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장 또라이 아냐? 왜 나한테 성질은 내구그래. 아주 펄펄 뛰더구만.> 오늘도 김이사는 책상위에 결재판을 획 던지고 주섬주섬 담배를 챙긴다. 또 한소리 듣고 나온 모양이다. 우리 사장님과 김이사는 천적으로 소문났다. 다른 일로 웃다가도 서로 얼굴만 마주치면 안색이 싹 변한다. 상사인 사장님이 김이사를 일방적으로 깨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맷집이 좋아진 김이사는 곧잘 사장님을 꼴깍 넘어가게 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 오늘도 보아하니 김이사의 케이오승인 듯하다. 흡연실로 걸어가는 발걸음이 한결 사뿐거린다.
그러면서도 김이사를 선뜻 자르지 못하는 이유는 급한 상황에서 위기돌파능력이 출중하기 때문이다. 평소엔 눈에 거슬리는 짓만 하는 인간이 위기를 맞으면 딴 사람처럼 변한다. 그 능력때문에 <저 웬수놈을 자르지도 못하고....>하며 사장님은 끙끙 앓고 있는 것이다.
김이사 때문에 우리 사장님은 일주일에 두번, 한달이면 최소한 열흘은 침팬지가 된다. 인간이 화를 낼 경우 지능지수는 60, 즉 침팬지 수준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직원만 5백여명이나 되는 우리 회사는 한달에 열흘씩 원숭이가 사장님이다. 모든 회의의 상석에는 화가 잔뜩 난 침팬지가 앉아있는 꼴이다. 상황인식이나 판단능력은 고사하고 회의 자체가 성립이 안된다.
해악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핑계김에 사장님은 그날 저녁 진탕 술을 퍼마신다. 이런저런 골칫거리에 꼴도 보기싫은 부하까지 술 먹기에 더 좋은 안주는 없다. <세상에 그런 개자식이 어디 있느냐?>며 비분강개한다. <그럼요, 요즘 애들 다 그렇죠 뭐. 저도 애들땜에 돌겠다니까요> 맞장구치는 마담과 늦게 까지 술잔을 부딪힌 사장님. 다음날 출근은 늦어질수 밖에 없다. 머리통안에서 폭탄이 터진 것 같다. 마누라는 아침부터 암상을 떤다. <저 여편네는 뭣때문에 저러는거야?> 나오면서 지갑을 보니 어제 술값이 장난아니다.
오늘 아침은 유난히 힘들다. 어깨도 아프로 눈자위도 시큰시큰하다. 갑자기 우울해진다. 아무 낙도 없고 의욕도 없다. 요즘들어 이런 현상이 부쩍 심해졌다. 이렇게 우울하고 슬퍼질 때 아이큐는 돌고래 수준인 70으로 떨어진다. 원숭이나 돌고래나 엇비슷한 수준이다.
사장을 열받게 하거나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어떤 행위도 회사에는 치명적이다. 매일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 제아무리 대단한 회사도 일년을 견디기 어렵다. 생각해보라. 임원실에 들어가면 죄다 돌고래와 원숭이 천지니 무슨 경영이 가능하겠나. 게다가 이들은 바나나와 꽁치를 주면 좋아라하는 동물들과는 다르다.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지시하고 결정하니 더 큰 문제다. 이런 짐승들로부터 지시를 받고 싶으면 사장을 부지런히 화나거나 슬퍼하게 만들면 된다. 경쟁회사를 무너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도 그 회사 사장을 매일 열받게 하는 것이다.
사장을 굳이 두둔할 생각은 없다. 원래 성격이 그렇거나 자기 관리가 칠칠치 못한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부하의 실수때문에 사장이 원숭이가 됐다면 일파만파로 그 피해는 전사적으로 확산된다. 따라서 그런 치명적 해사 행위를 저지르고도 <별 거 아닌데 확 돌더구만>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놈은 가만 두면 안된다. 옆에서 따끔하게 얘기해줘야 한다.
난데없는 재난 즉 사장이 동물로 변하고 술집 가서 법인카드로 몇백만원씩 긋는 일이 발생한다면, 지체없이 코치를 불러야야 한다.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마어마한 코스트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코치는 분노와 슬픔의 근본 원인을 찾도록 도와준다. 부하에 대한 불신의 원인, 신경과민이 된 원인 등을 따져본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도 자분자분 짚어본다. 감정을 가라 앉히려고 애쓰지 말고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생각하게 한다. 세시간 정도면 웅녀 프로젝트(곰이 사람으로 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프로젝트)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동물의 왕국이었던 회사는 다시 인간승리의 현장이 되고 임원실은 다시 평정을 되찾는다.
세상도 민심도 흉흉하다. 소비심리는 돌아온다고 하지만 아직도 피부에 와닿는 경제는 엄동설한이다. 연말 대목에서 낭패를 본 많은 사장님들이 구정을 앞두고 전전긍긍한다. 이럴 때 잘못 건드리면 쌓였던 울분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오기 십상이다. 어쩔 수 없이 건드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병주고 약주는 것이긴 하지만) 코치 전화번호라도 따놓고 시작하는게 현명하다. 한 회사의 사장도 이럴진대 하물며 나라를 경영하는 양반들은 어찌할 것인가. 가끔 심기불편, 진노, 대노, 격앙 같은 표현이 신문에 오르내릴 때마다 불경스럽게도 침팬지와 돌고래 생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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