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직장을 걷어치우고 작은 연구실 겸 서재를 열었다. 오래된 오피스텔의 미로같은 통로를 헤매다 조그만 문패를 발견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제법 공부하는 이의 방이라는 느낌을 풍긴다. 창밖으론 영동대교와 분당 가는 길이 불빛의 물결처럼 보인다. 하얀 벽, 소박한 나무 서가, 촘촘하게 꽂혀있는 보고서들은 그의 전직을 짐작케한다. 이 방엔 어떤 벽시계가 어울릴까 생각했다. 선물로 벽시계를 사주마 했던 것이다.

 그 친구와 거리로 나왔다. 신문사에 다니는 다른 친구와 셋이 만나기로 했었다. 밤8시가 넘었는데 이제 출발한다고 전화가 왔다. 강남역 근처 맥주집에 둘러앉았다. 오랜만이다. 우리는 대학동기들이다. 대학2학년 때 문학회라는 써클에서 만나 스무서너해 동안 챙겨가며 살았다. 여기서 챙겼다는 뜻은 이렇다. 가끔 전화해서 안부(생사)를 확인하고, 아주 가끔 만나서 서너 시간 두서없이 얘기하는 정도. 

 어제도 비슷했다. 집안에서 건물을 하나 지었다던데 임대가 어찌됐느냐, 역시 주식은 가치투자더라, 분배는 버블로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엔 대여섯개 우량주만 남을 거야. VIP투자펀드가 잘한다던데, 그러다 주제가 또 바뀐다. 네가 다니는 신문사 대주주가 누구라고, 벌써 애들이 고등학교 올라 가잖아, 학벌이 인간을 낙인찍는 세상이야, 서울대 나와서 덕본 거 있냐.... 각자 맥주 한두잔을 비우고 거나해져서 앞뒤없이 쏟아놓은 화제가 족히 한 가마는 넘는 것 같았다. 예전같으면 짜증났을 법한 이런 분위기에 나는 취하듯 젖어든다. 외려 마음이 놓인다. 친구들도 생활도인(道人)이 돼가고 있나보다.

 한 친구는 기자로, 사장님으로, 공무원으로 물방개 튀듯 돌아다니다 백수로 자리를 굳혔고, 연구소를 낸 친구는 미국에서 박사를 따고 돌아와 환경관련 기관에서 쑥쑥 크다가 막판에는 모 위원회 높은 자리에 있었나 보다. 지금도 기자하는 친구는 박봉에 상노가다라고 항상 투덜대지만 놀랄만한 성실성으로 십수년째 그 일을 해오고 있다.

 그렇게 달리 살아온 우리 셋은 작년에 약속이나 한 듯, 방황과 번민, 질풍노도의 시대를 겪었다. 백수를 결행한 나는 사회로부터의 철저한 격리를 선언하고 방구석에 쳐박혀 도를 닦았다. 기자 친구는 느닷없이 일년 무급휴가를 내고 뉴질랜드로 날아가 석달 넘게 혼자 자취생활을 하고 돌아왔다. 그 이유를 아무도 모른다. 연구소 친구도 안달이 났다. 더이상 공무원 뒷바라지에 인생을 낭비하지 않겠노라 했다. 서둘러 공부에 정진해서 재야 학자의 길이라도 걷겠다고 했다. 마누라들은 도대체 남자들이 왜 이러는거냐고 초조해했다.

 대학 다닐 때 생각하면 그들의 방황은 엉뚱하고 우습다. 셋중에서 가장 가방 끈이 긴 연구소 친구는 스스로 얘기하길 <학교 다닐 때 자기가 가장 지진아였다>고 한다. 일어강독을 할 때도 제일 버벅거려 얼마나 쪽팔렸는지 모른다고 했다. 졸업후 노동운동을 하겠다며 중장비를 몰기도 했었다. 공부하고 거리가 먼쪽으로 돌았던 친구는 지금 공부에 한 목숨 걸겠노라 한다. 공부 잘했던 내게 <공부하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기자 친구는 열혈남아 소노모노(그 자체)였다. 단도직입으로 말하고(말재주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저없이 행동했다. 우물쭈물하는 꼴을 참아 넘기지 않는 과격파(?)였다. 공부를 작파하고 운동에 매진하는 바람에 그는 학사제적을 당했고, 백골부대에 끌려가는 신세가 됐다. 제대후 우여곡절끝에 복학한 친구는 장학금까지 받아가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더니, 정말 어울리지 않게 기자가 됐다. 파란만장한 혁명가로 살 것이 확실했던 친구는 자기가 벌어 집을 가장 먼저 장만했고, 조신한 샐러리맨으로 지금도 하루 열두시간의 노동을 반복하고 있다.

 가장 소시민적이고 속물적이며 생각이 짧은 아이였던 나는 어처구니 없게도 다른 사람들을 돕겠다며 코치의 길을 가고 있다. 툭하면 만나는 이들에게 욕심을 버리라 하고,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라는 허깨비같은 말만 하고 다닌다. 이렇게 세 명은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전혀 생각지 못한 일들을 하며 살아왔다. 공통점이라고는 작년에 우연히 동시 다발로 고민잔치를 벌였다는 것과, 세 명 다 노무현을 찍었지만 지금은 모두 후회막급이라는 정도.

 생각도 다르고 관심거리도 제각각일 망정, 나는 반갑고 좋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사실, 결코 나쁜 짓 안하고 자신과 세상을 위해 뭔가를 꿍꿍거리며 살고 있다는 소박한 사실이 나를 안심하게 한다. 이 땅에서 열심히 살았던 마흔 중반의 남자 셋이 오랜만에 얼굴보고 확인한 진실이다. 다음날 아침 같은 시간에 나는 침대에서, 기자는 지하철에서, 연구소는 책상에 팔을 얹고 코를 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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