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다시 뜬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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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이 아닌 청년 헤밍웨이가 쓴 작품

1 헤밍웨이가 27살에 쓴 『태양은 다시 뜬다』는 출판하자말자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된다 27살? 도대체 그 나이에 어떻게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단 말인가? 헤밍웨이의 아버지는 의사였고, 어머니는 음악가였다. 『노인과 바다』에서 보여준 낚시군 산티아고의 모습에서 헤밍웨이가 첼로를 켜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어릴적 그는 첼로를 배우기도 했다고 한다. 헤밍웨이는 어릴적부터 낚시를 좋아했고, 이 작품에서도 낚시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젊을 때부터 '영문학'에 두각을 나타낸 그는 당대의 문인들, 에즈라 파운드, 피츠 제랄드, 거트루드 스타인 등과 교류하면서 문학적 감수성을 키웠고 결국 이 작품이 등장하게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폴 오스터였던가? 수많은 이들에겐 스승이 있었고, 도제식 교육과 배움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윌리엄 포크너처럼, 헤밍웨이도 대학의 시스템교육을 거절하기도 했다. 천재적 문학적 영민함은 시스템의 온실 속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야생에서 자라나는 듯 하다. 하지만 우리 대한민국은 여전히 학벌과 학력을 잣대로 삼는 듯하다. 과연 그 시스템에서, 그 학력의 프로필에서 천재가 탄생할 수 있을까? 그건 모를 일이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헤밍웨이는 전쟁에 참여한다. 몇 개월후 그는 다리를 다친다. 그 병상체험과 전쟁체험이 그를 더 원숙하게 만든 게 아닐까? '충격을 먹으면 성숙한다'는 일개의 우스갯소리처럼 그는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삶을 배워갔던것이다. 기자출신의 작가여서 그런지 문체가 간결하다고나 할까? 아무튼.




2 문체 이야기가 나오니 헤밍웨이의 '빙산이론'(iceberg theory) 즉, '생략이론'(omssion theory)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본질과 중심과 핵을 숨기고 '빙산의 일각'만을보여주는 이런 문체와 글은 에즈라 파운드의 영향이거나 에즈라 파운드가 심취했던 일본 하이쿠의 영향이란 이야기도 있다. <빙산이론>에는 당연히 수많은 메타포metaphor와 상징, 은유가 등장할 수 밖에 없다. 등장인물 제이크의 성불구자 모습을 빗댄 술자리에서의 친구들과의 농담과 대화 가운데 단순함을 넘어선 수많은 상징과 의미들이 포함되어 있다. 





3 헤밍웨이하면 <Lost Generation>을 빼놓을 수가 없다. 전쟁이후의 거대한 상실감은 주인공, 등장인물들의 끊임없는 방황과 방탕과 표류를 보여준다. 20대의 대한민국 청춘들의 방황처럼은 아니더라도, 그들은 끊임없이 표류하고 표류한다. 대표적인 인물로 여주인공 브렛을 들 수 있다. 한 남자와 헤어지고 이 남자, 저 남자로 옮겨다니면서 대단한 남성편력을 보여주는 청춘녀, 브렛...어디에서고 안정감을 얻지 못하는 브렛, 심지어 19살(브렛은 32살)의 젊고 매력적인 투우사 로메오에게 한 눈에 반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사랑에 올인하고, 감정에 올인하는 거기에서도 그녀의 만족은 찾아볼 수 없다. 브렛을 둘러싼 애정구도는 삼각, 사각, 이중, 삼중 그물망처럼 퍼져 있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다. 자신의 심리적 안식처이자 피난처는 제이크이지만, 제이크는 성불구자이다.  

"난 마이크에게 돌아갈거야!"(332p)

그 마이크는 로메오 앞에서 술취해 생쑈(?)를 벌인 친구였건만, 과연 브렛은 마이크에게 온전한 안정감을 누릴 수 있을까? 여전히 불안하다. 그래서 lost generation인 것이다. 




4 이 청춘남녀들이 여행길에 오른 길은 산티아고 순례길이다.예수 그리스도의 12제자 중 하나인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안장된 전설때문에 유명해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tiago de Compostela)'로 가는 길이고, 산티아고는 중세 때부터 로마, 예루살렘과 함께 기독교의 3대 순례지가 되었다. 산티아고는 '성 야고보'의 변형이고, 콤포스텔라는 '별의 들판'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제이크는 Jacob의 애칭이며, Jacob은 야곱, 야곱의 야고보와 어원이 같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제이크는 비극적인 사랑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이탈리아 전선에서 큰 부상을 입어 성불구가 된다. 병원에서 간호하던 여인과 사랑에 빠지지만 맺어질 수 없는 관계로 전락한다. lost generation은 1차 세계대전 후의 상황의 세대를 지칭하기도 지만, 더 확대시키면 전 인류를 상징하기도 한다. '잃어버린 세대', '방황하고 표류하는 세대', 절대성과 유의미와 최고선, 가치를 상실한, 삶과 죽음 사이의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인류 세대를 지칭하기에 이 작품이 시간이 훨씬 지났지만 지금도 그 적용점이 존재하고 독자들의 사랑과 관심을 계속 받는 게 아닐까 싶다.


'사르트르(Jean Paul Sartre)는 현대사회에서 삶의 모든 주체는 인간이라고 주장하였으며, 까뮈(Albert Camus) 역시 현대사회에서 ()을 믿는 것은 현세의 아름다움에 대한 모욕이며 죄악이라고 주장하였다. 헤밍웨이는 대부분의 작품 속에서 신(God)의 부재(不在)나 죽음을 다루고 있고, 포오크너 역시 신은 아직 존재하되 너무 늙어 인간에게 더 이상 아무런 힘도 행사할 수 없다고 주장하여 사실상 신(God)의 존재를 무시하고 있다.'(본인의『소리와 분노』paper에서) 




5 제이크는 어쩌면 훼밍웨이의 종교에 대한 맘을 담은 캐릭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랑하고 품고 용납하지만, 성불구자인 제이크....헤밍웨이는 청교도신도인 어머니의 신앙교육을 업악적으로 견디며 커왔기에, 종교는 그에게 커다란 짐이었다(이전에 헤밍웨이에 대한 나의 글을 참조하시길!). 어머니가 온전하고 경건한 신자였다면, 억압적인 것이 아니라 친절하고 포용적이었더라면 그의 남편인 아버지가 권총자살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헤밍웨이의 집안에서 아버지, 헤밍웨이, 자신, 큰 여동생, 남동생 그리고 손녀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쳐 5명이 자살하는 비운을 겪었다. 그의 가족, 집안사가 말 그대로 'lost generation'이 되버린 셈이다.




6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 노인과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산티아고 순례길'...헤밍웨이는 끊임없이 길을 찾아 헤매는 구도자, 순례자의 모습이 역력하다. 노벨문학상 조차 수상한 그가, 그토록 낚시와 사냥과 투우를 즐기면서 열정적인 삶을 살며, 수많은 여인과 결혼하고 이혼을 거듭한 천재작가는 아픈 몸과 우울증으로 자신의 애장하던 엽총으로 자신을 쏴 버린다.


"한 세대는 가고, 또 한 세대가 오건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 태양은 다시 뜨고 다시 지며, 뜬 곳으로 서둘러 돌아간다 바람은 남으로 갔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빙빙 돌고 돌아 그 가던 길로 돌아온다. 모든 강은 바다로 흐르지만 바다는 넘치지 않으며 강물이 비롯된 곳으로 돌아간다"(구약성경 전도서 1:4-7)




7 문득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의 유명한 대사가 떠오른다.

"스트레이 십, 스트레이 십stray sheep..."

Lost Generation은 'Stray sheep'인 셈이다. 하지만 작품의 제목은 <The Sun also Rises>인데, 제목이 너무나 희망적이었다는 생각이다. 아마 헤밍웨이가 27살의 피끓는 청춘에 탈고해낸 수작이라서 더 그런 것이 아닐까?

 

하지만, 
'태양은 다시 뜬다'...그것은 사실이고 진실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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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10-02 1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J. D. 샐린저가 헤밍웨이의 영향을 받은 거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샐린저의 문장도 ‘빙산의 일각’ 같은 느낌이 들어요. 특히 샐린저의 단편에 있는 문장들이 그래요. ^^

카알벨루치 2019-10-02 17:56   좋아요 0 | URL
그게 일반독자의 눈에 안 보이는데. 전문가가 “빙산이론”이라 하니 그런갑다 싶고...참 문학의 샘물은 파도 파도 끝이 없나 봅니다~

소피아 2019-10-02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칭구^^

카알벨루치 2019-10-02 23:14   좋아요 0 | URL
네 반갑습니다 소피아님 즐독, 열독, 광독(?)하소서! 휴일 잘 보내세요