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보슬비 > 카바넬의<비너스의 탄생>



19세기 프랑스의 화가 카바넬이 그린 <비너스의 탄생>은 정말 말 그대로 환상이다. 여기서의 비너스는 한껏 의식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당신을 홀리려는 관능적인 자세이며, 당신만을 위한 몸짓이기도 하다. 저 살결에 손이 닿으면 금세라도 사르르 녹아내릴 것 같지 않은가, 부드러운 저 머리카락을 슬쩍 잡아 당겨 보고 싶다. 페미니스트의 시각으로 보자면 소유욕을 자극하는 이런 그림이 왕왕 여인을 소유물로 전락 시킨다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아무리 실눈을 뜨고 보더라도 이 그림이 아름다운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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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보슬비 > 르동의 <비너스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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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보슬비 > 브그로의<비너스의 탄생



부그로의 비너스는 상당히 몸매를 과시하고 있는 자세이다. 역시 여성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데에는 몸매가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것이던가. 이 그림이 걸린 오르세미술관에서 이 그림은 남자들로부터 가장 오래, 뜨거운 시선을 받는 그림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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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장 또라이 아냐? 왜 나한테 성질은 내구그래. 아주 펄펄 뛰더구만.>  오늘도 김이사는 책상위에 결재판을 획 던지고 주섬주섬 담배를 챙긴다. 또 한소리 듣고 나온 모양이다. 우리 사장님과 김이사는 천적으로 소문났다. 다른 일로 웃다가도 서로 얼굴만 마주치면 안색이 싹 변한다. 상사인 사장님이 김이사를 일방적으로 깨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맷집이 좋아진 김이사는 곧잘 사장님을 꼴깍 넘어가게 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 오늘도 보아하니 김이사의 케이오승인 듯하다. 흡연실로 걸어가는 발걸음이 한결 사뿐거린다.

 그러면서도 김이사를 선뜻 자르지 못하는 이유는 급한 상황에서 위기돌파능력이 출중하기 때문이다. 평소엔 눈에 거슬리는 짓만 하는 인간이 위기를 맞으면 딴 사람처럼 변한다. 그 능력때문에 <저 웬수놈을 자르지도 못하고....>하며 사장님은 끙끙 앓고 있는 것이다.

 김이사 때문에 우리 사장님은 일주일에 두번, 한달이면 최소한 열흘은 침팬지가 된다. 인간이 화를 낼 경우 지능지수는 60, 즉 침팬지 수준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직원만 5백여명이나 되는 우리 회사는 한달에 열흘씩 원숭이가 사장님이다. 모든 회의의 상석에는 화가 잔뜩 난 침팬지가 앉아있는 꼴이다. 상황인식이나 판단능력은 고사하고 회의 자체가 성립이 안된다.  

 해악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핑계김에 사장님은 그날 저녁 진탕 술을 퍼마신다. 이런저런 골칫거리에 꼴도 보기싫은 부하까지 술 먹기에 더 좋은 안주는 없다. <세상에 그런 개자식이 어디 있느냐?>며 비분강개한다. <그럼요, 요즘 애들 다 그렇죠 뭐. 저도 애들땜에 돌겠다니까요> 맞장구치는 마담과 늦게 까지 술잔을 부딪힌 사장님. 다음날 출근은 늦어질수 밖에 없다. 머리통안에서 폭탄이 터진 것 같다. 마누라는 아침부터 암상을 떤다. <저 여편네는 뭣때문에 저러는거야?> 나오면서 지갑을 보니 어제 술값이 장난아니다.

 오늘 아침은 유난히 힘들다. 어깨도 아프로 눈자위도 시큰시큰하다. 갑자기 우울해진다. 아무 낙도 없고 의욕도 없다. 요즘들어 이런 현상이 부쩍 심해졌다. 이렇게 우울하고 슬퍼질 때 아이큐는 돌고래 수준인 70으로 떨어진다. 원숭이나 돌고래나 엇비슷한 수준이다.

 사장을 열받게 하거나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어떤 행위도 회사에는 치명적이다. 매일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 제아무리 대단한 회사도 일년을 견디기 어렵다. 생각해보라. 임원실에 들어가면 죄다 돌고래와 원숭이 천지니 무슨 경영이 가능하겠나. 게다가 이들은 바나나와 꽁치를 주면 좋아라하는 동물들과는 다르다.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지시하고 결정하니 더 큰 문제다. 이런 짐승들로부터 지시를 받고 싶으면 사장을 부지런히 화나거나 슬퍼하게 만들면 된다. 경쟁회사를 무너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도 그 회사 사장을 매일 열받게 하는 것이다. 

 사장을 굳이 두둔할 생각은 없다. 원래 성격이 그렇거나 자기 관리가 칠칠치 못한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부하의 실수때문에 사장이 원숭이가 됐다면 일파만파로 그 피해는 전사적으로 확산된다. 따라서 그런 치명적 해사 행위를 저지르고도 <별 거 아닌데 확 돌더구만>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놈은 가만 두면 안된다. 옆에서 따끔하게 얘기해줘야 한다.

 난데없는 재난 즉 사장이 동물로 변하고 술집 가서 법인카드로 몇백만원씩 긋는 일이 발생한다면, 지체없이 코치를 불러야야 한다.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마어마한 코스트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코치는 분노와 슬픔의 근본 원인을 찾도록 도와준다. 부하에 대한 불신의 원인, 신경과민이 된 원인 등을 따져본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도 자분자분 짚어본다. 감정을 가라 앉히려고 애쓰지 말고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생각하게 한다.  세시간 정도면 웅녀 프로젝트(곰이 사람으로 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프로젝트)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동물의 왕국이었던 회사는 다시 인간승리의 현장이 되고 임원실은 다시 평정을 되찾는다. 

 세상도 민심도 흉흉하다. 소비심리는 돌아온다고 하지만 아직도 피부에 와닿는 경제는 엄동설한이다. 연말 대목에서 낭패를 본 많은 사장님들이 구정을 앞두고 전전긍긍한다. 이럴 때 잘못 건드리면 쌓였던 울분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오기 십상이다. 어쩔 수 없이 건드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병주고 약주는 것이긴 하지만) 코치 전화번호라도 따놓고 시작하는게 현명하다. 한 회사의 사장도 이럴진대 하물며 나라를 경영하는 양반들은 어찌할 것인가. 가끔 심기불편, 진노, 대노, 격앙 같은 표현이 신문에 오르내릴 때마다 불경스럽게도 침팬지와 돌고래 생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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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직장을 걷어치우고 작은 연구실 겸 서재를 열었다. 오래된 오피스텔의 미로같은 통로를 헤매다 조그만 문패를 발견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제법 공부하는 이의 방이라는 느낌을 풍긴다. 창밖으론 영동대교와 분당 가는 길이 불빛의 물결처럼 보인다. 하얀 벽, 소박한 나무 서가, 촘촘하게 꽂혀있는 보고서들은 그의 전직을 짐작케한다. 이 방엔 어떤 벽시계가 어울릴까 생각했다. 선물로 벽시계를 사주마 했던 것이다.

 그 친구와 거리로 나왔다. 신문사에 다니는 다른 친구와 셋이 만나기로 했었다. 밤8시가 넘었는데 이제 출발한다고 전화가 왔다. 강남역 근처 맥주집에 둘러앉았다. 오랜만이다. 우리는 대학동기들이다. 대학2학년 때 문학회라는 써클에서 만나 스무서너해 동안 챙겨가며 살았다. 여기서 챙겼다는 뜻은 이렇다. 가끔 전화해서 안부(생사)를 확인하고, 아주 가끔 만나서 서너 시간 두서없이 얘기하는 정도. 

 어제도 비슷했다. 집안에서 건물을 하나 지었다던데 임대가 어찌됐느냐, 역시 주식은 가치투자더라, 분배는 버블로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엔 대여섯개 우량주만 남을 거야. VIP투자펀드가 잘한다던데, 그러다 주제가 또 바뀐다. 네가 다니는 신문사 대주주가 누구라고, 벌써 애들이 고등학교 올라 가잖아, 학벌이 인간을 낙인찍는 세상이야, 서울대 나와서 덕본 거 있냐.... 각자 맥주 한두잔을 비우고 거나해져서 앞뒤없이 쏟아놓은 화제가 족히 한 가마는 넘는 것 같았다. 예전같으면 짜증났을 법한 이런 분위기에 나는 취하듯 젖어든다. 외려 마음이 놓인다. 친구들도 생활도인(道人)이 돼가고 있나보다.

 한 친구는 기자로, 사장님으로, 공무원으로 물방개 튀듯 돌아다니다 백수로 자리를 굳혔고, 연구소를 낸 친구는 미국에서 박사를 따고 돌아와 환경관련 기관에서 쑥쑥 크다가 막판에는 모 위원회 높은 자리에 있었나 보다. 지금도 기자하는 친구는 박봉에 상노가다라고 항상 투덜대지만 놀랄만한 성실성으로 십수년째 그 일을 해오고 있다.

 그렇게 달리 살아온 우리 셋은 작년에 약속이나 한 듯, 방황과 번민, 질풍노도의 시대를 겪었다. 백수를 결행한 나는 사회로부터의 철저한 격리를 선언하고 방구석에 쳐박혀 도를 닦았다. 기자 친구는 느닷없이 일년 무급휴가를 내고 뉴질랜드로 날아가 석달 넘게 혼자 자취생활을 하고 돌아왔다. 그 이유를 아무도 모른다. 연구소 친구도 안달이 났다. 더이상 공무원 뒷바라지에 인생을 낭비하지 않겠노라 했다. 서둘러 공부에 정진해서 재야 학자의 길이라도 걷겠다고 했다. 마누라들은 도대체 남자들이 왜 이러는거냐고 초조해했다.

 대학 다닐 때 생각하면 그들의 방황은 엉뚱하고 우습다. 셋중에서 가장 가방 끈이 긴 연구소 친구는 스스로 얘기하길 <학교 다닐 때 자기가 가장 지진아였다>고 한다. 일어강독을 할 때도 제일 버벅거려 얼마나 쪽팔렸는지 모른다고 했다. 졸업후 노동운동을 하겠다며 중장비를 몰기도 했었다. 공부하고 거리가 먼쪽으로 돌았던 친구는 지금 공부에 한 목숨 걸겠노라 한다. 공부 잘했던 내게 <공부하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기자 친구는 열혈남아 소노모노(그 자체)였다. 단도직입으로 말하고(말재주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저없이 행동했다. 우물쭈물하는 꼴을 참아 넘기지 않는 과격파(?)였다. 공부를 작파하고 운동에 매진하는 바람에 그는 학사제적을 당했고, 백골부대에 끌려가는 신세가 됐다. 제대후 우여곡절끝에 복학한 친구는 장학금까지 받아가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더니, 정말 어울리지 않게 기자가 됐다. 파란만장한 혁명가로 살 것이 확실했던 친구는 자기가 벌어 집을 가장 먼저 장만했고, 조신한 샐러리맨으로 지금도 하루 열두시간의 노동을 반복하고 있다.

 가장 소시민적이고 속물적이며 생각이 짧은 아이였던 나는 어처구니 없게도 다른 사람들을 돕겠다며 코치의 길을 가고 있다. 툭하면 만나는 이들에게 욕심을 버리라 하고,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라는 허깨비같은 말만 하고 다닌다. 이렇게 세 명은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전혀 생각지 못한 일들을 하며 살아왔다. 공통점이라고는 작년에 우연히 동시 다발로 고민잔치를 벌였다는 것과, 세 명 다 노무현을 찍었지만 지금은 모두 후회막급이라는 정도.

 생각도 다르고 관심거리도 제각각일 망정, 나는 반갑고 좋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사실, 결코 나쁜 짓 안하고 자신과 세상을 위해 뭔가를 꿍꿍거리며 살고 있다는 소박한 사실이 나를 안심하게 한다. 이 땅에서 열심히 살았던 마흔 중반의 남자 셋이 오랜만에 얼굴보고 확인한 진실이다. 다음날 아침 같은 시간에 나는 침대에서, 기자는 지하철에서, 연구소는 책상에 팔을 얹고 코를 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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