 지나 쓸모가 없어진 작은 왕은 뭍에 떨궈지게 되고, 이젠 거부가 된 예전의 소년과 옛날 은혜를 베풀었던 거지 여인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러나 위대한 왕을 만나겠다는 평생의 소원을 그는 그 왕이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매달리는 순간에 비로소 이루게 된다. 쇠약한 심장이 멈추려는 순간 작은 왕은 부끄럽고 괴로운 마음으로 기도한다.  <저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습니다. 왕께 바치려 했던 것들은 이제 하나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황금, 보석, 아마포, 모피, 심지어는 어머님이 단지에 가득 담아주신 꿀마저 모두 허비하고 낭비했습니다. 왕이시여, 용서하소서. 그렇지만 러시아는....  하지만 저의 마음, 왕이시여, 저의 마음을.... 그리고 그 여인의 마음을.... 저희들의 마음을 받아주시겠습니까?>

삼십년 전 별을 따라 온 세명의 왕 동방박사 세사람은 위대한 왕의 탄생을 경배했다. 삼십년 후 네번째 왕인 러시아의 작은 왕은 십자가에 매달린 그의 죽음을 경배했다. 앞의 세 왕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선물로 바쳤지만 작은 왕은 마음 밖에는 드릴 게 없었다. 그 마음은 거지여인과 아기, 문둥이와 강도 만난 이, 노예와 과부, 유복자, 그리고 미물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 즉 위대한 왕이 살아서 보여주었던 사랑이었다. 작은 왕은 비우고 비우고 또 비워 궁극에는 사랑으로 그 선물주머니를 다 채운 것이다.

반성한다. 비우려 하지 않고 비워지는 것을 두려워만 했다. 마음을 비워 가난해져야 복을 받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하나를 버리면 두개를 얼른 채우곤 했다. 앞서 미녀강사 얘기하다 삼청동 선생님이란 분이 잠깐 나왔었다. 쪽진 머리를 곱게 빗은 그분이 호랑이 그림 밑에서 하신 말씀. <갖고 계신 바구니가 아주 좋군요. 그런데 바구니에 담긴 것중에서 좋고 탐스런 것은 다른 사람이 다 가져가거든요. 그래도요 절대로 화내거나 아쉬워하지 마세요. 조금 있으면 그보다 더 좋은 것으로 가득 찰거니까 조바심 내지 말란 뜻입니다. 할 수 있으면 더 퍼주시고 더 나눠주세요. 그럼 더 풍성하고 더 빨리 채워질테니 두개 다 얻는 셈이잖아요.>

비록 무속인일지언정 좋은 말을 해주는 분들이 있다. 삼청동 그분의 말씀도 지금 생각해보면 참 듣기 좋은 말이었다. 그땐 나이가 어리고 욕심이 다락같이 높아서 무슨 뜻인지 몰랐다. 지금 <위대한 여행>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한다. 그 말씀이 어디 나한테만 해당하는 말이랴. 신앙과 선행에만 한정된 얘기일까. 지혜를 담고자 하면 이미 갖고 있는 지식과 개념덩어리들을 비워야 마땅하다. 서푼도 안되는 지식과 편협한 고정관념들을 신장대처럼 붙들고 떠는 박수무당 꼴이 되선 안되겠다. 

위대한 왕의 삶을 살고 간 작은 왕은, 신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05-01-11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로군요. 한번 읽어봐야겠는데요.

그 삼청동 선생님 범상치 않으신 분 같군요. 그래서 제가 효자님을 뵙게된 줄도 모르겠습니다.

그 선생님 저를 보면 뭐라고 하실까요? 그런데 저는 교회를 다니니 평생 그분을 뵐것 같지는 않고, 단지 효자님 글 읽으면서 나의 기도를 더듬어 봤고(내가 뭘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을까하는...) 저의 결핍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ㅜ.ㅜ

 

효자님 이런 거 해 보신 적 있으세요? 81111 서재 지인들끼리 서로 이런 거 많이하는데...1일 쪼르라니 4개가 서있어서 잡아 봤습니다.^^

 

   


2005-01-15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밤 10시30분. 외출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다. 주섬주섬 외투를 꿰며 나의 모질지 못함에 짜증이 났다. K씨의 전화였다. 전직 고위공무원으로, 햇병아리 사장였던 나와 회사를 좌지우지하던 사람이다. 악연은 아니지만 그다지 좋은 인연이었다고 볼 수 없다. <어디 있냐?><분당 집입니다.><그래? 여기 청담동인데 모범타고 나와라><.........><나도 분당이잖냐. 이따 같이 들어가자구.> 배웅하시는 어머니는 늙은 아들의 엄동설한 밤마실이 걱정되시는지 연신 술마시지 말라는 말씀만 뒤통수에 더깨가 앉도록 하신다.   

불경기를 벗을 기미가 도통 안보인다.  강남에서 잔뼈가 굵어선지 청담동 인근을 획 지나가면 절로 느낀다. 밤 11시면 한참 흥청망청할 때. 그런데 적막강산이다. 조명도 침침하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뜸하다. 여기가 이 정도면 딴 데는 보나마나다. 20년을 지켜 본 결과, 강남은 대한민국의 실물 경기를 드러내는 정확한 바로미터다. 현 정권의 청렴한 위정자들이 강남을 4대 개혁대상의 첫손으로 꼽았다더니 숫제 발걸음도 안하는 모양이다. 이동네에 단골집 하나만 있었어도 그렇게 불감하진 않았으리. 구중궁궐에 틀어박혀 있으면 세상이 자기들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게 마련이다. 문득 조금 후에 만나게 될 전직 공무원과 비교해보았다. 둘다 무책임하고 피곤하긴 난형난제요, 민폐의 크기로는 우열을 따지기 힘들다. 아나키스트들에게 존경의 꽃다발을.

K씨 덕택에 평생 안 겪어도 될 일을 치렀다. 결국 내 침잠의 큰 계기를 마련해준 셈이다. 그는 검사앞에서 한사코 비리를 부인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검사도 바보가 아닌데 모를 리 없다. 지금 그가 이렇게 술집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딱 한가지. 증거가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돈 준 놈이 외국으로 도망갔는데 입증할 방법있나. 이년여 잠수를 타던 K씨는 <관재수는 없으니 걱정 말라>는 무꾸리 결과를 믿고 검찰에 출두했다. 그는 자기가 무죄라고 떠들었고(진짜 스스로 그렇게 믿고 있는 것 같았다), 나 역시 공연한 불똥이 튈까봐 어림없는 그 얘기에 맞장구를 쳤다. 내가 지금 그를 만나러 가는 건, 친해서도, 술이 그리워서도 아니다. 검사 앞에서 나와 웃기는 해프닝을 벌이고 그만 끝이었던 어처구니 없는 한 인연에 대한 맹목적인 애틋함이랄까.

<우선 살이 빠졌고, 둘째, 경제적으로 곤란한 것 같진 않고, 세째, 눈에 독품은 건 변함 없고.> 악수하면서 물끄러미 날 쳐다보더니 대뜸 인상분석부터 한다. (살 빠진 거 보니 부럽죠? 경제적으로 좀 도와주시구요. 눈에 독품은 건 술취한 당신이구마는.) 어찌 지내십니까....그저 이렇게 지내지. 너는?.... 보시다시피 백수 올습니다.... 뭐 할건데?.....아무 생각 없습니다.... 그러지 말구 얘기해봐..... 생각 있으면 이러고 있겠습니까?.... 그럼 너 이거 안해볼래? (주절주절).... 재미없네요.....이거 괜찮은 아이템이야..... (당신도) 하지 마세요.

녹차캔만 네개째 따고 있는 내게 물었다. <너 내가 어떤 놈이라고 생각하니?>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를 악물고 하면 안된다. 어떤 대답도 관계를 치명적으로 손상시키며,  그 대답에 대한 질문자의 평가는 언제나 부정적이다. 잘 못 봤으면 잘못 봤다고 코웃음칠 것이고,  제대로 봤어도 너절한 변명이나 지어내면서 결코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좋게 얘기해줘도 아니라 하고 나쁘게 얘기하면 죽을 때까지 앙심을 품는다.  따라서 그런 질문을 툭 던지는 자는 무조건 의심해야 한다. 현재의 친소관계에 무관하게 그런 인간들은 치명적인 암살자들이기 십상이다.

<극단적인 가치 때문에 평생 고생할 인간이지요. 한쪽에는 터무니없는 욕심. 다른 한끝에는 나 혼자 잘먹고 잘살려는게 아니다 라는 허위에 찬 공인의식.  한때는 세상을 다 갖고 싶었겠지만 이젠 늙어버린 심신 때문에 갖고 싶은 것을 허둥지둥 다시 찾아봐야 하는 조급한 인생. 사람들은 불신하면서도 자기는 믿어주길 바라는 이기주의자. 그나마 하늘의 보살핌으로 술추렴해주는 몇몇 친구들이 남아있는 인복있는 남자. 시간만 주신다면 더 얘기해 드릴 수도 있는데.>(이상은 속엣말이고 겉으로는 훨씬 부드럽게 돌려서 말했다.) 그는 예상대로 손을 휘저으며 <아냐 아냐> 라고 말했다. 나는 이런 교과서적 인간이 맘에 든다. 어쩌면 이렇게 전형적인지 원. 그는 내게 대답을 원한게 아니었다. 자기가 어떤 놈인가를 들어주길 바랬던 것이다. <네가 비밀을 지켜준다면 얘기할께.>라며 새끼손가락을 내미는 그에게 <그럼 그만두시죠.>라고 말했다. 이런 거 보면 내가 꽤 단호한 놈인데 말야. 이런 양반은 동네 방네 자기입으로 얘기하고 돌아다니다가,  누군가 그얘기 알고 있다고 하면 대뜸 내 이름을 떠올리며 육두문자를 끼워넣을 사람이다.

수다는 여성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말하지만, 남자들의 비열한 수다는 말도 못한다. 연신 위스키잔을 비우던 K씨는 무슨 얘기 끝에 <엊그제 사람들을 만났는데 다 네가 한 일이라고 알고 있어>라고 했다. 십수년도 더 된 얘긴데, 당사자도 아니고 목격자도 아닌 자들이 바로 엊그제까지 만나 그런 얘길 쏘삭거렸다는게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 닳아지지 않는 혓바닥들과 시궁쥐같은 눈깔들.  한술 더 떠 K씨는 내가 자기를 찾아올 때 무슨 차를 타고 왔는지도 기억하고 있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날 몰아세웠다. <그 자들 총기도 대단하고, 게다가 요즘 신간이 편안한 모양이네요. 모여서 그런 수다나 떨고 앉아있고.>  한참 신이 난 K씨는 나에게 그런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이래저래 해야한다고 훈계(?)까지 했다.  남 걱정할 입장은 아닐 터인데. 여하튼 <그런 RSOB(Real Son of Bitch)들 보기 싫어서 그 동네 발 끊었습니다.><너 뭐할 건지 알면 걔들 글루 쫓아올까봐 말 안하는거지?>  그날의 대화는 이말 끝에 껄껄 웃음으로 끝났다.

자꾸 뒤따라 나오길래 <그냥 계시라>며 계속 주저 앉히고, 또 나오면 <왜 이러시냐>며 떠밀어서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아마 조금만 더 싱갱이 했으면 필경 그는 오줌을 싸고야 말았을 거다. 현관문 옆에 화장실로 허겁지겁 뛰어들어가는 그를 보면서 나의 눈치없음을 반성했다. 씩 웃고 돌아서는 내 뒤통수에 대고 그가 외쳤다. <난 널 믿는다. 알지? 너는 일어설거야.>  (약주 고만 하십쇼 헹님. 글고 저 이미 일어서 있습니다 헹님.) 어디 포장마차라도 있으면 나발이라도 불겠구만. 이 동네는 포차도 죄다 들어갔네 그려.  빌어먹게 불경기로세. 엇 추어.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05-01-12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1-23 2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택배로 온 책 보퉁이를 뜯을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절세미인의 옷고름을 푸는 즐거움이 그에 비할까. 성정이 포악하고 손끝이 거칠어 처음엔 아무거나 들고 있던 것으로 무지막지하게 열어 젖히곤 했다. 그러다가 그 재미를 알고 부터 가급적 그 시간을 느긋하게 즐기려고 애를 쓴다. 개봉행위의 절정이라면 상자의 양 날개를 펼치고 널찍한 가슴을 열고 난 직후라고 할 수 있다. 마치 투탕카멘의 황금관을 열듯, 그 안에 정말 대단한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 흥분, 떨림.

게다가 나는 어제가 무슨 요일인지도 가물가물한 한자릿수 기억력의 소유자. 닷새전 쯤 주문한 책이 무엇인지 단 한권도 기억하지 못한다. 따라서 개봉의 신비감은 더욱 짜릿하고 감미로울 밖에.  음. 그날 난 마치 리마리오처럼 두눈을 지긋이 감고 입가엔 니끼한 미소를 머금으며 첫 대면의 환희를 만끽하려는데....

앗 이게 모야? 상자에 담긴 맨 위의 책은 촌스런 무지개색이 동심원을 그리며 파스텔톤으로 빛났다. 반투명 트레이싱 페이퍼로 만든 띠지(이걸 뭐라고 하던데. 여기선 띠지라는 우스꽝스런 이름이 어울린다)에는 반갑지 않은 이름의 만화가가 썼다는 <남자들의 속마음 어쩌구>라고 제목이 붙어있다. 내가 미쳤나? 이런 책이 왜 들어가 있는 거야? 혹시 딴데 갈게 여기 왔나? 상자 겉면을 뒤적거려 주소를 확인했다. 주손 맞는데. 쩝.

도날드닭으로 이름을 냈다가 요즘은 노빈손 시리즈로 지가를 올린다는 이우일군을 처음 만난 때는 96년 경이었다. 그때까지 신문에 나오는 만화는 고바우, 왈순아지매 같은 4단만화 아니면 2면에 한컷으로 나오는 만평이 고작이었다. 물론 스포츠신문은 논외로 치고. 전혀 새로운 신문용 만화를 생각했던 나는 홍대 출신의 아트디렉터에게 만화동아리 애들을 데려와 보라 했다. 야구모자를 쓴 떠꺼머리 총각들 몇이 왔다. 일주일 시간을 줄테니 신문에 집어넣을 만화를 그려오라고 했다. 컨셉은 섹시하게 젊은 애들 취향으로. 열흘 쯤 지나 눈이 쾡해서 나타난 그들은 머리를 긁적이며 못그렸노라 했다. 그중 한명은 스트레스로 인한 원형 탈모증에 걸렸다고 울상을 지었다. 감당하기 어려웠을게다. 만화책도 아니고 국내 최대라는 일간지에 그것도 컬러면 반을 채울 사람이 몇이나 되랴.

한참 뒤에 나타난게 우일군이다. 배포가 있는 친구였다. 키가 멀쑥하고 눈이 찢어진게 전형적인 몽골계인데 웬만해선 주눅이 안들고 농담으로 맞장구를 치길래 이 놈 봐라 싶었다. 사실 그 친구를 알아본 양반은 인보길 사장이었다. 포트폴리오랍시고 남자 여자 성기만 잔뜩 그려놓은 포스터를 들고 사장실에 들어갔더니 인사장님 왈, <재밌다 야.> 그래서 우일의 신문만화가 시작됐다.

밖으로 나갈 얘기가 아니니까 하는 말이지만, 그는 신문에 만화가 게재되고나서야 지금의 부인하고 결혼승락을 득할 수 있었다. 맨 그런 그림만 찍찍 그려대는 정신나간 만화쟁이한테 귀한 딸을 줄 부모가 어딨을까. 그러나 그 신문에 만화를 올린다면 얘기는 완전히 틀려진다. 결국 장가가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게된 나는 <아무거나 소원있으면 하나만 말씀해보시라>는 우일군의 성화에 못이겨 당시 연령 제한으로 엄두도 못냈던 홍대앞 락카페를 그날 밤부터 새벽까지 다섯 군데를 도는 접대를 받았다.

나와는 면식이 없었던 광수는 한참 후 그 신문의 본지에 실려 이른바 광수생각으로 대박을 쳤고, 우일은 동아로 건너 가서 <도날드닭>이라는 캐릭터를 전면에 걸고 전성기의 문을 열었다. 그땐 수많은 아이디어중의 하나에 불과했던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신문만화의 패러다임을 바꾼 일이 된 셈이다. 그래서 만화를 유독 싫어하는 내가 그 두 사람의 만화 만큼은 애정어린 눈으로 쭉 보게 됐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중 한사람이 오랜만에 낸 책을 그토록 흰눈으로 갈겨보며 타박하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우선 광수의 무사안일, 나아가 쟁이정신의 포기를 마뜩찮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책의 맨 뒤를 보면 이름 두자만 들으면 알만한 연예인과 그 언저리의 사람들로 장장 두페이지를 빼곡히 채우고 있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오랜만에 내는 책이라면 그동안 신세진 사람들에 대한 인사는 용납할 만하지 않은가. 하지만 광수는 도를 지나쳐도 한참 지나쳤다. 돈주고 이 책을 산 사람은 아예 안중에 없다는 태도다. 원래 그런 인사는 독자들로 하여금 이 책이 나오는데 수고한 사람들의 노고를 함께 기억하자고 쓰는 것이다. 건방진 인사같으니라구.  도대체 내가 이문세와 황경신과 전화번호까지 적힌 허섭한 성형외과의사의 이름을 왜 기억해야 한단 말인가.

책 내용이 그나마 좋다면 눈을 질끈 감아줄 용의가 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기대조차 안했다. 스스로 유명인사 연하며 들떠서 다니는데 단 한치의 발전이 있을 턱이 있겠나. 결국 화장실에서 휘리릭 몇번 뒤적거리고 책꽂이 저쪽에 꽂아버렸다. 여자들이 궁금해하는 남자들의 속마음이라. 이 친구는 어쩌다 이런 내용의 책을 낼 생각이었을까. 한참 여기저기다 제 마누라 새끼 얘길 장님 산대 놓듯 주절주절 늘어놓더니 들리는 말에 이혼하고 딴 여자와 산다던가. 그래서 그 노하우를 다른 여자들에게 남김없이 전해주려는 선의일까? 

몇가지 얘기는 겉으론 그럴 듯해서 골빈 계집애 몇몇의 고개를 끄덕이게 할지도 모른다. 허나 남자들의 그따위 속마음을 안다는 것이 여자들에게 도움이 될 리가 만무하다. 차라리 모르는 게 훨씬 낫다. 광수는 자기 딸을 생각해서 솔직하게 썼다지만 그도 제 딸에게는 정작 보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남녀관계를 그런 날라리 양아치 시각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술한잔 찌끄리며 저희들끼리 킬킬댈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책으로 펴내는 건 잘못이다. 그 유명한 사람들과 매일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나누는 얘기가 무엇이길래 고작 이런 입냄새나는 쪼가리 글밖에 못쓰는가.

차라리 우일군처럼 문 쳐닫고 애들 참고서 비슷한 만화책이나마 부지런히 그려 돈 잔뜩 버는 쪽이 훨씬 영리하고 사회적으로 유익하다. 서점에서 들쳐보니 내용도 그만하면 좋고 만화도 받은 돈 만큼은 성의있게 그려대는 것 같다. 자기 그릇을 보이기 창피하면 겸손해야 한다. 소설이나 시도 아니고 삼척동자들도 다 아는 만화를 그리면서 그리 눈가림하면 못쓴다. 분하면 일년동안 배낭여행 돌면서 고생 바가지로 하고 돌아와 컨셉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른 그런 만화를 그리던가. 고작 연예인들과 시시덕대며 사람들 눈길이나 즐기는 3류 환쟁이로는 얼마 못버틴다네.

뜨는 것도 어렵지만 떠있는게 더 힘들다. 패러다임을 만든 사람중에서 정말 성공한 자는 다음 패러다임까지 만드는 사람이다. 자기 패러다임에 안주하는 자의 무덤은 초라할 수 밖에 없다. 새벽에 느닷없이 험담하고 자려니까 무척 민망하다. 이래서 백수는 허구헌날 속상한 모양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05-01-10 0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1-10 0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5-01-10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쓰셨는데요 뭐. 찬물 한바가지 뒤집어 쓴 기분입니다. 광수씨가 그렇게 됐군요. 예전에 TV에도 잠깐씩 얼굴 비추고 그랬는데...저도 그닥 만화는 좋아하지 않는데 광수 생각 만화 보고, '아, 만화도 이렇게 만들 수 있구나.'새삼 달리 봤었는데. 이 사람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고 재대로된 만화 좀 다시 그렸으면 좋겠네요. 그 좋은 재주 썩이고 뭐하는 건지...남 얘기할 때는 아닌데...>.<;;
 

자신의 타고난 스타일을 신속하게 확인하는 평가도구로 PCSI(Personal Coaching Style Inventory)라는 게 있다. 심리분석을 위한 도구도 아니고 연구용 툴도 아니다. 코치들이 자신과 상대의 스타일을 파악하기 위해서 수많은 임상경험을 토대로 만든 것이다. 코칭도 대화법이기 때문에 김흥국이 말대로 무작정 들이대면 낭패보니까 이런 도구를 써서 사전 탐색을 한다.  실제로 코칭을 해보면 사람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게 확연히 드러난다. 누울 자리 보고 발을 뻗으면 코칭도 편안하단 뜻이다.  

PCSI는 사람을 D(지시형), P(사교형), M(우호형), S(전략형)으로 구분한다. 물론 두세가지 영역이 엇비슷하게 걸쳐있는 사람도 있고, 절묘하게 네가지 유형을 다 만족시키는 수퍼맨들도 있다. 나는 그중에서 D형이다. 이왕 내친 김에 PCSI의 모든 설문을 영역 불문하고 내 스타일에 맞는 것부터 쪼론히 늘어 놓아볼 생각이다. 그 이유? 난 다른 사람이 짜놓은 규범을 원체 싫어하거든. PCSI가 규정한 네가지 영역에 나를 얽어매기 싫어서.

2시간 동안 꼼꼼하게 생각해보았다. 비슷비슷한 문항에 대해서도 차이점을 따져가면서 답을 적었다. 결과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나는 전형적인 프리랜서 기질의 제너럴리스트이며, 전략 기획등 고난도 프로젝트를 정해진 기간에 추진력있게 밀어 부치는 TFT리더가 맞다.  반면 규칙을 준수하고 조직에 충성하며 여러 사람을 보살피는 꼼꼼한 관리직이나, 원칙과 논리적 일관성을 따르는 교수같은 보수적 전문직은 적합하지 않다. 코칭영역으로는 회사나 조직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CEO나 전략 담당임원, 커리어 전환을 원하는 사람, 정치인 등이 적합할 것 같다. 디테일한 감정과 다양한 요소가 혼재돼있는 교육, 가정 등은 적성에 맞는 코칭대상이 아니다.

PCSI의 장점은 이 대목에서  장점을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자는 교과서적 메시지를 남기지 않는 것이다. 그저 자신의 스타일을 정확히 알고 코칭하라는 것으로 끝이다. 물론 훌륭한 코치가 되려면 내가 갖지 못한 덕목을 노력과 학습에 의해 보충해야 함은 당연한 얘기다. 그중에서도 <신뢰를 쌓는다,>< 꼼꼼하고 정확하지 못하다.>< 참을성이 없다> 이 세가지는 코칭에서 매우 중요한 기본자세에 속한다.  상대방이 좀 빙빙 돌아도 인내할 수 있어야 하고, 코칭 포인트를 정확하게 짚어가며 흐름을 잡아줘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신뢰가 자연스럽게 조성되고 상대방이 속깊은 얘기를 끄집어냄으로써 코칭이 성공할 수 있다.

지난 며칠간 코칭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느낌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  공부하면 할수록 나와는 잘 안맞는게 아닐까 불안해졌다. 구절마다 <왜 꼭 이래야 하지?> 라는 시건방진 의문이 꼬리를 문다. 급기야 <나만의 코칭 스타일을 만들어볼까> 하는 턱없는 욕심을 부려보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잘하는게 무엇인지, 그동안 사람들하고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해왔는지 뒤돌아보기로 했다.  순전히 코칭을 잘하기 위한 발견적 차원의 회고다.

나는 사건기자라기 보다 인터뷰 기자였다. 작은 신문사 기자의 애환과 설움도 맛보았고 큰 신문사에 다녀본 덕으로 제 아무리 높은 사람과도 겁없이 얘기할 수 있다. 인터뷰를 잘 하려면 몇가지 비결이 있다. 첫째, 상대방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한다. 둘째, 상대방과 빨리 친해져야 한다. 셋째, 새로운 것을 어떻게든 찾아내야 한다.  네째, 기사 쓸 때 상대방을 가능한 존중해야 한다.  다섯번째, 상대방으로부터 존중받아야 한다. (얼마전에 읽은 오효진씨의 책에선 인터뷰를 잘하면 입사도 잘되고, 정치도 잘 할 수 있다던데 딴은 옳은 얘기다.)

상대를 많이 알려면 평소에 공부를 해야한다. 인터뷰 직전에 기사 조각 몇 개 들여다 봐야 뻔한 질문밖에 나올게 없다. 당장 어떤 사람을 만나서도 사회 전반에 대한 수준있는 정보와 견해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예컨데 날씨 얘기나 유행하는 만화, 정치경제 관련 사건사고, 사회적 이슈, 자녀교육 등에 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내서 상대방의 수준도 가늠하는 한편 상대방의 인터뷰 자세도 교정해준다. <기자가 어려보인다고 어영부영하면 안되겠는데><섣불리 대충 대답했다간 망신당하겠는 걸> 뭐 이런 인식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다.  인트로를 잘하면 서로의 수를 읽게 되므로 상대방과 빨리 친해질 수 있다.

인터뷰의 성공 여부는 새로운 것의 발견에 달려있다. 남들과 똑같은 얘기만 쓰면 굳이 인터뷰를 할 필요가 없다. 다른 기자들이 발견하지 못한 상대방의 정보나 입장, 고민, 계획 등을 어떤 방법으로든 끄집어내야 한다. 실마리를 잡았는데 상대가 더이상 말하지 않으려 한다면 그건 기자의 테크닉 부족이다. 한번 주면 두번 주게되고 나중엔 에라 모르겠다 다 털어놓은 다음에 제발 이것만 내지말아달라>고 부탁하거나 <이제 난 어쩌면 좋으냐>고 아예 상담을 요청하는게 보통이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면 상대의 말을 잘 듣고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된다. 바보같은 질문도 상관없다. 오히려 뜻밖의 질문이 월척을 낚는 미끼가 된다. 상대가 갖고 있는 인터뷰의 틀을 깨버리기 때문이다. 좀 안답시고 잘난척 어려운 질문만 하면 예상답변만 줄줄 나올 뿐이다.

기자의 인터뷰는 기사로 마무리된다. 아무리 대화를 잘해도 기사를 띨띨하게 쓰면 상대방의 실소만 자아내게 된다. 절대 추측하면 안된다. 잘 모르겠으면 전화로 물어 확인해야 한다. 인터뷰해놓고 추측기사를 쓰면 백퍼센트 실수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리 나쁜 놈이라도 인터뷰 기사로 두들겨 패선 안된다. 그러면 기자도 같은 부류로 독자들에게 인식된다. 그렇다고 굳이 미화할 건 없다. 최대한 정중하게 본인이 말한 그대로를 옮겨서 독자가 자연스럽게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인터뷰 기사에 기자의 의견과 감상을 함부로 쓰는 것도 피해야 하는 것중의 하나다. 

인터뷰 상대에게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는 두가지다. 우선은 인터뷰를 성과있게 하기 위함이요, 다른 하나는 후일을 기약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는 바닥이 좁아서 다신 안 볼 것 같아도 금방 또 만나게 된다. 그리고 기자가 정말 알고싶은 정보를 그 사람이 알고 있을 확률도 대단히 높다. 잘써주는 기자가 아니라 훌륭한 기자, 존경할 만한 기자, 얘기하고 싶은 기자, 생각나는 기자가 되는게 중요하다.

존중을 받으려면 대원칙이 있다.  <내가 먼저 존중해야 한다.> 인정과 축하, 또는 공감으로 적대감을 없애고, 수준높은 식견과 교양으로 프로페셔널과 대화하는 보람과 가치를 느끼게 해주며,  경청과 관심있는 질문에 감사하게 만드는 것이다.    

가만있어 보자. 이렇게 써내려가다 보니 취재 인터뷰가 코칭과 매우 유사하다는 걸 발견하게 됐다. 코칭 역시 신뢰관계, 상호존중이 필요하고 경청과 질문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발견해가지 않는가. 섣부른 충고나 해석, 일방적 판단을 하지않는 것도 비슷하다. 물론 인터뷰는 새로운 사실을 독자에게 알리는 목적이고, 코칭은 그 독자가 바로 상대방이라는 점에서 다르지만, 어쨌든 기자중심이 아니라 상대방과 독자를 위한다는 것은 크게 보면 같은 맥락이다.  

코칭 단계와 인터뷰의 진행단계는 어떤가. 처음에 초점 맞추기와 가능성 발견. 계획 세우기,  걸림돌 제거, 마무리. 인터뷰도 야마 즉 주제를 포착하면 목표 대비 현재 상황과 조건을 따진다. 거기서 핵심전략의 컨셉을 찾아내고 구체적인 추진계획 또는 향후 전망을 묻는다. 성공의 핵심요소들을 챙겨보고 미비할 경우 복안이 있는지를 확인한다. 마무리는 이상의 전체 흐름을 정리한 후에가까운 시일내의 액션 플랜을 들어본다.

괜찮네. 과히 문제될 것 없겠군.  인터뷰로 잔뼈가 굵었으니 그 경험을 최대한 살려봐야 겠다. 그래도 십년구력에 해마다 백명씩은 인터뷰했으니 까짓것 주눅들지 말고 편안하게 옛 감각을 되살려 보자. 게다가 코칭은 기사부담도 없지 않은가. 코칭은 결국 코칭 받는 사람이 그 성과를 돌려받기 때문에  굳이  딴 사람들 생각하느라 머리 굴릴 필요가 없다. 현직 코치들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해보자. 인터뷰하듯이 코칭을 한번 보는 거다. 그 평가를 들어보면 무엇을 고치고 보완해야하는지 방법이 나오겠지.

일요일 밤에 이 문제를 일단락 지으니 앓던 이가 빠진 듯 무척 기분이 좋다.  나가서 이순신 봐야겠다.  

아래는 PSCI 설문지를 보고 내 나름대로 설문을 재분류한 후에 그 이유를 메모한 것이다.  이렇게 해놓으니까 내가 뭘해야 잘할 것 같고 뭘하면 못할 것 같은지 한눈에 보인다. 나중에 강의할 때도 단순하게 무슨무슨 형이라고 나눌게 아니라 이런 방식으로 재해석하면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결과를 발견할 수도 있겠다.

(이 글을 올리던 와중에 갑자기 텍스트가 몽땅 사라져서 혼비백산했다. 사전에 Ctl+C로 카피해놓는게 뭐 그리 힘들다고 아무 생각없이 후닥닥 눌러대는지 원.  하느님이 보우하사 간신히 살려냈다. 후천적 노력만 갖고 안되는 것이 이를테면 이런 거다.)

----------------------------------------------------------------------------------------

90점대

속도가 빠르다. - 적응하는 것이나, 상황을 이해하는 것, 일을 진행하는 것, 판단하는 것.

창조적이다 - 기술을 제외한 거의 모든 유형의 기획 . 새로운 컨텐츠,  특히 이미지에 강하다.

자기 주장이 강하다 - 경청과 양보는 내 주장을 완벽하게 만들고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쉽게 싫증을 낸다. - 아무리 큰 프로젝트도 1주일만 손 놓으면 금시초문이 된다. 싫은 건 뒤도 안돌아본다.

다양성을 선호한다. - 한가지 일만 하면 지루해한다. 적어도 너댓가지는 늘어놓고 일한다.

큰 그림을 중시한다 - 큰 것을 좋아하는 게 본능이고, 작은 것을 잘 챙기는 건 훈련에 의해서였다.

혁신적이다. - 대단히 그렇다. 틀에 맞추는 걸 대부분 싫어한다.

옳은 말을 잘 한다 - 가장 큰 약점. 상대와 자리를 봐가며 말을 가릴 줄 모른다. 말수를 줄여야 한다.

리더이다 - 타인의 통제를 받는 것을 싫어한다. 거느리는 자리에 늘 있었고 또 좋아하지만, 매우 조심스럽다.

높은 수준을 추구한다 - 상대방에게 요구하고, 스스로에게도 그렇다. 자존심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무리한다.

정리정돈된 것을 좋아한다 -  안돼있으면 화가 난다. 천성은 정리가 잘 안되는 스타일. 후천적 요인이 강하다.

 

80점대

결과지향적이다 -왜 이걸 해야하며, 했을 경우 어떤 결과가 나올지 먼저 생각한다.

경쟁적이다 - 그냥 뛰는 것보다 경쟁자를 옆에 둘 때 더 빨리 뛰었다.

거침없이 말한다 - 둘이 있을 땐 조심한다.  대중앞에선 가리거나 돌리는게 별로 없다. 직선적이고 단호하다.

추진력이 강하다 - 단 오래가지 않는다. 한두달안에 끝나는 일에서 추진력은 스스로도 인정한다.

가능성을 창출한다. - 어떤 경우에도 대안을 만들려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 그럴 듯한 돌파구가 만들어진다.

의지가 강하다 - 담배 끊고 살 뺄 때 보니까 의지가 강하다. 꼭 해야 한다면, 그리고 가능하다 판단하면 한다.

에너지가 넘친다 - 탄력받으면 에너지가 충만하지만,  보통때 활달한 건 아니다.

유머감각이 있다. - 웃기는 생각을 많이 하고 애드립에 강하다. 유행어와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많다.

호기심이 많다 - 어제까지 관심밖의 일도 오늘 나의 화두가 될 수 있다. 꺼지지 않는 호기심의 불꽃

 

70점대

야심적이다.- 젊었을 땐 야심 그 자체였지만, 철이 든 후로는 많이 줄었다. 그래도 가끔 비집고 나온다.

책임감이 강하다 - 마지막 책임은 내가 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이 힘들었다. 책임없을 때 더 잘한다.

설득력이 있다. - 현란한 사례와 직선적인 말투,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서 설득해버린다

자발적이다. - 주로 내가 결정하기 때문에 늘 자발적이다.

자신에 차있다 - 40이전까지는 자신감 그 자체였지만, 이제는 자신 그 자체가 무상하다. 

갈등을 싫어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겠나. 기분나쁘고 찜찜하다. 하지만 불가피하다면 감수하는 편.

모든 가능성을 고려한다 - 다양한 측면을 보려고 노력한다. 기획자의 기본자세. 나쁜 건 안보려는 나쁜 습성.

 

60점대

용기가 있다 - 두려움이 별로 없다. 눈이 작아서 그렇단다. 특히 자신있을 땐 물불을 안가린다.

독립적이다 - 혼자 있는 걸 좋아하지만, 일할 땐 옆에 아무라도 있기를 바란다.

매력적이다 -사람을 사로잡는 능력이야 하늘이 주시는 거지만 노력으로 가능하다면 얼마든지.

잘 웃는다 - 웃는 것도 좋아하고 웃기는 것도 좋다. 무겁고 점잖은 것보다 유쾌한게 훨씬 좋다.

 

50점대

파티같이 재미있는 삶을 원한다. - 친한 사람들과는 그렇지만 모르는 이들과 만나는 것 별로 재미없다.

감정이입을 잘한다. - 감성적으로는 익숙하지만, 결코 함몰되지 않는다. 그래서 냉정하다고 한다.

주의깊다 - 후천적으로 필요에 의해 가끔 그렇다. 천성적으로 사려깊은 성격이 못된다. 쉽게 생각한다.

지식이 많다 - 넓고 얇게 아는 수준.  독서량에 비해 담겨있는 게 적다.  이해력 높고 기억력 아주 낮다.

 

40점대

충동적이다 - 순간의 감정에 예민하다. 하지만 충동으로 사고를 치는 일은 거의 없다.

친절하다 - 무뚝뚝하고 시큰둥하진 않지만 살갑게 친절하진 않다. 친절할 때는 이유가 있다. 

유쾌하다 -  유쾌하고 싶지만 그럴 일이 많지 않다. 매사에 유쾌하려고 노력하는 낙천주의자는 아니다.

다른 사람의 욕구를 잘 파악한다 - 항상 염두에 두지만 정확히는 모른다. 빗맞을 때가 많다.

긍정적이다 - 부정적이진 않다. 사안에 따라 매우 긍정적일 때가 많지만, 요즘들어 섣부른 긍정은 삼가한다.

협력적이다 - 내가 한발 빼면 협력적으로 된다. 앞장서면 거의 독주한다. 권한위임도 잘하고 뺏기도 잘한다.

 

30점대

의사소통을 잘한다 - 내 생각이 앞서고 주의주장이 강하기 때문에 좋은 의사소통을 못한다.

사람을 좋아한다 - 두루 편하게 대하지만 친한 사람은 몇 명 없다.

중재자이다 - 중재라기 보다 판결하는 편이다. 싸우지 말고 내뜻에 따르라는 주의.

멘토역할을 잘한다 - 멘토보다 직접 지시 하는 걸 편하게 생각한다. 받는 사람도 그렇다고 한다.

객관적이다 - 내 이해와 무관할 경우 매우 객관적. 보통은 자기 중심적. 나이들면서 객관에 가까와지고 있다.

지적이다 - 반대가 감성적인 거라면 나는 감성주의자. 지적 권위를 인정치 않는 편. 논리 따지는 걸 싫어 한다

행동을 주저한다 -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별로 망서리지 않는다. 뭉개는 스타일을 아주 싫어한다.

완벽주의이다 - 후천적으로 그렇게 됐다. 하기 싫은데 일 욕심때문에, 결과위주 사고때문에 그리 된다.

 

20점대

신뢰를 쌓는다 - 한때는 가장 큰 미덕이라 생각했다가 큰 코 다쳤다. 신뢰는 함부로 얘기할 덕목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한다 - 노력과 필요에 의해 하는 편이다. 솔직히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모른다.

까다롭지 않다 -난 아닌데 딴 사람은 99% 그렇다 한다. 먹고 자는 것, 규칙적 소음, 청소상태에 유난스럽다.

보수적이다 - 대개의 경우 진보적이다. 요즘 노통때문에 보수가 되고 있는 걸 보면 대단한 진보는 아닌 듯.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 곧바로 표정에 나타난다. 별로 숨기지 않는다. 사람들이 매우 불편해한다.

협상을 잘한다 - 그냥 후하게 주거나 확실하게 요구하는 편. 밀고 당기기 보다 화끈하게 정리하는게 편하다.

체계적이다 - 일은 그렇게 하는데, 천성적으로 서투르고 골치아파 한다. 내키지 않고 복잡하면 먼산을 본다.

꼼꼼하고 정확하다 - 아무도 없으면 그렇게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 역할을 맡기려고 한다.

일관성이 있다 -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사고가 경박하고 변덕이 심해서 자주 놓치곤 한다.

생각이나 행동이 잘 정리되어 있다 - 그러고 싶다. 노력하면 가능하지만 천성은 아니다.

 

10점대

규율을 중히 여긴다. - 전혀 규범적이지 않다. 속박이라고 느끼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잘 참는다 - 못 참는다. 아니꼬운 경우, 아무 생각없는 사람,  나를 통제하는 사람을 특히 못 견뎌 한다.

소극적이다 - 어떤 일이든 닥치면 적극적으로 처리한다. 우물쭈물 뒤로 빼지 않는다. 사양지심 없다.

규칙을 잘 따른다 - 어쩔 수 없을 경우만 지키는 편. 그 대신 내가 세운 규칙은 잘 지킨다. 법 없이도 산다.

충성심이 강하다 - 조직에 대해선 그렇지만, 개인은 아니다. 성심껏 한다고 해도 윗사람들과 잘 안맞는다. 

세부지향적이다  - 각론에 약하고 총론에 강하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05-01-10 2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