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씨는 굴지의 대기업에서 교육부 일만  십여년을 해왔다. 그는 이미 상사나 동료들로부터 퇴직의 압력을 강하게 받고 있다. 그래서 작년부터 여러가지 교육을 받고 강사로 활동하고 있지만, 그다지 반응이 좋지 않아서 걱정이다. 이제 회사를 그만둘 때도 멀지 않았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B: 제가 커리어코칭 분야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쪽 훈련을 열심히 해볼 생각인데 사내에선 별로 기회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사외에서 하자니 시간도 그렇고, 유료 서비스는 더군다나 할 수 없어서 답답합니다. 당장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고, 퇴직준비는 해야하는데 걱정입니다.



C: 커리어 코칭으로 퇴직후를 준비하신다구요? 커리어 코칭에 대해 그렇게 관심을 갖게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B: 그동안 코칭 일반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가 얼마전 무슨 행사에서 커리어코칭 관련 세션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주 감동적이더군요. 내가 할 일이 저거다 싶었습니다. 그 후로 코치가 되면 커리어코칭을 해야겠다 결심했습니다.



C: 그랬군요. 커리어코칭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적이던가요? 커리어코칭의 기법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B: 자기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해서 능력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도록 자신감과 비전을 갖게 해주는 것이 커리어 코칭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날 들은 것이 전부라서 아직 기법에 대해선 설명할 수준이 못됩니다.



C: 지금 선생님은 가능성을 발견하고 실천하려는데 여러가지 걸림돌을 만났습니다. 만일 선생님께서 자신을 커리어코칭한다면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B: 글쎄요. 일단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게 준비하라는 조언을 먼저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커리어코치가 된 자신의 미래 모습을 떠올려보고 무엇을 준비해야하는지 생각하라고 하겠습니다.



C: 좋습니다. 말씀을 들어보니 퇴직압력이 상당한 것 같은데 퇴사하시려는게 자의입니까 아니면 타의에 의한 것입니까?



B: 저야 가능하다면 계속 있고 싶지만, 이왕 나가야 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젊었을 때 나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일을 새로 시작할 여유도 있을 것 같습니다. 회사 다니면서 어떤 일을 준비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C: 네. 선생님께서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스케줄은 어떤 것입니까?



B:  가능만 하다면 앞으로 2년 정도 안정적으로 준비할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지요. 그때까지 코치 경력도 쌓고 교육도 충분히 받고, 고객도 웬만큼 확보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일 겁니다. 그보다 더 좋은 건 사내에서 코칭프로그램을 만들어 코치로 근무하는 것이겠이만, 그 가능성은 희박할 것 같구요. 왜냐하면 그동안 제 고과도 썩 좋지 않고 아직 코칭에 대한 인식이 낮아서 제가 코칭을 하겠다는 얘기를 꺼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퇴사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C: 잘 알겠습니다. 유능한 커리어 코치가 되고 싶은데 교육이나 실습기회를 많이 갖고 싶은데 여건이 충분치 않다는 말씀이시군요. 비즈니스는 아무래도 교육. 실습을 충분히 하신 후에 생각하는게 순서상 맞는 것 같고 지금은 회사 규정상 유료코칭도 할 수 없다고 하니 나중에 생각해도 되겠지요?



B: 그렇습니다. 일단 교육. 실습을 많이 해야하는데 솔직히 어떻게 해야하는지 감이 안잡힙니다.



C: 커리어코칭 회사에 혹시 문의해보신 적 있나요? 아마 그쪽에선 선생님의 질문에 답해주실 만한 정보가 있을텐데. 그리고 주변에 전문코치로 활동하시려는 분들은 어떻게 실습과정을 밟고 있나요.



B: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교육 프로그램을 보긴 했습니다만 실습기회에 대해선 아직 문의하지 못했습니다. 코치지망생들의 경우 실습기회가 없어서 다들 골치라고 합니다. 분명히 수요는 있을텐데 어떻게 접근해야하는지 모르는 거겠지요.



C: 선생님께서 주로 타겟으로 생각하는 고객층은 어느쪽입니까? .



B: 아무래도 40대 직장인. 저와 비슷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겠지요. 커리어코칭에 대한 관심이나 필요성이 가장 큰 사람들이니까요?



C:  그들에게 손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봅시다. 선생님께서는 자기 커리어에 관한 상담을 누구한테 주로 하시나요? 상담의 효과는 있던가요?



B: 아무래도 친구 아니겠습니까? 서로 허물도 없고, 피차 비슷한 처지의 동병상련이니까 아무래도 얘기가 쉽겠지요. 효과는 별로 없습니다. 다들 처지도 다르고 남 신경쓸 여유는 없으니까 모여서 세상 탓하고 서로 힘내며 살자는 격려수준이 고작입니다.



C: 우선 친구분들부터 시작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그들이 효과있다고 생각하면 그들의 친구나 동료, 선후배를 소개해달라고 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십수명은 금방 되지 않겠습니까? 



B:  그 생각도 좋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직 많이 서툴러서 제대로 효과가 날까 모르겠습니다. 괜히 사람들 심란한데 화만 돋구는게 아닐까요? 좀 쑥스럽기도 하구요.



C: 과연 그럴까요? 만일 선생님의 친구 중에서 한 사람이 선생님께 커리어 코칭을 열심히 했는데 비록 효과가 없었다 칩시다. 그렇다고 선생님께서 화를 내시겠습니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호감을 갖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B: 맞습니다. 저같으면 제 얘기를 들어줘서 고마워하겠지요. 비록 코칭은 제대로 못해도 상대방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그 사람의 문제점을 함께 고민해주는 모습을 보인다면 상대방도 좋아할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면 40대를 어떻게 커리어코칭할 지 노하우도 차츰 쌓이겠군요. 처음부터 기막히게 잘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리입니다. 실수가 만발하더라도 겸손한 마음으로 대하면 용서하겠지요. 게다가 무료니까 좀 덜 미안할겁니다.



C: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밖의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B: 저와 비슷한 처지의 직장동료, 선후배들에게도 코칭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효과가 있다면 회사에 커리어코칭 프로그램을 운영해보자고 구체적으로 제안하려고 합니다. 실제 코칭사례가 있고 효과를 본 분들이 도와준다면 가능성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가장 이상적인 그림이 나올 수 있을텐데.



C: 혹시 이 방안을 추진하는데 장애가 될만한 건 없겠습니까?



B: 회사에서 워낙 찍힌 상태라 사내 프로그램으로 진입하는데는 적잖이 힘이 들겠지요. 그 이전에 충분히 검증의 기회를 많이 만들어서 성공사례를 꼭 만들겠습니다. 제가 유능한 코치가 되는 것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초라고 생각합니다. 제 코칭이 필요한 모든 분들에게 달려가 성심성의껏 코칭 실습을 해보겠습니다.



C: 오늘 코칭대화를 나눈 소감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B: 답은 의외로 가까운 데 있는데 먼 곳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커리어코칭으로 정했다곤 하지만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은 없었습니다. 코치 받기 전엔 모든 게 막연해서 어떻게 시작할 지 몰랐습니다. 일단 유능한 코치가 되는게 중요하다. 그러자면 교육과 실습을 많이 해야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실습은 가까운 친구나 동료들부터 시작하면 되겠다. 잘만 되면 사내코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전망이 섭니다.  내일 당장 전화해서 코칭 스케줄을 잡고 밤에는 부지런히 공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C: 선생님처럼 장래 커리어 문제로 고민하는 분이 못잡아도 50만명은 될겁니다. 어쩌면 그분들이 효과적인 코칭을 못받고 있기때문에 선생님의 미래 마켓은 대단히 유망하리라 믿습니다. 열심히 하신다면 존경받는 코치가 되실 게 분명하고 많은 기회가 생길 것으로 믿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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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tella.K > 세계의 거장 30인의 명작 모음







작가를 선택하시면 작가(30인)별로 30-40편의 명화를 설명과 함께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이 자료는 '청소년세계' www.youth.co.kr 에서 만든 것을 링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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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tella.K > 사랑하면 좋아요.^^



 




 




 




 




 




 




 




 




 




 




 




 




 


 Doug Hyde 의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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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tella.K > 70년대 한국 최고의 가수/김추자

출처: 노들나루





















































  제   목 : 70년대 김추자  
    올린이 : 박산   일   시 : 2004-11-23  
 





















김 추 자












요즈음 '때'지어 나오는 아이들 가수들인지 


이발소는 이발이 우선이듯이 가수는 노래가 우선이다

70년대 최고의 한국가수이자 가요인

김추자언니가 부르는 "꽃잎"입니다.




맹호부대로 월남갔다온 형이 가지고 온, '들고 다니는 전축' 이 너무 신기하고 거기다 LP판 걸어놓고 김추자가



부르는 "  월남에서 돌아온 쌔까만 김상사 ,,,"  하면 우린 그냥 그 폭발적인 목소리와, 그 큰 가슴과 숨이 막힐



같은 엉덩이에 힐끔거리며 (몽롱해저서) 가슴만 설레^었었지 , 신중현의 그 죽이는 electric 기타소리는



머리를 짧게 하고 있어도 긴 것 같았고 대마초를 피우지 않아도 눈빛이 쩌려 있을 수 있었지 ,



이 사람 박산 ! 자네 생각나는가 , 그때의 그 통키타가 , 쎄고비아기타 사서 그거 부서질때까지 두둘겨 댔던



자네가 아닌가 ,  송창식 윤형주 같은 그런 가수되겠다고 ,지금은 코드 다 잃어버려 치라고 해도 못 치겠지 만 .



언젠가 유심초노래를 듣고 저 정도는 우ㅡ리도 부를텐데 하는 자네 아니던가 .



 



그러니 풀 죽은 아랫도리마냥 '고전음악' 에만 빠지지 말고 자네가 살아온 김추자나 송창식을 생각해 보게나



가끔 나훈아노래도 좀 부르고 , 그 잘하는 목소리 지금 다 버렸겠지만 기타도 한번 다시 한번 처 보자꾸나 .



 



재래시장 허름한 선술집에서 먹는 순대국 한그릇에 대접에 따라먹는 막걸리 한사발이 , 호텔-바에서 넥타이메고 다리 꼬고먹는 위스키보다 더 맛있는 이유는,  혀가 돌아서 아무리 근본에 멀리가 있어도 죽을때는 '베옷'입고 가는 '조선사람'아닌가.



첩질하고 10년만에 집에 돌아왔던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도 죽을 때까지 입(口)만 살았을 뿐, 그래도 조강지처라고 그 구박을 감수하고 역시 ,'베옷' 한벌 지어 입으시고 가셨다네 .



그래도 '자네나 나'는 그런 <특정범죄가중처벌혐의(?)>는 아직까지는 , 저지르지 않지 않았는가 (혹여 잘 모르겠지만),  



 



이 겨울 너무 많은 술자시지(자네에게 이소리는 든기 싫은 말이겠지만) 말고 운동  열심히 하시고 올해는 나한테도 망년회 할  시간이나 주시게나 , 작년처럼 , 바쁘지도 않은 사람이 바쁘다고 하시지 말고 ,



이 노래, 자네 블로그에 올리는거지 ,지난번 김성환이 노래 , '술아 술아' 올리라고 했더니 금방 지워 버렸던데 ,



그러지 마시게나 ,



내가 있는 소격동-삼청동길, 창문밖-은행잎이 어제 오늘 몽창 다 떨어저 버렸구만 , '김추자의 꽃잎'도 떨어진지 오래지만 .



뭐 다 그런거 아닌가 ,   초겨울 소격동하 2004 / 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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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11-26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효자님께서도 김추자를 좋아하시는군요.^^

2004-11-26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깝지 않은 윗 연배에게 안부전화를 걸어 점심 약속을 잡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난 좀처럼 그런 선행을 실천하지 못한다. 선배나 어른들에게 참 데면데면한 아랫사람이다. 웬만해선 결코 곁을 내드리지 않는 쌀쌀맞은 후배에 분명하다. 그러면서 바라기는 우라지게 바란다. 반갑고도 기특하지 않은가. 간혹 불측한 의도를 가진 친구들이 속내를 드러내긴 해도 그게 두려워 만남의 기쁨을 주저하진 않는다.  


테헤란로 길바닥에서 이십분쯤 기다렸다.(그래도 기분 좋다.) 한낮이지만 하필 서있겠다고 한 좌표가 응달이라 공기가 수월찮게 냉냉하다. (하지만 냉장고 안이라도 상관없다.) 조금있으면 도착한다던 친구가 오지 않는다. 십오분만에 문자가 왔다. 죄송한데 오분만 더 기다려주십사. (O.K. 얼마든지.) 그때부터 아예 가방을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시간을 때운다. <지나가는 레이디 흘끔거리기.> 킬링타임의 기본 초식이다. 음... 시커먼 남자들만 떼 지어 걸어 간다. 그렇다면 다음은 <건물 구조 분석하기.> 예전엔 없었던 내공인데 올해 집안 일 때문에 저절로 눈길이 간다. 택시를 타도 지나치는 건물들이 예사롭지 않다.... 역시 화강석 물갈기는 금방 때가 타는군. 처음만 반짝하지 원..... 스텐레스 판넬도 배수처리 안해주니까 눈뜨고 못봐주겠네. ...어라 저 유리창은 무슨 색깔이지? 못보던 건데. 25밀리 블루 복창이 저건가? 


<형님. 저 왔습니다. 너무 오래~> < 어 그래. 오랜만인데. 안변했네. 그대로군.> <와 살 많이 빼셨는데요. 바람불면 날아가겠어요.><허 이사람이. 가세. 밥 먹자구.>  실로 3년반만에 마주 앉아 5천5백원자리 치즈돈까스 모듬 정식 세트 메뉴 A라는 긴 이름의 점심을 두 개 주문했다.


<예전에 TEPS하실 때 말입니다. 그때 뒤로 학원 하나 차리셨으면 지금 돈방석에 앉으셨을 텐데. 곁에서 왔다갔다하던 애들이 지금 장난 아니랍니다. 영어시장이 그때보다 열배는 커졌잖아요.> 그러면서 누구누구 이름을 댄다. 워낙 이름 외우는데 천치라 누군지 가물가물하다. 씩 웃으며 말했다. <왜? 배아프냐?> <그럼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참.><그 친구들이야 피라미들이고. 정말 웃기는 사람들은 따로 있잖아. 시사어쩌구하는 학원 회장하고, 파고다 저쩌구하는 학원 회장님네 말야. 그 양반들 강남에 삐까번쩍하는 빌딩 올리고 지금도 떼돈을 긁어모으고 있지? 근데 30~40년동안 내내 수강료를 욹어먹었는데 지금도 토플평균이 세계에서 꼴찌라면 솔직히 책임지고 배째야 되는거 아닌가. 언젠가 두 양반중에 하나가 자서전 따위를 내면서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산 증인>이라나 뭐라나 주접을 떨어놓은 걸 보니까 뭐 이런 것들이 다 있나 싶더군.>


당시엔 사람들과 존경과 믿음을 나누는 일도 주위에 널리고 쌨는데, 하필이면 교육이라는 미명아래 고작 눈속임으로 치부하는 일을 업으로 삼을까. TEPS를 시작했다가 재빨리 손을 턴 것도 그 도적질에 한 몫 끼겠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야. 지금 내게 다시 그런 기회가 온다한들 결과는 마찬가지가 될 거라고 장담하네.


어쩌자고 요새 입만 벌리면 훌륭한 말씀만 늘어놓으실까. 뒷감당이나 하실 수 있겠소? 그 친구와 헤어지면서 속에선 이런 질문들이 쏟아졌다. 한편에선 그래, 말이 씨가 된다하니 부지런히 파종하렴. 나중에 좋은 씨에서 좋은 넝쿨이 나와 내 발목을 꽉 붙들어매게. 이런 말도 들렸다. 에잇 모르겠다. 하지만 뭐 틀린 얘긴 아니잖아.


부랴부랴 이번엔 후배 부친상을 조문하러 병원으로 달려갔다. 요즘 장안 최고의 주가를 자랑하는 XX월드의 설립자이며 얼마전까지 최대주주였던 친구다. 나도 그 덕분에 그 회사 주식을 꽤 많이 갖고 있었다. 일년 좀 더 됐나보다. 이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형님. 긴히 드릴 말씀이...>< 뭔데. 회사 망했냐?> 워낙 벤처들이 막가던 시절이라 에구 또 하나 접는구만 그렇게 지레 포기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 지금 누적부채가 40억에...><그래 그래 그건 아는 얘기고. 내가 좀 바쁘거든. 그래서 어쩌라구?> <예. 그게 주식을 몽땅 인수하겠다는 작자가 나타나서 형님께 매각의사를...>< 뭐 뭐라구? 너 지금 어디야. 의사는 무슨 의사? 빨리 가져가시라구해.><그럼 그런 줄 알고 처리하겠습니다.><야 고맙다. 절이라도 할 판이다. 어이구 이뻐. 술 한잔 사께.>


억수같이 비 오던 날. 우산 받고 뛰어가 굽신거리며 넘긴 주식이 한달후에 거짓말 안보태고 50배쯤 올랐다. 그 얘기를 전해 듣고 의외로 담담했다.  그때 이미 <돈버는 놈은 따로 있다>라는 대명제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차였나 보다. 후배 녀석이라도 뒤로 챙겼으면 화가 날 만할텐데 들리는 소리는 이 친구도 깡그리 넘겼다고 한다. 그때 요행히 한국에 없었으면 대박 나지 않았을까. 기존 주식의 90%이상을 매집해 넘겼다하니(그게 인수조건이었다는 후문도 있고) 누구도 뒤로 뺄 여유가 없었을 게다. 내게 쏟아질 돈벼락이 아슬하게 비껴간 최후의 사례다. 그 친구가 부친상을 당했다.


창졸간에 당한 상이라 사람들에게 제대로 연락도 못했다고 한다. 나도 상주에게 직접 전화를 받고 왔다. 생각해보니 좀 특이한 경우이긴 하다. <형이나 저나 한때는 비서를 두셋씩 두고 썼잖아요. 이번에 회사사정때문에 다 내보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니까 황당하더라구요. 어떻게해요. 내가 직접 걸고 그랬죠. 그랬더니 옆에서 뺏어다 자기들이 연락해주더군요. > 어. 그랬냐. 근데 나 여기 못찾아서 영안실 한바퀴 돌았거든. 다른 분들 오시기 전에 문앞에 세워둔 화환들좀 어디다 치워야겠더라. 먹글씨 이름붙은 화환으로 장사진을 쳐놔서 들어가는 구멍을 못찾겠어.


우리 부모님 만수무강하셔야겠지만, 나는 정말 이렇게 보내드릴 생각은 없다. 마땅히 상주는 크게 슬퍼야 하고 부모의 마지막 가는 길을 효심으로 밝혀야 한다. 이게 기본이다. 알만한 이름의 회사와 사장 명의로 보낸 꽃무덤이 아무리 즐비하다 한들 그것이 상주의 효심을 대신할 수도 없고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는데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승의 모든 욕심에서 홀연히 벗어난 망자가 화환의 열병식을 보며 자식의 출세를 기특하게 생각하진 않으리라. 


상주의 슬픔을 걱정하며 함께 나눌 친구는 두셋이면 충분하고 너댓이면 많다. 고인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생전의 추억을 고인의 가족들에게 전하며 추모하는 것으로 족하다. 망자의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관행으로 와서 드리는 인사는 번거롭고 부담스러울 뿐이다. 평소에 고인이 좋아하던 꽃으로 단을 정성껏 꾸미고 사흘밤낮을 정성껏 마음으로 모시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고인을 가까이 모시지 못한 자손들에게 어른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효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야 한다. 이 소중한 시간을 뺏거나 용훼하는 방문객은 사절하는게 옳다. 아낙들이 음식대접하느라 부산떨고, 상주가 손님 때문에 빈소를 비우고 식당에 와 앉아있어야 하며, 무례한 이들에게 손목을 잡혀 급기야 술까지 들이켜야 하는 작태는 오랑캐도 하지 않는 비례다.


상가를 나오다가 문득 얼마전 역시 부친상을 치른 선배가 생각나 전화했다. 그도 마침 이곳에 오는 중이라했다. <어떻게 지내는거야. 사업은 여전히 잘되는가.>< 으응. 지금 청산중이야. 직원들 다 내보내고 있어. 다음주면 한가해질거야. 연락하께.><그래? 힘들겠군. 불가피하다면 어쩌겠어. 힘내.> 내가 수재로 인정하는 정말 몇안되는 사람중의 하나다. 서울대-KAIST에 20대 박사이며 유창한 경상도 영어를 구사하는 IT 벤처업계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4년전에 150억을 모집해 만든 회사를 2년만에 청산하고, 그후 십수억을 들여 세운 회사도 이번에 정리한다는 것이다. 이제 뭐할 건가 차분히 생각해봐야겠다고 한다. 


차분한 생각은 처음 실패했을 때 했어야 옳았다. 아마 그는 자기 실수를 인정하기 싫었던 모양이다. 사람들이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라고 위로하니까 정말 그런 줄 알았던 게다. 자기 실수를 다른 이들이 알기전에 얼른 나무 위로 올라가서 아무렇지 않은 듯 더 심하게 재주를 넘다가 이번에 아주 제대로 떨어진 셈이다. 실패를 가릴 마음을 먹지 말았어야 했다. 이제 입증이 됐지만 그건 실수가 아니었다. 분명한 실패였다.


물론 반성했을 것이다. 쓰디쓴 고배도 홀로 들이켰으리라. 하지만 그 반성은 실수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반성이 <어쩌다 내가 그런 실수를 했을까>의 수준이어선 안된다.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실수 그 밑바닥에 혹시 근본적이고 치명적인 오류가 있는게 아닐까?> 이런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또 그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고 차분히 생각할 시간을 갖겠다고 하는 점이다. 


남들은 끊임없이 속삭인다.  <진즉에 영어학원 했으면 한몫 챙겼을 텐데> <초상집엔 역시 화환이여. 문전에 쫙 세워놔서 촌놈들 야코부터 죽여> <너 그거 실패 아냐, 어쩌다 실수한거지. 빨리 싹 잊어먹고 새출발해.> 듣기에 좋은 말이다. 또 세상사람들 거개가 그리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들은 뭐라 해도 그리 살고 싶지는 않다. 길이 아니면 애시당초 가지 않아야 한다. 상주면 상주답게 효심으로 고인을 보내드리는게 옳다. 실수가 아니라 실패다. 실패를 받아들이고 자기 성찰로 들어가야 한다. 오늘 하루 반나절에 확인한 내 삶의 원칙이 이만큼이다. 세상은 내 원칙과는 궤도를 달리하며 도는 것 같다. 먹고 사는 것도 가뜩이나 힘들어 죽겠구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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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1-26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 나실 때 저의 '오래된 수첩'도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